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주청룡

피사에서의 유람을 마치고 오후 4시반이 되어 인류문명의 유산도시 산 지미냐노(圣吉米亚诺)로 향하였는데 갈지 (之)자로 높은 영을 톱아 오르고 또 갈지 (之) 자로 그 높은 영을 내려오는데 정말 손에 땀을 쥘 정도로 아슬아슬하였다. 그러다니78㎞의 길을 2시간 반이 걸려 7시에야 산지미냐노에 도착하였다.

산지미냐노는 이탈리아의 중서부에 있는 토스카나주(托斯卡纳州) 시에나(锡耶纳)현에 있는 천년되는 작은 도시인데 중세기에 번창했던 곳으로서 중세기 건축풍격이 농후한 작은 도시로서 해발 324 m, 면적은 138 km2 , 인구는 7,800명이다.

11세기에서 13세기 무렵, 산 지미냐노는 로마를 왕래하는 순례자들이 거치는 프란치제나 길의 중요한 연결지점으로 되여 농업 생산물, 주로는 건위제, 진정제, 향료, 염료 따위로 쓰이는 사프란(藏红花) 무역과 성지순례길로 번성했다고 한다. 이 도시에는 교황을 지지하는 아르딩헬리(Ardinghelli) 가문과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지지하는 살부치(Salvucci) 가문이 있었는데 이 두 가문이 이 도시를 지배하였으며 서로 경쟁하는 이 두 가문사이에는 분쟁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 귀족가문들은 그들의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약 72채의 고층 주택을 세웠는데 이 중 몇몇은 높이가 50m에 달했다고 한다. 중세 시대가 끝날 무렵 귀족들은 저마다 요새화 된 탑건물을 지어 70m가 넘는 72개의 탑을 세웠다고 한다. 하여 이 도시를 탑의 도시라고도 불리웠다고 한다. 이 높은 성곽을 짓는 경쟁은 마침내 의회가 팔라초 코무날레(지금의 산지미냐노의 시청)보다 높게 짓지 못하게 명을 내리면서 자제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14개 탑과 궁전, 교회 등 건물만 보존되어 있지만 봉건시대의 분위기와 형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또한 중세기 이탈리아 예술의 걸작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었다고 한다. 우리가 본 이 건물들은 다 8, 9백년전의 건물들이었는데 아직도 완전한 형태를 보전하고 있다는 것은 그때의 기술로 어쩌면 이렇게 견고하게 지었는가 하는 것을 우리 지방의 건물과 비교 할때 나로서는 이해를 할수 없었다.

밤에 본 중세기건물

 

밤에 보다니 이렇게 천년되는 옛도시의 야경은 구경할 수는 있었지만 전반 도시의 경치를 보지 못하는것이 유감이었다. 그래도 이튿날 뻐스를 타고 이 도시를 떠날 때에 전반 도시를 볼수 있어서 좀 유감을 풀수 있었다.

이튿날 이 도시를 떠나면서 본 산지마냐노

천공의 성(天空之城)치비타로 가다

13일 8시 반 우리는 산 지미냐노를 떠나 역시 이탈리아의 중서부 바뇨레조(巴尼奥雷焦)진에 있는 천공의 성(공중도시) 치비타(奇维塔)로 향해 떠났는데 178㎞의 길을 3시간 달려 11시 반에야 바뇨레조 진에 이르렀다.

천공의 성 치비타(Civita)는 이탈리아 라치오주(拉奇奥州) 비테를보현에 위치한 인구가 2,000여 명되는 작은 진인 바뇨레조진에서 동떨어져 있는 작은 산꼭대기에 자리잡은 고대의 작은 마을이다. 이 천공의 성은 로마로부터 120㎞ 떨어져 있는데 몇백년간 황페한 유령도시로 불리우다가 1986년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감독이 애니메이션 (그림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天空之城拉普达)〉를 찍을 때 이천공의 성으로부터 영감을 찾았다고 하여 이 작은 마을이 다시 사람들의 주의를 불러 잃으키면서 지금은 관광명소로 되였다고 한다.

공중도시(天空之城1)

이 마을은 사면이 깍아지르듯 한 산꼭대기의 응회암(화산이 터질 때 뿜어나온 재와 모래, 자갈과 같은 화산물들로 이루어진 암석)우에 집들이 촘촘히 들어 앉아 있었는데 지금 보존되어 있는 집들은 2~3층으로 되어 있었으며 대부분 중세기에 지은 집들이라고 한다.

이 마을과 바뇨레조 진과의 연계는70m 높이에 약 300 m길이의 다리로 되었는데 다리가 좁고 중량감당제한으로 하여 큰 차는 다릴수 없지만 승용차는 다니고 있었다. 우리가 다리로 이 공중도시를 건너가기 전에 구름이 이 도시 아래에서 흐르고 있어 이 공중도시가 마치 신기루마냥 구름우에 떠 있는것 같았다. 우리가 다리를 건너면서 사방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20~30분정도 걸어 이 공중도시에 올랐을 때에는 산아래에 약간한 구름이 흐르고 있어 마치 하늘나라에서 천하세상을 내려다 보는 듯 하였다.

공중도시(天空之城2)

위챗에서나 텔레비전에서 아츨한 절벽우에 집들을 지어놓은 것을 봤는데 이곳에 와서 직접 제눈으로 그러한 그림같은 것들을 보니 유람객들은 너나없이 “야! 경관이다.” “야! 멋있다.” “야! 정말 하늘공중에 떠있는 도시구나!”라는 감탄사가 터져나오면서 서로서로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공중도시(天空之城3)

마을의 집들을 보면 대부분 2~3층으로 된 살림집이었으며 마을 복반에는 세인트 도나토 성당(圣多纳托教堂)이 있었는데 큰 마을은 아니지만 성당은 꽤 커 보이었다. 성당 서쪽벽 옆에는 3층 높이의 두배로 되는 성당종루가 공장굴뚝처럼 높이 서 있었다. 그리고 성당앞은 작은 마을 치고 꽤 넓은 광장이 있었다. 이것을 봐도 옛날에도 많은 집회활동이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성당안에는 6세기의 순도자(殉道者) 세인트 도나토 (圣多纳托)의 유체를 모시고 있으며 이 지구에서 널리 존경을 받고 있는 3세기 순도자 세인트 빅토리아(圣维多利亚)의 유물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성당 오른쪽은 문예부흥시기에 건축된 아레마니궁전(阿勒曼尼宫)인데 몇년전에 박물관으로 개조하였다고 한다.

도나 토 성당

이 마을의 력사는 선사시대(史前时代)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이 마을 지하의 큰 무덤에서 발굴한 문물로부터 2,000여 년전에 트루리아 (이딸리아 중서부에 있던 옛 나라)인들이 이미 여기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 마을은 또 보나벤투라(波拿文都拉, 1221 ~ 1274.이딸리아 성인으로 중세 최대의 스콜라 철학자의 한 사람)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이 섬같은 작은 마을에는 장기적인 주민호는 10여 가구가 있고 대부분의 집들은 별장으로 사용되어 여름이면 피서도 하고 관광성수기에 부근의 주민호들이 올라와서 숙박업도 하고 교회당도 문을 열고 예배활동도 한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에 교회당도 문을 열었고 유람객들가운데서 예배를 하는사람들도 있었으며 거리 량켠의 여러 집을에서는 관광상품 가게를 꾸리고 관광상품을 팔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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