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숙 약력: 시, 수필, 소설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수상. 재한조선족작가협회 회원. 현재 울산 거주.

 

1


“경아야, 너 애기때는 아버지가 안아주지 않았을까?”

“몰라… 기억에 없어… 언니 등에 업힌 기억밖에…”

“친척 중에 이모라도 없어?”

“왜 그런지 우리집은 친척이라고 없었어야, 오직 너 하고 보리밖에…”


윤희는 이십여년 만에 경아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이튿날에 무슨 변동이 일어나기라도 할 것 처럼 만나기를 서둘렀다.

“자궁이 근지러워 참을 수 없었어. 긁어 대는 만큼 올라오는 가려움에 손톱이 닳아버릴 것 같았고 가랑이는 찢겨 나갈 것만 같았지. 불을 켰어. 이불을 제치고 앉아 아랫도리를 보는 순간 소름이 끼치더라. 자궁에 하얗게 덮인 털들, 개발이 된 손과 발. 난 하얀 개였지. 그렇게 개꿈은 저녁마다 찾아왔고 나는 인간과 개 사이를 오갔어.”


입술을 파르르 떠는 경아의 깊은 눈이 반짝거렸다. 감실감실하게 익기 시작한 대추 알 같이 좁은 얼굴에 도록 한 코. 윤희는 어릴 때도 주먹코라고 놀렸던 경아의 코가 마냥 귀여웠다. 햇빛을 다 받아 유난히 반질거리는게 토옥 튕겨주고 싶어 검지를 움찔거렸다. 호박씨 같은 손톱은 빨강, 노랑, 파랑, 까망, 하얀색으로 물들여 주인 닮아 독특한 개성이 풍겼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에 끼인 담배는 도톰한 입술에 물려 단숨에 절반이나 빨리더니 정원의 단지 재떨이에 떨어졌다. 둘이는 나올 때 처럼 서로의 손을 당겨 꼭 쥐고 원래자리로 가서 마시던 술을 계속했다. 윤희는 만사를 팽개치고 달려왔을 경아를 위해 전화통이 뜨거워지도록 사장님에게 사정하여 겨우 이틀 휴가를 냈다.

“우리 윤희는 언제 술을 그렇게 배웠다냐? 넌 술 같은 불량음료 하고는 어울리지가 않아… 너의 이미지에는 녹차가 어울리지. 림대옥이 맥주잔을 들기에는 너무 억지스럽지 않니? 흐흐…”

“넌 여전히 입이 맛갈나네.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이렇게 만나니 너무 좋구나. 건데 올 가을이 유난히 쓸쓸한 거 같다…”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나에겐 오늘이 최고의 날이야. 우리의 가을에 생기를 줘야지, 그런 의미로 건배 하나 해주자.”

술을 털어 넣고 윤희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경아의 눈에는 갈증이 애닯았다. 무엇이 저토록 비장하게 만드는지. 저 심연속의 문장들이 의문으로 다가왔고 창자의 먼 끝 쪽까지 눌어붙어 윤희의 속은 여간 아린게 아니었다. 둘은 서로의 아픔이었다. 특히 오랜 기다림의 끝에 만난 이 가을에는 왠지 모르게 슬픔이 가득 묻어 있었다.

“윤희야, 넌 내가 미웠지? 말없이 떠난 건 정말 미안해. 나 참말로 그때가 징글징글하게 싫었거든.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세상구경이나 하고 뒈지고 싶더라. 그때 내가 제일 부러운 게 보리였어. 넌 우리집에 날 보러 온게 아니고 맨날 보리만 보러 왔잖아? 보리는 너만 보면 지 에미인 줄 알고 가랑이 파고 들었지. 나 보리한테 질투까지 했다. 말도 안된 소리라 하지만 넌 어쩌면 그렇게 보리한테 충성을 한거니? 내가 개가 된 느낌이 들더라. 써글.”

윤희의 머리속에는 지우려해도 지울 수 없는 그림이 펼쳐졌다. 그냥 빈 마당에 띄이는 건 누룽지 물에 햇빛이 쏟아진 보리의 밥그릇이었다. 비료주머니를 덕지덕지 기워 박은 창문이 기다리다가 지쳐 멀어버린 듯 퀭 하고 괴로운 신음 소리로 들어서는 걸 거부하는 바닥 문에 걸쳐진 집이 당금 쓰러질 건만 같았다. 아래목에 비석 없는 무덤이 되여 사시장철 집만 지키는 경아 아버지는 숨을 쉬는지 의문스러웠다. 경아는 불을 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자꾸만 춥다고 했다. 갓난쟁이때 얼어버린 벌건 손으로 싸리나무를 탁탁 꺾어 아궁이에 넣는 경아, 언니의 큰 옷에 가려져 더 가늘어 보이는 경아, 쭈뼛이 살아 진득거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훔치며 코를 연신 쿨적 대는 경아, 경아가 많이 추운 것 같았다.

