고구려 정체성 부정하는 중국의 ‘만주전략’… 통일 뒤 한민족 위상 생각하며 조선족 껴안아야

[한겨레신문] 2003-11-27
[속보, 사설/칼럼, 주간지]

중국에서는 개혁·개방 이후 자본주의 가치관(자유주의·민주주의·물질만능주의 등)의 유입과 소련 및 동구 유럽의 몰락으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사회주의 현대화’를 국가의 당면과제로 내세우고, 세부 실천과제로 ‘사회주의 물질문명 건설’과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후자의 주요한 내용은 애국주의와 집체주의(集體主義)이다.
애국주의는 중국 내 각 민족의 단결과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한 중화민족주의다. 이는 위기에 직면한 사회주의 이념의 대안적 이데올로기로서 일부 소수민족(특히 티베트족과 신강 위구르족)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차단하고 이완된 체제를 유지·강화하기 위한 중국의 ‘국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체제의 유지·강화 차원에서 애국주의 교육을 확산·심화하고 있다. 게다가 애국주의로 대표되는 중국의 국가주의는 최근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한층 높아진 세계적 위상과 맞물려 위력을 더해간다. 한편 국내에서는 만주 고구려 유적들에 대한 답사활동이 좌절되었다거나, 고구려 문화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는 북한의 노력이 중국의 방해로 실패했다는 소식들이 보도되었다.

높아지는 중국 애국주의 분위기

더욱이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기 위해 이른바 ‘동북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동북변경의 역사와 그것으로 파생된 오늘날의 현상 사이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프로젝트)을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마저 들린다. 중-일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중국에서는 만주국 시기에 제조된 일본의 독가스탄 폭발사건, 일본인 매춘사건, 일본 유학생 나체공연 사건 등이 잇따라 부풀려지면서 반일 적개심이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 이것은 점증하는 중국 국가주의에서 비롯된 일련의 사례들이다.

동북공정이 상징해주듯이 중국 국가주의가 고개를 쳐들고 있는 가운데 만주에서는 수많은 북한 탈북자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국내에서는 조선족이 한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거나 강제추방 조치에 맞서 ‘한국국적 회복’을 위한 대규모 집회와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재외동포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중국 공민’의 권리에 대한 내정간섭이라는 이유로 우리 정부의 조선족 관련 조치에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모두 ‘만주’와 관련돼 있다.

그렇다면 중국에게 ‘만주’는 무엇인가? 이 점은 해방 전까지 사용되던 만주 명칭이 사라지고 ‘중국 동북지구’라는 지명이 대용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 이유는 만주라는 용어가 일본의 괴뢰국 ‘만주국’을 환기시킨다는 점, 주변 국가에서 중국 관내와는 별개의 지명으로 만주 용어를 사용하면서 만주가 ‘중국의 온전한 영토’가 아님을 암시한다는 점 때문이다. ‘중국 동북지구’라는 명칭은 만주가 ‘중국의 동북에 위치한 확고부동한 지역’임을 웅변한다. 중국쪽의 그러한 속내는 결국 동북공정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1996년부터 싹트기 시작한 동북공정(이하의 내용은 http://www.chinaboderland.com 참조)은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을 축으로 길림성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동북사범대학 동북아연구중심, 길림사범학원 고적연구소, 중국인민대학 청사연구소 등에 의해 추진됐다. 그리고 마침내 중공중앙의 비준을 얻어 2002년 2월부터 5년 기한으로 정식 활동에 들어갔다.

