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미란 약력 :
(필명: 백한) 흑룡강성 탕원 출생, 숭실사이버대 방송문예창작학과 졸업,
에세이집 "서른아홉 다시 봄"출간.
소설 "로마로 가는 길", "이 밤은 아름다워", "먹골에는 겨울에도 비가 내린다" 발표.
재한동포문인협회 소설분과 부분과장

백한(곽미란) 작가

[서울=동북아신문]나는 지금 로마로 가는 비행기에 앉아있다. 안내방송이 흘러 나온다. “우리의 비행기는 현재 고도 8200미터, 시속 897키로미터로 날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로마까지의 비행거리는 8968키로 , 비행시간은  12시간 15분입니다.”


1

김태민, 그를 만난 것은 2월말의 주말 점심이었다. 동창 송년회가 이래저래 미루어져서 결국엔 구정도 한참 지난 2월말의 신년회가 되어버린 그날 그가 모임장소에 불쑥 나타났다. LA에 사는데 출장 차 서울에 왔다고 했다. 감색 슈트차림에 머리는 왁스를 발라 단정하게 뒤로 넘긴 그가 악수를 청했다.
“반갑다, 이게 얼마만이야?”
“고중 졸업하고 첨 만났으니 16년만이 아니야?”
“수영이 넌 하나도 안 변했구나.”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속도로 말을 마치고나서 그는 양복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는 여유있게 테이블로 걸어왔다. 잘 다려진 흰색 와이셔츠에 연한 브라운 색의 조끼를 깔끔하게 맞춰입은 그에게서는 일본인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깔끔함이 풍겼다.
서울 강남의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칼질을 하며 와인을 마셨다. 여자 셋, 남자 셋이서로 마주보고 앉아 마치 학창시절 미팅을 하는 것 같았다.
“야, 고기에는 소주가 최곤데, 난 와인이 뭔 맛인지 모르겠어.”
투덜대는 정국의 말에 영매가 면박을 주었다.
“가끔씩은 근사하게 와인도 마셔야지. 맨날 삼겹살에 소주 타령이니? 태민이가 그 먼데서 어쩌다 왔는데 스테이크 정도는 먹어줘야지.”
그러면서 영매는 태민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니가 한정식도 싫다고 하고, 일본에서 오래 살았으니 일식도 별로일 것 같아서 스테이크로 했어.”
세월의 흔적이 유난히 그에게만 오래 머물렀는지 깔끔한 옷차림에 비해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두 갈래의 강처럼 패여 있었다. 눈빛은 더욱 깊어진 듯했고 살짝 차가운 기운까지 뿜고 있어서 종내 속을 읽을 수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학창시절처럼여전히 말을 아꼈고 영매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된 태민은 일본에서 경영학 석사를 졸업하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3년 전에 처가식구들을 따라 LA로 이사를 갔으며 LA에서 자체로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일본여자인데 대학원 다닐 때의 교수의 딸이라고 했다. 아내가 일본여자라는 말에는 나도 호기심이 동했다. 친구들 중에 외국남자에게 시집을 간 경우는 가끔 보았으나 외국여자, 그것도 무려 열 살이나 어린 일본교수의 딸이라니. 뭔가 석연치 않은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난 그에게 묻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직업상 나는 질문 같은 걸 잘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인터뷰할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고 소통일 뿐 일상생활에서 나는 가능하면 말을 아끼는 편이다. 내가 관심있는 분야에만 에너지를 쏟기에도 인생은 짧다면 짧으니까.
“무슨 사업 하는데?”
정국이 물었다.
“무역, 참치를 미국으로 수출해.”
 그 말에 나는 머리를 들어 태민을 바라보았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참치를 수출하는군. 나는 여태 참치나 킹크랩 같은 건 다 대서양에서 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야, 대단하다! 미국에서 발붙이기 쉽진 않을텐데”
“울 처형이 미리 그쪽에 가서 살고 있어서 쉽게 인맥을 뚫었지.”
칼질을 멈추지 않은 채 그가 느긋하게 대답했다. 말을 할 때면 바람소리가 나는 걸 느끼며 나는 그의 이빨이 몇대나 빠졌을까 오른쪽일까 왼쪽일까 하고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모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는  민규가여전히 못 말리는 입담으로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했고 태민은 시종 친구들이 묻는 말에만 간단히 대답만 했다. 나는 친구들이 눈치 못 채게 슬쩍 핸드폰 화면을 밀어 시간을 확인하며 보며 그날 저녁 마감해야 할 원고생각에 언제면 자리를 뜰가 고민하고 있었다.
“수영이 아직 골드미스야. 태민이 너 주위에 좋은 남자 있으면 소개해.”
영매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줌마 아니랄까봐 오지랖은?”
나는 눈을 흘겼다.
“수영이 너 아직 시집 안 갔어?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니야?”
태민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대답 대신 씩 웃었다.
“좋은 아이템 있으면 같이 돈벌자. 너 혼자만 돈 벌지 말고.”
술집을 경영하는 애자가 그에게 한 말이다.
2차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양꼬치집으로 3차를 간다고 했을 때 나는 태민에게 악수를 청했다.
“원고를 마감해야 해서, 먼저 가볼게.”
2월의 찬 바람이 코끝을 매섭게 강타했다. 나는 머플러를 두겹으로 접어 목을 따뜻하게 두르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2


월요일 아침, 나는 평소보다 한참 늦은 8시에야 눈을 떴다. 새벽까지 원고를 마감하고 늦게야 잠이 든 탓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목을 앞으로, 좌우로 몇 차례 빼주며 스트레칭을 한 후 뻐근해나는 어깨죽지를 주무르며 한 손으로 아침준비를 했다. 티브이를 켜고 아침뉴스를 들으며 여유있게 식사를 했다. 나는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일한다. 출근 시간은 아침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그외의 시간에는 취미로 글을 쓰거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프리랜서 작가이다.
갤러리에 도착해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날의 기분에 맞춰 음악을 틀고 커피포트기에서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곧 그윽한 커피향과 감미로운 음악이 방안을 그득히 채운다. 월요일은 가장 한가한 날이다. 대부분 갤러리들이 쉬는 날이기도 하다. 갤러리를 찾는 손님들이 없을 때면 나는 소설책이나 미술관련 서적을 뒤적거리기도 한다. 다문다문 갤러리를 찾아들어오는 손님들은 특별한 목적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연히 지나다가 들러서 소일거리를 찾은 듯 잠시 시간을 보내다 간다. 갤러리 대표 입장에서야 우연한 고객들의 발걸음이 작품을 구입하는 컬렉터로 이어지는 것이 제일 반가운 일이겠지만 나는 이 공간이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힐링장소가 되는 것 같아서 즐겁다.
  나는 늘 오늘은 어떤 손님들이 다녀갈까, 그들과 이 그림들 사이엔 어떤 유대감이 만들어질까 하는 기대를 빼놓지 않고 한다.
“수영아, 이번에 우리 출판사에서 ‘테마가 있는 기행’이란 기획출판을 하는데 말이야, 너 로마에 관한 이야기 한번 써볼래? 내가 특별히 너한테 로마편을 남겨놨어.”
“로마요?”
점심식사를 금방 마친 오후 2시경, 계간잡지 여름호 책임편집으로 일하는 문학동아리 선배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로마라는 두 글자에 저으기 흥분되었다. 로마는 내게 특별한 곳이다. 하지만 난 한 번도 로마를 다녀온 적이 없다.
“선배,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저 로마 못 가봤어요.”
“그래? 너 여기저기 잘 다니길래 로마도 당연히 다녀온 줄 알았는데. 근데 뭐 꼭 가봐야 글 쓰냐? 박경리선생은 만주에 못 다녀오셨어도‘토지’를 쓰셨잖아. 오히려 여행이 상상력을 방해한다고 말씀하셨어.”
그건 나도 안다. 박경리선생은 썩 나중에 만주에 다녀오신 후에 자신이 상상했던 거랑 똑같다고 말씀하셨다는 것도 안다.
“선배, 하지만 괴테는 이태리 다녀오고 나서야 ‘이태리 기행’을 썼어요. 전 아마도 괴테쪽을 택해야 할 것 같네요.”
“하하, 잘 고려해봐, 로마에 관한 이야기는 책만 뒤져도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니까. 이거 내가 어떻게 남겨놓은 코너인데.”
“알았어요, 한 번 고려해볼게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것은 욕심이나 미련보다는 어디까지나 선배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전업작가도 아니고 무명작가인 나를 선배는 늘 챙겨주려고 애를 썼다. 무명의 작가에게 이렇게 뭉청 잡지의 큰 편폭을 내어준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예술안목을 키우기 위해 나는 돈만 모아지면 여행을 시도하는 편이긴 했다. 또 가끔 화가들의 전시회가 있을 때면 함께 따라가서 공짜로 유럽이나 뉴욕은 여러번 다녔지만 로마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의도적으로 로마를 가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나에게 로마는 안식처처럼 신성한 곳이다. 모든 것을, 정복 당한 자의 문화까지도 포용하는 로마제국을 언젠가는 다녀와야지 했었는데 이제 그 시점이 온 건가?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나는 로마를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오래동안 잠재우고 있었다. 그런 로마를 오늘 선배덕분에 나는 비로소 끄집어내어 이렇게 햇살에 널어놓는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본다. 오드리햅번 스타일의 허리가 짤룩하고 긴 코트를 입은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자연스레 영화“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스페인광장을 떠올린다. 오드리햅번이 그 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는 이유로 더 유명해졌다는 스페인계단, 지금은 로마인들의 약속의 장소로 되었다지? 내가 만일 그 곳에 가게 된다면?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스페인계단을 오른다면? 아니야, 나는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나에게 로마는 아직은 사치야.
오후에는 60이 훨씬 넘었지만 50대 초반의 동안얼굴을 가진 단골고객이 와서 20호짜리 작품 하나를 사갔다. 열기구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토끼 두마리가 그려진 그림이다. 짙은 푸른색의 하늘과 풍성한 흰색 구름을 배경으로 알록달록 책 이름이 씌여진 열기구는 밝고 명쾌하면서도 진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딸이 곧 결혼을 해요. 신혼집 서재에 걸어두면 잘 어울릴 것 같네요.”
  결혼생활 같은 건 아무래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서재에 저 그림이 걸린다면 꽤나 근사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3

