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족의 생존실태와 그들의 소망

[서울=동북아신문]재일조선족이 일본에 거주하게 된 지도 어언간 30년이 넘었다. 1980년대 초기 국비유학생으로부터 90년대에 대량 증가 된 사비유학생 기업연수생에 이르기까지 근 10만에 달하는 조선족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사람들도 있지만, 일본에 남아서 취직하고 결혼하고 사업을 시작해서 이제는 일본에 정착한 사람들이 많다. 처음에는 개개인이던 그들이 이제는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고 재일조선족이라는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하였고 ‘재일조선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일본 사회에 정착시키고 있다.

따라서 문학인들도 재일조선족문학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다. 필자는 그들 중에서 이번에 『도라지』 4호에 발표된 4명 작가의 작품을 분석하고 평하는 것을 통해서 재일조선족들의 생존실태와 그들의 소망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1. 봄에 다시 태어나는 시인

김화숙 시인

산과 들을 찾아

봄을 노래하던 빗님이

고맙게도 내가 사는

이곳에도 찾아와

똑똑똑 내 마음을 두드린다

선택된 땅을 걷고 있는 나도

봄에게 선택된 존재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비오는 풍경을 만진다

꽃이 경계에서 피어나듯

풍경과 나 사이에

꽃처럼 시가 피겠다.

    -「봄비 연가」 전문

「봄비 연가」에서 봄비는 “똑똑똑” 시인에게 새 시를 쓰라고 그렇게 독촉하고 있다. 그 소리에 시인의 마음이 깨어나서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비오는 풍경을 만진다”. 이는 세상과의 접촉 관찰을 말하는데 ‘풍경’은 원래 만지는 물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만진다’라고 표현함으로써 세상과의 접촉을 더 실감 나게 표현하였다. 그런 관찰과 접촉을 통해 시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준비되었기에 “꽃처럼 시가 피겠다”고 시의 탄생을 미리 알리고 있다. 더욱이 ‘시’를 ‘꽃’에 비유한 것은 봄의 계절 언어를 잘 쓴 표현이다.

 

바다는 해의 무덤

죽은 해가 아니었더라면

그 많은 해를 삼킨 바다는

불바다가 되어 다시

해를 출산하지 못하겠지

밤은 나의 무덤

그렇지 않고서야 매일 아침

전날 흑백영화 같은 생이 아닌

새롭고 경이로운 나를

만나지는 못하겠지.

   - 「무덤에서 깨어나다」 전문

「무덤에서 깨어나다」는 보기만 해도 너무 충격적인 제목이다. 하지만 시를 읽어내려가면서 독자는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바다에 지는 해는 쉬러 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 바다의 지는 해를 완전히 ‘죽은 해’라고 묘사되고 있다. 해가 죽어서 바다를 태워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바다는 아침에 다시 해를 출산할 수 있고 따라서 “밤은 나의 무덤”이기 때문에 나는 모든 죽은 것을 버리고 “새롭고 경이로운 나를” 만날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죽음과 부활은 자연의 섭리이다. 이 섭리를 따라 시인은 자기에 대한 완전한 부정 철저한 성찰이 없으면 새로운 나로 태어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즉 내가 과거와 이별하고 새로운 탄생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시도 출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인의 독특한 세계관을 표현하는 시이다.

 

스무 해 가까이

염좌를 키우고 있습니다

겨울 추위를 피해

집안에 들여다 놓았을 때

잎은 두텁고 컸지만

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귀찮아 베란다에 그대로 두고

물도 제대로 주지 않았을 때

염좌는 꽃을 피웠습니다

폭설로 눈 속에 묻혔던 해

꽃을 가장 많이 피웠습니다

염좌에게 꽃은

춥고 목이 말라 죽을 수도 있다는

절실함의 언어였습니다

내 시가 아직

꽃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의 방황과 고독의 깊이가

땅에 닿지 못했나봅니다.

