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철희

본래는 노동절 휴무일 보내고 응당 홀가분한 기분이야 될 텐데 마음 속 한 구석은 마냥 무겁기만 하였다. 외롭고 우울한 마음을 달래느라 혼자서 언덕위로 멍하니 걷다가 다시 강둑을 따라 걸었다. 강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마구 흩날렸고 내 사색을 헝클어 놓았다. 황량한 길위에는 쓰러진 나무가지들과 여기저기 돌들로 가득 하였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먼 곳까지 왔다. 강 옆에는 잡초들이 무성하고 마른 나뭇잎들이 군데군데 늘려 있었고 가시나무들이 얼기설기 엉켜 있었다.

문득 이름 모를 못다 핀 한송이 연분홍색 꽃 앞에 가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름답지만 앙상하고 초라한 꽃이었다. 긴긴 어두운 밤과 외로움을 어떻게 혼자 달래며 지내왔을까? 왜 이런 척박한 곳에 피여 났을까? 못다 핀 꽃 한송이 따뜻한 사랑 하나 없이 사람들의 중시도 받지 못한 채 피였다가 가을이 되면 언젠가 하염없이 지는 허무한 인생이겠지. 나는 침묵속에서 꽃의 마음을 비추었다. 세상의 모든 꽃 하나하나에 그 잎새를 지켜주는 천사들이 있다고 하는데 너는 대체 누가 지켜주니? 워낙 척박한 곳이다 보니 나비와 벌 조차 찾아오지 않았다. 거부할수 없이 태어나고 어쩔 수 없이 홀로 자라는 꽃의 마음은 정녕 누가 이해해 주랴? 긴긴날 보고 싶어도 못 보고 불러도 대답이 없는 막무가내 하는 심정은 얼마나 애타고 시렸을까? 그 뭔가를 찾고 기다리는 어설픈 미련과 기대감은 또한 어린 마음에 얼마나 많은 실망과 상처를 안겨주었을까?

박철희, 83년 흑룡강성 출생. 장춘 공업대학 졸업, 재무 전공. 현재 상해 LG화학에서 근무. 수필 등 발표 다수.

문득 생각에서 깨어나자 한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나간 6년, 내 마음은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거슬러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으러 떠나갔다.

나는 6년만에 고향 땅을 밟았다. 내 조카 희진이는 올해 12살이고 할아버지와 단 둘이서 널찍한 새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희진이는 그동안 쑥대처럼 키가 부쩍 커서 내 어깨 너머로 왔고 골격은 굵어졌다. 옷은 꾀죄죄하고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졌으며 피부는 까마반지르하게 탔다. 내가 희진이 손을 잡고 끌어안았을 때 익숙하지 않는 듯이 조심스레 내한테 기대였다. 6년만의 상봉, 이제는 손도 커서 다 감싸지 못하고 체구도 커서 안아도 어릴 때 느낌이 아니었다.

나는 희진이와 며칠 같이 있었다. 어린이로서 한창 부모들한테 응석을 부릴 나이인데 활기는 없어졌고 말수도 적어졌으며 얼굴에는 미소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구석을 찾아 숨소리를 죽여가며 쪼크리고 앉았고 얼굴에는 두려운 빛이 흐르고 눈길은 당돌하였다. 이 모든 것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쓰려 났고 설음이 북받쳐 올랐다. 내가 알고 있던 희진이는 원래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던 해 우리 희진이는 태어났다. 희진이가 태어나던 해 아빠는 외국으로 떠나갔고 엄마도 희진이 3살 되던 해에 아빠 찾으러 외국으로 떠나갔지만 결국은 이혼하고 말았다. 희진이가 어릴 때 벌벌 기고 또박또박 말을 익힐 때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들이 곁에서 돌보아주고 이뻐해 주었다. 부모 사랑을 못 받아서 나는 희진이를 각별히 아끼고 사랑해주었다. 매번 방학때면 집에 돌아와서 맛나는 음식들을 잔뜩 사서 희진이를 주었고 자그마한 몸을 꼭 껴안고 내 다리에 앉혀서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희진이도 주변 사람들 사랑을 받고 건강하고 예쁘게 무럭무럭 잘 자랐다. 재잘재잘 말도 많았고 노래도 잘 불렀다. 한복을 입고 익살스런 표정으로 즐겁게 춤 추고 뛰놀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은 마치 동화속에 행복한 공주를 방불케 하였다. 비록 부모들이 곁에 없었지만 희진이는 부족함을 몰랐고 미소는 그토록 아름다웠다.