“우리 그 술을 다 마셨네? 와 우리 윤희도 술통이네.”

“나도 놀라워. 누구 앞에서도 술 마신 적 없거든…”

“그럼 소맥으로 갈까? 오늘 생각밖에 술이 잘 땡긴다. 나의 위가 제대로 가 주네. 널 봤으니 당장 죽는다 해도 원이 없어. 사실 널 만나면 묻고 싶은 게 엄청 많았거든. 지금은 이상하게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아. 너를 보는 순간 안개 걷히듯 사라졌어. 오늘 기분이다. 끝까지 가는 거다? 저기 요, 여기 맥주 하나 소주 하나요.”

태어나면서 엄마를 잃은 경아는 아버지의 <어미 잡아먹은 년>이라는 과녁이 되었다. 댓살 터울의 백치언니는 열댓살에 어느 놈이 싸질러 배가 남산만큼 불러 있다가 결국 난산으로 엄마처럼 가버렸다. 땅도 있고 터전도 있지만 삶을 접은 아버지는 경아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끌려갔다. 경아는 태어나자 어른이 되었다.

“경아, 난 보리가 자꾸만 생각난다. 술이 되어 너의 아버지 배속으로 들어간 보리가 보고 싶어. 나도 너만큼 너의 아버지가 미웠어. 솔직히 너가 그렇게 가버렸다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었어. 집에 들어가기 싫을 땐 너네 집에 가서 보리하고 별이 떨어질 때까지 놀았지. 보리가 내 품에 안겨 잠이 들었을 때 덮치는 한기에 서러워지더라. 윤희야, 들어와 자라 하는 소리가 마을 끝에서 오다가 스며든 것 같아 그리워지더라. 조금 울었지… 조금씩 아껴가며 울었지… 너를 천천히 잊으려고... 나의 로망이였어, 가출이. 가출을 위하여 건배하자.”

윤희는 취기가 올랐는지 연신 껄껄 그리며 또 한잔을 넘겼다. 맺혔던 눈물은 경아손에 닦여지고 윤희는 게면적게 씨 익 웃었다.

“경아, 나는 그때 너가 부럽더라. 가출도 마음대로 하고 비참해도 솔직할 수 있는 너가 멋지더라. 나는 언제나 인형처럼 예쁜 옷에 조여지며 질식되어 갔지.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로 외로웠지. 번듯한 벽돌집에 살면서 핑크색 침대가 있는 나는 너들이 부러워하는 공주였지만, 누구도 몰랐지. 내가 하교하고 집문 앞에서 얼마나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강시처럼 뻣뻣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너도 나에게 아픔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거다. 화려하게 보이는 것 들은 껍데기 뿐이였고 자존감은 바닥이었지...”

“너도 참 못됐다. 그렇다고 가출을 위하냐? 위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가출의 아픔에는 살이 썩어야. 나에게 기대는 너가 나한 텐 얼마나 큰 위로였는 지 아니? 나도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들이 그 구질구질한 날들을 계속 이어가게 했던 거야. 너는 나의 축복이였어, 우리의 만남을 위해 건배 해야지”

윤희와 경아는 반의 제일 뒷자리에서 만났다. 한 가정이 허물어져가는 비릿한 냄새는 경아가 움직일 때 마다 물씬거리며 나왔다. 괜히 오염 되여 같은 취급을 당할 우려심들에 경아는 점점 구석으로 밀렸다. 시에서 간부로 일하는 아버지의 하향으로 짝없는 경아와 함께 앉게 된 윤희는 처음에는 여느 애들처럼 경아를 대놓고 싫어하지 못하고 애써 싫은 표정을 감추었다. 그럭저럭 한학기, 두 학기를 보내다 나니 벙벙하게 소학교, 중학교를 마쳤다. 윤희는 슬금슬금 경아를 피하다가 한번쯤 놀아주는 거로 선심을 베풀었을 뿐 인데 경아는 진심으로 좋아하고 자기의 제일 소중한 보리까지 양보했다. 그로 인해 윤희는 경아를 한번씩 더 찾게 되었고 보리 보러 가는 횟수는 점점 잦아지고 어딘지 모르는 소용돌이로 빨려갔다.


