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엄정자 평론가

-2019년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전일화부동산협회컵 글짓기 공모 수상작에 관해서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에서 주최한 2019년 전일화부동산협회컵 글짓기 공모가 끝났다. 중국, 한국, 일본, 홍콩에서 보내온 총 30편의 응모작 중에서 6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당신의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를 공모 테마로 잡았기 때문에 디아스포라로서 살아가야 하는 조선족의 생활 양상이 이모저모로 잘 그려진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수상자들의 생활지반이 중국 한국 일본 이렇게 3개 나라로 나뉘어 있는 만큼 이야기도 3개 나라에서 겪은 색다른 이야기들로 엮어 지었기에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볼거리도 많다.

류재순, 재한동포문인협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중국작가협회 회원, 중단편소설집 출판, "도라지" 해외 동포문학상, 설원 문학상 소설대상 등 다수 수상

우선 한국의 응모작인 류재순의 나의 첫 김밥 말이를 보면 코리안드림 초기 조선족이 어떻게 한국에 발을 붙이게 되는가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몇십 년간 중한관계가 단절된 비운의 역사를 겪은 중국 조선족들은 그동안 한국문화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모르고 살았었다.

그 때문에 30년 전 중국 조선족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한국문화를 접했을 때 많은 사람이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50년간의 단절은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화와 조선족문화 사이에 큰 격차를 조성하였다. 그 격차를 작자는 김밥 말이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김밥은 한국의 현대 서민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요리로서 한류가 전 세계에 널리 퍼진 지금은 사람들이 제일 쉽게 떠올리는 이름이다.

류재순은 한국에 처음 간 조선족이 한국의 보편적인 음식인 김밥앞에서 겪는 당황함과 망설임을 통해서 변화된 한국문화와 조선족문화의 충돌을 보여주었다.

한국에 도착한 첫날 첫 아르바이트에서 세상에서 제일 간단한 요리라고 하는 김밥을 말지 못해서 한국 아줌마에게 괄시를 받는 장면은 이런 문화충돌을 생동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 한 장을 앞에 놓고 밥 고루 펴기가 그렇게 힘들었고 여섯 가지 재료를 하나하나 집어오는데도 한참, 두 손으로 공손히 그것을 김 속에 말아 넣는데도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진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속이 바질바질 타고 있는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우둔한 여자란 것을 심심이 느꼈으며 줄 서 있는 손님들을 바라보는 내 이마에선 땀이 방울방울 돋아났다.

아줌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김밥도 쌀 줄 몰라요?”

같이 일하는 아줌마가 버럭 화를 냈다. 하긴 김밥 하면 한국의 대표적인 식사대용으로 집집마다 싸는 가장 보편적인 초 간단 레시피니 한국 아줌마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나는 중국에서 직장의 어떤 일도 다 이것보다 훌륭히 해 재꼈던 일이 떠올랐다. 사람은 이렇게 바보가 되는구나

 

중국에서는 문화인으로 작가로 선생님이라 불리며 살던 작자가 콧구멍만한 김밥가게에서 김밥 마는 아줌마에게 질책당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바로 중국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겪어야 했고 이겨 내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런 한국 아줌마와 상반되는 인물이 사장 아가씨이다.

 

사장 아가씨는 잠깐 멈춰 있는 듯하더니 그 바쁜 와중에도 내 손을 잡고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터지지 않게 썰어내려면 김밥을 적절하게 잡고 김밥 바로 위의 약간 뒤쪽으로부터 시작해 칼을 내리면서 몸 쪽으로 당겨 온다는 느낌으로 썰어보라 하였다.

그가 이렇게 요령을 알려주자 굳었던 내 손이 풀리기 시작하며 인지도가 따라가는 듯했다.

