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2월 31일, 양력 설 이브입니다. 이런 날에는 기분에 따라 한잔 하는 법이지만,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작전 준비가 다 된 것 같습니다.

 

몸 단장도 깔끔히 했고, 굽 높은 구두도 번쩍번쩍, 명함은 남성 호르몬 냄새가 풀풀 나는 그런 거, 오후에 바로 명함 집에서 찾아왔습니다.


담배 한대 태우고 시작 해볼까..^^

 

한숨 돌리는 사이에, 여러분들이 심심하지 않게 까마귀님의 어머니 얘기나 해볼까 합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우리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많이 궁금하시지요!

 

앞에서도 간단히 얘기를 드렸지만, 솔직히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대단한 어머니십니다. 까마귀의 어머니는 그래도 까마귀가 잘 압니다.

 

지금부터 저의 얘기를 들어보시지요.

 

 

*

 

 

먼 옛날의 일이지만, 어머니는 연길 시교의 어느 잘 사는 부자집 딸이었습니다. 부자집에는 형제가 모두 여섯인데 어머니는 3남 3녀 중의 막내였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대단한 재산가였나 봅니다.

 

개구장이 시절, 언젠가 어머니와 같이 연길 교외로 산책을 갔었는데, 어머니가 부르하통하 강둑에 서서 멀리 산밑까지 펼쳐져 있는 넓고 넓은 논밭을 가리키며 말씀하십니다.

“여기 보이는 논밭들이 옛날에는 모두 우리 집의 거였다.”

 

그날 까마귀님은 난생 처음 외할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부자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넓은 논밭을 바라보노라니 저도 모르게 존경심이 우러러 났습니다.

 

하지만 까마귀는 유감스럽게도 외할아버지를 뵌 적 없습니다. 지난 세기 50년대 초에 외할아버지는 큰 아들을 찾아 조선으로 건너갔고, 까마귀가 태어났을 때는 공화국에서 세상을 뜬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에 외할아버지보다 부지런한 분이 없다고 했습니다.

 

젊은 시절에 혼자 두만강을 건너와 만주땅에 자리를 잡은 외할아버지는 못한 일이 없다고 합니다. 탄광에서 석탄도 캤고, 남의 집 머슴으로도 살았고, 장사도 했다고 합니다.  

 

외할아버지는 그렇게 몇 년동안 열심히 번 돈을 밑천으로 작은 땅을 마련했는데, 매년마다 조금씩 재산을 늘려가더니 10년이 되니 농꾼도 여럿을 둔 대지주로 변신했습니다.

 

재산이 생겼으니 그 재산을 지켜야지요..^^

 

외할아버지는 자식들의 교육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큰아들은 소련으로 유학을 보냈고, 둘째와 셋째도 모두 대학을 보냈습니다. 역시 현명한 분이어서 딸 셋도 모두 학교로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

 

역시 지주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현명한 분이지만 하루같이 변하는 역사에 흐름에는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한창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때, 일본이 망하여 만주를 떠나고, 얼마 안돼 공산당이 주도한 토지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눈깜짝할 사이에 ‘있는 사람들’의 세상이 ‘없는 사람들’의 세상으로 털바뀜 한 겁니다.

 

백수 까마귀의 경험에 의하면, ‘없는 사람들’이란 대부분 운명론자들입니다. 예를 들면,  까마귀가 글이 안되면 여자탓을 하는 것처럼, 못 살면 모두 남의 탓이고 세상을 잘못 만난 탓입니다.

 

그리고 '없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도 대단합니다.

 

이 세상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돈이 돈을 벌고, 스트레스가 스트레스를 부릅니다. 문제는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가 일단 폭발하면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겁니다. ‘빨갱이’ 혁명이 단락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무조껀 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가상의 ‘적’이 핵무기도 만들었으니 이젠 이기기는 열 번도 글렀네요. 여기서 우리는 스트레스를 '핵무기'에 비유할 수도 있겠지요.

 

- 후유~ 통일은 언제 하는 거지?

 

시시한 얘기는 이만 하고,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시세에 민간한 외할아버지는 재빨리 재산을 처분했습니다.우선 농꾼들에게 논밭을 분배하고 안착비도 푼푼히 주어 내보냈습니다. 다음은 될 수 있는 한 귀중품을 남모르게 감추어버렸습니다.

 

외할아버지네 집에는 중국어, 일본어, 우리 말로 된 장서가 만권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일본특무로 몰릴 가봐, 집에 있던 일본어로 된 장서를 하룻밤 사이에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덕분에 꼬깔모자를 쓰고 타도는 받지 않았지만, 위험은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밤에 어느 ‘한’많은 놈이 뿌린 돌멩이에 유리창이 깨진다던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닭우리 안의 닭이 모두 없어졌다던가,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끝내 병으로 몸져눕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길이 있다고, 소련으로 유학 갔던 큰 아들이 '금의환향'합니다. 큰 아들은 멋진 군인이 되어 말을 타고, 호위병까지 끌고 돌아왔습니다. 온 마을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구경하러 나왔습니다.

 

큰 아들이 돌아왔단 소리에 외할아버지는 맨발바람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마치 언제 병이 있었나 싶습니다..^^

 

알고 보니 큰 아들은 그 동안 소련의 군사학원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거였습니다. 큰 아들은 군대에서 요직에 있었고,  덕분에 외할아버지는 지주신분에서 금시 ‘개명인사’로 변신했습니다 .

 

그 후부터 외할아버지는 활개치며 마을을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명백한 사실에, 지주성분만은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대단한 외할아버지를 ‘조상’으로 모신 까마귀님이지만, 호적에는 성분이 빈농으로 되어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빈농 출신이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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