화요일 아침, 위챗 대화상대란에 누군가 나를 추가했다. 태민이었다. 나로선 의외였다.
-만나서 반가웠어.
-잘 다녀갔니?
-오, 지금 일본,여기서 일 마치고 LA 돌아가려고.
그는 부둣가에서 방금 컨테이너 떠나보내고 담배 한 대 태우고 있는 중이라며 바닷가 풍경사진 한장을 보내왔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검푸른 바다와 바윗돌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일본 날씨 추워보이는데?
-서울이랑 비슷해. 서울은 지금 비가 오고 있지?
창밖을 보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봄이 곧 오려나보다.
-누가 그러더라, 한 사람의 얼굴에는 현재 생활에 대한 만족감, 자신감이 그대로 나타난다고. 이번에 만나보니 동창들 중에서 수영이 너가 젤 멋지더라. 도도하면서도 소탈한 모습.
도도함과 소탈함이 같이 쓰일 수도 있나 하고 나는 잠깐 생각했다.
-혼자 제멋대로 살아서 그런건가봐.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너라면 누구보다 멋지게 인생을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어.
  -무슨 그런 근거 없는 말을.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나는 그의 말에 수긍을 했다. 이런 평가는 이전부터 나를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관점이기도 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나는 학창시절에 늘 범생이었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 그게 학업이든 무슨 일이든간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어서 자기 인생을 잘 살아가는 똑똑한 여자일 거라는 평이었다. 경제적으로 누구에게 손 내밀지 않을 것 같고 회식장소에서 쓸데없는 말을 안 할 것 같은, 어디에서나 민폐를 끼치지 않는 똑 부러지는 여자, 한마디로 그들은 내게 차도녀의 라벨을 달아주었다. 내가 여태 결혼을 하지 않은 것도 비혼주의라는 걸 그들은 모른다. 다만 콧대가 높아서, 아직 맘에 맞는 상대가 없어서 결혼을 하지 않는 줄로만 안다. 너라면, 이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가끔 나를 무척 괴롭게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저도 모르게 그 틀 안에서 움직이려고 은근 노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허무해진다.
  -갤러리에서 일하는 모습 상상해보니 엄청 우아할 것 같아.
  -그렇진 않아,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거든. 작품 전시할 때마다 그림을 직접 걸어야 하고 모든 디스플레이를 다시 해야 하고, 노가다가 따로 없어.
  -그렇군, 수영이 너 만나고 나 꿈이 하나 생겼다?
  -그래?
  -3년안에 재무의 자유를 확실하게 이뤄놓고 은퇴하는 거, 그리고나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
  -하고 싶은 일이 뭔데?
  -카메라 하나 들고 세계여행 하는 거야, 난 미국에서 3개월, 중국과 일본에서 각각 3개월 그리고 나머지 3개월은 여행 다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
  -진짜로 멋진 생각인데?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에는 집이 있으니까 3개월씩 눌러앉아 살고.
  -언제 그렇게 알뜰하게 일궈놨어?
미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이렇게 자산을 잘 일구어놓은 사업가인 줄은 생각 못했다. 일본에 유학간 친구들을 보면 다들 정말 치열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십년이 넘어도 제 집 한칸 마련 못한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도 20대 초반부터 사회생활 하면서 나름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겨우 한국에서 원룸 하나 전세 내어서 살고 있는 형편이다. 나는 태민이가 20대를 보냈을 일본생활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하루에 알바를 두세개씩 다니느라 늘 뛰어다니고 새벽까지 알바를 하고 눈도 못 붙인 채 그길로 학교로 향하는 모습, 코피 터지는 일을 밥먹듯 하면서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20대를 불태웠을 모습을.
  -운이 좋은 편이었지, 석사 졸업하고 바로 일본에서도 몇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그때 월급 차곡차곡 모아서 일본에 집도 짓고, 내 사업도 시작했어.
  -그래, 운도 따라줘야 해. 그래도 너무 멋지다.
  학창시절에 늘 말이 없이 제일 뒷자리에 앉던 그, 과묵한 성격, 분위기를 압도하는 매서운 눈빛, 그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을 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우직함이 있을 것 같았다. 그라면 이라고 상상을 하며 나는 피씩 웃음이 나왔다. 결국 나도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관적으로, 내 맘대로 상대를 평가하는구나 싶었다.
  -참, 수영이 넌 어느 대학 나왔어?
  -사회대학.
  -그래?
  나는 그가 놀랄 것을 짐작했다. 고중시절 문과반에서 늘 1,2등을 놓치지 않던 나였으니까. 나는물론, 선생님들도 내 성적으로는 충분히 전국의 일류대학에 붙을 수 있을거라고 장담하고 있었다. 아직도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또렷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수영아, 웬만한 대학 지원해라. 여자가 공부를 너무 많이 하면 시집 좋은데 못 간다.”
 그때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하지만 나는 대학시험을 망치고 말았다. 정작 점수가 나오자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그 점수로는 내가 지원한 어느 대학에도 갈 수가 없었다. 요즘에야 대학입시를 치르고 나서 점수를 짐작해서 지원서를 냈지만 우리 그 시절에는 대학입학시험을 치기 전에 미리 원서를 내야 하는 시대였다.
  -그렇게 됐어. 그리고 상해로 나갔지.
  -미안, 정말 몰랐어, 난 니가 좋은 대학에 붙었을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 나야 뭐 대학입시에 참가도 안하고 그 전에 이미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괜찮아. 삶이란 원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거 더라구. 하지만 난 결코 나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아.
-그럼, 넌 충분히 멋진 삶을 살고 있어. 너 모멘트 보니까 여행 많이 다녔던데 나도 좀 구경시켜주라. 총각땐 회사에서 보너스 타면 그걸로 여행 잘 다녔는데 요즘은 출장만 다니고 여행같은 여행을 해본 적이 없어서.
  -여행은 마음먹기에 달렸지, 물론 돈과 체력과 시간이 뒷받침 해줘야겠지만.
  -내가 하는 일은 매년 3월부터 8월까지가 성수기야. 말 나온김에 우리 아예 여행지 정할까? 로마 어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란 말에 나는 저도 몰래 선배를 떠올렸다. 한줄기 햇빛에도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어제에 이어 오늘 또 다시 로마가 거론된 건 과연 신의 뜻일까? 그렇다면 나는 로마를 반드시 가야 할테다. 여태 로마를 안 간 것이 결국은 이날을 기다려온 건가? 아무튼 혼자 가는 것 보단 파트너가 있다면 비용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뇌리를 쳤다. 그가 같이 가준다면 덤으로 멋진 여행사진들도 건질 수 있을 거고, 난 들뜬 심정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을까?
  -뭐 어때서, 요즘은 이런 여행동호회도 많다고 들었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끼리도 짝을 지어 여행 다니는 세월이야. 동창모임 조직해서 가도 좋고.
  꿈만 같았던 로마행이 순간 손을 내밀면 닿을 듯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나는 벌써 로마에 간 기분이다. 한때는 검투사들이 검투를 벌였던 콜로세움도 가보고 싶고, 트레비분수앞에서 연못을 등지고 서서 동전을 던져 넣고 싶다. 흘러간 옛 도시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나보나광장 주위의 골목골목도 기웃거리고 싶고 나폴리로 가서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도 먹어보고 싶다. 몸에 착 붙는 흰 나시티에 통이 너른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되는대로 질끈 묶고 선글라스를 낀 채 로마거리를 활보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자꾸 웃음이 실실 새어나온다.