 

류재순은 이런 사장 아가씨의 모습을 통해서 조선족을 배척하려고만 하지 않고 조선족의 처지를 이해하려 하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한국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이를 통해서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의 소통의 여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사장 아가씨가 임금을 사양하는 그에게 5만 원을 쥐여주고 일자리까지 소개해 주는 것을 통해서 대립보다는 소통을 통해서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가 양호하게 생존할 수 있는 길임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에 작자 자신이 이제는 김밥 말이 스타’”가 되었다는 것을 통해서 조선족이 한국사회에 적응되어 안정된 생활을 해가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김밥이라는 이 평범하면서도 대표성이 있는 사물을 통해서 코리안드림 초기 한국문화와 조선족문화의 충돌 및 그 해결법을 보여주었다는데 이 작품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리연춘, 흑룡강성 치치하얼시 조선족학교 교사,제1회 중국조선족중소학교 우리글 사랑 교원수기 은상,

중국에서 보내온 리연춘의 응모작품 야금야금 선입견은 조선족과 한족의 문화적인 충돌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비교적 문명한 민족에 속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조선족은 늘 긍지를 가지고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이 사회적으로 일종 타민족을 배타하는 민족지상주의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현실을 극대화하는 편견을 만들어내고 있다.

작자는 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하는 얼굴이 떡판 같은한족 아줌마에게서 다 손질한 것이라고 해서 산 생선이 집에 와서 보니 손질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한 사실을 쓰고 있다. “비늘은 제거했는데 물고기 배를 가르지 않은 것이다. 자세히 보았더니 머리를 비틀어 떼면서 딸려 나오는 내장을 뽑았을 뿐이었다. 부레와 거무칙칙한 막은 그대로 남아있다.” 눈가림으로 사람을 속이는 행위였다.

또 한가지 사건은 허우대가 크고 거무칙칙한 옷차림의 한족 쌀 장사꾼에게서 쌀 백 근을 샀는데 다시 떠보니 33.9 킬로그램밖에 안 되었다는 것이다.

이 두 사건은 눈속임으로 이득을 보려는 일부 한족 사람들의 나쁜 속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두 사건이 아니더라도 는 한족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다.

 

길에 나서면 앞에서 걷는 나그네들이 퉤퉤 받는 더러운 가래부터 지뢰를 피하듯이 조심해야 하고 말 두 마디 끝마다 부모를 넣은 욕지거리까지, 더욱이 내가 식당에 가기 싫은 이유는 떠나갈 듯이 떠드는 소리와 장소와 때도 가리지 않고 피워대는 담배 연기 때문에 집에 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청결을 해야 하니

 

이런 선입견은 알게 모르게 조선족들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는 편견이다. 이런 잣대로 타민족을 보니까 모든 것이 아니꼽고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태도나 행동 말속에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자는 아마 이런 타민족을 포용 못 하는 잠재적인 의식이 언젠가는 두 민족 불화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면 이런 편견을 깨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작자는 상대방의 優點(우점)을 보아야 한다는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남편의 친구가 대부분 한족이라 연말에 가지게 된 부부동반 모임은 의 이런 선입견을 깨뜨려 준다.

남편 친구들은 음식점 선택할 때도 를 위해서 깔끔한 식당을 골랐고 남자들은 그들 습관대로 자기 와이프 앞으로 채소를 집어주면서 나한테까지도 공용젓가락을 사용하며 배려를 해주었다.” “그중의 한 남편은 일 년 동안 고생한 부인들께 연말 頌辭(송사)와 함께 탐스러운 장미꽃을 한 송이씩 선물한 것이었다. 빨간 장미를 받은 여자들의 얼굴은 사과처럼 상기되어 한결 복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부인들의 공로를 한껏 춰서 치하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초적인 조선족 남성들과 달리 여성을 우선 위하는 그들의 모습은 의 편견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또한, 교사로서 조선족은 선량하고 예절 바르고 따뜻한 민족이라 흠모하며 자기 자식들을 조선족학교에 입학시키는 한족 가장들을 보면서 자기의 편협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작자는 어울려 사는 다문화사회에서 편견은 상대방에 대한 무시와 적대감만 불러일으킬 뿐이기에 이런 편견으로부터 생긴 선입관을 버리고 상대방의 좋은 점을 보려고 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때 우리 사회가 더 살기 좋은 사회로 되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겪은 일상으로부터 조선족의 심층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선입견의 위해성을 지적하고 다문화사회의 방향성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일본에서 나온 수상작품은 4편인데 재일조선족이 일본에서 겪는 이런저런 일들과 그들의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있다.

