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애란, 삶 속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부분을 작품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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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애란, 삶 속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부분을 작품에 담다
  • 동북아신문
  • 승인 2019.09.2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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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한국 영화에 비해 21세기에 이르러 중국에서의 한국문학의 번역과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지만 사실 한국의 많은 신세대 작가들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여성작가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데 그 중 김애란 작가가 대표작가로 꼽히고 있다...<중국신문주간기자 리우웬항(刘远航)>

김애란 작가
김애란 작가/ 촬영 중국신문주간 기자 둥제쉬이(董洁旭)

김애란은 요 며칠 간 구이제(簋街) 근처에 머물고 있다. 도로 양쪽에는 모두 식당이 들어서 있고 사람 사는 냄새가 다분히 난다. 1980년에 태어난 이 한국인 작가는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중국어가 서툴지만 변화무쌍한 얼굴과 눈빛은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이 가능한 언어에 속하며 출퇴근을 할 때의 모습, 노인과 아이들의 모습 모두가 표정이 다르다.

8월 말에도 베이징은 여전히 더웠다. 김애란은 단발머리를 하고 스니커즈를 신는 등 여느 젊은이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작품 발표를 시작했으며 등단한지 17년이 되었다. 그녀의 최근작인 ‘바깥은 여름’이 얼마 전에 중국어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그녀가 중국에서 출판한 네 번째 소설집이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한국 영화에 비해 21세기에 이르러 중국에서의 한국문학의 번역과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지만 사실 한국의 많은 신세대 작가들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여성작가들이 주목을 받고 주역으로 등장했다. 2011년 잉스만아시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신경숙, 2016년 국제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 등이 대표적인 작가이며 그들의 주요 작품은 모두 중국어로 번역되었다.

김애란은 이 여성작가군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는 오랫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강의를 했는데 김애란과 한강의 작품에서 역사와 기억이 뒤섞인 한국의 현실적인 욕망을 엿볼 수 있고 물질과 욕망이 교차된 현실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흥미롭게도 많은 중국 독자들이 이 한국 작가의 펜을 따라 작품을 읽으면서 중국의 시대적인 현실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 외국어를 독학하는 택시 기사, 대학교 강단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 강사들의 모습, 그리고 집을 살 돈을 모으고 있는 젊은 부부와도 같은 모습들이 김 작가의 작품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김애란은 이런 얼룩진 도시의 경험 속에서 가볍지만 날카롭게 다룰 수 있는 문학적 형식을 찾았다. 그녀는 ‘도시생활 관찰자’로 불리고 있다. 신작 ‘바깥은 여름’에서 김애란은 시선을 자신과 주위로부터 더 많은 사람들로 넓혀 한국 사회의 국민정서에 대해 응답했다.

‘바깥은 여름’은 일곱 편의 소설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여섯 편은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사건을 다룬 글이다. 직접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김애란의 소설에는 슬픈 기운이 감돌고 있다. 타인의 아픔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상투적이고 익살스러운 표현들을 내려놓았다. 갑작스런 상실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작가가 소설 속에 묻어둔 질문이다.


‘맛나당 국수집’

열네 살 즈음의 김애란은 춤을 좋아했다. 그녀는 당시 유행하였던 ‘여름에서’라는 댄스곡을 좋아했는데 신나는 리듬이 그 시절 흔히 볼 수 있었던 낙천적인 정서를 그대로 표현하였다. 학교에 있지 않았을 때 김애란은 또 다른 리듬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바로 어머니의 칼도마 소리였다.

그녀는 국수집 여주인의 딸로, 국수집의 이름이 ‘맛나당’이었다. 어머니는 매일 고추를 따고 양파를 캐고 반죽을 하고 국수를 만들며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면서 휴식도 잊고 있었고 노동을 하면 보답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장사가 잘 될 때는 하루에 밀가루 두 봉지를 다 사용했다. 강한 여성, 이것은 김애란은 주변에서 강한 여성의 이미지를 흔히 만날 수 있었다. 국수집을 찾는 사람들 중 이런저런 사람들이 다 있었기에 김애란은 손님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여러 가지 모습을 미리 알게 되었다. 작가는 이 경험을 소설에 담았다.