4

“Dilige et fac quod vis. 딜리제 에트 팍 쿼드 비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나는 다짜고짜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선배, 로마편 저보고 쓰라고 하신 거, 아직 유효하죠?”
“하하, 내 이럴 줄 알았어. 역시 수영이 결단력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니가 쓴다고 하면 언제든 오케이지.”
“로마를 한 번 다녀오려구요. 근데 이거 언제까지 마감하면 되죠?”
“11월 말까진 원고를 넘겨줘야 올해 안으로 검토를 하고 내년에 싣지.”
“고마워요, 선배!”
“고마우면 나중에 술 사라, 이런 핑계거리라도 있어야 술 얻어먹지.”
“물론이죠.”
   선배는, 내가 로마로 가겠다는 것이 확정지어지자 원고료의 일부를 선불해줄 수도 있다는 고마운 소식까지 전해주었다. 로마여행 경비로 쓰라면서.
  이튿날, 나는 퇴근길에 영풍문고에 들러 로마에 관한 책을 한아름 사들고 집에 왔다. “그리스로마신화”로부터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이야기”그 외에도 로마인의 음식문화, 놀이문화 심지어 로마제국의 공용어인 라틴어에 관한 책까지 샀다. 매 번 새로운 글을 시작할 때마다 내가 하는 첫번째 일이기도 하다. 인터넷 알라딘서점에서 사면 10% 할인 받을 수 있는 것을 나는 가끔 종이의 질감을 느끼는게 좋아서 이렇게 서점에서 충동구매를 하기도 하고 기어이 무거운 걸 들고 오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Tantum videmus quantum scimus 탄툼 비데무스 콴툼 쉬무스”
“우리가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라는 라틴어이다. 나는 입속으로 “탄툼 비데무스 콴툼 쉬무스”하고 반복적으로 연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읽을수록 입에 착착 감기는 구절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여행할 곳에 대해 사전에 공부를 제대로 못하면 그냥 지나치고 마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친 곳이 옛날 황제가 최후를 맞은 곳이라면 나는 나의 무심함에 깊이 반성하게 되리라.
-9월초 어때? 추석 전에 다녀오는 거.
 -수영이 니가 알아봐, 한국에 있으니 여행사도 알아보고.
태민이와의 연락은 자연스럽게 지속되었다. 이제 그는 동창이기에 앞서 나의 여행파트너였다. 나와 함께 나의 무릉도원인 로마를 같이 갈 사람이었다. 마이웨이에 동참할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와의 잦은 연락을 통해 나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사소한 일상에 대한 안부임에도 그가 보내는 문자 하나하나에서는 관심과 배려가 배어있었다. 태민이가 원래 이렇게 자상한 사람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동안 내가 너무 까칠하게 살아와서 특별히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면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기고 앉은 듯이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이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태민이와의 첫날 대화에서 로마여행이란 말이 나왔을 때 다짜고짜 함께 가기로 결정한 결정적인 포인트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난 로마에 대한 책도 벌써 여러 권 사서 공부까지 하고 있어. 로마사람들은 옷을 천연색으로 화려하게 입고 다닌대, 갈거리엔 정거장마다 작은 버스 충전소 같은 매점에서 꽃을 팔고. 진정 살맛 나게 삶을 사는 사람들이지. 무릉도원 같은 곳.
 -로마에 대해 공부 많이 했네. 그럼 니가 좀 수고해주고, 내가 한국 들어가면 같이 여행사에 가보자.
  로마로 간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정해지자 나는 더욱 실감이 났다. 9월 초에 다녀와서 9월 하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면 11월에는 충분히 끝낼 수 있다. 나는 그가 하루빨리 서울로 날아와서 로마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스케쥴을 짰으면 하고 내심 바랐지만 그가 얼마나 바쁜 몸인지를 알기에 4월말, 그가 서울로 출장 온다고 하는 날만 꾹 참고 기다렸다. 그의 말을 빈다면, 그에게는 가족외에도 딸린 식구가 자그마치 50명은 된다고 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5

“나 역시 격렬하게 요동하는 대양에서 항구를 향해 노를 저어가고 있다. 비록 등대의 불빛이 이리저리 위치를 바꾸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불빛을 날카롭게 주시하면 결국에는 해안에 도달할 것이다. 길을 떠날 때는 언제나 과거의 모든 이별과 미래의 마지막 이별이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법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너무 많은 준비를 한다는 말이 이번에는 더욱 절실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로마를 떠나면서 남긴 괴테의 말이다. 로마에 머물러 있는 동안 괴테는 유명한 유적지를 빠짐없이 찾아다니며 건축물과 조각 작품, 그림을 감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성베드로 성당에서는 ‘예술도 자연처럼 모든 척도를 초월할 수 있다’는 진리를 파악하기도 했다고 한다. 로마에 다녀오고 나면 나의 심미안에도, 나의 삶의 자세에도 뭔가 변화가 일어나겠지? 나는 나의 과거와 완전히 이별할 수 있을까? 미래의 이별을 맞이할 용기가 생길까?
재수 없는 년, 아버지를 떠올리면 나는 늘 이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 왜 낳았는데요? 아버지의 뻔뻔스러운 면상을 똑바로 쳐다보며 나는 따져묻고 싶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 여자 저 여자를 꿰차고 다니며 술만 마시면 엄마를 개패듯 때리던 아버지에게 나는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했다. 학교생활, 공부는 나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초중때부터 나는 외지에 있는 학교에서 기숙사생활을 했다. 동네사람들은 나를 안쓰러워하기보다는 공부를 잘 하는 나를 추켜세웠다.
“쟤는 여물딱 졌어.”
“저런 주정뱅이한테서 어떻게 저렇게 똑똑한 딸이 나왔지?”
  나는 절대 가정을 이루지 않을거라고 맹세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로 누구한테 속박당하는 것도 싫고 나로 인해 누군가가 불행해지는 것도 싫었다. 나는 상처받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연애만 시작하면 결혼이라는 종점을 향해 조급하게 달려가는 남자들의 짓거리에 나는 넌덜머리가 났고 그런 낌새만 채면 난 바로 헤어지자고 이별을 통보했다. 미안함이나 실연의 아픔은 없었지만 허무함이 안개처럼 지독하게 나를 에워쌌다.
태민이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게 안부를 전했고 자신의 동선을 알려줬다. 나 또한 시시콜콜한 일상은 물론 지인들과는 전혀 꺼내지 않던 비혼주의에 대해서도 스스름없이 대화를 나누곤 했다.
  -오늘은 울 갤러리에 라틴아메리카 화가의 작품이 몇 점 들어왔어.
  브라질계 중국여자화가이며 그녀의 작품은 색채가 강렬한 수탉이나 커피, 해바라기가 위주라고 나는 태민에게 알려준다.
  -그런 그림은 하나에 얼마야?
  -오, 사이즈에 따라 다른데 이 화가의 경우엔 1호에 60만원이니까 10호며는 600만원?
  -그림을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야?
  -골동품 수집하듯 그림을 소장하는 사람들이 전문 있어, 컬렉터라고 부르지. 뭐 가끔은 일반인들이 사가기도 하고, 요즘은 젊은이들도 재테크의 방식으로 그림을 사서 소장해두기도 해.
  -갤러리에 그런 그림들이 많아? 이건 별로 안 비싸네, 제일 비싼 건 얼마정도 하지?
  -10억을 호가하는 작품도 있지. 진짜로 좋은 작품은 경매에 붙이면 원가의 몇십배에 낙찰 될지 누구도 장담  못해.
  -그렇군, 나중에 너네 갤러리에 가봐야겠다.
  -언제라도. 
  그가 내게 보여준 사진에는 기모노를 입은 20대 초반의 여자와 네살쯤 되어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사진 속의 여자는 날씬한 몸매에 연예인 뺨 치는 환한 모습이었고 여자아이는 동그란 얼굴에 커다란 쌍겹눈을 가진 귀여운 모습이었다. 어딜 보아도 그를 닮은 구석은 없었지만 참으로 행복해보이는 모녀의 모습이었다.
태민이는 내가 비혼주의라는 말에 꽤 놀라는 눈치였다.
  -너같은 조건이라면 좋은 남자들이 줄 서서 따를텐데. 여자들은 시집 잘 가는게 대학 잘 가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하잖아.
  -개인적취향문제, 난 가정을 이미 도태된 문화형태라고 생각하거든. 삶이란 건 개인이 한개의 단위로 존재하고 현시대의 삶 또한 개인이 혼자 직면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거잖아.
-나도 묶여있는 건 딱 질색이라 결혼같은 건 생각 없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결혼이란 걸 했네.
  그는 일본여자를 아내로 맞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에선 결혼을 하면 부부의 역할이 확실하게 나뉘어지는데 여자는 가사일과 육아에만 신경 쓰고 남자는 돈 버는데에만 전념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는 서로 사생활을 터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이면 나는 그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글 쓰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난 소설가들은 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 그냥 술술 써내는 줄 알았지.
  -말도 안돼. 기성작가들이야 술술 잘 나올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 매 하나의 인물, 이야기를 완전히 허구로 만들어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말하자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건데. 그뿐이야? 글쓰기는 육체노동이야. 몇 시간씩 꼼짝 않고 앉아서 글을 쓰고 나면 육신이 다 쑤시거든.
  -그렇군.
  -소설을 쓰다보면 고민을 너무 많이 해서 잠도 안 오고 흰머리도 많이 생겨. 그래서 난 일상생활에선 복잡한 건 질색이야.
그는 나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소설에서 반전의 묘미를 끌어내는 장치를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 열심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고 소설 쓰는데 도움이 될만한 영화들도 여러편 소개해 주었다. 그럴 때면 그는 늘 게면쩍은 투로 말했다.
  -내가 이러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정말로 괜찮아서 추천하는 거야.
그가 보내온 영화는 대부분이 내가 좋아하는 로맨스와는 거리가 먼 스릴러 액션 영화였다. 뉴욕의 맨해튼 고급 빌딩에 사무실을 갖고 있는 사장, 개인 변호사와 비서를 고용하고 있으며 고급레스토랑과 백화점에 다니는 남자주인공은 여자들을 집에 끌어들여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섹스를 하고 나서는 죽여버린다, 자기가 예약한 고급레스토랑을 자기 친구도 다녀왔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 친구네 집에 찾아가는데 자기보다 더 잘 사는 걸 보고는 질투심에 그 친구도 죽여버린다. 그는 나중에 변호사에게 전화해서 자기가 친구 A씨를 죽여버렸다고 말하지만 변호사는 믿지 않는다. 전날에도 그의 친구와 만났다면서 오히려 그가 우스개를 한다고 여긴다.
-완전 싸이코패스네. 그런데 저런 인간들을 왜 가만 놔두는 거야?
-이 세상은 원래 이래. 다들 남의 생활에 관심이 없거든. 저놈도 결국은 관심 받기 위해서 저런 짓을 하는 거지. 이 세상엔 별별 인간들이 다 있어. 세상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난 일단 상대를 믿는 편이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니? 그리고 이 세상에는 그래도 좋은 사람이 더 많아.
-너무 상식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역심리, 이런 걸 연구해봐. 소설 쓰는데 확실히 도움이 될 테니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불편했다.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불편하다는 것, 익숙하지 않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임을 나는 잘 안다. 누가 말했던가? ‘불편해야 진보한다’고.