정진, 도쿄외국어대학교 졸업, 한국근대문학연구전공,
현재 日本東京都庁 중 한 일 통역,  羽田国際空港入国管理局 한 중 일 통역

혈혈단신으로 일본에 온 많은 조선족은 중국 땅에 두고 온 가족과의 관계가 하나의 심리적 상처로 되고 있다.

정진의 공개된 엄마와 딸의 메일에서는 5살 된 어린 딸을 두고 일본에 유학 온 엄마가 딸과의 감정교류를 위해서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생소한 나라 생소한 곳에서 아이를 키울 여력이 없어서 외가에 맡기고 온 엄마의 마음은 찢어지고 얼어버릴정도로 아프지만, 꿈을 위해서 보다 나은 인생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앞으로만 나아가야만 했다.”

엄마와 떨어진 외로움과 아픔에 엇나가는 딸애를 위해서 피아노를 사주고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으로 뚱뚱해진 딸애를 위해서 직접 학교운동장을 달리고 줄 뛰기를 하도록 지도하며 가끔은 따끔히 꾸짖기도 하는 엄마, 맛있는 요리와 케이크를 만들어주고 딸애 친구들까지 다정히 대해 주는 엄마, 비록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으나 최선을 다해서 딸을 사랑하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엄마께서는 우리와 같이 지내는 순간 속에 등을 보여준 적이 없었고 동네에 나가셔서 아줌마들과 수다 한번 떨지 않으셨으며 아무리 큰 명절 때에도 술을 마시지 않으셨고 마작 치는 모습 한번 보여준 적이 없어요. 틈틈이 짬을 내 요리책을 읽으시고 컴퓨터를 검색해 우리의 영양식을 연구하셨고 저와 민이의 노는 생활토막 같은 모습을 무비에 담아주셔서 우리들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되었어요.

 

이같이 작자는 어쩔 수 없는 이별을 겪었지만 꿈도 가족도 다 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는 재일조선족 엄마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다.

거기에다 부모를 이국땅에 보내고 모정에 대한 갈망으로 방황하고 아프면서도 자기를 잃지 않고 노력하는 조선족어린이들의 갈등 아픔 분투도 보여주면서 재일조선족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사색을 불러주고 있다.

​김미란, 도문시 제1고급중학교 전 교사, 일본행정사무소에 근무, 현재 일본 주식회사 돈키호테에 근무

김미란의 아버지 생각 역시 이런 가족애를 그린 작품이다. 자식을 일본에 보낸 부모의 마음은 늘 걱정과 그리움으로,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뭐 한 가지라도 더 해주고 싶은 갈망으로 차고 넘친다. 그런데 자식은 받는데 습관이 되어서 그런 부모의 희생과 사랑을 응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무심해지기 쉽다.

이 글의 도 마찬가지이다. 해산한 를 위해서 바다를 건너온 부모님, 아버지는 그립던 자식을 위해서 장을 봐주고 맛있는 것을 사다 준다. 우유병 소독 용기 하나도 좋은 것을 사기 위해서 다섯 번은 사고 물리고를 반복하였다.”라고 한다. 일어를 몰라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떻게 설명하고 바꾸었는지 상상도 안 되지만 딸에 대한 사랑이 그 일을 해내게 하였다.

하지만 일본문화에 젖은 딸은 오랜만에 만나는 아버지가 이래저래 눈에 거슬린다. 딸을 걱정해서 무거운 짐을 메고 온 아버지를 보며 딸은 도리어 짜증을 느끼고 딸이 사준 자라 피를 마신 것이 좋아서 효과를 자랑하는 아버지에게 딸은 일본에서는 전차 안에서 소리 낮추어 말해야 합니다.”라고 타박을 준다.

오랜 시간의 이별로 인해 변화된 라이프스타일의 충돌이 표현되고 있다. 이 역시 일본에 오래 산 재일조선족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 겪어보았을 심리적 충돌일 것이다.

는 아이를 봐주는 부모님에게 미안하여 퇴근길에 장을 봐오기로 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딸이 힘들까 또 버스정류장까지 마중 와서 짐을 들어 준다.

그런 아버지가 간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는 후회를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했을때도 아버지께 속옷 한 벌 사드린 적 없고 남편 따라 일본에 올 때도 아무 부끄러움 없이 큰 애를 아버지 어머니께 맡겼었고외국에서 산다는 구실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구경 시킨다고 일본에 모셔온 것도 오직 내가 필요해서였다.

