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주청룡 특약기자

역사가 유구한 문화유산의 옛도시 베로나(维罗纳)로 가다

4시에 우리는 베니스의 유람을 마치고 출성(出城)하여 우리의 관광버스를 갈아타고 베로나를 향해 떠났다. 가는 도중 가이드는 또 베로나의 개황에 대해 소개르 하였다.

베로나는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주 (威内托州) 아디제 강(阿迪杰河)유역에 있는 도시이다. 전통 미술품과 건축물, 공연예술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이탈리아북부의 주요 관광지이다. 면적은206.63 km2, 인구는 2015년 기준 약 26만 명이다.

베로나는 기원전 1세기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5세기에 동고트인(东哥特人, 고대 게르만 민족의 한 갈래), 6세기에 롬바르드인(伦巴德人, 고대 게르만 민족의 한 갈래), 그리고 774년에 샤를마뉴(夏尔马涅, 800-814 서로마 제국의 황제,)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12세기 초에 독립 자치제가 되었다. 그후 1405년에 베네치아에 넘어갔고 1797년부터는 오지리 제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1866년에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되었다.

에르베광장(百草广场)

5시 반에 베로나에 도착하여 먼저 에르베광장으로 갔다. 에르베광장은 로마제국시대의 공공집회 장소이었으며 지금은 정치, 행정의 중심일 뿐만아니라 상업의 중심지로 광장주변에는 큰 상점들이 들어 서 있었다. 광장에는 또 식료품과 의료품들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이 들어차 있었다.

이 광장에는 시청사로 사용하였던 종탑이 있는 바로크양식의 마베이 궁전이 있다. 종탑의 높이는 84m로 1172년에 처음 짓기 시작하여 1464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종탑에는 네개의 종이 걸려 있으며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시계가 1779년에 붙여졌다고 한다. 광장에는 마돈나분수와 유명인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동상들이 있었다.

 

마돈나분수

줄리엣의 옛집(朱丽叶故居)

에르베광장유람을 마치고 우리는 줄리엣의 옛집으로 갔다. 줄리엣은 이딸리아 베로나의 한 부유가정에서 태여났으며 섹스피어(1564-1616. 영국의 극작가, 시인)의 명작 ㅡ 《로메오와 줄리엣》희곡 중의 녀 주인공 인물이다. 섹스피어가 1594년에 쓴 희곡 ㅡ《로메오와 줄리엣》은 서로 적대적인 두 가문에 대한 이탈리아 전설을 기초로 하여 극본을 썼다고 한다.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력사 속에서 지금까지 쓰인 가장 훌륭한 사랑이야기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줄리엣의 옛집은 에르베광장에서 남쪽으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줄리엣의 옛집은 13세기에 지은 오랜 건축물이다. 아치형의 굴처럼 생긴 통로(门洞)으로 들어 서면 2층으로 된 줄리엣의 옛집이 있다.

줄리엣의 옛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로메오와 줄리엣이 만남을 약속한 베란다이다. 당년에 줄리엣은 이 베란다에서 오래동안 서 있었고 로메오는 그 아래에서 줄리엣에게 사랑을 고백하였으며 베란다로 올라가서 절세미인과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줄리엣과 로메오의 사랑으로 이어졌던 베란다

우리가 갔을 때에 그 베란다 아래와 붉은 벽에 글을 써놓은 종이장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외국어를 모르른 나로서는 너무도 이상하여 가이드와 물어보니 젊은 유람객들이 로메오와 줄리엣의 사랑처럼 자기의 애정과 충성의 마음을 사랑하는 연인 혹은 안해에게 전달하는 내용을 담아서 써 붙인 것이라고 한다. 더욱 많은 것은 마음속에 가장 완미하고 사랑하는 사람 ㅡ 줄리엣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라고 한다.

당지 정부에서는 날로 늘어나는 편지가 전반 벽에 덧 붙는 것을 피면하기 위해 “줄리엣구락부”란 조직을 내와 세계 각국에서 사랑의 편지를 써 보내 온 사람들에게 줄리엣의 회답편지를 받도록 지원자들이 전문 줄리엣을 대리하여 회답편지를 써 보낸다고 한다. 해마다 연인절이면 “사랑하는 줄리엣"이란 가장 우수한 사랑의 편지 징집활동도 벌리는데 그 영향력이 매우 넓다고 한다.

줄리엣 옛집 정원에는 20세기에 제작된 줄리엣의 전신 동상이 있는데 관광객들이 수없이 조각상의 오른쪽 가슴을 어루만지면 사랑에 행운이 따른다는 관습 때문에 그녀의 오른쪽 가슴을 너무 어루만지여 반들반들 빛나고 있었다. 유람객들은 너나없이 모두 줄을 서서 기다리여 줄리엣의 동상옆에 서서 기념사진을 남겼는데 우리도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려서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줄리엣의 옛집참관으로 이딸리아의 유람은 끝났다. 나는 섹스피어가 쓴《로메오와 줄리엣》의 사랑이야기가 어떻게 되여 이렇게도 사람들을 감동시키는가 하여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으나 중문이나 조선문로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쓴 것을 찾지 못하여 매우 유감스럽다.

 

줄리엣의 동상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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