6

나는 그동안 라틴어실력이 부쩍 늘었다. 안부를 묻는 그에게 가끔 라틴어로 대답을 해 그를 깜짝깜짝 놀라게도 했다.
-Si vales bene,valeo.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
-역시 수영이 넌 학습력 끝내줘.
그는 LA에 있는 집 부근에서 찍은 거라며 동영상을 하나 보내왔다. 중요한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려서 거의 알몸이나 다름없는 흑인여자가 농구공처럼 탄력있는 엉덩이를 흔들며 노천 레스토랑에서 사람들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우, 우 환호하며 달러를 꺼내 그녀의 몸에다 붙여준다. 내게는 신세계같은 풍경.
비내리는 어느 토요일날 아침, 나는 그에게서 온 문자를 받고 깜짝 놀랐다.
-나 지금 인천공항이야. 이따가 볼 수 있을까?
-아니, 4월말에 온다고 하지 않았니?
-너에게 서프라이즈를 주려고 일본 왔던 김에 서울로 왔지.
공교롭게도 나는 그날 교회 언니들이랑 강원도에 1박2일로 놀러 가는 길이었다.
-미안해, 오늘은 아무래도 안되겠고, 일요일 도착하는대로 얼굴 봐. 근데 언제 떠날꺼야?
-월요일날. 괜찮아, 너 일정 안 물어보고 무작정 날아온 내 탓이지뭐.
-정말 괜찮아? 아님 다른 동창들한테 연락해봐. 혹시 시간되는 애들 있을지도 모르니.
-주말인데 다들 가족들이랑 같이 있겠지. 방해하고 싶지 않아.
일요일 오후 그한테서 다시 문자가 왔다.
-미안, 내일 아침 일찍 일본에서 상공회회의가 있는 걸 깜빡했네. 오늘 밤 비행기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가기 전에 잠깐 얼굴이라도 볼까?
나는 일요일 저녁 서울에 도착하자 집에 가서 옷을 갈아 입을 새도 없이 약속장소로 갔다. 밝은 와인색 폴로티에 휠라 로고가 박혀있는 회색의 가디건을 입고 아래에는 청바지차림인 그는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서울은 공기가 안 좋아서, 변명하듯 어색한 웃음을 짓는 그는 많이 편해보였다.
“식사도 못하고.”
“식사야 담에 시간 많을 때 하고. 그래도 너 얼굴은 꼭 보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비행기티켓을 오늘 밤 제일 늦은 걸로 변경했어.”
커피 한 잔도 여유있게 마시지 못하고 그는 급히 공항으로 떠났다. 날 만나기 위해 일부러 서울까지 날아온 그와의 짧은 만남은 아쉬움만 덩그러니 남겨놓았다. 그것은 분명 로마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못 나눴다는 아쉬움때문은 아니었다.


7

편의점에서 사온 컵밥으로 야식을 먹고 자정이 넘도록 글을 쓰고 있던 날,
-이 시간에도 글 쓰고 있니?
-응
-컵라면으로 저녁 떼우고?
나는 풉 하고 웃고 말았다.
-내일 서울 갈까?
-친척들 일본에 다 모셔다 놓고 넌 서울 오면 어떡해?
-이틀 동안 대접했으면 내 임무는 이로써 끝이야.
 이튿날그는 서울로 날아왔다.일요일이었고 비가 내렸다. 온 오전 연락이 없던 그는 오후 1시경에 서울에 도착했다면서 문자를 보내왔다. 우리는 오후 4시에 이태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는 일요일임에도잠실쪽에 있는 서울 지사에 들러 직원들과 미팅을 한다고 했다. 나보다 조금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한 그는 하늘색 체크무늬 와이셔츠에 짙은 감색의 캐쥬얼 양복을 받쳐입고 여전히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멀리서 온 손님을 매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나의 말에 그는 조그맣게 웃으며 대답 대신 자그마한 쇼핑백을 내밀었다.
“선물이야.”
일본제 머리염색약이었다. 언젠가 내가 이젠 흰머리도 심심찮게 난다고 했던 말을 기억한 모양이었다. 급히 떠나오면서 언제 선물까지 챙겼지?
우리는내가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놓은 맛집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빈티지 가구들과 화초 그리고 은은한 조명으로 분위기 있게 꾸며졌다. 웨이터가 창문가의 자리로 우리를 안내했다.
와인색과 아이보리색 체크무늬의 식탁보가 덮여진 작은 정방형의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으니 우리 사이의 거리는 몇십센티밖에 되지 않았다. 가슴이 활랑거려서 나는 메뉴판을 보는 척 했다. 태민이는 웨이터를 불러 익숙하게 몇 가지를 주문했다. 와인은 니가 고를래? 하면서 그는 주류 메뉴판을 내게 건네주었다. 3만원부터 20만원까지 다양한 가격대를 일별하며 내가 갑짜르고 있는 걸 눈치 챘던지 그는 10만원짜리 와인을 주문했다. 칠레산 레드와인 산타캐롤리나 스페셜 에디션,  2012년산이었다.
“한때는 몬테스 클래식만 찾았는데 언젠가부터 이 와인에 맛을 들여서.”
나는 그게 좋았다. 혼자 집에서 밥 한끼를 먹어도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게 귀찮을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한 가지 요리를 만들어 며칠째 주구장창 그것만 먹을 때도 있다. 현대인의 선택장애, 그는 나의 이 번거로움을 가뿐하게 날려주었다.