 

가슴 아픈 후회에 는 대성통곡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드리기 위해서 중국으로 떠난다.

어릴 때 부모를 떠나서 유학 와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그런데 육아 환경이 여의치 못해서 부모님을 불러들여 아이를 보게 하고 가사를 전담하게 하는 재일조선족들이 많다. 그런데 자기를 키워주었고 지금은 또 손자 손녀들을 키워야 하는 부모님들의 부담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들의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내일에 바빠 정신없는 사이 부모는 늙어가고 지쳐가고, 내가 뒤늦게 알아차릴 때는 이미 부모는 저 세상으로 돌아가셨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알고 있는 陳腐(진부)한 주제이다. 오죽하면 몇백 년 전의 鄭澈(정철)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平生(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란 시조를 써서 후생을 儆戒(경계) 하였겠는가.

하지만 이 주제가 일본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재일조선족라는 카데코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일 때 이는 사회적 문제가 되며 사회적 관심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된다. 부모 자식인데 3, 길어야 반년밖에 있을 수 없는 이런 환경이 많은 번거로움과 아픔을 만들어내고 있다. 재일조선족이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문제는 계속 안고 가야 할 아픔이겠지만 그래도 정책 제도상 좀 더 자유가 주어진다면 이런 아픔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련화, 麗澤大学 日本語学科를 졸업、麗澤大学院 日本語教育課 比較文明文化専攻을 졸업, 坂本空調(株)에 근무, 문화교류협회 부사무국장,

재일조선족 중에는 일본 사람과 결혼 한 경우도 많다. 조련화의 작은 소망에서 역시 일본에 유학 왔다가 늘 친구처럼 믿고 의지해오던 바윗돌 같은 일본 사나이와 결혼하였다. 국제결혼에서 문화의 차이 라이프스타일의 차이는 가정불화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다행히 의 남편은 결혼 전에 근 10년간 곁을 지켜왔고 그래서인지 를 잘 이해해 주고 멘토가 되어준다.

그런 남편의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재일조선족노래자랑에도 나갔고 올해는 세계조선족문화절 및 동경포럼에서 무대에 오르게 된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든든한 일본 사나이가 서 있다.

국제결혼은 재일조선족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현실적 문제이다. 다문화가정에서 어떻게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가는가 하는 문제는 재일조선족사회 앞에 제기된 과제이다. 그 과제를 풀어가는 한 측면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조련화의 작은 소망은 재일조선족의 소망이다.

고향련, 日本中央大学 商学部를 졸업, 経営学科 中央大学大学院 商学研究科를 졸업, 현재 電源装置メーカー 半導体営業業務(日本国内、海外)를 담당

혈혈단신 무일푼으로 일본에 온 조선족 유학생들, 그들에게 있어서 아르바이트는 생존의 수단이다. 아르바이트하지 않으면 공부를 할 수 없고 먹고 살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아르바이트가 단지 생존의 수단으로만 남는다면 그것은 참 삭막한 일이다.

고향련의 나의 일본 유학 생활수기9년 동안의 유학 생활 중에서 겪었던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음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가정부 일이었는데 주인에게 도둑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남에게 고용 당하는 신세라 잘잘못을 따지며 코를 세울 수도 없었다. 억울함을 당했다고 해서 홧김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도 없었다. 나에겐 일본에서의 일 체험이 필요했고 또 일정한 일어기초를 닦을 때까지는 당분간 집세라도 낼 돈이 필요했다. 처음으로 용케 참았다.”

거기에다 주인 여자는 2달 뒤 일을 그만둘 때 10시간분의 임금 7천 엔을 적게 주려고 하였다.

