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숙 약력: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시, 수필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수상. 현재 울산 거주

홍어

홍연숙


눈물이 콱 나요
목 마르게 간절했던 냄새에 코끝이 찡해요
참을 수 없어 떨리는 입술
독하게 들어오는 당신의 상처를 마중하고
소슬하게 곪은 삶이 입안을 헤집어요
거역할 수 없어 앙다물고 쿡 씹을 때
터지는 눈물 찝질하게 흐르고
다시 바다로 향하려는 거센 향 헤가르며 언덕을 넘어 오는 당신은 내 남자였어요

아직 풋풋해여
푹 삭혀야 제맛인디


2019.7.13

 

치매
 

언제 기어 들어와
멀쩡한 날 없이
수십번을
달려들고 찌르고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다들 무섭다고 피하고
밀어내고 밀려나와 쓸려 다니다가
평생
농사밖에 자식밖에 가족밖에 모르는
주글주글 말라 비틀어지고
꼬불딱하게 쫄아버려
농사도 자식도 가족도 허공에 다 풀어진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법 있어도 살 수가 없는

 
2019.6.25


사는 일 
 
 
시집 사남매 중 셋이 이혼했어라
여시 겉은 시누 둘에 철딱서니 도련님 하나
다 새로 살림 차려들 살제
맨날 며츨 몬살고 갈라지고 또 붙고 허며
울 성님두 이혼했어라
이놈 저놈 만나다가 이제 잘 사나 몰겄어
칭구들두 이혼 안한 칭구가 별루 없구먼
나가 가문 다들 놀려먹제
치사하게 한 놈이랑 수십 년을 산다문서
것도 첫사랑하고 산다고 미쳤다고
지겹지도 않냐고
그럴 거면 내사 되레 호통치지
니들 그리 사는게 지겹지도 않냐고
한번이면 알아볼 걸
뭣 하러 자꾸 쓰잘데기없이 복습하며
그리두 어렵게들 사냐고
좀 쉽게들 살믄 안되냐고
소리질러뿌리제
허 참 나 원
 
2019.5.29

 

덩굴장미의 로맨스

 

검은 머리 파뿌리 될때까지는
너무 지겨운게지
제 아무리 요조숙녀라도
불어오는 바람에 어쩌지 못하고 벌렁대는
마음은 벌써 담을 타고 있었지
눈에 불이 붙었어
뜨거워 견딜수 없었나봐
옷을 벗어 제끼더니
가슴띠마저 벗고
사리마다도 벗었어
속살까지 다 벌리고 뭐 하는 짓거리냐고
구경군들이 사처에서 몰려와
불륜이라고 떠들고 있었지
사람들 눈에서도 불이 붙었어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에 들렸어
오월은 지금 피를 흘리고 있어


2019.5.11

 

장미꽃 축제

 
장미꽃 축제라고
엊그제부터 떠들었는데
언니는 바쁘데
손녀 보느라 바쁘고
아들네 이사에 바쁘고
여태 놀던 남편 일 간다고
챙겨주느라 바쁘데
일년생 장미는 일년에
한번씩 축제를 하는데
53년생 언니는 그 한번의 축제도 못간데
언니는 바쁘데
축제로 바쁘데
구경꾼 하나 없는 축제
매일 눈 뜨면 터지고
어지럽게 피고 지는 축제에
정신줄 팔 새 없이
지금도 바쁘데
 
2019.5.24

 

주름꽃

 

날개를 펼친 알바트로스이다가
欲탕에서 지느러미
퍼덕이는 飛어이다가
섬세하게 잘 엮은 소설로 읽히며
아픈 이야기만 흘러나오는
저 작은 심장소리에
장미의 우쭐대는 소음은 사라지고
밑바닥 인생 한 줄 더
주름져 간다

2019.5.3


달맞이꽃


여기는 위태롭지
도로변 경계석 사이라
세상에 소외된 거지같은 생각은
제 아무리 몸부림쳐도
발 디딜데 없는 문명의 도시에선 어림도 없지
달 흉내내는 등불에
달 그립다고  미친 소리 하다가는
네바퀴 차들의 소음에 형편없이 잘려 나가지
언제 뽑힐지 모르는
그 엄청난 생각들은
밤이면 찾아와
노랗게 피고
기다림에 시들어 떨어지지만
또 피어 오르지
쓸어내도 자꾸만 쌓이는 먼지들
뿌리뽑힌 그 자리에
달맞이 꽃은
오늘도 잊지 않고 피지


 
2019.7.4

 