2

윤희는 구름위에 떠 있었다. 알몸이 윤희를 타고 젖꼭지를 비벼왔다. 어…어…억… 안에서 물이 녹아 흐르는 야릇함들이 발가락까지 전율했다.

“윤희야 일어나.”

귀 볼을 간지리는 열기에 윤희는 녹슨 철문 같은 눈꺼풀을 억지로 떴다. 경아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커다란 두 눈에 자기가 둘이나 들어가서 통째로 테스트 당하고 있는 걸 아연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저 집요한 눈, 헤어나올 수 없는 눈!

둘의 입술은 어느새 포개 졌다. 손들은 허겁지겁 서로를 만지기 시작하고 사이사이에 끼인 다리들은 점점 격하게 꿈틀댔다. 눈물이 흘렀다. 침대를 방을 이 세상을 다 잠기려는 듯이 번질거리며 흐르고 둘은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속으로 몸을 기꺼이 던졌다.

윤희는 경아의 삶의 동력이었다. 좀처럼 마음의 빗장을 시원하게 열어 준 적 없는 윤희는 경아를 괴롭혔다. 추수방학이 끝나고 쓸쓸한 가을 날, 윤희가 학교로 떠난 후에 경아는 짐을 쌌다. 동네에서 번 가을 품삯으로 아버지 호주머니에 반만 넣고 처음으로 집을 떠났다. 고중에 갈 때의 윤희를 옆자리에 그려 넣으며 함께 학교가는 꿈을 꾸면서 청도행 기차를 탔다.

바다의 비릿한 짠 내는 꼬질꼬질한 돈냄새가 났다. 대외개방으로 외자기업들이 중국 연해도시를 점령했고 사람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포로가 되었다. 경아는 청도의 자그마한 조선족식당의 종업원으로 취직했다. 이름을 진희라 바꾸고 연길에서 온 주방이모와 기여 다닐 수 있을 만큼의 낮은 다락방을 함께 썼다. 손님들은 대부분 한국사람들이었고 가끔가다가 조선족장사군들도 있었는데 한국물건을 수출입 하거나 촌사람들의 돈을 왕창 뜯어 한국으로 밀입국시키는 브로커들이 대부분이었다. 주방이모는 한달에 한번쯤 부두에서 짐군으로 일하는 남편을 만났다. 경아는 그때마다 홀에다 의자를 깔고 쪽잠을 잤다. 새벽이면 볼일 다 보고 어색해진 아저씨의 얼굴을 일별하고 다시 다락으로 기어올라 남은 잠을 계속 잤다. 어느 순간부터 이모는 아저씨를 만나려 하지 않았고 오면 돌려보내고 했다. 이모는 늙은 한국선원과 자주 밖으로 나가 새벽에야 들어 오군 하더니 얼마 안되어 방을 잡고 나갔다. 그후에도 아저씨는 몇번을 더 왔었는데 술에 취해 주정 부리다가 사장님한테 쫓겼다. 경아는 한동안 말라 쪼그라져 박제가 다 된 아저씨가 떠올라 잠을 설치군 했다.

그쯤에 경아도 한국선원의 소개로 술집의 아가씨로 취직했다. 술집에는 십대부터 오십대까지 60여명의 조선족 아가씨들이 있었는데 거의 다 집을 잡고 있었다. 경아처럼 금방 시작하는 애들은 한달에 조금씩 돈을 내고 가게서 잠을 잤다. 큰 손의 손님이 올때는 마담이 일부러 경아를 옆에 앉혔다. 제일 어리고 아직 때가 안 묻은 경아한테서 마담다운 이윤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하루 마담은 경아를 오성급 호텔로 데리고 갔고 늙은 한국사장님이 굳게 닫힌 처녀문을 열어 줬다. 경아한테는 금방 아파트가 차려졌고 몸뚱이에는 고급브랜드의 상품으로 리모델링 되었다. 사실 경아는 황진이를 몰랐다. 진희와 진이는 발음이 같았기에 손님들은 입담 좋고 노래 잘 하는 경아를 황진이라 불렀고 소문이 퍼지면서 경아는 창녀스타가 되었다.