김애란을 포함해 딸 셋을 둔 어머니는 계속 아이를 낳기보다 국수 장사에 전념하였으며 번 돈으로 딸들의 교육과 평소의 지출을 감당했다. 나중에는 딸의 전인교육에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밑천을 들여 피아노 한 대를 사와 딸의 방에 두었다. 이때부터 이 악기는 밀가루와 함께 김애란의 어린 시절 생활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도도한 생활’에서 주인공의 어머니는 만두가게를 차리고 베토벤과 같은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귀머거리 같이 두 귀를 닫고 만두 빚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녀는 주인공을 위해 피아노를 한 대 샀다. 이때부터 “밀가루 알갱이가 햇빛에 날리고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춤을 추면서 건반 위에 하얀 꽃 모양의 지문이 찍히는 모습”이 그려졌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 평범한 가정은 나중에 파산을 당했고 값나가는 가전제품은 모두 팔아 넘겼지만 어머니는 피아노만은 팔지 않겠다고 버텼다. 이 악기는 어찌 보면 삶의 마지노선이 되었다. 파산의 원인은 부친이 보증을 서 준 것과 관계가 있었다. 공장 파산이 도미노 현상처럼 일어나면서 결국 국수가게도 문을 닫게 되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한국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았는데 김애란은 이 해에 열일곱 살이었다.

금융위기가 한국 사회의 분수령이 되었는데 그 전의 한국이 햇볕이 쨍쨍한 여름이었다면 그 후에는 가을날씨가 되었다. 김애란은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부모님 세대는 한국의 고도성장 시대를 경험했고 풍요로웠으며 사람들은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 노력만 하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 이런 신념들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모든 노력이 보답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드디어 대학 입시를 볼 나이가 되었다. 비록 엄마가 피아노를 사서 딸의 예술적 재능을 키워주었지만 예술로 밥그릇을 챙길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고등학교 졸업 여름방학에 그녀는 몰래 예술고시를 보았는데 이는 사범대에 다니라는 어머니의 뜻과 맞지 않는 방향이었다.

김애란은 1999년 대학 진학을 위해 인천 지역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금융위기를 겪은 후 대학 등록금이 더 올랐다. 그녀의 많은 친구들 가정도 직접적으로 금융위기의 충격을 받았고 가정파산과 해체를 겪었다. 대학에서 김애란은 연극을 전공했다. 대학 3학년 때 김애란의 소설 데뷔작이 제1회 부산대학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어머니는 딸이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성격이 강하고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편인 반면 아버지는 과묵한 편이다. 이는 김애란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상황이며 한국에서 갈수록 보편화되고 있는 가족 모델이다. 사회의 불안정한 발전은 남성 위주의 전통적 가족관계를 재조명했고, 여성들도 함께 가족의 짐을 짊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달려라 아비’에서 김애란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녀의 모습을 그렸다. 어머니는 택시기사로 아버지가 집을 나가자 일가족의 부양을 떠맡았다.

딸은 형광색 핑크 반바지를 입은 아버지가 “스핑크스의 왼발 옆을 돌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101번째 화장실을 갔다가 이베리아 반도의 과달라마 산맥을 넘는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력과 해학적인 필치로 김애란은 자신의 작품에 가족 관계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을 녹여냈다.

김애란은 베이징에 있을 때 작가 원전(文珍)과 교류했다. 이들은 가족 얘기도 나누었다. 김애란은 어머니의 모습이 그림을 그릴 때 사용되는 크레용과 같았고 아버지는 백지장과도 같았다고 묘사했다. 문학을 빌어 그녀는 자신이 잃어버렸던 부분인 아버지와 서먹했던 한을 풀 수 있었다. 김애란은 원전에게 신중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원전은 <중국신문주간> 기자에게 “그녀는 더 많은 열정과 민감할 수 있는 부분들을 작품에 담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의 도시

김애란의 공간에 대한 갈망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중국과 달리 한국 대학은 숙박을 거의 하지 않는데 대학교 입학 후 김애란은 싼 집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가 되었다. 어머니는 그녀와 함께 골목길을 걸었는데 얼굴이 온통 땀 범벅이 되었다.

1999년 8월, 20년 전의 어느 한 여름, 20세기의 마지막 폭염 때 모녀는 집 계약을 하고 팥빙수를 함께 먹으며 얼음을 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김애란은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다. 집은 아주 작았고 이전의 세입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벽에는 별 모양의 형광 스티커가 남아 있었는데 이미 낡았지만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등단작인 ‘노크를 하지 않는 집’은 셋방살이 생활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에는 다섯 명의 동거녀가 함께 살고 있었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이고 일이 있을 때는 문에 메모 한 장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종종 문틈으로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불완전한 얼굴이 부서진 이미지로 언뜻 보였다. 어젯밤 누군가는 울음을 터뜨렸고, 누군가는 항상 세탁기에 양말을 떨어뜨리고 또 어떤 사람은 남성을 데리고 와 밤을 보냈는데 이런 일상은 익명의 도시를 구성했다.