동북공정,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동북공정에는 중국 권력서열 7위 안에 드는 중공중앙위 정치국 국원 겸 사회과학원 원장을 비롯해 동북 3성(헤이룽강·지린·라오닝)의 최고위 관료 등 행정조직, 대학과 사회과학원 등 연구기관대학 등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동북공정은 크게 연구 부문, 번역 부문, 자료수집·정리 부문으로 나뉜다. 주요 연구내용과 지침은 △고대중국 강역이론 연구 △동북지방사 연구 △동북민족사 연구 △고조선·고구려·발해사 연구 △중-조(中-朝) 관계사 연구 △동북변강사회 안정전략 연구 △한반도 형세 변화와 그것이 동북 변강의 안정에 미칠 영향 연구 △중국 동북 변강과 러시아 원동지구의 정치·경제 관계사 연구 △응용연구 등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결국 동북공정은 한반도, 즉 남북한을 염두에 둔 프로젝트로서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점은 동북공정의 논리에서 드러난 ‘만주관’을 살펴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먼저 동북공정에서 제기하는 고구려 인식에 따르면 고구려 정권은 “서한(前漢) 현도군 고구려현 경내의 변강민족이 수립한 소수민족 정권”으로 중화민족의 역사 범주에 속한다. 고구려 정권은 “남하한 일부 부여족 일파와 서한 고구려현 경내의 기타 민족에 의해 공동 수립”되었다고 하여 정권수립 주체가 한민족(韓民族)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또 고구려 민족의 원류 역시 “모두 서한 시기 동북변강지구에서 활동한 민족”이라고 해 한민족과는 무관한 중국 변강민족임을 강변한다. 더욱이 고구려 정권이 “초기에 서한의 직접적인 관할하에 있었고” 고구려의 활동지역이 “중국 역대 왕조의 통치지구”였다고 해 당나라의 고구려 공격을 타 민족 사이의 정복전쟁이 아닌 중화민족 내부에서의 ‘통일’로 파악한다.

둘째, 동북공정에서는 고구려의 활동중심(주로 도성)이 몇번 옮겨져 후기에는 도성(평양성·장안성)이 현재의 중국강역 밖(한반도)으로 옮겨졌지만, 그 지역 역시 한사군의 관할범위였다고 주장한다. 고구려의 활동 범위가 “한사군의 관할 범위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구려는 “줄곧 중국 역대 중앙왕조와 책봉(冊封)-조공 관계를 유지해왔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 관계를 끊고 ‘중국’ 밖에 존재했던 적이 없다”고 강변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당시 중국 왕조와 신속(臣屬) 관계를 맺은 모든 정권(예를 들어 신라·백제·일본 등)은 기본적으로 중국사의 범주에 속하는 셈이다.

탈북자 · 조선족, 만주의 뜨거운 감자

셋째, “고구려 멸망 뒤 고구려 유민(70여만명) 가운데 대다수는 한족으로 흡수·융합되었거나 말갈의 발해에 망명해 그 구성원이 되었으며, 그후에는 여진족·돌궐족에게 융합·흡수된 반면 일부(10만명)만이 투항해 포로 등의 형태로 신라에 흡수되었다”고 함으로써 고구려 민족과 한민족의 관련성을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대륙과 한반도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단절시키기 위해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적 계승성마저 부정한다. 즉, 중국의 사가들이 습관적으로 ‘고려’라고 약칭했던 고구려는 그것이 멸망한 지 250년 후에 등장한 한반도의 ‘왕씨고려’(태조 왕건이 세운 고려)와는 시간적으로 보나 왕족의 성씨로 보나 예속신민의 구성 실태를 보나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의 연장선으로 조선족이 19세기 중엽 이후 한반도에서 넘어온 한민족을 모태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내세운다. 즉, 오늘날의 조선족은 고구려 멸망 이후 만주에서 존속해오며 혼혈된 민족을 모태로 거기에 한반도의 ‘일부 조선인’이 다시 융합돼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족과 한민족의 혈통적 동일성을 부정함으로써 ‘조선족=한민족’이라는 등식을 깨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동북공정의 목적은 1차적으로 고조선사·고구려사·발해사를 한국사(혹은 조선사)라고 주장하는 국외의 논리들에 대응하기 위해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기존의 연구자료를 발굴·정리·분석해 그것을 중국사라고 주장하려는 데 있다. 2차적으로는 남북통일 이후에 초래될 수 있는 국경·영토 분쟁에 대비한 역사적·지정학적 논리를 마련하고 앞으로 남북통일이 조선족 사회에 미칠지 모를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해 미리 대처하려는 데 있다. 3차적으로는 동북공정 논리를 주입해 조선족의 민족정체성 혼란을 예방하고 중화민족 논리를 재확립·강화해 만주에서 소수민족 문제의 돌출을 막으려는 데 있다. 이것은 다민족 통일국가인 중국의 체제 안정과 직결된 중차대한 정책 차원에서 비롯되었음을 뜻한다.