도라지꽃


바람에 흔들리며 보라빛으로 힌 빛으로 간다
웅성대는 옥수수밭을 지나고
호박잎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 한다
허물어진 집더미 밟고
저 너머 삶 속으로 간다
더위는 숨 잡고 늘어지고
질척한 바람은 가는 길을 멈추게 한다
올려다 보라고
하늘이 푸르게 자리를 내주고
먼지나는 발 아래
도라지 꽃이 7월을 수놓는다

2019.7.3


달의 침묵

 

저 차가운 시선을 우리는 피할 수 없다
밀다가 밀리다가
밟다가 밟히다가
물다가 물리다가
그대로 방치된 허망한 것들이
먹다가 남긴 쓰레기들이
먹고 싼  똥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늙은 창녀는 낡은 치마를 펄럭이며
조용히 읽혀간다
진공속에 포장된 저 기억은
썩지도 않고
씻기지도 않으며
깨지지도 않는다
이제
두손 깁고 무릎 박고 빈다 한들
천번이고 만번이고 빈다 한들

 

2019.5.16

 

카라

 

카라가 햇빛이 필요하데
노랗게 피었던 카라가 퍼렇게 입을 열었어
너가 데려간 카라
너에게 사육된 카라
햇빛도 없는 너의 삶에 지쳐가고 있어
너의 집착은 여전했고
너의 욕심은 끝이 없어
카라는 죽어가
노랗게 피었던 카라가 퍼렇게 입을 열었어
카라가 햇빛이 필요하데

2019.5.13

 

돼지들

 

왜 그래
이제 와서 노친타령이야
암퇘지처럼 새끼만 싸지르는
자궁을 카맣게 태워 논에 다 뿌리고
첫째년을 못 잊어서
자꾸 밀쳤던 둘째년이
좋아 했던 남자가 있었데
사랑을 받았데
그래도 떠날 수 없었데
주렁진 새끼들을 버릴 수 없었데
왜 그랬어
돼지라며
새끼만 싸지르면 된다며
이제 와서
왜 그래
첫째 년만 끼고 살았잖아
새끼도 싸지르지 못한다고 버려 죽은
묘지에 엎어져 땅 치며 통곡 했잖아
왜 그래
치매에 돌았다구
돼지가 사람으로 보인다구
이제야 마누라라네
봐달라네
떠나지말라네
애처럼 징징대는 저 늙은 돼지가
거죽만 늘어나 씹지도 못할 돼지가
씹어도 넘어가지 않는 돼지가


2019.5.29

 

탱자나무


5월을 맞으며 무리지어 온다
비는 탱자나무의 시든 꽃잎 내려주고
날개 젖은 까치는 그 속에 서 있다

가는 중이다
가시로 찌르는 기억을 향하여
덮쳐오는 유혹의 덩쿨을 지나
젖은 진훍길로 푹 푹 빠지며

가는 중이다
저만치에서 부르는 향기를 따라
노랗게 열리는 가슴에
몽울진 담이 익어 터지며


2019.4.27


大米河*는 흐른다

 

땡볕에 그을린 大米河의 침묵을 들여다보면
보뚝마다 발바닥이 녹아있고
모살이에 손가락이 뻗치고
심장이 논물을 순환시키지
평생 배웠다는게
뼈와 살로 쭉정이를 살찌우며
논판에 벼로 서서
잘리고
갈리고
먹히고
마지막 기억 한오리까지
싹 쓸어 탕왕벌에 태우다가
말없이 흐르기만 하지

2019.6.2


*흑룡강성 탕원현에있는 탕왕하의 지류이다. 탕원 백성들이 몇십년의 시간을 들여 탕왕하댐에서부터 새로운 도랑을 파면서 大米河가 태어났다. 1950년 부터 시작된 공정이 자금난으로, 문화대혁명으로 몇번이고 좌절과 풍파를 겪으며 탕원벌에 수백쌍의 수전을 탄생시킨 일화로 흑룡강성에서도  알아주는 유명한 공정이다.

 

 
된장찌개가 거품을 문다
출근길 빈 터에 퍼렇게 올라온 콩잎 냄새가 난다
거품을 거두고 입술에 대였을 뿐인데
늙고 쪼글한 손바닥의 짠 내로 비리다  
대파는 시원하게 벗긴다
굵은 밑둥이 잘리고 숭숭 썰린다
매운향이
신라 혜초가 걸어서 넘은
사람이 없는 먼 곳에서 눈물지며 온다
하얗게 펼쳐진 총령(蔥嶺)
둔황 서쪽 8천리
실크로드가 지나간 설산고원이
한술에 들어온다
눈속에 싹을 틔워서인가
달다
두부 고추 호박이 서로 스며들고
국물속에 풀어진
날카로운 총(蔥)맛에 부드럽고
구수하다
 
 
2019.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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