이 첫 번째 아르바이트에서 는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본 사회 역시 돈에 흐린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두 번째는 친구의 소개로 닭꼬치 가게에서 하게 된 아르바이트이다. 첫날부터 선배 종업원에게는 자기가 알려준 매뉴얼대로 하지 않았다고 해서 눈 밖에 나고 말았고 점장은 점장대로 자기가 시킨 대로 일하라고 하면서 트집을 잡았다. 결국, 선배 종업원과 점장 사이에서 만 치이게 된다. 그래도 참고서 하려고 했으나 일주일 만에 해고당한다. 그것도 원래 계약한 850엔보다 백 엔 적게 750엔으로 계산한 임금을 받았지만 어디에 호소할 곳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같이 하우스 셰어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방을 비우는 바람에 있을 곳이 없게 되었다. 남은 돈이라야 가정부 아르바이트와 닭꼬치 가게에서 일주일간 일해 받은 돈밖에 없는데 그 돈으로 새집을 구할 수도 없는 최악의 상태에서 그에게 구원의 손을 뻗어준 사람은 같은 유학생인 란이었다. 란이 덕분에 그녀가 사는 셰어 하우스에 들어가 같이 살게 되었고 아르바이트도 소개받아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을 통하여 벼랑끝에 서면 길이 열린다.”는 것을, “다만 그 길이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나는 깨달았다.”

첫 여름방학에 는 라면 가게에서 한 달 동안 단기 아르바이트를 한다. 여름방학에 돈을 벌어 놓아야 해서 낮에는 라면 가게에서 저녁에는 닭꼬치 가게에서 일했다. 처음 두 번과 다르게 라면 가게의 주인 부부와 종업원은 친절했다. ‘가 너무 열심히 하면 천천히 하라고 하고 컵이랑 접시를 깨도 화를 내지 않고 도리어 상하지 않았는지 물어왔다.

이 아르바이트는 로 하여금 일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게 하였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나는 처음으로 일본이 좋아졌다. 무심코 건네는 따스한 말 한마디가 받는 사람한테는 크나큰 힘이 된다는것을 알았다. 나도 꼭 이분들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인생을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또다시 시련을 주었다. 고마운 한 일본 가족의 소개로 고급요리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중국요리라고 하지만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메뉴들이라 외우기도 바쁘고 신참이라 요령도 없어서 일도 잘못하니 매니저에게 굴림을 당하였다. 힘든 일을 시키고 쥐와 부딪쳐 걸상에서 떨어지게 하고도 오히려 웃음거리로 삼았다.

그때 는 먼저 자기에게서 원인을 찾고 자기를 향상하는 것으로써 주위 사람들의 호감을 사게 되었고 매니저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 일을 통해서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해야 그만큼 자신한테 되돌아 온다는 것도 알았다. 어떠한 곤란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한테서부터 원인을 찾고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라고 작자는 쓰고 있다.

이 글이 좋은 점은 단지 아르바이트의 힘듬을 쓰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재일조선족 중에 아르바이트를 안 해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향련은 아르바이트를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고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성장시키는 수련이라고 여긴 것 같다.

그가 글에서 쓰다시피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실생활에서의 일어 공부와 스킬 등 직접적인 배움 외에도 여러 사람과 만나고 여러 일을 겪으며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대인관계와 무슨 일이든지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대처법을 배웠으며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 많은 배움과 경험들이 모두 모여서 나의 자아 성장의 튼튼한 발판이 되었던 것 같다.”

이런 현명한 의식을 가졌기 때문에 무사히 대학원 공부까지 마치고 당당한 커리우먼으로 설 수 있었다.

고향련의 수기는 일본의 조선족 유학생들이 어떻게 아르바이트란 이 시련을 거쳐 경쟁이 심한 일본 사회에 떳떳이 나설 수 있는 사회인으로 성장하였는가를 보여준 성장기이다.

작자가 매번의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어떤 점에 성장하였는가를 밝혀줌으로써 글이 설득력 있고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었다. 상을 받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이같이 6편의 수상작을 분석하면서 이번의 글짓기 응모는 조선족의 생활 실태를 다시 한번 조명하는 작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 어디에 가서도 이주민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조선족, 그들이 안고 있는 절실한 문제들,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행적, 그들의 현재 위치와 미래, 이러한 문제들이 이번 작품들을 통해서 제기되고 나름의 해결책과 방향이 제시되었다.

문학적으로는 아직 미숙한 글들이 있지만, 현실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체험기라는 점에서, 당신의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는 테마에 맞춰서 볼 때 이번 응모는 수확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희망컨대 많은 사람이 읽고 감명 받았으면 한다.

저자 엄정자 : 수필가. 평론가. 재한동포문인협회 해외이사, 본지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