돈에 미쳐 날뛰는 세상이었다. 돈만 주면 술상에서도 훌렁훌렁 벗어 던지고 이놈 저놈 하고 돌아가면서 붙어 버리는 그야말로 광란의 파티장이었다. 우리들이 지켜온 조선족 여성의 고결함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게 촌에서 올라온 남편에게 얻어 터지고 끌려가는 여자들도 많았고 고향 가서 이혼하고 개선문을 두드리며 올라오는 과부들도 많았다. 경아는 돈 보다 자신을 파괴하려는 욕구가 더 강렬했다. 손님보다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었고 손님들이 그러는 경아한테 빠지는 건 지극히 정상인 거였다. 여럿이 앉은 자리에서도 옆에 앉은 아가씨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투어 경아한테만 술을 권하고 경아의 술 만을 받아먹으려 하고 경아한테는 팁을 푹푹 찔러주고 따로 만남을 약속했다. 경아의 아파트에서 며칠씩 묵고가는 손님도 있었다. 경아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것들에 대책이 없었다. 닥치는 대로 먹고 마시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무리의 여자들이 경아의 아파트로 쳐들어왔고 부시고 던지고 꼬집고 호비고도 성이 차지 않아 면도칼로 경아의 얼굴을 거미줄 같이 그어버렸다. 경아의 창녀의 전성기는 반짝 하고 졌다. 그후부터 술집에 나갈 수 없었고 화장을 두껍게 하고 밤마다 거리에 나가 호객을 했다. 그때 경아는 자신에 대한 그 어떤 계획도 없었고 그 일을 접으려 해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시체 같은 날들이었다. 시장통의 온갖 장사군들과 일용직군들까지 닥치는 대로 주는 대로 그 몸으로 받아냈다. 생선 비린내와 발 구린내들은 살속으로 배여 들고 경아의 성기는 시궁창으로 썩어가고 있었다. 성병에 걸렸고 결국은 자궁까지 덜어 내고 말았다. 마담은 위장결혼을 알선해주었다. 혼인을 팔아먹는 한국의 또 다른 부류의 생계형이 광범하게 번식중이었다. 기회였다. 다른 길은 없었다. 감쪽같이 사라지고 싶었지만 술에 쩔어 만신창이 다 된 아버지는 많이 아프셨다. 경아는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버지인 줄을 그때야 알았다.

윤희는 담담하게 말하는 경아의 희끗희끗한 상처자국들을 하나하나 입을 맞추고 품에 꼭 안아 주었다. 세상의 아픔을 혼자 다 감당한 것처럼 억울해하고 분노하며 다른 사람의 삶을 하찮게 봤지만 경아 앞에서 만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언제나 견뎌준 건 경아였다. 언제나 져주는 건 경아였다. 경아는 윤희의 자유의 뜰이었다. 마음껏 놀다가 마음대로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아는 그렇게 하면 안되었다. 경아는 그렇게 하면 안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경아가 떠나고 윤희는 심한 몸살을 알았다. 죽을 만큼 힘들었다.

“윤희야, 배고프지? 너 어제 많이 취했더라. 속이 쓰려도 해장술 한잔이면 금방 시원해질 거야. 건데 궁금한 게 있어. 너 남편이 마누라가 외박했는데도 전화한통 없냐?”

“나중에 말해 줄게.”

눈을 내리 깔고 슬쩍 패스하는 의도가 심상치 않지만 그냥 놔둬야 했다. 그건 윤희의 특권이었다. 경아가 똥싸는 소리까지도 감추지 않고 이실직고해야 하는 것도 윤희의 권위였다. 경아는 모든 걸 받아주고 싶었다. 그게 살을 베는 아픔일지라도.

둘은 호텔을 빠져나왔다. 해는 중천에서 뜨거운 가을 빛을 무더기로 쏟으며 막바지로 달리고 있었다. 시간은 에누리없이 자기의 사명을 완성하느라 열심히 가고 있었다. 쉬지 않고 가는 시간이 고마웠다. 비록 이 순간도 피도 눈물없이 냉정하게 늦추지 않고 가겠지만. 시원한 바람이 툭툭 털어주자 둘은 마주보고 햇살처럼 웃었다. 그리고 어느결에 글썽이는 눈들을 황급히 돌렸다. 둘이 마주치는 한 슬픔만이 여운으로 남는 거니까. 둘은 간판들에 집중했다. 자본주의 진실을 떡 칠한 창녀의 얼굴들로 비죽비죽 내밀고 유혹하는 껍데기들을. 저런 양상들에 끌려 이 나라에 온 이방인들의 마음은 길바닥을 우왕좌왕하는 낙엽 마냥 혼란스러웠다. 24시 돼지 국밥집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 치는 와중에도 전심전력으로 손님들을 안내하는 얼굴들에 고달픔이 깔렸다. 거의 다 조선족들이였다.

