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도 없고, 거리도 없는문화의 부흥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서울=동북아신문]차오란(曹然)=영국 케임브리지를 한가로이 거닐다 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케임브리지대의 31개 학부 중 가장 오래되고 명성이 높은 지역의 입구에는 종종 대형 서점이 있다.

뉴턴과 찰스 왕세자가 다녔던 트리니티대학교 입구에는 더블유 헤퍼 앤 썬즈(W. Heffer and Sons)서점이 있으며 넓은 서점 공간이 전설 속의 뉴턴 사과나무후대들과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관광객들은 바이런이 삼트리니티대학교에서 반달가슴곰을 키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이런보다 조금 젊은 이 서점에서 프리미엄으로 나온 시인의 작품집을 사서 가져갈 수 있었다.

또 다른 백 년 묵은 노점인 케임브리지대 출판사 서점은 케스 칼리지 대문의 비스듬한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는데, 유명한 물리학자인 호킹 박사가 생전에 이 문을 자주 드나들었다.

유명한 킹스 칼리지의 서점 주변 시설도 볼거리가 풍성했다. 웅장한 컬리지의 정문 맞은편 골목에는 더 이상 떠들썩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며 유명하고 오래된 서점 두 곳이 세인트 에드워드 킹스 교회의 뾰족한 건물 꼭대기 밑에 숨겨져 있다.

창문 위에 있는 여무(女巫)를 주목하지 않았더라도 당신은 더 혼티드 북숍(the Haunted Bookshop)에 들어서는 순간 오른쪽에 있는 기괴한 분위기의 계단에 매료될 것이다. 크고 작은 경고표지에는 서점 2층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강조되어 있지만 1층에 있는 호화로운 18, 19세기의 가죽으로 된 기도바이블과 오래 된 아동 서적도 이 서점과 전혀 무관한 것들이다.

이 이야기 좀 보세요.” 열정적인 여점원은 벽 모퉁이에 놓인 작은 지방 도서를 꺼냈다. 그는 더블유 헤퍼 앤 썬즈서점은 케임브리지에서 대중에게 유일하게 개방된 기이한장소라고 소개했다.

1980년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서점 2층으로 가는 계단에서 흰 옷을 입은 여인을 목격했다는 증언들을 해왔다. 이 그림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서점의 전신은 케임브리지대 학생들의 아파트였으며 18세기에는 맥주가게였던 만큼 짜릿한 역사의 장소는 아니다. 그러나 호사가들은 기존 전설에 여자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지만 아무도 없었다는 등의 무용담을 덧붙이기도 했다. 점원들도 고객을 위해 제비꽃 향기로 여자를 불러올 수 있다는 등 전설에 영적인 색채를 추가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30여 년의 전파를 타고 이 서점 안의 유령은 이미 사람들의 마음 속을 파고 들었다. 하지만 목격자들마다 이 유령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으며 그 유령을 만나게 된다면 이는 멋진 인생 체험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블유 헤퍼 앤 썬즈서점에서 불과 50m 떨어진 또 다른 골목에는 120여 년 역사의 구스타프 데이비드서점이 자리잡고 있는데 또 다른 케임브리지의 은밀한 모습을 드러냈다. 서점 앞마당에 들어서면, 세 개의 룸에서 신간 서적에 대해 세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왜 창문에 고서라는 글자가 붙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이때 계속 룸으로 들어가 보면 방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두 개의 뚫린 방이 각양각색의 고서적과 원본 서적에 파묻혀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영국의 다른 오래된 서점들과 달리 데이비드서점은 더 전문적이다. 많은 헌책방들은 고서를 연대와 서명 등 주제별로만 분류하는데, 데이비드서점은 전문적으로 원본, 영인본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학과 분류에서도 데이비드 책방은 완전무결하고 다른 책방에서는 보기 드문 극지학(极地学)’ 관련 서적이라는 알림판도 높이 걸려 있어 성의 남쪽에 위치한 케임브리지 극지박물관과 맞물려 오래된 잉글랜드 고성의 세계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우리가 가게에 들어갔을 때 타 지역에서 온 한 영국 고객이 카운터 앞에서 점원과 서점이 전자상거래를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격렬하게 논의하고 있었다. 점원은 어쨌든 우리 서점의 취지는 인터넷과는 가급적 연결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책을 사려면 서점에 와서 놀라움을 발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점에 들어가 둘러보다 보면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는 서점의 저력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간결한 나무책자에는 15세기에 만들어진 필사본이 놓여 있는데 페이지당 4,500파운드에 판매하고 있다. 케임브리지대 박사논문 원고 한 뭉치가 책꽂이 맨 아래 층에 놓여 있으며 각 권마다 저자의 서명이 붙어 있는데 많은 저자들이 세계적인 학자로 성장하였다. 동행한 지인은 아까는 손에 잡히는 대로 선반에 있던 책 몇 권을 펼쳐봤는데 각 권마다 서명이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케임브리지에서 데이비드서점의 위상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높다. 케임브리지대 도서관 통계에 따르면, 현재 도서관 안에는 데이비드서점에서 구입한 천여 권의 고서들이 있다. 100년 전 크리스천 칼리지에서 교편을 잡았던 교육학자인 윌리엄 로즈는 구스타프 데이비드는 케임브리지대와 불가분의 일부분이며 마치 킹스 칼리지 예배당과 같다고 쓴 적이 있다. 이곳은 케임브리지대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이다.

