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 (斗兽场)

콜로세움(斗兽场)은 로마제국 시대에 높이57m, 둘레 527m, 직경이188m, 156m의 타원형으로 만들어진 원형 경기장인데 고대 로마 유적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경기장으로서 로마의 제5대 네로황제(尼禄黄帝)의 황금궁전의 정원에 있던 인공 호수를 메운 자리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10만 명의 노예가 동원되었으며 노예들은 로마에서 20km정도 떨어진 채석장에서 돌을 옮겨 왔고 콜로세움은 목재, 응회암, 석회암, 콘크리트, 타일과 같은 재료로 지어졌는데 당시의 건축물 가운데 최대의 건축물이었으며 서기 70년 베스파시아누스(维斯帕西安) 황제가 착공해 10년 뒤인 서기 80년에 아들인 티투스(提图斯) 황제때에 준공되었다고 한다. 경기장이 준공된 것을 축하하기 위한 축제가 100일 동안 계속되었으며 축제에서 티투스 황제가 개회를 선포하였다고 한다.

콜로세움(1)

콜로세움은 5~6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고 4층으로 되어 있으며 80여 개의 아치문을 통해 관중들이 입장하는데 30분, 퇴장하는데 불과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콜로세움은 각 층마다 각기 다른 양식으로 꾸며진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1층은 도리아 양식(多立克柱式, 도리스 인들이 창시한 고대 그리스의 건축 양식. 기둥이 굵고 주춧돌이 없으며 기둥머리 장식이 역원추 모양으로 간소하나 장중미가 있다. ), 2층은 이오니아 양식(爱奥尼柱式, 고대 그리스에서 발달한 건축양식. 아테네 전성기 때에 이오니아지방에서 발생하여 1세기가량 성행하였는데 우아하고 경쾌한 것이 특징이다. ), 3층은 코린트 양식(柯林特风格,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의 코린트에서 발달한 건축양식. 화려하고 섬세하며, 기둥머리에 아칸서스 잎을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의 기둥과 원형에 가까운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 이 경기장에서는 황제부터 노예까지 모든 로마 시민들이 함께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신분에 따라 자리가 달랐으며 1층은 황제가족과 귀빈, 2층은 기사계급, 3층은 일반서민, 4층은 천민 계급들이나 노예들의 좌석으로 나위어졌다.

콜로세움(2)

이 경기장은 여러가지 경기도 하고 또한 해상 전투를 재현하거나 고전극을 상연하는 무대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콜로세움에서는 검투사(剑斗士)와 맹수가 싸우거나 검투사끼리 결투를 벌이는 경기가 주로 열렸다고 한다. 검투사들은 보통 노예나 전쟁포로들 중에서 운동 실력이 출중하고 용맹하게 잘 싸우는 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서로 결투를 벌이거나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사냥해 보여 로마 관중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이때 콜로세움에서 죽어나간 맹수가 5,000마리가 넘었고 맹수와 싸움을 하거나 검투사끼리 결투를 벌이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중요한 기념일이나 행사 때는 경기장에 물을 채운 뒤 벌이는 해전게임 같은 특별한 경기도 열렸는데 배를 타고 바다에서 많은 전투를 벌였던 로마인들은 콜로세움에서도 실제 전투에서처럼 서로 죽이는 경기를 펼쳤다고 한다.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으나 검투사가 되면 리득도 있었는데 다른 노예들보다 생활환경이 훨씬 나은 군대식 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었고 승리를 거둔 검투사들은 영웅대접을 받음으로써 한편으로는 일체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경기장에서 3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검투사들의 경기가 계속되다가 450년 호노리우스(霍诺里乌斯) 황제가 이것이 너무 야만적이라는데서 경기를 중지시켜 그러한 경기들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후 콜로세오는 지진의 피해를 입기도 하고 부자들이 저택과 궁전을 짓고 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콜로세움의 대리석과 장식물을 가져다 사용하면서 내부와 외벽 많이 뜯기게 되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지는 못해 아쉽지만 2,000년 전 지어진 거대한 건축물이 지금은 로마를 대표하는 유명한 관광 명소로되어 매일 수천명의 관광객이 모여 든다고 하니 그 경이로움을 금할 수 없었다.

콜로세움(3)

트레비분수(特雷维喷泉)

우리는 콜로세움과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에서의 유람을 마치고 로마시내에 있는 트레비분수로 갔는데 이때는 이미 5시가 넘어 어둠이 깃들었다. 트레비분수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딸리아에는 한 처녀가 로마제국의 제1대 황제 아우구스투스(奥古斯都)가 명한 ‘처녀의 샘’으로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들에게 물을 준 전설이 있는데 트레비분수는 이 처녀의 샘을 수원으로 분수를 만든 것이라고 한다. 트레비분수의 중앙에 있는 근엄한 모양의 조각상은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波塞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 강, 샘을 지배하는 신)이며, 량쪽에 말을 잡고 있는 두 명의 신은 포세이돈의 아들인 트리톤이다. 분수 왼쪽에 날뛰는 말은 풍랑을 상징하고 오른쪽의 말은 고요한 물을 상징한다. ‘포세이돈’ 옆에 있는 두명의 녀인은 각각 건강과 풍요의 여신을 상징하고 건물 우부분에 4개의 여인 조각상은 4계절을 상징한다고 한다.

트레비 분수(1)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것은 오랜 전통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예전 로마제국에서는 전쟁터로 간 남편이나 아들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며 이곳에 동전을 던졌다고 하는데 그것이 이어져 지금은 로마여행 중 꼭 거쳐 가야 하는 동전 던지기 장소로 유명하다. 분수를 등지고 동전을 하나 던져 들어가면 로마에 다시 돌아오고 두 개가 들어가면 운명의 사랑을 만나고 세 개가 들어가면 그 사람과 결혼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던져진 동전은 매일 3,000유로 정도가 트레비 분수대 바닥에 쌓이는데 로마시에서는 매일 밤 이 동전을 수거하여 로마 시내 문화재 복원과 보호에 쓰고 있다고 한다.

트레비 분수(2)

트레비 분수는 높이가 25.9m, 너비는 19.8m로서 로마에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분수라고 한다. 바로크양식(16세기 말부터 18세기 중엽에 걸쳐 유럽에서 유행한 예술 양식)으로 지어진 것으로는 예술성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에 분수 주위에는 숫한 사람들이 둘러 싸여 있었는데 분수를 등지고 동전을 뿌리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의 일행가운데서도 동전을 뿌리는 젊은이들이 있었는데 동전을 뿌린다 하여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그저 로마에 와서 한번 이런 재미를 보자는데서 뿌렸다.

트레비 분수(3)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