경아는 직접 카운터로 가서 주문을 넣고 물이고 술이고 양손에 들고 자리 찾아 앉았다. 그러는 경아를 사랑스럽게 보는 윤희의 눈이 반짝였다. 이 땅에서 동포라며 교포라는 이방인의 삶은 얼마만큼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경아도 알고 윤희도 알았다.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움직이더라도 그들의 고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을 뿐이였다.

“해장으로 소주 한병만 까자. 안 넘어가도 한잔만 넘겨. 시원하게 내려 갈꺼야.”

경아는 윤희의 모든 것이 안쓰럽고 답답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묻어둔 말들이 신경이 쓰였다. 술에 취해 통곡하던 어제의 윤희가 가슴을 후비고 아직도 저렇게 여려 상처가 곪고 있는 상황이 두려웠다.

혼자서 갑자르는 경아가 시키는 대로 윤희는 속에서 열물이 당금 올라올 것 같았지만 말없이 따랐다. 윤희는 오만상을 찡그리고 한잔 원 샷 하고 내장탕 한 뚝배기 굽냈는데 경아는 도통 먹지를 못했다. 어제보다 한풀 축간 것이 어딘가 많이 불편한 것 같았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양이 탈이 많이 난 듯싶었다.

“우리집에 갈래? 이 근처야.”

“참, 너도 일찍이도 말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너의 방은 들여다 보고 가야지.”

둘은 살짝 얼굴을 붉히다가 두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택시를 부르지 말고 그냥 걷자고도 하지 않았지만 그냥 걷는 것으로 둘의 몸이 이미 답을 정했다.

경아는 여느 사람들 처럼 살고 싶었다. 몸 팔아 번 돈을 위장결혼에 다 처넣고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했다. 첨에는 식당일 하며 돈이 차곡차곡 모아지는 재미에 힘이 났다. 땀을 흘려 번 돈은 비록 적었지만 소중했고 아끼게 되었고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게 했다. 돈이 어느정도 모아지자 밥 점을 차렸다. 돈은 빨리 불었고 아버지를 초청해서 건강검진부터 받았다. 아버지는 위암3기로 진단을 받았다. 경아는 놀라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절차를 밟고 수술실로 아버지를 들여보냈다. 그제야 눈물이란 게 나왔다. 그것이 경아인생의 첫 눈물이었다. 쿡 찍어 입에 대 보았을 정도로 신기했다. 남들한데는 걸핏하면 잘 터져 나오는 그 흔한 것이 경아한테서 만들어지는 시간은 오래 걸렸다. 경아는 자신을 믿기로 했다.

아버지의 병세는 좀 나아지다가 확! 급속도로에서 방향을 꺾었다. 췌장암 말기였다. 제 아무리 의료기술이 발달했다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은 실수가 있는 거였다. 형편없는 병원이어서 오진이길 바랬다. 돌팔이 의사이길 바랬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기어코 가기로 했다. 한마디 말도 없이 경아의 이름 한번 불러주지 않고 가버렸다. 경아는 어둠속을 나는 외로운 새가 되어 방향감각을 잃었다. 가야 할 길이 없었고 길을 찾을 이유도 없었다. 삶의 의욕을 상실한 막바지에 들어서자 포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과의 기나긴 싸움이었다. 그속에서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였다.

아버지는 하루도 행복한 날이 없었다. 스스로 괴롭히며 그만큼 당신의 죄에 벌을 줬다. 경아를 사랑해주지 못해서 삶을 사랑하지 못해서 영원히 나오지 못할 감옥으로 들어갔다. 경아가 평생 아버지를 미워하게 했다. 경아는 생각할수록 끔찍했다. 한번도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스스로 가족을 밀쳐냈다. 가족은 처음부터 경아 옆에 있었고 한번도 경아를 버린 적이 없었다.

기진맥진해 걸으면서도 경아는 시간과 다투기라도 하듯이 단숨에 이야기를 쏟았다.

“경아 너무 자책하지 마. 아버지는 일생을 한소끔 도 울어보지 못하고 나한데까지도 미움만 받다가 가셨어. 아버지는 당신을 시원하게 잊고 편하게 살길 바랬던 거야. 그 누구의 이해도 바라지 않고 당신의 잘못된 방식으로 가족을 힘들게 하고 당신은 몇 곱절 더 힘들었던 거지.”

