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가인

[서울=동북아신문] 사인 방하면 사람들은 50여 년 전 중국을 떠들썩 하게 했던 강청 (江青) 요 문원 (姚文元) 장춘 교 (张春桥) 왕홍문(王洪文)을 머리에 떠올릴 것이다. 그때 삼남 일녀는 중국을 반봉건 반 식민지로 몰아갔었다.

내가 오늘 말하려는 사인방은 우에 사인 방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명단(여) 오은령(여) 류미란 (여) 김남철(남). 일남 삼녀는 80년대에 태어난 80후이다.

나는 명단의 엄마다. 문화 대혁명 때문에 고문당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에 비하면 자본가의 집안이라는 딱지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었지만 시내 호구다 보니 다행히 공장에 들어가 일은 할 수 있은 게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삼대가 빈농인 명 씨 집안에 시집을 갔다 84년에 나은 딸이 명단이다. 그때는 출신을 따지는 시기여서 나는 밑바닥 일도 시켜주면 감사하다고 꾸벅꾸벅 절을 하군 했다.

미래가 불 투명하였지만 딸만큼은 공부를 마음껏 시키려고 생각했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까만 눈동자는 가진 단이는 너무 예뻤다. 그때는 어린이들이 갈 곳도 별로 없었고 외식할 데는 더욱 적었다. 소학교에 들어가기 전 일요일에 데리고 간 곳은 기껏해야 미국 치킨집(kfc)이 전부였다. 너무 비싸서 한 달에 한 번이나 갔던가 싶다. 단이가 맛있게 먹고 있을 때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어쩌면 이렇게 예쁠 수가 있냐고 쳐다 보군했다. 단이는 아직 부끄러움을 모를 때라 그 큰 눈을 깜빡거리며 사람들을 올려다 보군했다.

그런 단이가 어느새 소학교에 입학이다. 오은영 유미란 김남철은 같은 날 같은 반에 운명처럼 만났다. 후에 알고 보니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몇 시간 차이 없이 같은 병원에서 태어났다. 너무 신기 했다.
그때 동북의 강철 도시에는 조선족이 많이 살았다. 소학교가 세 개 있었는데 집이 기차 역전 쪽이다 보니 역전 조선족 소학교에 입학하게 되였다.
일 년에 몇 번씩 학부형 회의에는 어김없이 참가하였다 부모들이 무엇을 하는지 자연히 알게 되였다.
내가 제일 가난했다. 한 해 한 해가 지나 갈수록 학부형 회의에 가면 나는 단이 때문에 어깨가 으쓱 올라 가군 하였다.

단이는 공부를 특별히 잘했다. 그런데다 사람들을 주위에 모이게 하는 능력도 있었다. 2학년 때부터 6학년까지 그냥 반장을 하였다. 그리고 한 학교에서 한 명만 뽑는 시 3호 학생을 몇 년간 유지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키가 유독 작았다. 돈이 원쑤여서 키 크는 운동도 하번 시키지 못하였다.

김남철도 키가 작았고 4학년까지 코물을 질질 흘리며 다녔다. 그러다 보니 건실한 남자아이들한테서 놀림을 당하기가 일쑤였다. 하루는 다른 아이한테 얻어맞고 구석에서 울고 있는 남철이를 본 단이는 저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아이를 찾아가 도리를 따졌다고 한다. 선생님들은 똑똑한 단이를 몹시 귀여워했다.

넷은 단짝이 돼요 자기들한테 부딪친 일들을 잘도 풀어 나갔다. 중학교 6년도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하였다. 오은령은 피아노를 엄청 잘 쳤다. 유미란은 갸름한 얼굴에 몸매까지 쭉 빠진 데다 고전 무용을 기가 막히게 잘 추었다. 그러나 둘 다 예술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대학교는 셋은 211대학에 유미란은 985대학에 갔다. 명단이만 상해에 있는 대학에 갔고 셋은 길림 북경 항주에 있는 대학에 갔다.오은영은 5년, 륙 미란은 6년. 김남철은 7년 만에 학업을 마치고 운명처럼 모두 상해에로 왔다. 

그것도 루 자주 이에 모였다. 각자가 각기 다른 직업 다른 빌딩에서 일을 하지만, 금요일 퇴근 후에는 한 번씩 모여 맥주잔을 부딪치며 웨친다. 사인방은 영원하라고......
변호사가 된 김남철은 유명한 로펌에서 일한다. 대학에서 훌쩍 자란 김남철은 준수한 청년이 되였다. 셋은 결혼해서 모두 아이가 있는데 김남철만 결혼하지 않았다. 외국에 자주 나가고, 나가면 어떤 때는 몇 달이 걸릴 적도 있다고 한다. 연애하려고 해도 시간이 없다고 한다. 셋은 만나면 핑계라고 놀린다.

단이는 둘째를 순산했다. 첫째를 낳고 둘째를 낳겠다고 떠들썩하던 오은령은 남편이 동의하지 않아 설복 중이고 유미란은 다섯 달째 임신 중이다.
나는 그들이 나와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즐겁게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이따금 상념에 빠지군 한다.

만약 내가 그들처럼 이 세상에 늦게 왔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람은 태어나서 한 번밖에 인생을 경험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평온하게 인생을 보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파라만장한 인생을 보낸다.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 낸다. 문화 대혁명이 있었기에 나는 딱지를 떼려고 억지로 빈농한테 시집을 갔다.
어느 노래에선가 이래도 한 평생 저래도 한평생이란 구절이 있다. 나는 저래도 한 평생을 살았다.

역사의 흐름은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살던가 상관없이 큰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바다로 향한다.

서가인 /서울 상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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