희진이가 6살 되던 해에 이별이란 악몽이 바야흐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결정 끝에 희진이를 선생님네 집에 맡기고 외국으로 떠나갔다. 그때 난 외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헤어지는 장면을 보지 못했지만 희진이가 안 떨어지려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이듬해 국경절 휴무일에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선생님네 집에 들려 희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몸은 많이 여위었고 눈빛에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 흘러 넘쳤다. 나랑 같이 있는 동안 희진이는 내 뒤를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밖에 잠간 나가도 떠나는 줄 알고 서럽게 울었다. 상봉은 짧았다. 휴무일이 끝나고 나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떠나가는 날 희진이가 좋아하는 간식들을 가득 사서 한 가방 꽉 채워주었다. 희진이는 작은 손으로 내 바지가락을 잡아당기며 “삼촌, 난 선생님네 집에 안 갈래, 삼촌하고 같이 있을래, 간식도 안 먹을래, 그러니까 떠나가지마. 흑흑흑…”하고 흐느껴 울었다. 나는 마음이 뭉클어져서 콧마루가 찡 해 났다.

희진이한테 있어서 사랑은 두려운 것이다.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다 떠나 가버리고 마음은 갈 곳도 기댈 곳도 없이 홀로 버려졌다. 나중에는 사랑을 의심하게 되였고 자신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아이라고 여겨 왔으며 또한 사랑에 대한 갈증과 두려움이 병존하는 모순된 심리가 형성됐다. 

나는 왜 어린아이 마음을 그렇게 몰랐을까? 그동안 뭐하고 있었던가?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았다. 나는 대도시에서 세속인들이 추구하는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6년이란 시간 동안 안깐 힘을 다 써왔고 어린 아이와의 자주 만나겠다는 약속을 뒤전으로 한 채 용돈과 선물로 사랑을 메웠다. 그 사이 나는 아주 소중한 걸 잃은 줄 모르고 살아왔고 희진이 마음속에는 고독의 뿌리가 그렇게 깊어질 줄은 더구나 몰랐다.

나는 다시 외롭게 핀 그 이름 모를 꽃을 보았다. 꽃잎 하나가 맥없이 떨어지자 한없이 가엾어 보였다. 꽃잎이 떨어지면 사랑도 사라지나? 하늘빛이 흐리고 짙은 구름이 몰려오며 저녁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와서 피부에 와 닿아 내 몸이 오싹 해 났다. 이제야 뒤늦게 후회를 한다. 지난 6년 바람처럼 흩어져간 세월, 내 마음은 깨지고 부서지고 조각이 났다.

희진아 미안하다. 삼촌이 널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랑의 방식이 틀렸던  것이었다. 사실 어린이들이 필요한 것은 돈도 선물도 아니라 자기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마음을 기댈 수 있게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삼촌이 자주 만나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내 마음은 울고 있다. 아파서 흐느끼고 있다. 그리워도 다시 돌아가려 해도 물결처럼 흘러가고 시간속에 잠겨 진 못다한 내 사랑은 가없는 설음에 잠긴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날지 선택을 못하지만 태어난 이상, 항상 아름다운 미래를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도리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사랑 받기를 원하고 있다. 사랑만이 사람을 건전하고 충실하게 만든다. 물질생활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정신생활은 날로 궁핍해지고 마음은 취약해지고 있다. 특히 어린이한테는 정신생활이 중요하다. 그 누구의 귀한 자식으로 태어나 다른 아이들처럼 사랑 받길 원한다.

아직은 한해의 시작인 봄이다. 꽃잎이 떨어졌지만 다시 보살펴주고 관심을 기울이면 새로운 꽃잎이 자랄 수 있을 것이다. 긴긴 어두운 날이 있으면 행복한 새날도 있을 것이다. 얼음처럼 시려 있는 우리 희진이 마음을 녹여주고 방황심과 불안감을 몰아주고 마음속에 새로운 사랑을 심어주리라. 언젠가 행복이 아름다운 무지개 마냥 마음속에 낄 날이 찾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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