어느새 윤희의 집 문 앞에까지 왔다. 그때까지 꼭 쥐고 있던 두 손은 젖어 있었다. 윤희는 경아의 허리를 안고 집안으로 안내했다. 경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핸드백을 들고 화장실로 직행하는 경아한테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벌써 화장실 문은 딸깍 잠기는 소리로 답을 했다. 우두커니 화장실 문을 한참 쏘아보다가 윤희는 커피를 끓였다. 윤희는 알고 있었다. 어릴 때 경아의 가출은 순전히 자기를 떠나기 위함 이란 걸. 선생님들의 칭찬을 독점한 윤희의 주변에는 많은 친구들이 파문처럼 돌았다. 경아는 다가올수록 점점 더 밀려 나갔다. 공부는 아래로 미끄럼 치고 경아가 피어날 한줌의 흙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경아는 황량한 들판의 차가운 돌무덤을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살기 위해 선택한 최선의 길이였을 것이다.
윤희는 귀 볼을 만지는 느낌에 흠칫 떨었다. 경아는 윤희를 자기 앞으로 잡아당겼다. 입술과 입술이 서로를 더듬어갔다. 시간이 영원히 멈춘 듯이 둘은 오래오래 그렇게 서 있었다. 커피 주전자가 밑 굽을 달구는 소리로 앙탈을 부릴 때 에야 둘은 서로 게면 적게 웃으며 떨어졌다. 윤희가 다시 물을 붓고 끓이는 동안 경아는 한 눈도 팔지 않고 그 움직임들을 하나하나 기억속으로 그려 넣었다.

“경아, 솔직하게 말해줘. 너 어디 아파?”

윤희는 따끔거리는 경아의 시선을 정면으로 부딪히고 경아가 미처 돌리지 못한 눈길을 집요하게 집었다. 세탁기가 탈수하듯 조여지는 느낌에 경아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실실 능걸댔다.

“알았어, 알았다구. 내가 널 이겨본 적 있냐? 못된 것아, 나 술집아가씨로 있을 때 술에 절어 있었어야. 너도 미치게 보고 싶구 해서 황해가 술이라 해도 아마 밑 굽까지 다 퍼 마셨을 거야.”

“그래서 어쨌냐구?”

“어쩌긴? 술병에 위병에 상사병에 병들만 가득 수집하고 매입자를 기다리는 중이지. 조만간 결정이 날거야. 연락할게. 너도 한몫 챙겨줄게… 흐흐…”

“아픈데 농담이 나오냐구? 넌 나에 대해 한번만이라도 희망을 가져봤어?”

……

……

연기가 퍼지듯이 집안은 순간에 매캐한 분위기로 차버리고 어디서부터 문을 열고 나가야 할지가 막연했다. 경아는 후회가 쏟아지는 단 내로 숨쉬기조차 괴로웠다.

“윤희야, 나 커피 쫌… “

드디어 출입문을 찾은 경아의 빠른 입이였다.

그제야 윤희는 생각 난 듯이 황급히 커피를 따랐다. 경아는 커피를 받아 쥐고 이방 저방 둘러보며 딴청을 부렸다.

“와 우리 윤희 작가구나. 이 많은 책을 다 읽으면 뭐라도 되는게 아냐? 건데 12시간 일하면서 책 볼 시간이나 있나 모르겠네…”

“그냥 심심풀이로 보는거야. 짬을 내서…“

윤희는 다소 수그러진 듯 했다.

“그래도 책을 읽으면 생각이라도 할 게 아니가? 우리 윤희가 생각 없이 읽는 건 아니겠지? 너 뭘 쓰니?”

커피를 연신 홀짝이는 경아의 입술이 탐스러웠다. 저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시가 되고 산문이 되고 소설이 되여 윤희에게 읽혔다. 윤희는 경아가 작가가 되는 줄 알았다. 그것도 대만의 경요처럼 유명해질 줄 알았다.

“그냥 시를 좋아해. 아직 시라고 못하는 뭔가를 계속 낙서 중이야…”

“야! 같은 값이면 소설이나 쓰지 누구도 읽지 않는 시를 왜 쓰냐? 시인들이 제정신인 게 몇이나 있다구? 전부 외계인 염불만 중얼거리고… 그런데 너 신랑은? 잘 살고 있다면서 코빼기도 안보이냐?”

우물거리는 윤희가 답답하다 못해 경아는 또 시시댔다.

“그걸 물으려고 여태 알맹이 없는 쭉정이들을 까느라 내 입이 마른 게 안보이니?”

“한 입으로 말하기가…”

“윤희야, 우린 너무 많은 시간을 돌기만 했어… 어쩌면 계속 돌아야 하는지도…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한, 세상이 이끄는 대로 몸뚱이를 싣기만 하면 돼. 여태 온 것 처럼. 나도 남자 있어. 정진수라고 나보다 4살 어려. 나 재주 좋지? 네가 나를 거들떠보지 않아도 밖에서는 스타야.”

