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숙 약력
중국 심양 출생. 길림사범대학 철학과 졸업. 길림시조선족중학교 전 교사.
월간「문학세계」등단. 대한민국 통일예술제 해외작가 수상, 제 12회 세계문학상 해외문학 시부문 대상, 세계문인협회 일본지회장.
(사)세계문인협회 정회원. 시집 「아름다운 착각」 「빛이 오는 방식」 「날개는 꿈이 아니다」 등 출간.

일본 김화숙 시인

 

아름다운 착각


꽃은 무심무욕하다고
나는 얼마나 먼
착각 속에 살았는가
바람 한 점 없는데
카메라만 갖다 대도
꽃은 얼굴을 고치느라
수선을 떤다
나의 시선에 당황하고
그럼에도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선택


오십을 넘긴 나이에
난생처음 모자를 샀다
옷장이
새 식구가 들어오고 나서
시끄러워졌다
죽은 듯 축 처져
잠만 자던 옷가지들
모자한테 선택받고 싶어선지
생기가 넘쳐났다
지난밤 잠결에는
신발장 구석에 처박혀있던
신발들이 또깍또깍
걸어 나오기도 했다
비록 작은 도전이긴 해도
삶의 희망을
초대할 수 있음을 알았다


빛이 오는 방식


파도가 일어서는
동해 해수욕장에서
일출을 건져 올리다가
난 보았다
정제된 해의 언어들이
노를 저으며 내게로
오고 있음을...
여태 알고 있던 광속은
어쩌면 공기와 같이
그저 우주 공간을
채우는 것이었을 뿐
진정한 빛은
내가 바라는 속도로
일사불란 노를 저으며
기꺼이 다가와
마음이 모이는 곳에
삶의 길을 열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


시집을 읽다 가끔
밑줄을 긋는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
약속인 것이다
시집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불현듯
밑줄의 약속이 기억나
가던 길 주춤
멈추기도 한다
밑줄이 쳐진 시처럼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속보


무궁화가 피었네
허공을 찌르는 도도함과
새색시 한복 같은 어여쁨에
하늘은 가슴을 열어
배경이 되어주네
이국에서도 꿋꿋하게
넋을 품고 피어나는 그대처럼
나 또한
민족의 얼 잃지 않고
조국을 사랑하고 노래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하네
울컥하는 마음 다독이며
그대를 사진기에 담아
고국의 친구들께 전하네
속보입니다
무궁화가 피었습니다


엄마의 새길


우리집 바람벽은
엄마의 사진 전시회 공간이다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
자식들 어릴 때 사진
생일 때 찾아준 친구들 사진
골다공증으로
바깥세상과 멀어지시니
벽에 사진을 붙여 길을 내신다
그 길로
감자알 같던 자식들이
깔깔거리며 달려오고
웃음꽃이 별무리 되어
내려앉기라도 하는지
한참을
그 길 다녀오시면
엄마는 박꽃이 되신다


날개는 꿈이 아니다


다리를 가졌으니
걷는 꿈을 꾸면 쉬웠을 텐데
날개도 없으면서
줄곧 나는 꿈만 꾸었다
날개를 가진 자들에게
나는 것은 꿈이 아니고
생존을 위한 몸짓이고
다만 화려하게 보일 뿐이다
제대로 걸음마하는 법부터
다시 배워볼 참이다
대리석 같은 다리에 의지해
던져놓은 그물을 건져 올리듯
걸음이 담아내는 풍경을
시로 그려가면서
더 이상 날개가 꿈이 아닌
삶의 완성을 엿본다


고독의 집합


옆집 소음에서 벗어나려면
방이 더 크고
벽이 더 두꺼운 집으로
이사를 가면 된다
세상 소음에서 벗어나려면
자신 안에 넓고 깊은 고독을
들여앉히면 된다
고독의 공간이 커지면서
소음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는 없다
홀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예술하는 사람들의 매력은
작품 이전에 그들이 품고 있는
고독의 집합일 것이다

 

디아스포라의 삶


나무의 뿌리는
땅속 흙을 먹고 살고
비의 주소는 하늘이지만
그 뿌리 또한 땅에 있다
나는 나의 뿌리를
어디에 내려놓을지 몰라
늘 가지고 다닌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어디를 가든 이방인이기에
뿌리 내릴 곳을 찾아
방황하며 산다
나의 뿌리는
꼬리인양 잘 숨겨져
안으로 길을 낸다


목말


화살처럼 등 뒤에
꽂혀있는 눈길이 있다
길다면 긴 세월
그 눈길로부터
자유로워진 적 없다
삶이 벽에 부딪쳐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그 눈길은 나를
일으켜 세워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이제는 그 시선이
나의 등을 타고 올라
더 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등을 더 굽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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