8

 멋쩍은 웃음이 흘렀다. 통유리로 된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바깥은 비가 내려서인지 더욱 맑고 투명했다. 거리는 한산했다. 온 세상에 우리 둘만 남겨진 듯 했다. 그동안 매일 문자로 수많은 말을 주고 받았던 우리였지만 이렇게 가까이 마주하고 앉으니 처음 만난 것처럼 서먹서먹했다. 이 어색함은 뭐지?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 민망해 애매한 물잔만 입에 갖다 뗐다 했다.
웨이터가 와인을 가져왔다. 코르크 마개를 열자마자 오크향이 올라왔다. 시음을 해보니 혀끝에서 상큼한 과일의 맛이 느껴졌다. 맛은 묵직했다. 오래오래 입안을 감싸는 맛과 향이 중년의 신사처럼 중후했다. 왠지 이 와인이 태민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즈랑 잘 어울리는 와인이야.”
  그는 치즈 한 조각을 골라서 내 접시에 놓아주었다.
“로마여행 말이야, 9박 10일 정도가 좋지 않을까? 여러 나라보다는 로마를 위주로 해서 이태리의 두 세개 도시만 집중적으로 도는 거. 내가 견적은 다 뽑아놨는데, 저번에 너한테도 보내줬잖아. 근데 여행사도 한 번 다녀오면 좋을 것 같아.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 가격도 비교해 보고.”
“수영아, 음, 아직 시간 있으니까 천천히 하자.”
“아, 물론 아직 반년이라는 시간이 있긴 한데,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올라가거든.”
“돈은 문제가 아니야. 천천히 잘 알아보고, 내가 한국에 업무부터 좀 처리해놓고 다시 보자.”
“한국에 일이 많아?”
“음, 금방 시작해서 안정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지. 이번에 좀 오래 있어야 될 거 같아.”
  나는 조바심이 났으나 첫 식사때부터 그를 다그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저녁 식사시간이 가까워오자 다른 테이블에도 손님이 차기 시작했다. 창밖에선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네온싸인이 눈부신 거리는 활기로 차 넘쳤다. 한국인, 조선족, 일본인, 미국인, 터키인, 파키스타인...... 다양한 피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이 작은 공간에 차 넘쳐 세계의 축소판 같았다.
“십여년 전에 서울에 첨 왔을 땐 외국인이 하나도 안 보여서 깜짝 놀랐어. 그런데 여기오니까 외국인들이 좀 보이더라구. 요즘은 뭐 한국도 다문화시대라 심심찮게 외국인들 볼 수 있지만.”
“이국적인 분위기 좋은데?”
“LA랑 닮았지?”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넌 로마에 가면 젤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야?”
“음, 아직 로마에 대해 공부를 못 했어. 수영이 니가 가고싶은 대로 따라 줄게.”
분위기 탓인지 술기운 탓인지 아니면 조명 때문인지 마주 앉은 그가 더 멋있어보였다. 그랑 함께 로마를 간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보디가드 같이 안정감 있는 남자. 소매치기며 집시인들은 물론 로마의 바람둥이 남자들도 섣불리 수작을 걸어올 수 없겠지. 이태원의 밤은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고 우리는 주문한 음식과 와인 두 병을 말끔히 비웠다.
“한국에 있고 싶다. 한국에 업무를 늘여야겠어.”
그가 몸을 기울여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던 것 같다. 한국에 가면 2차,3차 이어지는 술 문화가 진짜 싫어, 한국에만 가면 내가 20년동안 습관해 온 내 몸 리듬이 깨져. 늘 이랬던 그가 아닌가!
갑자기 울음이 터진 건 부모님 얘기가 나와서였다. 풍족한 가정환경 덕분에 일본유학을 가게 됐다면서, 그랬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부터는 한 번도 부모님께 손을 내민 적이 없고 지금 부모님은 일본과 한국, 미국에 놀러 다니며 행복한 만년을 보낸다고. 그것까진 좋았는데 수영이 너네 부모님은 잘 계시냐고 그가 물어왔을 때 나는 그만 눈물이 봇물처럼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꽁꽁 가슴속에만 묻어두었는데, 그가 그만 나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다. 그는 냅킨을 건네주며 미안하다고 거듭 말했지만 나는 급기야는 테이블에 머리를 묻고 어깨를 요란스레 들썩였다.
“수영아, 미안해, 미안해.”
그가 내 곁으로 다가와서 내 어깨를 다독거렸고 한번 터진 눈물은 쉬이 그치지를 않았다.
결국, 2차는 포기해야 했다.
“미안해, 2차 내가 사려고 했는데.”
“괜찮아, 얼른 집에 가서 쉬어. 이 얼굴로 전철 타기는 좀 그렇다.”
그는 택시를 잡아주고 내 우산을 차곡차곡 접어주었다.
“택시번호 사진 찍어뒀어. 집에 도착하면 문자 해.”


9

“Desidero ergo sum 데지데로 에르고 숨 (나는 욕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집에는 잘 들어갔니?
-부산 가는 길이야. 이제 좀 괜찮아졌어?
이튿날 나는 여덟시가 넘어서야 눈을 떴다. 새벽 다섯시에 그가 보내온 문자를 세 시간이나 지나서야 확인한 셈이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났다. 휘청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가서 거울을 보니 눈은 부어 있고 화장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들어서 얼굴이 얼룩고양이 같았다. 나는 머릿속으로 필름을 돌려보았다. 아! 나는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태민이앞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미쳤어, 미쳤어. 나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위장은 쓰렸지만 마음은 개운했다. 콩나물국을 끓여 쓰린 속을 달래주고 정성을 들여 꼼꼼하게 화장을 했다. 오랜만에 립스틱도 발라줬더니 얼굴에 금새 생기가 돌았다.
“수영씨 오늘 좋은 일 있어요? 어쩌다 립스틱을 다 바르고. 보기 좋네요.”
갤러리 대표가 이상하다는 듯이 눈을 슴뻑인다.
“날씨가 꿀꿀해서 기분 전환하려구요.”
거울을 슬쩍 비춰보니 얼굴엔 벌써 봄기운이 화사하다. 일하면서 저도 몰래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그한테서 다시 연락이 온 건 저녁 7시가 넘어서였다.
-양꼬치집에서 업체 사장이랑 식사 중이야. 딱 중국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네.
-갔던 일은 잘 됐고?
-아직도 한 이틀 더 밀당을 해야 될 것 같아. 나 잘되면 고기잡이배도 한 척 사려고.
-고기배?
-응, 내가 배 한척 갖고 있으면 업체에 아쉬운 소리 할 일도 없고. 어차피 물량이 많아지면 배가 있는 게 좋아.
-잘 해봐.
-난 내가 하려고 작정한 일은 꼭 이뤄야만 성이 차거든.
 그가 느닷없이 영상통화를 요청했다. 엉겹결에 받았더니 술기운이 불그레하게 오른 그가 벌씬 웃는다. 하얀 벽을 배경으로 하고. 이런 모습은 첨이다. 아주 편한 모습이었다.
“수영아, 한국일이 잘 되어가고 있다는 예감이 든다. 이번에 오길 참 잘했어. 고마워, 수영아.”
  나는 그가 뭘 고마워하는지 모른다. 내가 아무런 방어 없이 내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서? 고마워하긴 내가 고마워해야 할 터인데. 중저음의 그의 목소리때문에 믿음과 호감이 가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신사같은 품격, 조용한 카리스마,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편하게 해주는 그의 배려심이 나로 하여금 고마운 마음이 들게 하였다. 그와 함께 있으면 문학이니 민족이니 사명감이니 하는 거창한 토론을 벌이지 않아도 되었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안정감이 생겼다.
“수영아, 내가 부산에서 돌아가면 우리 가까운 곳으로 여행 다녀오자.”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10