도시에서의 체험은 시골 생활과는 판이하게 달랐는데 그 자체로 텍스트를 구성하였고 포스트모던의 생활 방식과 새로운 논리가 뒤섞여 있는 모습이었다. 새해 벽두부터 점점 더 많은 편의점들이 서울에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인천 시골에서 김애란은 그런 도시의 공간을 본 적이 없었다. 이곳은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편리함을 주지만 뭔가 낯설고 위험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새로운 공간에서 인간관계도 바뀌었다.

김애란은 단편 소설집 ‘나는 편의점에 간다’를 썼다. 환하게 불이 켜진 간판은 완전히 드러난 내장과도 같았다. 편의점에는 직장을 구하고 있는 졸업생, 실직한 중년, 갓 낙태를 하고 목마름을 느끼는 여자 등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물이 아니라 공간이다. 이 단편소설들을 묶어 2005년에 단편소설집을 출간했으며 제목을 ‘달려라 아비’로 붙였다. 이 책으로 김애란은 많은 찬사를 받았다. 신세대 작가로서 김애란은 경쾌한 작품 스타일, 다변한 문체, 익살스러운 재치와 날카로운 관찰력을 작품 속에 접목시켰으며 신인으로서의 자세를 갖추었다.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하고 있다. 중국에는 ‘바링허우’(八零后, 1980년 이후에 출생한 세대)라는 말이 있는데, 한국에서 김애란 세대의 젊은이들을 ‘88만원 세대’라고 부른다.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20대들은 월급이 평균 88만 원으로 인민폐로 5,000위안에 불과하다.

경제와 소비가 지난 세기 한 세대 사람들의 좌표가 됐다. 그들은 일본의 침략과 6.25전쟁을 경험했던 사오십년대와 작별하고 6, 70년대의 군사 통치를 경험했다. 트라우마와 슬픔의 정서가 특징인 한국문학도 끊임없이 ‘내면의 변화’를 담고 있다. 90년대 문학의 신화적 여류작가로 꼽히는 신경숙도 작품 속에 내면을 잘 드러내는 편이다.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면서 일상생활과 도시에서의 경험이 김애란의 글쓰기 주제가 되었다.


생활의 모습

김애란은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성장했다. 첫 소설집이 나왔을 때 김애란은 스물다섯 살이었고, 글속의 주인공들은 대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이었다. 그녀는 소설집 마지막에 자신이 소설의 ‘정직함’을 갖기를 원한다고 언급했다. 세 번째 소설집 ‘비행운’이 출간될 무렵 김애란은 32세였으며 그의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이립지년(而立之年)의 나이가 됐다.

이때에야 김애란은 작가로서 자신의 신분을 확인했다. 삶은 영원히 움직이는 ‘동사’와 같으며 그 삶의 모습들이 소설에서 드러난다. ‘성탄 특선’에서는 젊은 남녀가 호텔을 찾아 다니는 모습이 그려진다. 크리스마스 때 서울의 모습은 구정을 맞이한 베이징의 모습과도 같아 길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허름한 다락방 계단을 젊은 남녀가 올라가는 모습은 마치 ‘북극 빙산에 추락한 희생자’를 방불케 했다.

폐쇄된 공간에서 문학적 상상력이 분출되어 나왔다. 김애란은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공간은 이야기를 담는 그릇으로 아주 작은 부분이다. 이런저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상상력이야말로 제일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김애란은 말했다.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에서는 시골에서 온 용대가 서울에서 택시를 몰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는 독학으로 중국어를 공부하며 앞으로 언젠가는 이곳을 떠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용대에게 중국은 “비전과 희망이 있는 곳”이다. 중국어는 언어가 아니라 노래처럼 들렸고 용대는 단어와 문법은 물론 억양도 기억하면서 공부했다. 용대의 여자친구는 중국 지린(吉林)의 조선족 출신으로 밀입국해 한국에 왔다.

작가도 주인공과 똑같은 고민을 겪었다. 서른 살 때 김애란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며 삶과 글쓰기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밤새워서 글을 쓰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을 때 김애란은 청춘이 삶의 잃어버린 부분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품 속의 ‘나’는 끊임없이 ‘그’로 변해갔다.

김애란은 시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2011년에 출간된 김애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주인공은 일찍 늙어버린 17세 소년으로 80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부모는 17세 때 그를 낳았다.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김애란은 “스무 살 나이에는 자신에 대해 더 관심을 가졌다. 서른 살이 되자 윗 세대를 바라보게 됐고 다음 세대를 보기 시작했다. 중국의 젊은이들도 기성세대와의 격차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사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언어가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예전에 한동안 부정적인 호칭과 말들이 유행된 적도 있었고 이런 언어적인 기호의 변화는 문제를 간단하게 만들어주는 역할도 했지만 문학은 그 반대였다”고 설명했다.