    - 「시가 꽃이 되지 못하는 이유」  전문

시로 「시가 꽃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들 수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염좌가 힘든 환경 속에서 더 예쁜 꽃을 많이 피운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자기의 시에 대해서 평하고 있다. 따뜻한 집안에서 시련 없이 산다면 그만큼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을 터이고 그만큼 세상에 대한 이해가 없을 것이며 따라서 절실한 것이 없을 것이다. 반대로 비바람 불고 땡볕이 쪼이는 베란다에서 산다면 그만큼 시련이 많다는 소리이고 세상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직접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은 시의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 ‘염좌의 꽃’이 살고 싶은 나무의 절실한 갈망의 표현이라면 시는 인간의 내심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영혼의 외침일 것이니 그런 삶에 대한 절실함이 없이 어찌 마음을 강타할 수 있는 좋은 시가 나올 수 있겠는가. 시인의 시학을 적절히 표현한 시이다.

 

길을 가면서 길을 묻고

여행하면서 여행 책을 읽고

사랑하면서 사랑을 의심하고

살아가면서 삶을 논하고

죽어가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먹으면서 먹을 걱정을 하고

운동하면서 건강을 염려하고

웃으면서 불안을 숨기고

오늘을 잘 살고 있으면서

문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는

내일을 걱정하는

끝없는 모순의 삶이지만

그래도 길은 항상 있다.

    -「모순에서 길을 찾다」 전문

사람은 모순덩어리이다. 그래서 사람은 무엇을 하던 생각하게 되고 망설이게 되고 그러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일반인이 그러할진대 시인은 더 어떻겠는가? 시인은 더더욱 모순적이다. 부단한 자기성찰 속에서 부단히 진리를 모색하고 부단한 고민 속에서 부단히 새길을 찾아가야 한다. 어쩌면 자기 스스로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 시인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철저한 자기성찰과 깊디깊은 고민이 있기 때문에 시인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멀리 내다볼 수 있고 한 걸음 먼저 내디딜 수 있다. 「모순에서 길을 찾다」는 이런 시인의 사색 과정을 보여준 시이다. 머리 터지게 고민하는 과정이 바로 시인 김화숙이 시를 쓰는 과정이 아닐까?

 

떨어져 뒹구는

낙엽만이 가을이 아니다

허공을 지키고 있는

벗은 가지들도 가을이다

아픈 곳 하나 둘 늘어나

몸의 짐이 부담스러운

어깨만이 중년이 아니다

자식과 후배들에게

덕담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들게 된 것도

중년이 되어서였다

청춘의 활기가 빠져나간

젖은 솜옷처럼 처지는

중년의 몸속에

움트는 중년의 반기.

    -「중년의 반기」 전문

김화숙은 중년에 들어서는 50대에 시를 시작했다. 그의 시는 자기 50 평생에 대한 반기일지도 모른다. 여태까지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뒤엎고 지금까지의 사유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남들은 중년은 “떨어져 뒹구는 낙엽”같이 인생의 막바지라고 생각할 때 시인은 ‘벗은 가지’일지라도 “허공을 지키고 있는” ‘가을’이라고 살아있다고 외치고 있다. 남들은 “아픈 곳 하나 둘 늘어나 몸의 짐이 부담스러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을 때 시인은 “자식과 후배들에게 덕담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직도 이 세상에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자식과 후배들이 자랑할 수 있는 인생 선배로 멋지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중년’이라고 그렇게 시인은 자신하고 있다. 그 때문에 시인은 중년이 된 자신에 대한 반기로 시를 쓰고 시로 인생의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김화숙이 일본에 오지 않았다면 시인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소수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고독하고 힘든 이국 생활이 그로 하여금 현실에 반기를 들게 하였고 그래서 시인이 될 수밖에 없게 했을 것이다.

중년의 반기를 들고 봄에 다시 태어나는 시인, 그의 멋진 새 인생이 기대된다.