토요일 오전 그는 부산에서 돌아왔고, 오후에 우리는 남이섬으로 떠났다. 태민은 양복 대신 청바지에 회색의 후드티를 입고 빨간 색 야구모자 차림으로 나타났다. 나는 청바지에 폴로티를 입고 그 위에 브라운색의 숏쟈켓을 걸쳤다. 그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대학생 같아, 하고 말했다.
지하철 차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연두색의 나무잎들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봄이 시나브로 피어나고 있었다.
“기사 데리고 가면 좋은데, 요 며칠 나 따라 다니며 고생 많이 해서 쉬라고 했어. 나도 얼른 한국 운전면허로 바꿔야겠다. 뭐든 내가 직접 하는게 젤 편해.”
“괜찮아, 여행은 원래 대중교통 이용해서 가야 제맛이야.”
  전철에서 우리는 이어폰을 한쪽씩 귀에 꽂고 어린 시절 우리들이 가장 좋아하던 일본 연예인 야마구치 모모에의 노래를 들었다. “좋은 날의 여행”, 그녀의 중후한 목소리를 듣노라니 나는 저도 모르게 따라서 흥얼거리게 되었다.
“와다시와 이마카라 오모이데오츠쿠루타메(나는 지금부터 추억을 만들기 위해)......”
신기했다, 가사 중의 한자를 보자 내 머릿속에서는 고중을 졸업하고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일어단어가 차창밖의 나뭇잎처럼 파릇파릇 되살아났다. 몸으로 익힌 건 역시 오래 가는 법이다.
태민이 날 지긋이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그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인다.
“너 이 수준이면 일본 가서 한 달만 있어도 일본어 유창하게 할 수 있을거야.”
“정말?”
“그럼, 기초가 탄탄해서 엄청 빠를거야. 넌 학교때 일어 잘했잖아.”
그랬다, 나는 여러 과목중에서 특히 일어를 잘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유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지 않았다. 내가 지원했던 전공도 대부분 일본어 전공이었다. 하지만 대학입시를 망친 그 해, 나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나는 처음으로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노력한 자만이 성공하는 것도 아님을 알았다. 사흘 동안 물 한모금 안 마시고 뜬 눈으로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던 내가 꺼냈던 말, 엄마, 나 일본유학 보내줄래요? 말을 하고 나서 난 이내 후회했다. 재수할 돈도 없는 형편에 일본유학을 간다는 건 하늘에 별따기였다.
재수에 옴 붙은 년! 종래로 내 학업이나 진로에 관심이 없던 아버지는 딸이 대학이라도 가면 크게 호강하려고 생각했었는지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욕을 퍼부었다. 나는 상해로 떠났다. 단 하루라도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멀리 멀리 떠나고 싶었다. 집에서 할빈까지 기차를 타고 6시간 반, 할빈에서 상해까지 33시간, 기차에서 1박2일을 보내며 나는 지루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일본어는 내 인생에서 고무지우개로 지운 듯이 말끔히 지워졌다.
내가 죽도록 미워하던 아버지는 내가 상해에 간 지 반년도 안되어 뇌출혈로 돌아갔다. 더 미워하고 싶었는데, 평생 미워하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내게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화살을 엄마한테로 겨냥했다. 결혼을 독촉하는 엄마에게 나는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결혼 안 한다고 했잖아. 지긋지긋해. 엄마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당하고 딸이 엄마의 길을 걷는 걸 원해?”
“휴, 다 내 팔자 탓이지, 남자 보는 눈이 없어서. 그렇지만 수영이 넌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어.”
“그만 해, 죽어도 결혼같은 거 안 할거야. 가정도 싫고 애도 싫어. 난 자유로운 삶을 살거야.”
“그래도 결혼을 해서 가정이라는 걸 이루면 덜 외롭잖아. 너 혼자 막막한 이 세상을 살아갈 걸 생각하면 내 가슴이......”
전화 저 켠에서 엄마가 가슴을 칠 걸 생각하자 나는 오히려 보복이라도 한 듯이 득의양양해났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었고 아버지의 뻔뻔스러움이 지긋지긋했고 별 대책없이 눈물만 짜면서 사는 엄마도 지긋지긋했다. 나는 나만의 삶을 살고 싶었다. 온전히 나에게만 속하는 삶을, 그들과는 다른 삶을.
5년 후, 엄마까지 저 세상으로 가버리자 나는 온전히 외톨이가 되었다. 이제 부모님은 내 삶에서 사라져버렸다. 일본어가 내 삶에서 사라져버리 듯이. 엄마가 살아계실 때 그토록 매정하게 대했던 나도 엄마가 돌아간 뒤에는 미친 듯이 외로워 눈물로 베개잇을 적시는 날이 비일비재했다. 엄마의 부재를 실감하는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깨어나면 나는 다시 태어나기라도 한듯이 쌩쌩했다. 세상과 싸우기 위해 자신을 무장한 여전사 같았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붙었더라면,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을 갔더라면 난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내 생각을 꿰뚫기라도 한 듯이 태민이는 내 손을 슬쩍 잡았다.
“우리 나중에 일본 가자. 내가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줄게. 우리집에 머무르면서 여유있게 구경해, 글도 쓰고. 우리집에서 우에노공원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야.”
나는 하얀 벚꽃이 구름처럼 피어있는 꽃길을 걷는 모습을 상상했다. 태민이랑 나란히.


11

가평역에 내려 출구 바로 앞 정류소에서 택시를 타니 남이섬 선착장까지는 기본요금이 나오는 거리였다. 남이섬은 북한강에 있는 강 섬으로 총 면적은 14여만 평(한국 평수단위)에 이른다. 남이섬은 행정구역상으로 춘천에 속하지만 배 선착장은 경기도 가평에 속한다고 한다. 입장료는 선박포함하여 인당 만3천원, 짚라인을 이용할 경우에는 4만4천원이었다.
“우리 짚라인 타자.”
“아, 그건 무서워.”
짚라인이 무섭기도 했지만 나는 4만4천원이란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아주 잠깐 난 저 돈이면 책을 네 권이나 살 수 있고 내 한 주일 점심 식사값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무서우면 입섬할 땐 배 타고 나올 때만 짚라인 타면 되지.”
그는 기어이 4만4천원짜리 입장료를 끊었다.
봄날의 북한강에는 물결이 무수한 금빛 비늘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셀카 몇 장 찍는 사이에 금새 섬에 도착했다.
드디어 남이섬에 도착, 입구에는 나미나라공화국이라고 유표하게 씌여져 있었다. 남이 장군의 묘소가 있어서 남이섬으로 불리는 이 곳은 이제는 남들이 편히 쉬어간다고 남이섬이라고 재해석되기도 하는 곳이다. 곳곳에 ‘남이섬의 봄은 설렘입니다’라는 포스터가 붙어있고 여러 종류의 나무숲이 우거진 이 곳은 들어서는 순간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세계 각 국의 국기들이 모여서 이 곳을 또다른 이름, 명실공히 “나미나라공화국”임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남이장군의 묘비가 있는 곳부터 찾아갔다. 검은 화강석으로 만든 남이장군추모비가 그의 기개처럼 단단하게 땅위에 서 있었다. 남이장군은 조선국 공주의 자손이며 국왕과는 가까운 척손이 되는 귀골이다. 그는 나이 열일곱에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는다. 세조의 명으로 야인들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동북면으로 파견되고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고 여진족을 정벌하는 공을 세워 27세에 병조판서까지 올랐다. 하지만 훈구세력의 견제와 유자광의 모함으로 28세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남이장군의 시비였다. 남이장군이 천지를 바라보며 북받치는 뜨거운 가슴으로 지었다는 한시가 짧은 인생을 굵게 살아간 대장부의 기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白頭山石磨刀盡, 頭滿江水飲馬無,男兒二十未平國,後世誰稱大丈夫”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닳게 하고,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도다.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일컫겠는가.”
“大丈夫(다이죠부)”
“참 이상해, 대장부가 왜 일본어에서는 괜찮다라는 뜻으로 쓰일까?”
“그게 원래는 멋진 남자는 확실하고 흐트러짐이 없고 건강하더라는 의미까지 확장이 되었어. 그게 지금은 괜찮다로 굳었고.‘大丈夫가 한 약속은 잊으면 안됩니다’ 이런 말로도 쓰이고.”
“아! 그럼 넌 대장부야?”
“모찌론, 다이죠부데스요 (물론, 괜찮지요.)”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우리가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우린 그래도 좋은 시대에 태어났어. 물론 우리가 고중 졸업할 때엔 하해의 바람이 불어서 선생님들도 연해지역으로 많이 나가시긴 했지만 말이야.”
우리의 20대는 전국의 방방곡곡으로, 한국으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고향에 남은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더 넓은 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10대를 장식했던 일본 인기드라마 “도쿄러브스토리”를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렸다. 역시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공동의 추억을 소환해냄으로 우리 사이에는 또 한 번 끈끈함으로 다져졌다.
“그 드라마의 여주인공역을 맡은 스즈키 호나미는 그야말로 모든 뭇남학생들의 로망의 대상이었지.”
“그럼, 얼마나 귀여운데? 웃지마, 나 솔직히 그 여자한테 반해서 기어이 일본 유학 간거다. 스즈키 호나미는 내게 도쿄 그 자체였어.”
“하하하!”
  웃지 말라고 했음에도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스즈키 호나미가 일본의 유학생 유치에 큰 몫을 했네.”
“그렇다고도 말할 수 있지. 나 일본에 가서 스즈키 호나미 직접 만나봤어. 꽤 오래전이었는데 스즈키 호나미가 팬사인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로 달려가서 티켓을 샀지. 티켓 번호대로 그녀랑 서명도 받고 사진도 찍고 포옹도 할 수 있는 기회였어. 내가 산 티켓이 몇 번이었는지 알아?”
“7번이야, 대단하지. 럭키 세븐! 일본에 있는 그 수많은 팬들 중에서 일본인도 아닌 내가 일곱번째로 티켓을 샀다는게.”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역력했다.
“그래서 포옹도 했어?”
“그럼, 티켓 값이 얼만데? 팬들에게 그 정도의 서비스는 당연한 거야.”
  자기가 원하는 것은 꼭 이루고야 만다고 언젠가 내게 말했던 태민이다. 역시 그는 추구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있는 사람이다.
“이제 로마를 가게 되면 로마도 도쿄만큼 사랑하게 될 지도 몰라. 나의 로마! 마이웨이!”
  나는 그의 눈을 응시하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12
  최지우와 배용준이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첫키스를 한 장소에서 우리는 걸음을 멈췄다.
“넌 첫 키스를 언제 했어?”
“대학교 1학년 때, 내 첫사랑이었는데 결국엔 졸업하자마자 돈 많은 미국남자한테 시집 갔어. 그때 난 가난한 학생이었거든. 그때부터 어떻게든 돈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 남자들에겐 첫사랑이 큰 위로가 된다는 걸 본 기억이 난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그에게 삶의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그가 경제적 기반을 탄탄하게 닦아놓은 것만 봐도 첫사랑의 위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첫사랑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난 솔직히 한 번도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이 없다. 20대에는 회사일과 공부를 병행했고 30대 초반부터는 남자를 만나긴 했지만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은 나의 사랑과 결혼을 목표로 한 남자의 사랑은 종시 합일점을 이루지 못하고 식어버렸다. 그런대로 가볍게 털어버릴 수 있어서 상처 같은 건 받지 않았지만 몇 번 지나자 나는 금새 식상해졌다.
  우리는 다정한 연인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장소부터 시작하여 유명한 메타세쿼이아길을 천천히 걸었다. 첫사랑처럼 연두색으로 물든 나무들 사이를. 이어서 은행나무길, 잣나무길, 자작나무길을 산책했다. 우리는 우리의 십대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방황했던 20대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안정된 삶의 터전을 갖춘 30대와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마시며 북한강변을 따라 남이섬 투어를 마쳤다. 남이섬에서 나올 때는 그의 말대로 짚라인을 이용했다. 무려 87미터 높이, 아파트 25층 높이에 달하는 짚라인 탑승장에 올라가니 다리가 후덜덜 떨렸다.
“긴장하지 마, 스릴을 느껴봐.”
태민이가 내 어깨를 살포시 감싸주었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와이어에 몸을 맡기자 곧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순식간에 선착장에 도착했다. 짜릿한 쾌감,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첫 경험, 나는 태민이 덕분에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을 했다. 로마에 가게 되면 나는 태민이와 수많은 처음을 경험하게 되겠지? 괜찮은 여행파트너로 그는 손색이 없었다.
“저녁은 서울에 가서 먹자, 내가 맛 끝내주는 양꼬치집 알고 있거든. 서울 출장 올 때마다 들르는 곳이야.”
  서울역 부근에 있는 그 양꼬치집은 젊은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장사가 잘 돼 구로, 대림, 건대입구, 삼성동 등 여러 곳에 분점을 냈다고 했다. 여주인이 태민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주문한 꼬치가 올라오자 태민이는 숙련된 솜씨로 양꼬치를 구워서 부지런히 내게 건네주었다.
“로마 말이야, 추석 전에 다녀오는게 좋을 것 같아. 넌 가족이 있으니 추석에 가족이랑 같이 보내야 할 거 아니야. 글고 나도 10월에는 한국국제아트페어가 있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거든.”
“시간은 아무때나 괜찮다니까. 그런 것까지 신경 안 써도 돼.”
“암튼 난 로마를 꼭 가야 해. 사실 열흘만에 로마를 안다는 건 한 남자랑 만나서 며칠 사귀고 결혼을 하는 거랑 같은 짓이기도 하지만.”
“시간만 된다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라도 다녀오자. 대신 두 번째 갈 땐 로마 가는 비용은 내가 다 댈게”
그의 목소리는 비오는 날의 첼로소리처럼 듣기가 좋았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수영이 너랑 함께 있다는 거야. 내가 한국에 남고 싶은 유일한 이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활자로 변해 내 마음의 노트에 깊숙하게 박혔다. 이글거리는 숯불 너머로 그의 얼굴은 여느때없이 진지해보였다.