언어 자체는 생겨났다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학은 구원의 의미를 갖는다. 2012년 김애란은 중국의 문학 관련 행사에 참가하여 한 소수민족의 전시를 보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침묵의 미래’를 썼으며 소수민족의 언어 박물관을 그렸다. 이 우화적인 색채가 다분한 소설로 김애란은 2013년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이상문학상은 한국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상이며 김애란 역시 사상 최연소 수상자였다.


바깥세상을 돌아다니다

김애란은 종종 신문의 사회면에서 소재와 영감을 찾는다고 말했다. 한 번은 그녀가 한 비극적인 기사를 읽었다. 한 모자가 생활이 어려워져 결국 함께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소설가로서 김애란의 관심은 계층 차이나 자본주의에 있지 않다. 그녀의 주의를 끄는 것은 현장의 몇 가지 세부 사항이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아들이 뒤로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머니는 바닥에 누운 채 시선을 아들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김애란 작가도 국가적인 사건사고를 주목한다. 2014년 한국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로 296명이 사망했는데 이 중 상당수가 학생이었다. 당시 김애란 작가도 TV 생방송을 지켜봤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수색을 담당한 정부 부처는 비판과 의혹을 받고 있었다.

많은 작가들이 이 재난에 대한 문학적 대응을 시도하면서 이 주제를 다룬 많은 소설작품과 뉴스들이 쏟아져 나왔다. 2014년 10월 김애란은 11명의 다른 작가들과 함께 기념글을 모아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제목의 작품집을 출간했다. 그녀는 글에서 “‘이해’는 다른 사람의 내면에 들어가 서로의 영혼이 만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고통스럽게 인식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재난 앞에서 소설가는 한동안 언어의 무력감을 느꼈다. 문학은 종종 어떤 것에 대한 총화를 시도했지만 ‘세월호’ 사건은 수년 째 진상규명을 하고 있지만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재난 이후 김애란이 쓴 첫 소설 ‘입동’은 한 젊은 부부가 돈을 아껴가며 마침내 50여 평방미터 남짓한 낡은 집을 장만했지만 학교에서 발생한 사고로 네 살짜리 아들을 잃은 이야기를 다루었다. 아이가 세상을 떠난 뒤 벽지는 곧 찢어질 듯 가파른 절벽과 같이 느껴졌다. 그들은 집에 벽지를 다시 붙이고 새 삶을 시작하려 했지만 한 모퉁이에서 아들이 남긴 글씨를 발견했다.

소설집에 수록된 마지막 소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도 죽음과 관련된 내용이다. 남편은 교사였고 물에 빠진 학생을 구하다 함께 숨졌다. 주인공은 남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 스코틀랜드로 휴가를 떠났다. 그곳에서 그녀는 시리(Siri) 프로그램과 얘기를 나눠봤지만 여전히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귀국 후 그녀는 조난 학생 언니의 편지를 받았다. 결국 그녀는 남편이 물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삶’이 ‘죽음’ 속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삶’이 ‘삶’ 속에 뛰어들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없었지만 많은 독자들이 김애란의 이 작품들에서 그 이면의 의미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사실 소설가가 글을 쓸 때 어떤 것은 말로 표현하지만, 마찬가지로 어떤 것은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김애란은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는 소설의 한 입구일 뿐이라고도 말했다.

어떠한 피안도 쉽게 횡단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문학은 감정이라는 노를 제공해 생명의 잃어버린 부분까지 건져낼 수 있다. ‘상실’과 관련된 소설들은 단편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수록되어 있으며 올해 8월 중국어로 번역되어 인민문학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소설집 제목은 간단하지만, 풍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소설집은 차가움과 뜨거움에 관한 내용과 관련되는 동시에 현실세계와 내면의 삶을 지향하기도 했다.

8월 23일 베이징에서 소설 출간 기념행사를 열었는데, 현장에는 많은 독자들이 몰려들었고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김애란 작품의 역자 중 한 명인 쉐저우(薛舟)도 함께 자리했다.

왜 김애란과 같은 한국 작가들이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가 하는 <중국신문주간> 기자의 질문에 쉐저우는 두 나라 모두 역동적인 시대를 경험하면서 유사한 사회적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는 문학 작품 번역에 더 많은 시대적 언어환경을 제공해 주었다고 설명했다.

비좁은 모텔과 반지하방,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편의점과 택시의 모습들은 도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풍경이다. 김애란은 자신의 문학적 재능으로 이러한 현실을 소설 속에 새롭게 형상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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