2. 봄을 사는 사람

 

리홍매 작가

 

수필 「봄을 산다」는 작자 리홍매의 일본 정착기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산 지 23년이 되고 이제는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안정기에 들어선 그녀가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감회를 ‘봄맞이 청소’라는 장치를 통해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제일 먼저 ‘나’의 눈에 뜨인 것은 ‘23년 전, 고향을 떠나는 나에게 한뜸한뜸 친구가 떠준 100% 털실 스웨터’이다. 그런데 한겨울이면 눈이 펑펑 쏟아지는 고향과 달리 바다 건너 이곳은 기후가 따뜻해서 ‘한 해에 한 번도 입을 기회가’ 없다. 이 털실옷은 우정의 표징이기도 하지만 일본이라는 곳이 ‘나’에게 얼마나 생소한 곳이었는가를 보여준 증표이기도 했다. 털실옷 같은 것은 입을 필요도 없는 곳인 것도 모르고 받은 선물, 그만큼 일본은 ‘나’에게 낯선 곳이었고 그래서 일본 땅에서의 출발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다음 눈에 뜨이는 것은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산 ‘캐시미어 코트’와 일본에 온 지 반년 만에 산 ‘페라가모 핸드백’이다. 아직 가난하고 풍요하지 못하던 고향과 달리 이곳은 모든 것이 넘치도록 풍요하다. 그런 일본 땅 위에 서고 보니 뒤떨어지기 싫고 빨리 따라잡고 싶은 심정에 마음이 앞서간다. 그 마음을 어쩌지 못해 무리해서 사버린 ‘코트’와 ‘핸드백’,초창기 조선족들의 현실을 앞서가는 조급한 심경이 잘 드러나고 있다.

힐이 높은 ‘구두’와 무더기로 나온 ‘영화소개 팸플릿’은 20년간의 ‘나’의 분투를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조선족’이란 말은 들어보지도 못한 일본신문사에 찾아가 당당히 “중국에서 온 여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이달의 영화」 코너를 따낸 그녀는 열심히 시사회로 영화관으로 뛰었다. 그렇게 뛰어다니느라 닳아버려 바꾼 굽이 얼마이고 다시 사 신은 구두가 얼마였는지 모른다. 지금 손질하는 이 구두가 몇 번째 구두인지 자신도 헤아릴 수 없지만 그렇게 수고한 자신의 모습 같아서 소중하게 “반짝반짝 닦아 광을 내여 변형이 안되게 포장”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서툴던 일본어도 이제는 일본사람 못지않게 잘하게 되었고 그렇게 닦은 필력으로 길림신문 일본 특파원이 되었고 재일조선족과 중국조선족 교류의 매신저가 되었다.

짝퉁 가방 이야기도 있다. 보기에는 멀쩡한데 기실은 짝퉁인 가방, 일본이란 생소한 사회에서 살아가려니 자연히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이런저런 인간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바르게 살아가려는 일념으로 바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다. 이 이야기에는 일본 사회에서 ‘짝퉁 일본인’이 아니라 ‘재일조선족’ 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작자의 의지도 표현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성인식(成人式)을 국가 차원의 이벤트로 진행하는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특별한 날을 기념으로 남기는 사진이기에 ‘나’는 누구보다 예쁘게 보이고 싶다. 그런데 그 옛날 숱 많고 윤기 돌던 검은 머리가 이제는 숱이 적어지고 빛이 바랜 머리가 되었다. 그래서 주문한 오더 가발, 그것은 작자가 20년 동안 아들을 키우면서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잘해왔다고 칭찬해주는 선물인 것이다. 새 가발을 쓰고 맞는 아들의 성인식, 이는 어쩌면 인생의 한 단락을 마친 작자 자신의 성인식이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보려는 작자의 도전을 의미하는 의식(儀式)이기도 하다.

이같이 한 인간으로서 한 가족의 엄마로서 일정한 목표를 달성했고 일본이란 이국땅에서도 자기의 자리도 만들어 놓은 시점에서 작자는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다시 사색하게 된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집을 돌아보니 몸은 불어있고 집은 물건으로 넘친다. 그래서 옷장에 옷 열 벌만 두는 프랑스인들을 본받아 옛것은 사진으로 남겨 추억을 만들고 다 처리해버린다. 지어 아들마저 저를 위해 샀던 단독주택이 필요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길을 걸으려 한다. 새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마이홈(나의 집) 마이카(나의 차)가 꿈이었던 재일조선족들, 이제는 이 꿈을 넘어서 새로운 비전을 일으키려고 한다. 리홍매의 수필 「봄을 산다」는 이런 재일조선족의 일본 정착기이고 작자의 새로운 인생 출발의 도전장이다.

3. 봄 뜰을 가꾸는 사람

류춘옥 작가

재일조선족의 삶은 부모 형제와 이별해서 살아야 하는 외로운 삶이다.

