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자 수필가

 

엄정자(厳貞子), 1982년 1월,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부 졸업, 선후로 교사 기자로 근무, 현재 일본 ECC외국어학원에 재직 중, 동북아신문 일본지사 대표,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대표 겸 회장, 연변작가협회회원, 일본조선학회회원, 일본조선족연구학회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해외이사, 수필 「화산 우에서 사는 사람들」 제9회 《도라지》 장락주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수필 「감나무에 담긴 정」 제1회 同胞文學 安民賞 수필부문 우수상, 수필집 『금 밖에 나가기』(연변인민출판사. 2011년), 평론집 『조선민족의 디아스포라와 새로운 엑소더스』(연변인민출판사 2014년)를 출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토요일,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길에 올랐다. 나고야로 향하는 전철에 앉아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켜니 몇십 통의 메시지가 왔음을 알리는 빨간 숫자가 떠 있다.

어제 오후, 수업하는 중인데도 무음 처리한 휴대전화의 부르르 부르르 떠는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려왔다. 그때마다 책상 위에서 떠는 핸드폰을 곁눈질로 보면서도 수업에 집중하느라 열어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야 열어보니 새해 축하 메시지가 수십 통이 들어와 있었다.

“아, 설이구나!”

월말에 음력설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상에 쫓겨서 잊어버리다시피 했는데 축하 메시지를 보니 설이 왔다는 실감이 마음에 와닿았다. 멀리 바다 건너에 있는 나에게까지 잊지 않고 축하 인사를 보내오는 이들이 반갑고 고맙고 그래서 마음이 따뜻해 났다.

결국은 새날이 밝아올 때까지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새벽녘에야 새우잠이 들었는데 그 바람에 늦잠을 자서 부랴부랴 서둘러서 집을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설날 아침 식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간소한 음식 몇 가지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전철에 앉아서 아침에 들어온 메시지를 읽는 순간 나는 몸과 영혼이 2개의 이공간(異空間)에 분리되는 것 같은 유체이탈의 기이한 경험을 하였다. 몸은 여전히 전철에 앉아있는데 내 영혼은 훨훨 날아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바다 너머로 날아가고 있었다.

 

저 멀리 북산에, 작년에 언니가 대리석 비석에 걸어준 색바랜 꽃장식 사이로 부모님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흐르며 무릎이 꺾인다.

“불효한 이 딸이 이제야 인사드립니다. 날씨도 차가운데 그곳은 평안하신지요? 두 분 사이좋게 잘 지내시고 계시죠?

지난 한 해도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돌아서서 남쪽을 보니 화려하고 커다란 방안에 언니가 홀로 엊저녁에 만든 만두를 먹고 있다. 밤새 먼저 간 형부 생각에 마음이 아파서 뒤척이다 나니 뜬 눈으로 날을 새고 아침 일찍 만두 재료 사러 나갔는데 만두 껍질 사는 거 잊어버려서 두 번이나 다시 장 보러 갔다 왔다는 언니, 멀리 상해에 있는 아들 가족은 어린 손자 때문에 힘들다고 오지 말라고 하고 그믐날 혼자서 만두를 빚어 먹었다더니 설날 아침도 그 만두를 먹고 있다.

일본 유학 마친 아들이 취직하고 결혼하고 손자 낳는 것까지 다 보고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서서히 전신에 마비가 오는 형부 옆을 지키느라 기나긴 세월 힘든 병시중에 몸과 마음이 지쳤을 텐데도 지금도 “너의 형부는 나를 참 사랑했는데….”하면서 형부를 못 잊어 마음 아파하는 언니, 겨우 입만 움직이는 형부 입에 작은 만두 조각을 넣어주며 “엄숙자 만든 밴새(만두) 맛있지요?” 하며 웃던 언니가 오늘은 20년간 형부가 누워있던 그 자리에 앉아서 무덤덤한 얼굴로 혼자서 만두를 먹고 있다.

“언니, 건강히 잘 지내다가 사쿠라꽃이 피는 4월,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연분홍 사쿠라 꽃 앞에서 예쁜 사진 많이 찍어줄게요.”

내 목소리가 들리는지 그늘이 졌던 언니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피어오른다.

 

서쪽을 바라보니 큰 시누이가 딸 부부, 손녀 부부와 함께 금방 식사를 마치고 차 마실 준비를 하고 있다. 5년 전, 근 20년 만에 처음으로 설쇠러 간 우리에게 맛있는 것을 해 먹이고 싶어서 무거운 식재료를 7층까지 메어 올리고는 내 글이 실린 책을 들고 와서 보이며 “이 글 잘 읽었어. 좋았소.” 하며 칭찬해 주던 아주버님, 우리 시집에서 제일 내 글을 많이 읽어준 충실한 독자였던 아주버님은 이제 큰 시누이 집 식탁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사랑해 마지않던 귀여운 손녀가 작년에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취직했으니 오늘도 저 하늘에서 대견한 웃음을 지으며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나도 따라 내려다보니 해마다 위가 약한 우리 남편을 위해서 벌나무 껍질로 한약재를 만들어 보내주는 조카 남편이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장모님에게 커피를 따라주고 있고 조카는 그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뭔가 열심히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우리 큰 시누이에게도 올해는 좋은 한 해가 될 것 같다.