13

“무모한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밤은 꼭 너랑 같이 있고 싶어.”
그가 나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진지한 태도로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가자!”
  그는 내 손을 잡아쥐고 양꼬치집에서 나와 택시를 불렀다.
“시청역에 있는 프라자호텔로 가주세요.”
“거기 비쌀텐데.”
“너하고는 좋은 곳에서 보내고 싶어.”
“그래도......”
  그가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나는 나오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
  그가 방 키를 받아서 오는 동안 나는 로비의 쏘파에 앉아 있었다.
“10층이야.”
  나는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닫기고 밀폐된 자그마한 공간에 단둘이 남겨지자 나는 이제 곧 벌어질 일을 상상하며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나는 방을 자세히 둘러 볼 새도 없었다. 호텔방에 들어서자마 태민이가 거칠게 나를 침대로 몰아부치며 입술을 포개왔기 때문이다.
“동창모임때 널 첨 보는 순간부터 널 안고 싶었어.”
  뜨거운 입김이 내 귓볼을 간지럽혔다. 그는 허겁지겁 내 옷을 벗겼다.
“불 끄고......”
  그는 불을 끄고 이내 침대로 돌아와 옷을 벗고 나를 힘차게 끌어안았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내 몸 속에 들어오지도 못한 채 사정을 해버렸다.
“긴장해서”
  그는 변명하듯 어물거리며 내 몸에서 내려와 옆에 눕더니 나를 껴안고 곧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많이 피곤한 모양이었다. 새벽녘에 그는 다시 나를 안았다. 나는 그의 몸 아래서 찬연하게 부서졌다.
다시 잠이 들었던 나는 강한 햇살 탓에 눈을 떴다. 태민은 어느새 가운을 걸치고 창문 곁에 서 있었다. 내가 깬 것을 보더니 그는 다시 침대로 와서 이불 속을 파고 들어와 내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나는 얼굴을 그의 품에 깊숙이 묻었다.
“더 자, 내 때문에 깨났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어서 말이야.”
  나는 대답 대신 팔을 벌려 그를 껴안았다. 짝 벌어진 어깨, 운동으로 잘 가꿔진 단단한 몸매였다.
“수영아, 난 지금 이 순간이 꿈만 같아. 우리가 어쩌다가 이런 드라마를 쓰게 되었지? 하, 김태민이 출세했네!”
  그의 웃음소리가 맑은 하늘에 울려퍼지는 노래소리처럼 경쾌했다. 그것은 전장에서 승리한 승자의 웃음소리 같기도 했다.
“너 언제부터 이렇게 유머를 잘 했어?”
  나는 그의 팔뚝을 꼬집었다.
“물 마실래?”
  그는 침대머리맡에 있는 생수병을 따서 내게 건넸다. 에비앙이었다.
“앞으로 넌 생수는 에비앙만 마셔, 좋은 피부를 만들려면 좋은 물을 마셔야 돼.”
 그가 몸을 돌리더니 어느새 내 몸 위에 올라왔다. 꺄르르 내 웃음소리가 햇살처럼 방안에 퍼졌다.


