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합치고 힘을 모아 조선족의 위상 높여야 합니다

[서울=동북아신문]중국 조선족사회의 최초의 변동, 또는 이동은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으며 그 정착지가 바로 산동성 위해이다. 시간적으로 볼 때 이는 19928월의 한중수교보다 더 앞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위해의 이번 취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위해는 지리적으로 볼 때 중국대륙에서 한국과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

새벽 고요할 쯤 인천의 닭울음소리를 위해에서 듣는다는 말도 있다. 인천에서 저녁 배를 타면 이튿날 아침이면 위해에 도착한다. 비행기를 이용하면 1시간 거리이다. 이러한 지리적 장점으로 인하여 위해는 한국, 나아가 중국조선족과 특수한 연계가 있는 지역으로 부상하였다.

멀리는 아득한 옛날, 진시황 시대로 이어진다. 시황의 명을 받고 불로초를 구하러 선남선녀 각 500명을 데리고 먼 바닷길을 떠났다는 산동인 서복(徐福), 사마천은 사기에서 서시(徐市)로 기록했고, 그들이 처음 닿은 곳이 오늘의 제주도 서귀포라 전해지고 있다. 시황제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제를 지냈다는 곳, 바로 위해의 성산두(成山头)이다.

당연 지금은 위해의 관광명승지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위해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장보고이다. 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는 위해 적산의 신라인 집단거주지 신라방(新罗坊)에서 적산법화원(赤山法华院)이라는 사찰을 세웠다. 이 사찰은 1년 수확량이 500섬이 되는 토지를 기본재산으로 하였으며, 장보고의 무역활동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당나라에 거주하는 신라인의 신앙 거점인 동시에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처였다. 당나라로 건너가는 신라와 일본의 많은 승려가 이곳을 거쳤다.

천여 년이 흘러간 오늘에도 위해는 한국과의 특수한 지리 위치로 하여 중국의 조선족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1984년 위해시는 중국 국무원에서 지정한 첫 연해개방도시가 되었다. 이는 위해시 개방과 발전의 결정적인 시점으로 역사적 사건이다. 위해는 한국과의 경제, 대외무역 및 산업적 교류에서 천혜의 우세를 충분히 이용하기 위하여 한국어와 중국어를 유창히 구사할 수 있는 많은 인재가 필요한 시점에 처해 있었다. 이는 중국의 조선족이 위해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위해시정부의 관련부문은 전문 인원을 연변에 파견하여 수백 명의 고학력 인원을 위해로 인입하였다. 이들은 주되게 대외무역, 경제개발구 등에 배치되었다. 이는 중국조선족이 개혁개방 후 인구이동을 시작한 첫 시점이다.

1990, 위해와 한국 인천을 내왕하는 한중 첫 해상항선이 개통되었다. 19928, 한중수교는 위해시 발전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 또한 많은 조선족이 동북 각지에서 위해로 몰려들면서 위해 조선족사회가 형성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많은 중소기업의 위해 진출은 위해 조선족사회 형성의 촉매제가 되었다. 한중수교 20년이 지나면서 위해는 중국조선족의 주요한 집거구로 부상되었으며 많은 조선족들이 위해에서 한국기업에 취직하여 사무직, 번역, 무역업, 물류업에 종사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적지 않은 사람이 자영업자로 탈바꿈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추세는 중국산업구조 조절과 싸드로 인한 한중관계의 악화 등 외부적 요소로 인하여 한 차례 충격을 받게 되면서 위해의 많은 한국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위해를 떠나게 되었다. 따라서 많은 조선족 들이 새로운 직장을 찾아 위해를 떠나 각지로 흩어지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위해의 조선족사회는 이른바 재정비라는 여과과정을 거치면서 숫자적으로는 줄었지만 질적으로는 안정적이고, 더욱 강력한 응집력과 생존력과 경쟁력을 지닌 집단으로 다져지게 되었다. 이러한 위해조선족 사회의 재구성은 새로운 구심점의 형성을 유도하게 되었으며 조선족사회의 교류와 협력과 발전에 필요한 플랫폼의 출현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2015223, 위해조선족기업가협회(회장 전양준)가 설립되었다.

산하에 운영, 기획, 문화교류, 홍보, 사무국, 공익부, 문체부 등 기능부서를 설치하고 이듬해에 제1회 위해시 조선민속축제를 개최하고, 이어 2017년 제2회를 연속 주최했다. 위해조선족의 만남과 문화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얼굴을 맞대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교류하고 우리 문화, 민속을 몸으로 느끼고 향수함으로써 민족의 동질성을 마음으로 새기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었다.

위해의 조선족은 거개가 외지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뿌리 없는 삶을 산다고 할까요. 각자가 홀로가 되어서 분투하는 겁니다. 현시점에서 공동 참여의식을 키우고 마음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위해시 조선족기업가협회 김영매 상무부회장의 말이다. 그는 연변 안도현 출신으로서 1996년 우연한 기회에 위해로 옮겨왔고 한국 복장회사 직원 생활 3년을 시작으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면서 2004년에는 자신의 화물운송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지금은 여러 개 회사를 동시에 경영하는 기업인으로, 그리고 사회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여타 지역보다 늦게 출범한 위해조선족기업가협회는 위해조선족사회에 알맞는 독특한 길을 모색하고 있다. 실속 있고 고효율의 명실상부한 협회를 다져가기 위하여 유력 조선족이 이끄는 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이사 단위 제도를 도입하였다. 현 단계에서 기업인 개인이 아니라 회사를 중점 대상으로 협회를 꾸려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27개 이사 단위를 엄선하고 이사단을 꾸리면서 질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첫 작업으로 법률단을 설치, 회원 사기업과 조선족 사회를 상대로 법률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위해에는 창업하러 온 세대가 많아요. 협회차원에서 이들에게 창업과 취업의 기회와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정부의 관련부서, 개발구산업단지 등과의 교류와 협력, 나아가 정부지원 획득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위해 조선족사회를 위하여 해야 할 일입니다.”

리더의 작용은 우선 봉사이며 봉사를 통하여 교류의 힘을 키우고 위상을 높이는 것이다. 조선족노인 100명에게 무료건강검진을 제공하며 회원사를 주요대상으로 문화특강을 조직한다. 그리고 기업탐방을 통하여 산업정보를 교류하고 회원사 사이의 친분을 쌓고, 협회의 단합력을 키운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이며, 나아가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우리 협회가 버릴 수 없는 것은 민족의 자부심이지요. 우리가 뭉치고 합심하고 협력하면서 실력을 키우고, 지역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이고 나아가 민족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지요. 우리 협회가 이러한 역할에 충실해야 될 것 같습니다.”

위해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조선족은 4만 명 정도로 헤아려진다.

최초 보잘것없는 자그마한 어업을 위주로 하는 시골에서 지금은 국가위생도시, 국가원림도시, 국가삼림도시, 그리고 세계에서 인류가 생활하기 가장 적합한 도시로 주목 받고 있다. 위해의 발전에는 우리 조선족의 분투와 공헌을 간과할 수 없다. 위해는 2015년 한중자유무역구 선행모범 도시가 되었다. 위해는 조선족사회는 향후 중국조선족의 중요한 집거구가 될 것이며 그 중심에는 위해의 여러 조선족단체를 아우르는 위해조선족기업가협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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