“그만해! 네가 이런다고 달라질 것 같나? 그런다고 속이 시원해? 피는 못 속이는 가봐. 넌 아버지의 길을 가고 있어…”

“그럼 어떻게 해? 우리는 어쩔 수 없어… 세상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구덩이에 처넣고 돌을 뿌릴 거야… 우리 옆집의 병철이 삼춘 처럼 변태라고 돌았다고 따돌림 시키고 가장 저급적인 말들로 개, 돼지보다 더한 짐승취급을 해 버릴거야. 극도의 스트레스로 자해를 하게하고 정신병원에 가두고 주사와 약물로 숨 쉬는 시체로 만들거야. 윤희야, 난 지금의 너의 모습이 좋아. 네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면 좋겠어.”

“경아, 넌 지금 내가 행복해 보여? 숨을 쉬려고 최선을 선택한 거야.”

“그럼 그렇게 가! 숨만이라도 쉴 수 있다면 제발 조용히 가줘라. 윤희야! 빈다!”

이러려고 온 건 아니었다. 왜 자꾸만 이 지경으로 만드는지. 후회스러움이 경아의 속을 훌쳤다. 소중한 시간들이 예상밖으로 흘러가 버려서 안타까웠다. 경아는 슬며시 다가가서 윤희를 꼭 안아줬다. 둘은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명백하게 보여지는 것들을 굳이 쓰레기 같은 언어들로 포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거리였다.

“윤희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패닉 상태에 빠졌어. 정신이 이탈된 매미의 껍질처럼. 옛날에는 아버지를 죽어라 하며 저주도 퍼부었는데 정작 돌아가시니까 그게 아니었어. 힘들었어. 그때 진수가 나타났어. 그는 나에게 진심으로 따뜻한 웃음을 줬어. 인간으로 사람으로 인정받는 기분이 내 몸의 죽어가는 세포들을 살렸어. 녹 쓴 가슴을 쓸어주고 황량한 들판에 꽃으로 다가왔지. 모래가 일던 내 마음은 어느새 꽃밭으로 싱그러웠고 낙엽으로 메말라 있던 내 얼굴에 촉촉한 생기가 돌았지. 나는 성의 정체성을 찾은 듯 했어.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너 만이 나를 인간으로 취급했으니 정체성에서 혼란스러웠을 거라고 믿었지. 또 그때는 어렸으니깐.

그런데 진수는 마누라가 있었고 딸도 있었어. 난 상관하지 않았어. 인간의 본질은 감출 수 없다는 거야. 욕심이 바닥을 치고 오르고 욕망이 넘쳐 버렸지. 진수는 어느 덧 가게 주인으로 되었고 남편이라는 자리에 있었어. 난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 했어. 하지만 과욕으로 얻어진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지. 진수의 마누라와 딸이 꿈에 자꾸만 나타나서 슬프게 우는 거야. 그만큼 진수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를 끌어안는 만큼 진수를 배로 힘들게 하는 건 나였어. 진수의 앞길을 매장하고 있는 내 자신의 뻔뻔한 사랑에 경악을 했지. 사실은 진수와의 섹스는 창녀로 있을 때 보다 더 혐오감이 들었거든.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고 세상의 행복한 가정들에 대한 질투였어. 나는 멈추기로 했어. 그런데 진수는 죽기 살기로 매달린다. 저걸 어찌해야 하니? 솔직하게 말해 줄 수도 없고…”

차분하게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윤희는 경아가 갑자기 미워졌고 이 순간을 이탈하고 싶었다. 경아가 말한 것은 언어가 아니었다. 짐승의 울음이었다. 귀를 도려내고 그 소리들을 파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전부 사실 이였고 자기가 사랑하는 경아의 독백이었다. 시가 되고 산문이 되고 소설이 되는 경아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들이었다. 살기 위해 악마도 서슴치 않는 경아가 불쌍했고 살기 위해 가면의 탈을 벗지 않으려는 자신이 가증스러웠다.

