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이 전하는 고사성어40] 함흥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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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이 전하는 고사성어40] 함흥차사
  • 김태권
  • 승인 2020.01.0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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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오늘에 공부할 고사성어는 <함흥차사>인데, 그 한자표기는 咸興差使, 중문표기는 咸兴差使, 병음표기는xián xīng chāi shǐ이다. 글자풀이로는 다 함, 일어 날 흥, 부릴 차, 부릴 사이다. 뜻풀이로는 심부름을 가서 아무 소식이 없이 돌아오지 않거나 늦게 오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함흥차사’는 한국에서만 쓰이는 성어로, 비슷한 말로는 끝내 소식이 없다는 뜻의 ‘종무소식(終無消息)’과, 강원도는 산이 많고 험해 포수가 한번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기 어렵다는 뜻의 ‘강원도포수(江原道砲手)’가 있다.

이 고사성어는 고전《임하필기(林下筆記)》에서 유래한다.
「태조가 만년에 왕업을 일으킨 함흥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북궐(北闕)로 행행하고 나서는 대궐로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 이에 조정에서 매번 돌아오도록 청하였으나 청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전후로 보낸 사자만 10여 명이었는데 모두 돌아오지 못하였다. 판승추부사(判承樞府事) 박순(朴淳)이 비분강개하여 자신이 가기를 청하였다. 함흥에 이르러 멀리 행궁이 바라보이자 일부러 새끼 말은 나무에 매어 두고 어미 말을 타고 가는데, 말이 자꾸 뒤돌아보며 머뭇거려 나아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박순은 상왕과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기 때문에 상왕은 그를 반갑게 맞아 옛일을 얘기하며 정성껏 대접해 주었다. 상왕이 물었다. “새끼 말을 나무에 매어 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길을 가는 데 방해가 되어 매어 두었는데, 어미와 새끼가 차마 서로 헤어지지 못하였습니다. 미물이라도 또한 지극한 정인가 봅니다.” 박순은 이렇게 대답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상왕도 감동하여 눈물을 줄줄 흘렸다.

하루는 박순과 함께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마침 쥐가 새끼를 물고 가다가 지붕에서 떨어져 죽게 되었는데도 서로 저버리지 않는 것을 보았다. 박순이 다시 바둑판을 밀고 땅에 엎드려 우니, 상왕이 슬피 여겨 곧 대궐로 돌아갈 뜻을 밝혔다. 박순이 하직하고 돌아가려고 하자 상왕이 속히 가라고 했다. 행재소에 있던 신하들이 그를 죽이도록 청하였으나 상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박순이 이미 용흥강(龍興江)을 건넜으리라 추측하고 사자에게 칼을 주면서 말했다. “만약 이미 강을 건넜으면 추격하지 마라.” 그런데 박순은 우연히 급작스런 병에 걸려 그때까지 배 안에 있으면서 강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자가 박순을 요참(腰斬)하고 돌아오니 상왕이 크게 통곡하며 물었다. “박순이 죽으면서 무어라 하던가?” 사자가 대답했다. “북쪽으로 행궁을 향하여 ‘신은 죽습니다. 원컨대 전에 하신 말씀을 바꾸지 마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상왕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박순은 어렸을 적의 좋은 친구이다. 내가 지난번에 한 말을 번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고는 어가를 대궐로 돌렸다. 태종은 박순의 죽음을 듣고 놀라 애통해하면서 등급을 더하여 진휼(軫恤)하고, 화공에게 명하여 그의 반신을 그리도록 했다.」

 

조선 초기, 방석(芳碩)의 변(1차 왕자의 난)이 있은 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는 정종(定宗)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에 은거했다. 그 후 형제들을 살해하면서까지(2차 왕자의 난) 왕위를 차지한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은 분노한 태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함흥으로 차사를 보냈으나 태조가 번번이 활을 쏘아 차사들을 죽이거나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았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함흥차사’는 심부름 간 사람이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 고사성어의 쓰임새를 보자면 이러하다. “강부장은 회사가 아무리 바삐 돌아쳐도 출장을 나갔다 하면 ‘함흥차사’라니깐.”

-고사성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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