결국 중국 정부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의 필요적 관점, 즉 중화민족의 정체성 강화를 통한 국가·사회적 통합과 그것을 통한 체제의 유지·안정이라는 거시적인 국가전략의 하나로 동북아 역사를 재단·왜곡해 역사적·문화적 귀속권을 둘러싼 한-중간의 논쟁점이나 조선족에 대한 흡인 요소, 영토 관련 분쟁거리나 중화민족 단결에 해로운 논조를 송두리째 잘라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황은 중국변강사지 연구중심에서 작성한 ‘한반도 형세의 변화가 동북지구의 안정에 미칠 충격’이라는 자료에서 잘 드러난다. 이 자료는 동북공정이 대규모의 북한 탈북자 문제와 조선족 문제에서 촉발했음을 시사해준다. 아울러 조선족의 밀집지구이자 한반도와의 교류가 빈번한 옌볜조선족자치주와 단동지구가 한반도의 형세변화(남북통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지역으로 꼽히고 있음을 적시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예상할 수 있다. 즉, 중국 정부가 우려하는 만주사회의 변화상은 남북통일로 인해 대규모의 북한사람들이 만주로 탈북하는 것과, 코리안드림을 실현하려는 조선족이 혼란기를 틈타 한반도로 몰려들 경우이다. 만주에서의 북한 탈북자와 조선족의 공존, 한반도에서의 한국인·북한사람·조선족의 잡거 상태는 일시적인 잡음을 야기하겠지만, 궁극적으로 탈북자·조선족·북한사람·한국인 사이의 민족적·혈통적 공감대를 확대하여 만주에 대한 한민족의 영향력을 제고할 것이다. 이는 한반도와 중국대륙의 단절을 통해 만주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중국 정부의 전략에 치명타를 안겨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불거진 만주에서의 소수민족 문제는 각 민족의 단결을 통한 체제 유지를 지상과제로 하는 중국 국정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동북공정의 전략적 의도는 분명해진다. 그것은 한마디로 역사·문화적 방면이든 실제관계든 중국대륙과 한반도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이 양자의 연결고리를 끊어 만주에 대한 한반도의 영향을 차단함으로써 체제를 안정시키는 동시에 조선족을 ‘온전한 중화민족’으로 만들어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동북공정은 현대 중국의 ‘만주전략의 핵’이자 중국 국가주의의 전형적인 표상이다. 바야흐로 중국에서는 각각의 소수민족이든 개인이든 그들의 고유한 가치는 모두 ‘중화민족’ 혹은 ‘애국’이라는 국가주의, 혹은 ‘현대판 중화주의’의 그늘 속에 묻혀지는 것이다.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란 대의 그렇다면 ‘만주’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만주는 우리의 역사적 자취를 물씬 풍겨주는 한반도 밖의 유일한 공간이다. 또한 만주는 경제적이든 문화적 관광차원이든 우리가 대륙으로 진출하면서 첫발을 내디딜 관문이기도 하다. 이때 ‘중국동포’라고 불리는 조선족의 향배는 대륙과 한반도가 단절되느냐 아니면 양자의 연계로 한민족의 대외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지렛대다. 만일 조선족을 차별해 그들이 진정한 중화민족이 되도록 한다면 양자의 단절 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바라는 바이고 동북공정 논리의 현상화를 의미한다. 반면에 그들을 한민족의 품안으로 따뜻하게 맞아들여 그들이 한민족의 일원임을 각성시킨다면, 중국의 화교정책에서 잘 드러나듯이 한민족의 위상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바이다. 중국 정부가 재외동포특별법의 제정에 반대하고 동북공정 논리를 계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족이 한민족임을 각성하고 자신들의 혈통적 조국이 한반도라고 생각하는 한, 동북공정 논리는 모래 위에 세워진 누각에 불과하다.

이렇게 본다면 조선족을 ‘중국동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가난한 중국인’으로 배척해야 할 것인가가 분명해진다. 이를 위해서는 동북공정의 실체를 파악하고 대응논리를 개발함은 물론 조선족에 대한 좀더 전향적인 정책의 수립이 요구된다. ‘조선족’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도외시한 채 학문적 차원에서의 대응논리만을 주장할 경우 그것은 ‘허무한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이다. 학문과 현실, 순수와 응용은 각각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때로는 양자가 변증법적으로 작용할 경우에만 빛을 발하기도 있다. 어쩌면 지금이 그때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만주전략’에 대한 우리의 해법은 학계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자료 수집과 대응논리 개발, 조선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전환, 이를 주도하는 정부의 전향적이고 현명한 정책 사이의 유기작용 속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해법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대의적인 틀 속에서 찾아야 시대적 당위성을 획득할 수 있다. 감정적인 대응이나 배타적인 민족주의는 파국을 초래하여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있다. 냉철한 이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윤휘탁 | 동아대 연구교수 · 중국사 ⓒ 한겨레(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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