 

다시 휙 날아올라 아래를 굽어보니 저기 멀리 아침 햇빛에 금빛 지붕이 번쩍이는 자금성이 보이고 금방이라도 비상할 듯한 용같이 굽이굽이 뻗어 나간 만리장성이 보인다.

그 사이로 새로 산 멋진 집에 부모님을 모시고 앉아 설날 아침을 맞고 있는 조카 식구들이 보인다. 핵물리학 박사로 나라의 중임을 맡고 열심히 일하는 둘째 시누이의 자랑-큰조카가 오늘은 그저 아들이 되어 아버지 어머니에게 세배를 드리고 있다.

20여 년 전, 부모님이 교환교수로 한국에 가 있는 사이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나서서 우리를 당황하게 하였던 조카, 별수 없이 나와 남편이 부모 대신 결혼식을 준비하고 큰절을 받던 일이 어제일 같이 떠오르는데 어느덧 중년이 된 조카가 아직도 옛 모습이 남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담고 나를 향해 손을 젓는다.

“요코하마에 있는 둘째 조카가 설 선물로 눈볼대(바닷물고기-アカムツ)를 보내왔어요.”

그렇게 보고하고는 단란하고 평화로운 둘째 시누이 집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허공에 날아올랐다.

 

황포강을 끼고 첨탑같이 솟아오른 빌딩 숲 사이로 사랑하는 우리 동수가 사는 작은 아파트가 보인다.

신혼 시절부터 데리고 살아서 우리 큰딸 같은 시조카, 내가 ‘동’자 하나 더 붙여주는 바람에 ‘동동수’가 애칭이 되어버린 그 애가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시집가던 모습, 제왕절개로 아들을 낳고 창백한 모습으로 병원에 누워있던 모습, 그 조카손자가 걷기 시작하면서 우리 집 카펫에 오줌을 싸며 돌아다니던 모습이 파노라마같이 떠오른다.

그 애가 일본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대학원에 다니던 때가 어제 같은데 어느새 그 아들이 대학원을 졸업하고 엔지니어가 되었다니, 세월의 흐름이 유수와 같다.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이 돈다고  해서 지난주 마스크 6상자를 부쳤는데 벌써 도착한 모양이다. 관세를 내야 한다는 통지를 받고 세관에 전화하는 조카에게 손나팔을 하고 외친다.

“우리 큰딸, 마스크 꼭 쓰고 다녀!”

 

갑자기 휘리릭 바람이 불며 또다시 날아오르는데 두만강을 넘어 한강을 지나니 막내 동서가 보따리를 이고 지고 아파트에 들어선다. 따라 들어가니 조카며느리가 “어머니 오셨어요?” 하며 짐을 받아준다.

시동생은 건설현장에서 동서는 식당에서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아들에게 대학원까지 공부시켜 줬더니 그 애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해서 예쁜 손녀까지 낳아줬다. 이젠 동서네도 살 맛이 나는 것 같다.

원래 음식 솜씨가 좋은 동서가 며느리와 같이 금방 뚝딱 설음식을 준비하는데 잡채, 불고기, 가지볶음, 생선구이, 산해진미가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다.

이제는 고국에 뿌리를 내리다시피 하고 사는 시동생 가족들, 그들에게도 새해가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진이나 동영상으로만 봐왔던 조카손녀가 깡충깡충 뛰어서 소파에 뛰어든다. 씩씩한 그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난다.

“규리야, 안녕? 유치원에서 배운 춤 한번 춰보지?”

내가 부르든 말든 조카손녀는 게임에 빠져서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그래도 예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게임을 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친구, 여기 와서 같이 한잔하지.

야, 너 떡 좋아하잖아! 많이 먹어. 설이잖아!”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가 부루하퉁하와 송화강가에서, 자금성 아래에서, 황포강 기슭에서, 한강 변에서 중구난방으로 들려온다.

 

그 소란 속에서 “다음 역은 나고야, 나고야역입니다.” 하는 차내 아나운스먼트가 비집고 들려온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떠들썩하던 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열차는 서서히 홈에 들어서고 있었다. 잠깐 졸기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내 영혼이 이세계(異世界)를 떠돌아다닌 것인지,

어쨌든 모두 행복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좀 걱정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도 꼭 잘 이겨나가리라 믿는다.

설이 없는 나라에서 설날에도 일하면서 사는 것이 좀 팍팍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 친인, 친구들이 열심히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니 나도 그들과 함께 설을 쇤 기분이 들며 신바람에 마음이 으쓱으쓱 들썩인다.

운명에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우리, 하지만 어디에서 살든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고 한 가족이었다.

 

저 멀리 사라지는 열차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다하여 기원하였다.

새해는 평안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뜻하시는 일들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서로서로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빨리 물리치고 지난해보다는 좀 더 나은, 밝은 한 해를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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