데이비드서점은 백여 년 동안 케임브리지서점의 축소판을 보여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서점들은 도심 속에 숨어 있으며 또 다른 케임브리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은 킹스 칼리지처럼 웅장하고 정교한 예배당이 없고 풍경 하나하나가 평범해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독특한 모습을 갖췄다. 그러나 이들 서점들도 인터넷의 충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3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데이비드서점의 주인은 본인이 막 서점을 인계 받았던 시절 주변에 20여 개의 독립 서점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지금은 서점들이 많이 사라졌다. 100년 역사의 갤러웨이 포터 서점은 2010년에 문을 닫았다. 트리니티대학교 맞은편에 위치한 1879년에 세워진 더블유 헤퍼 앤 썬즈서점도 옥스퍼드의 한 체인서점 그룹에게 인수됐다.

이 글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샤오쉰메이(邵洵美)에서 진야오지(金耀基)에 이르기까지 케임브리지를 거쳐간 많은 중국 지식인들이 케임브리지 서점가의 성황을 글에 담아왔다. 그들은 케임브리지에는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 너무 많지만 그 중에서 아직까지도 가장 그리운 곳은 거리 곳곳에 흩어져 있는 책의 향기라고 소개했다. 킹스 칼리지 주변의 ‘400, 500야드 안구역 내에만도 20여 곳의 고서 전문 서점이 있었으며 더블유 헤퍼 앤 썬즈서점은 시내에 6, 7개 지점을 열고 매달 대형 도서전을 열고 있다. ‘골목도, 거리도 없는서점가의 풍경은 중국에서 온 작가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케임브리지는 책의 도시였다!

그러나 31번가에서 킹스 칼리지 서점까지 가는 거리에 있던 서점 20여 곳의 모습은 사라졌고, 겨우 살아남은 더블유 헤퍼 앤 썬즈서점도 일반 서점 체인으로 전락했다. 데이비드서점도 근래에 와서 케임브리지대 도서관 공급업자의 지위를 잃었다. 이외에도 런던과 영국의 기타 유명 대학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좌익서점들도 자취를 감췄다. 진야오지의 필치로 다뤄졌던 문화적인 서점가의 분위기는 이미 사라졌다.

만약 사오쉰메이가 오늘까지 살아 있었더라면 그는 케임브리지 외곽의 한 창고에서 약간의 위안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온라인 독립서점인 푸에라벨서점은 고서 애호가들에게 전통서점의 책향기와 즐거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독자들이 오래된 책의 페이지 속으로 들어갔을 때 이 책과 소장 출처가 같은 다른 서적의 자료를 볼 수 있다. 이는 독자들에게 헌책방에서 책 분류가 안 돼 있지만 뒤지다 보면 늘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 있었던 상황과 같은 경이로움을 선사해주고 있다.

이 온라인 서점에서 보물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1894년 런던에서 출간된 중일 군함도책을 발견했으며 이와 함께 20세기 초 재영 번역가였던 추다가오(初大告)의 대표작이며 케임브리지대가 1937년에 펴낸 중화좬츠(中华隽词)’를 저렴한 값에 구매했다. 이 온라인 서점은 또한 자취를 감춘 옛 출판업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출판사 표지 박물관을 만들었다.

그러나 블루라벨 서점도 서점 소개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자선단체로 자처해 아주 저렴한 값에 책을 파는 과정에서 중고 도서시장을 붕괴시킨 거대 서적상들과 경쟁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한때 케임브리지대의 한 학자는 구스타프 데이비드를 두고 케임브리지대 출신들에게 데이비드보다 더 깊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진정으로 학문에 뜻을 두고 사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 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분명 이 말은 은밀하게 감춰져 있었지만 위대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케임브리지 서점가에도 적용되었을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이 서점들이 세상에 주는 특별한 의미는 신흥 체인서점과 나날이 확장되고 있는 대학 도서관들이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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