14

목련이 앞다투어 우유빛 망울을 터뜨렸다. 훈훈한 봄바람에 가슴은 시도 때도 없이 활랑거렸다. 4월이었고, 나는 한국미술협회에서 조직한 미술전시회에 참여할 작가들의 작품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시공간에 어울리게 작품을 어떻게 배치할지를 화가들과 상의하고 도록과 포스터를 만들고 작품을 체크했다. 일요일에도 근무를 했다. 태민은 그러다가 몸져누우면 나만 손해라며 쉬엄쉬엄 하라고 간섭에 가까운 관심을 보였다.
그는 매일 아침 5시면 일어나서 기사를 데리고 인천 부둣가로 갔고 가끔은 양어장에 가서 참치가 잘 자라는지를 체크하기도 했다. 그래도 늘 퇴근시간은 칼같이 지켰다. 회사 회식이 있는 날도 그는 카드만 넘겨주고는 제시간에 퇴근을 했다. 수영이 너만 있으면 돼, 다른 애들 만나봤자 할 얘기도 없고. 그는 동창들도 일절 만나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는 남산타워에 한 번 다녀왔다.
“서울에 오면 수영이 너랑 매일 저녁마다 같이 밥을 먹는 상상을 했는데, 니가 이렇게 바쁠 줄은 생각도 못했네.”
가끔 그는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곤 했다.
  어느날 그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늘은 우리가 만난 지 한 달이 되는 날이야, 우리 집에서 축하파티 하자.”
“별 걸 다 기억하네.”
  퇴근 후 나는 빵가게에 들러 자그마한 케익을 하나 샀다. 구로디지털단지쪽에 있는, 그가 빌라 하나를 전부 전세내어 직원들의 숙소 겸 자신이 출장 왔을 때 묵고 있다는 집은 지하철에서 꽤 떨어져 있었다. 그가 알려준 대로 몇 개의 골목을 지나 도착하니 대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살짝 밀자 찌익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나는 좁은 계단을 올라가 그의 집에 도착했다. 현관이자 주방으로 쓰이는 곳에서 그는 한창 반찬을 만들고 있었다.
“들어가서 영화나 보고 있어.
집이그의 깔끔한 차림새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지저분해서 난 저으기 놀랐다. 여기저기 제멋대로 널려있는 물건들 때문에 놀랐고 책 한 권 없는 풍경이 너무나 생소했다. 창문이 나 있는 벽구석엔 커다란 구식 트렁크가 두개 겹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빨래 건조대가 커다란 장승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티브이가 놓인 테이블 위에는 선글라스며 이어폰, 손톱깍개, 어디서 받아온 교회 홍보용 물티슈들이 장마당을 벌리고 있었다. 바닥에는 그가 평소에 자주 갖고 다녔을 법한, 모서리가 희끗희끗해진 갈색의 서류용 가방이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었고 그 옆에는 두루말이 휴지가 나동그라져 있었다.나는 서류용 가방을 주워서 티브이 아래쪽 서랍에 넣어두었다.
“집이 엉망이지? 아줌마가 한 주일에 두 번 와서 청소를 하는데 오늘 오지 말라고 했거든.”
 그가 반찬을 볶아서 들여오며 말했다.
반쯤 시작이 된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데이킹 라이브즈”라는 영화였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미궁에 빠진 강력계 형사들은 FBI의 도움을 청한다. 안젤리나 졸리는 미국 FBI의 수사요원, 그녀는 특유의 통찰력으로 카멜레온 같은 살인범들의 알 수 없는 심리를 풀어나가는 1급 프로필 분석관이다. 그러나 그녀가 이번에 만난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웬 일인지 범인에게 끌린다. 범인에게 사랑을 느끼는 자신의 감정에 혼돈을 겪던 그녀는 끝내는 사랑의 감정앞에 무너진다. 범인과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나서 그녀는 그제야 범인의 엄청난 진실과 대면하게 되는데, 뒤늦게 그녀는 범인의 아이까지 임신한 상태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직무를 해고당하고 홀로 시골에 집을 잡고 출산준비를 하며 범인을 기다린다. 드디어 범인은 그녀를 찾아오는데 교활한 범인은 그녀의 총을 이미 다 나꿔채버렸다. 둘 사이에 박투가 벌어지고 범인의 총이 그녀의 불룩한 배를 겨눈다.
나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주방에서 가위를 찾아내 마침내 범인을 찌른다. 그리고 그녀는 치마를 들추고 뱃속에서 임신을 위장했던 고무덮개를 꺼낸다.
“휴~”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영화 보는 내내 주먹을 꼭 쥐고 있던 손에는 땀이 배었다. 그 동안 그는 새우튀김과 가지볶음, 감자 당콩 조림, 그리고 파스타를 주방에서 차례로 내왔다.
“이제 조갯살만 더 볶아내면 돼. 아, 버터가 없네. 내 금방 가서 사올게.”
  그는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내게 물었다.
“내 서류가방 못 봤어?”
나는 서랍에서 서류가방을 꺼내 넘겨주었다. 그는 지퍼를 열고 지갑을 꺼내더니 서류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급히 나갔다. 나는 서류가방을 집어들었다. 열려진 지퍼사이로 여권이 툭 하고 떨어졌다. 아무 생각 없이 여권을 펼치던 나는 여권 제일 앞장에 있는 그의 사진을 보고 피씩 웃음이 나갔다. 꽤 오래 전에 찍었는지 그는 20대처럼 앳돼보였다. 언제적에 찍은 사진이지 싶어서 여권 발급일자를 살펴보니 5년 전에 발급 받은 거였다. 습관적으로 후루룩 하고 여권을 펼치던 나는 무언가 떠올라 꼼꼼히 한 장 한 장 펼쳐보았다. 그가 매일 자랑했던 화려한 출장 기록에 비해 그의 여권은 초라할 정도로 여백이 많았다.  2년 전에 발급받은 한국 비자 외에 미국이나 일본 그 어느 나라의 비자도 없었다. 한국 입국날짜는 작년 11월로 찍혀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이건 말도 안되는 상황이다. 그 말도 안되는 상황속에서 내 머리는 천천히 작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비자가 없이 여태 여기저기 다녔다는 건 말짱 새빨간 거짓말이 아닌가? 그럼 여태 태민이가 내게 한 건 다 뭐였지? 대체 뭐지?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서류가방을 뒤졌다.
연한 하늘색의 외국인등록증이 나왔다. H2비자!
그는 분명히 내게 F4비자로 한국에 거주한다고 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일본에서 석사까지 졸업한 그는 당연히 F4비자, 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증으로 발급받아야 했지만 H2비자였다. 그것도 2년전에 이미 발급받은 거였다. 회사를 차리고 사장을 해? 기막힐 노릇이었다.
금방 본 영화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나는 내가 맞닥뜨린 이 현실생활의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참 후 가까스로 혼란스러움을 떨쳐낸 나는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서류가방 안에 넣어놓고 그의 집문을 나섰다.
더 이상, 그의 실체가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에 대해 아무 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한테서 전화가 연속 걸려왔으나 나는 받지 않았다. 문자가 빗발처럼 쏟아졌다.
-지금 어디야?
-왜 말도 없이 사라졌어?
-야, 기념일에 이렇게 나 바람 맞힐래?
-씨팔, 너 지금 나 갖고 노는 거야?
나는 그의 위챗과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영화나 소설에서만 있을법한 이런 사기꾼이 어떻게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마이웨이인 로마에 난 왜 기어이 그를 동참시키려고 했던가? 


15

“수입제 참치라 다 냉동이네.”
  일본에서 온 옥이의 부부와 이수역 스시집에서 참치를 먹는데 옥이가 말했다.
“수입제라고?”
“그럼 넌 여태 참치를 먹으면서 참치가 다 한국에서 나는 줄 알았니?”
“응, 한국에서도 참치를 양식해서 일본이랑 미국으로 수출한다고 알고 있는데.”
“누가 그런 얼빠진 얘기를 하던?”
   옥이의 말을 듣고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나도록 웃어제꼈다. 그러고보니 그동안 태민이는 한국에서 한 번도 날 데리고 참치를 먹으러 간 적이 없었다.


16

“Verumtamen oportet me hodie et cras et sequenti die ambluare 베룸타멘 오프르테트 메 호디에 에트 크라스 세쿠엔티 디에 암불라레 (사실은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태민이가 나의 삶에서 퇴장한 후 내 생활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로마일정은 5월로 당겨졌다. 가정의 달이라 공휴일이 많았기에 지체없이 떠나기로 했다. 그 동안 알아봤던 여러 여행사이트에서 가장 싼 티켓을 구하고 민박을 찾았다. 수도 없이 지도를 들여다봐서 내 머릿속에는 로마지도가 내 손금처럼 훤하게 떠올랐다.
로마로 여행 떠나던 날, 출국수속을 마치고 탑승을 기다리는데 낯모를 전화번호가 떴다.
“여보세요”
“나야”
태민이었다. 타이밍 한 번 기막히는군.
“수영이 너 어쩜 이럴 수 있어? 그동안 위챗 차단하고 전화 차단하고. 딴 남자랑 놀아난 거야?”
“바쁘신 사장님이 전화를 다 하고 그래? 지금은 어디에 계시나? 음, LA? 라스베이거스? 노르웨이?”
“야!”
“양어장의 참치는 잘 자라고 있어?”
“그럼, 오늘도 양어장 다녀왔어.”
“다행이네. 난 바빠서 이만 끊을게, 탑승해야 하거든.”
“어딜 가는데?”
“로마! 오래전부터 얘길 한건데 뭘 새삼스럽게”
“하하, 기어이 가네.”
“그래, Stultus es 스툴투스 에스 (멍청한 자식아!)”
나는 그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통화 종료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꺼버렸다. 드디어 나는 로마로 간다. 누구에게나 로마는 있다. 나는 나의 로마로 간다. 애초부터 혼자 갔어야 하는 길을, 꽤 멀리 에돌아 왔다.

-장백산 문학지 2019년 2호에 발표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