백 년 전 우리 조상들이 두만강을 건너 만주 땅에 올 때는 그래도 아버지 어머니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올망졸망 애들을 거느리고 가족이 다 같이 왔었다.

하지만 재일조선족이 고향을 떠나 바다 건너 일본 땅에 올 때는 혈혈단신에 빈주먹으로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공부가 끝나면 돈을 좀 벌면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리라는 그런 꿈을 갖고 비행기에 오른 그들이건만 한 해 두 해 그렇게 지내다 나니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결국 이 땅에 주저앉게 되었다.

바다를 사이 둔 이국땅에서 산다는 것은 쉬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서 재일조선족은 부모 형제와 생이별을 하고 살아야 하는 단절감에서 오는 아픔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봄이 내리지 않는 뜰은 없다」의 작자 류춘옥도 이런 아픔을 겪은 사람이다. 지지리 궁색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엄청난 리자돈을 내서 유학을 온 그녀는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모든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지만 돌아갈 길은 점점 묘연해지었다.

그래도 애써 분투하여 이제는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그사이 먼 고향에 남겨두고 온 아버지는 불치의 병으로 돌아갔다. “벚꽃 나라에서 사는 딸의 모습이 보고 싶다고 매일같이 되뇌셨다는” 아버지의 소원도 들어주지 못하고 아버지의 마지막 길도 지켜드리지 못한 그 회한은 ‘가시’가 되어 가슴에 박힌다.

작자가 그리고 있는 이 아픔은 재일조선족들 모두 가지고 있는 아픔이다. 살기 바빠서 형편이 안 돼서 그렇게 부모님의 마지막을 못 지킨 그들이 가진 아픔을 진실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류춘옥의 절실한 감정이 사람들의 마음에 그대로 스며들 수 있었다.

주인공은 이런 아픔을 시아버지의 간호를 통해서 치유해나간다. 그런데 가부장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시아버지는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이다. 결혼식도 치러주지 않았고 친정아버지 장례식에도 불참하였다.

그런 시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었다. 자기를 그토록 사랑해준 친정아버지에게도 효도 못 해서 가슴에 멍이 들었는데 여태껏 섭섭하게 굴던 시아버지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처했을 때 그녀의 마음은 모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시아버지를 일본에 모셔왔고 병 치료를 하게 했다. 그녀의 정성에 의해 시아버지는 천천히 회복되어 거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벚꽃 구경하러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일하면서 반신불수로 행동거지가 불편하고 뇨실금에 치매인 시아버지를 모신다는 것이 그녀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아버지를 간호하는 과정에서 점점 나아지는 시아버지를 보면서 친정아버지 때문에 가슴에 박혔던 가시가 사라지고 시아버지에게 맺혔던 응어리도 녹아내리었다.

이 글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작자가 자기의 아픈 체험을 진실하게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족 많은 사람이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상처, 작자는 이런 마음의 상처는 원망이나 한탄이 아니라 사랑으로만 치유할 수 있다는 진리를 진솔하게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특히 ‘봄’이라는 환경설정은 추운 겨울 동안 생긴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의미를 부여해주기에 아주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낯선 땅에 자리 잡노라고 새로운 뜰을 만드노라고 잃어버린 것도 많았고 상처도 많이 받은 재일조선족들이 이제는 생활에 안착하고 조금의 여유도 생기면서 마음속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봄이라는 환경이 잘 안받침해 주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언어 구사도 봄의 약동감을 생동하게 잘 담아내었으며 봄에 대한 묘사로부터 시작해서 이야기를 끌어내고 봄에 대한 묘사로 끝을 마무리함으로써 서두와 결말이 조화를 이루게 한 것은 작품의 완전성을 기할 수 있었다.

이같이 한편의 일상을 담은 수필이 재일조선족의 민족적 아픔과 치유를 잘 담아냈다는 데에 이 작품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4. 봄 하늘에 비상하는 학

호림 작가

호림의 「학이 우는 소리」는 중일한 3국 화・서예 전시회에 전시된 일본의 저명한 일본화 화가 후지시마 화백의 학도(鶴図)에 쓰인 ‘어느 견당사의 어머니’의 시로부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견당사(遣唐使)는 일본이 중국 당나라와의 교역 문화교류를 위해서 파견한 사절을 가리킨다. 당나라의 선진적인 기술 정치제도 문화 그리고 불교 경전을 수집해 오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2백여 년 사이에 20차의 견당사 파견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일본에 중국문화를 전달하였고 그래서 일본이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 것이다.

