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말 중국의 북방도시 할빈에는 벌써 겨울을 알리는 찬바람과 함께 하늘에서는 힌 눈꽃을 휘날렸다. 필자는 고향친구들의 추천과 10여 년 전에 언론에서 복무한 “공로(?)”를 인정받아 본의 아니게 할빈 본사에서 중국 한민족의 최대신문사의 ‘특약 기자증’을 받아 안고 곧바로 출장 주목적지인 운남성 곤명시로 향했다.
할빈에서 흣날리는 눈꽃을 보며 추위를 막느라 옷깃을 여미었는데 여기 운남에 와서는 외투를 벗어던져야했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52개 소수민족이 대 집거한 민족의 도가니 운남성, 전성 면적의 94%가 기복이 심한 산지인데, 여기 ‘4철 봄의 도시’라 이름 짖는 성도(城道)인 곤명시는 한창 아롱다롱 여러 가지색조의 꽃들이 따스한 해빛 속에 활짝 웃음을 짖고 있었다. 정말 이름그대로 “꽃의 도시”였다. 중국의 개혁개방의 봄바람을 타고 지금 이 운남에는 적지 않은 한인들이 들어와 농예원을 차리고 상품꽃 재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전성에 대형 꽃재배농장이 모두 13곳 있는 그중에 7개가 한국인이 경영하는 원예 농장이라 하니 한국인의 해외진출이 눈뛰이게 돋보이는 한 면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관심은 “사철 봄의 도시”의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누강 상류에 새로 일떠서고 있는 하나님의 집- 새 성전 건축과 이 일에 열성을 보이고 있는 현지인 성도들을 만나보는 것이었다.

이곳은 운남의 서쪽, 해발 6.740 메터 매리설산 밑 고산지대이면서도 누강 줄기를 따라 천리도 넘는 깊은 대협곡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최근 2년도 채 못 되는 사이에 누강 상류주변과 협곡사이에  새로 철근, 벽돌, 세멘트 기와 등 재료로  멋진 15개의 성전들이 건축되고 있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오후6시에 교회당건축 책임자 전기봉선교사와 함께 곤명에서 장거리 버스에 올랐다. 장장 16시간 넘게 베스 안에서 술 담배냄새와 땀에 절은 시쿰한 냄새에 젖어 시달리는데,  버스는 줄창 달려 이틑날 새벽부터는 누강을 끼고 비록 구불구불하지만, 잘 포장된 아스팔드도로로 계속 강줄기를 따라 치달아 올랐다. 협곡을 점점 좁아지는데 발아래는 누강이 사품쳐 흐르고 머리위로는 높이 솟은 돌산들이 끝이 아찔하게 강줄기를 사이 두고 칼날처럼 치솟아 있었다. 겨우 현장부락인 복공현(福貢縣)에 도착하여 차가 멈쳤을 때는  이틑날 오전 10시가 넘었을 때였다.

높은 고원이지만 공기도 좋고 경치도 아름다웠다.
세계의 가장 높은 히말리아 산맥의 동쪽인 이 누강 협곡은 ‘세계지붕의 도시’ 성(城)이라 불리우는 라싸를 등지고 3갈래의 강을 이루는데 마치 달리는 준마 행열인양 청장고원의 얼음산을 사철 녹여 쏟아 내면서 큰 강줄기를 이루어 동남쪽으로 흘러내린다. 그 3 갈래 강줄기로는 최 남쪽으로부터 미얀마 국경을 따라 동남아 국가를 사이두고 흐르는 물줄기는 누강, 다음 아름다운 천연 자연미로 새롭게 관광명소로 발 돋음하는 난찬강, 1930년대 모택동이 이끄는 ' 2만5천리 대장정'홍군이 쏟아지는 총포탄 속에서 쇠바줄 다리를 타고 넘었다는 유명한 전설의 강, 금사강이 삼형제를 이루어 흐르고 있다. 그중 가장 남쪽의 미얀마 국경과 가까이 산마루를 사이 두고 흐르는 강이 바로 누강이다. 긴 협곡을 이룬 강이 그 하류에 와서 급작스레 남쪽으로 물줄기를 틀어 곧장 미얀마로 흘러들어 가면서 여기까지 천여리의 천연 대 협곡을 이루어 놓았다.

깊고도 평화로운 대 협곡이지만 가는 도중 긴장한 변방 초소를 지나야 했다. 우리가 탄 버스가 초소에 들어서자 10여명의 전신무장한 중국 군인이 차를 세우고 세밀히 검사한다. 후에 안일이지만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들로부터 목재, 약재 등 수입품이 들어오는 이곳은 또한 마약이 중국 경내로 흘러드는 통로이기도 했다. 사람마다 훏어 보고 신분증이며 짐까지 삳삳이 검사하는데 그래도 필자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나에게 중국에서 “로마시민권”같은 기자증까지 휴대했으니깐, 그리고 “기자는 항상 취재하려 다니니깐.... ” 말이다.

검사는 들어갈 때보다 나올 때가 더 심했다. 이곳 현지인들은 이젠 관습으로 굳어졌는지 달리던 베스를 잡아놓고 군인들이 눈살을 굴리며 반시간 이상이나 검사해도 누구하나 원망하거나 불평을 토하는 이가 없었다. 참 순진한 백성들이라 생각되었다.

초소를 지나며 강줄기를 따라 올라갈수록 낙차가 심하여 거칠어진 누강 물결은 마치 죽을 결단이나한듯 급속도로 층암 절벽에 머리를 틀어박으며 힌 물갈기를 곤두세우곤 철썩! 쏴 쏴! 비명을 질러대곤 했다. 그러다가도 뒤덮치는 뒤 물결에 밀리워 힌 거품을 토하고는 곤두박질로 사품치며 흐른다. 먼 길을 흘러도 절벽사이를 흐르는 눈석이 물이라 차고도 맑은 것이 누강 협곡 현지인들의 순박한 품성이양 생각되었다.

그런데 기관은 이 협곡사이 좁은 땅과 층암절벽 등벽에 붙어 이 지역 원주민으로 불리우는 소수민족들이 작은 동네를 이루며 다락방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이 돌산이라 손바닥만한 땅뙈기라도 있으면 거기에 옥수수와 감자 등 농작물을 심어 수확한다. 집집마다 거의 닭과 돼지를 기르는데 어떤 집은 사람이 다락 위층에서 살고 돼지들이 아래층에서 함께 공생하고 있었다.
중국정부 민정부에서 이들 소수민족을 돌보아 강주변 언덕에 보조로 집을 지어 주고 내려와 살라해도 별 흥취가 없는지 층암절벽을 타고 산위로만 오르는 원주민들이다.
이런 벽촌에 백성들이 참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과관이며 또한 감사할 일이었다. 이곳에서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20여 년 전 베트남에 자리를 틀었던 불란서 선교사들이 강줄기를 타고 협곡을 따라 올라오면서 복음을 전했다 한다.

100여년전에 뿌려진 복음의 씨가 이 천연 대협곡의 돌바위 속에서도 마르지도, 꺼지지않고 왕강한 생명력으로 움티우며 자라나고 있는것이 기적 같았다.

동북아뉴스(후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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