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래의 시인마을소묘

아기자기한 진행인기… 장거리 여행 단골메뉴

 
  '제15회 전국민족문학인대회 경남대회'에 참가한 부산 문인들.
비가 내리는 지난 19일 오후 1시쯤. 부산의 시인, 소설가들이 국제신문사 맞은 편 한양플라자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경남 거창에서 열리는 '제15회 전국민족문학인 경남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문학행사 때마다 단골로 타고 다니는 태평양관광버스가 벌써 대기하고 있었다.

글쓰기와 무더위에 지친 글쟁이들의 모습은 조금 후줄근해 보였다. 그래도 반가운 수인사를 나누며 모처럼 교외로 바람 쐬러 나가는 해방감에 들떠 있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차는 예정보다 30분가량 늦게 출발했다.

그러나 몇몇 여성 문인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금방 차안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자, 이번에도 참가자 여러분을 위해 로또복권 추첨을 하겠습니다."

버스가 교외로 접어들자 사무처장 서정원 시인이 예의 그 로또게임을 시작했다. 0부터 21까지의 숫자 중에서 임의로 다섯 개를 선택하여, 그것을 당첨번호로 확정해 둔다. 그러면 사람들이 1000원짜리 복권을 사서 그 번호를 알아맞히는 방식이다. 다섯 번호 중에서 세 개를 알아맞히면 문화상품권 1장, 네 개를 알아맞히면 2장, 다섯 개를 다 알아맞히면 4장을 준다.

제1회 당첨번호는 서정원 시인이 정했다. 사무처장으로서의 직권이었다. 제각기 기대를 걸고 복권을 사서 숫자를 적었다. 하지만 당첨자는 예상 외로 적었다. 한영옥 시인만이 숫자 세 개를 알아맞혀 문화상품권 1장을 얻었다. 곁에 앉은 박명호 소설가는 2장이나 샀지만 모두 낙방되어 구두 밑창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제2회 당첨번호는 오정환 선생님이 정하겠습니다."

서정원 시인의 제안대로 오정환 시인이 극비리에 당첨번호 다섯 개를 적어 서 시인의 호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많은 문인들이 복권을 사서 숫자를 적었다. 필자도 1장을 사서 숫자를 적었다. 오정환 시인은 성씨가 오씨이므로 반드시 5가 들어갈 것 같았다. 그래서 5를 포함한 숫자 다섯 개를 적어 응모했다. 예상대로 당첨번호에는 5가 들어 있었고, 숫자 세 개를 알아맞힌 필자만이 문화 상품권 1장을 얻었다.

제3회 당첨번호는 권오철 작곡가가 두 개, 오정환 시인이 두 개, 서정원 시인이 한 개 정하기로 하여 좀 난해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권 사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박명호 소설가가 일어나 큰소리로 말했다.

"권오철 작곡가는 구멍을 좋아하므로 반드시 0이 들어갈 겁니다. 겁내지 마십시오."

이 말 한 마디에 용기를 얻은 문인들이 낄낄거리며 복권을 듬뿍 샀다. 결과를 공개해 보니 권오철 작곡가는 역시 0을 당첨번호 중의 하나로 정했고, 모든 응모자들이 0이란 숫자를 선택하여 서너 명의 당첨자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박명호 작가는 낙방하여 구두 밑창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제4회에는 강영환 시인이 당첨번호를 정하여 추첨했지만 당첨자가 아무도 없었다. 홀수를 선호하는 문인들의 습관을 간파한 강 시인이 짝수만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미욱 사무차장에게 당첨번호를 정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그녀가 사무국 전화번호를 조합한 까닭에, 두세 명의 당첨자가 나왔다. 모두들 웃으며 그 결과에 만족해했다.

서정원 시인의 특허품이라 할 수 있는 이 로또게임은 3년쯤 전부터 시인마을에 유포되었다. 장거리 이동시에 버스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라 시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러나 그 진행이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어야 하므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니다.

사행성 게임을 유포시킨 죄로 서 시인이 검찰의 수사를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시인 casscho@hanmail.net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