호림은 이런 견당사를 따라서 당나라에 유학 간 아베 나카마로(阿部仲麻呂)의 이야기를 썼다. 아베 나카마로는 당나라의 저명한 시인인 리백 왕위 등 많은 시인과 친분이 있었다. 그는 당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도 했는데 당나라에 거주한 지 35년이 되던 752년에 제12차 견당사 후지와라 기요카와(藤原清川)를 따라서 귀국하게 되었는데 그때 왕위는 송별시(送秘書晁監還日本国)를 써서 석별의 정을 그렸고 그가 탄 배가 폭풍우에 조난했다는 오보를 들은 리백은 칠언절구「조경형의 죽음을 통곡함」(「哭晁卿衡」)을 써서 그 애통함을 표현하였다.

작자는 이런 역사 이야기를 통해서 중국과 일본의 문화교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중일 교류의 유구함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아베 나카마로와 양귀비의 이야기도 쓰고 있다. 안사지란 때 현종의 부탁으로 아베 나카마로가 양귀비를 데리고 도주하여 일본 야마구치(山口県) 현에 왔었다는 전설과 그래서 야먀구치 사람들은 양귀비를 닮아 미남 미녀가 많고 학이 많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일본문화와 중국문화의 밀접성을 말했고 ‘하늘의 사자’ 즉 문화교류의 사자인 학을 다시 한번 등장시키는 장치를 설정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학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작자는 일본화 화가이고 학 그림의 일인자인 후지시마 화백과 그가 중국 대련 동물원으로부터 증정받은 학,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중일우호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화백과 ‘나’가 다투면 풀이 죽어 거닐거나 부리로 창문을 두드리며 화를 내는 학의 모습을 통해서 평화와 우호 관계를 지양하는 작자의 사상을 표현하였다.

작자는 “학은 천년을 산다.”란 고화를 인용하면서 1300여 년 전의 견당사 어머니가 노래한 학과 후지시마 화백이 그린 학이 동일 학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제기함으로써 중일 문화교류의 긴 역사를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그리고 신라 발해를 통해서 당나라로 날아갔던 학의 경로가 벼농사와 학춤의 전파경로 즉 문화 경제의 전파경로였음 말해주었고 그로부터 중국의 ‘일대일로’ 국책에까지 이끌어가서 중국의 문화 경제가 이 길을 따라 전 세계로 이어지리라는 미래를 보여주었다.

이같이 작자는 후지시마 화백의 학 그림으로부터 견당사 어머니의 학에 기원하는 시에, 견당사 어머니로부터 리백 왕위 양귀비와 친분이 있었던 아베 나카마로의 이야기로, 그로 해서 이어진 야마구치현의 학 이야기로부터 다시 후지시마 화백의 학 이야기로 돌아와서 화백과 ‘나’ 그리고 학의 관계를 이야기하였다. 이렇게 현재로부터 과거로, 과거로부터 다시 현재로 베틀에 북 나들듯 ‘학’으로 이야기를 짜나갔기 때문에 짜임새가 치밀하고 설득력이 있게 되었다.

재일조선족은 현재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중국에서 태어난 이민 3, 4세가 대부분이고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이 대가정의 일인인 소수민족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그들의 가장 큰 념원은 중일 간의 우호 관계가 원만하게 영원히 이어져 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자 호림이 그리고 있는 ‘학’은 중일 문화교류의 상징물이고 그 자신은 이 글을 통해서 중일한문화를 전파하는 ‘견당사’로 되어 세 나라의 문화교류에 힘을 바치려는 각오를 보여주었다.

엄정자 평론가

이렇게 4명 작가의 작품을 평하면서 재일조선족작가문단도 이제는 자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앞으로 그들이 일본이라는 이국땅에서도 우리말 우리글 우리 문화를 지켜나가는 ‘견일사’(遣日使)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글 출처 『도라지2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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