“경아야, 미안해… 난 어쩌면 벌써 죽었는지도 몰라… 남편이 이혼을 안해줘… 남편에겐 종가집의 간판에 먹칠하는 건 죽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이니까… 난 자살을 했지만 죽지 못했어. 그랬더니 별거는 하되 이혼은 안된데… 부모님이 실망하고 사업에도 물의를 일으킬 수 있으니 참아 달래. 별거는 하고 있지만 그 집안의 대, 소사 그리고 일년에 14번의 제사까지 참석해야 해. 지적이고 윤리적인 아내로 며느리로 연출하는 거지. 삼강오륜을 입으로만 달달 잘 외우는 며느리로 시부모님이나 친척들 한테서는 칭찬이 마를 새 없어. 타고난 나의 천성이 이렇게 쓸데가 많을 줄 몰랐어. 남편이 원하고 있는 건 나의 거짓이야. 밖에 애인도 있으면서 나를 포기할 수 없는 가련한 인간이야.
죽어도 시집은 안 가려고 했어… 다 들어줘도 그것만은 지키려 했어… 하지만 난 그냥 아버지에게 사육 당하는 가축이었지. 아버지는 엄마도 짐승으로 취급했어. 엄마는 온 몸의 뼈가 오그라드는 병에 걸렸었어. 똥 오줌을 이불에 싼다고 물도 주지 않아 벌벌 기여나와 아버지가 발을 씻은 물을 마셨대. 그것도 아버지한테 저지당해 병 보다 굶어서 돌아가신 것 같다고 보모가 일러줬어. 그런데 더 비참 한 건 엄마 장례식에도 참석 못했지만 나는 아버지한테 왜 그랬는가 고 묻지도 못했다는 거야. 꼬박꼬박 정해준 대학에 가고 정해준 대로 한국에 유학 와서 정해준 대로 뼈속까지 유교사상이 물든 종가집으로 시집왔지. 다행인건 남편과는 한번도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는 거야. 남편도 사랑 없는 육체관계는 원치 않았던 거지.

아버지의 그 넘쳐나는 ‘사랑’에 애인은 가는 데마다 널려 있었고 사생아도 많았지. 당신의 권력으로 돈으로 세상을 쥐락펴락 했지. 전부 고위관직으로 집어넣었다는 거야. 그런 부정부패한 간부가 나라를 얼마나 관심하겠어? 당신의 가정도 콩가루가 되고 친 자식도 이렇게 증오하는데 민심은 죽었겠나? 언젠가는 뒤엎겠지? 난 아버지가 빨리 죽는 것 보다 참회하고 괴로움에 못 견디는 시간을 한번만이라도 가져봤으면 좋겠어.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나에게 희망이라도 가지게 말이야… 경아, 난 힘들어. 내 안의 더러운 것들을 다 비우기 전에는 행복할 수가 없어. 내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 껍데기로 살아가는 내가 가증스러워. 어떻게 사는게 정답인거니?”

모든 아픔과 슬픔의 부스러기들을 다 들이 킨 것 처럼 경아와 윤희는 숨막히는 공포에 빠졌다. 서로에게 스며들겠다는 듯이 누가 떼여 놓기라도 할 가봐 부둥켜안고 비석이 되어 있었 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윤희야, 정답을 찾지 마. 그냥 꿋꿋하게 사는 거야. 갈증은 욕심이야. 들이 킬 수록 더 갈증이 나는 거구… 만족이 없어… 그래서 세상은 우리 더러 비우라는 거야. 나 갈게. 진단이 나왔을 거고 의사의 말씀 잘 듣고 얼른 나아야지. 이젠 윤희를 오래오래 봐야지. 쓴 시들도 꼭 보내주고…

그리고 한가지는 너가 잘못 알고 있어. 너의 안이 더러운 게 아니고 너의 밖이 더러운 거야. 또 우리는 변태가 아니야. 지극히 정상이고 감정에 진실한 거야. 돈으로 권력으로 계약된 사랑도 없는 혼인을 명예장처럼 받들고 있는, 온갖 가식적인 도덕을 입에 달고 사는 인간들이 변태들이야. 아직도 생산되고 있는 권력자들의 비위에 맞는 온갖 법규들이 그런 변종들을 싸지른 거지. 해마다 성 추문으로 진통을 겪으며 거짓이 진실보다 더 진실로 포장되는 이 땅에 윤리가 어디에 있고 도덕이 어디 있는 거야. 그러니 정답은 너를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이 세상을 악바리처럼 살아가는 거야.”

경아는 갔다. 가서 얼마 안되어 메시지가 왔다. 진단이 나왔고 괜찮다고. 걱정하지 마라고. 의사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있다고. 나중에 윤희 말도 그렇게 잘 들을 거라고. 잘 쓴 시들을 보내주라고. 대충 쓰면 안 본다고.


3
윤희는 식당일을 접고 도서관에 사서로 취직하고 창작에 열심이 했다. 주말에 경아를 만나려는 데 경아는 진수를 설득 중이니까 조금 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나서 밤마다 보리 꿈을 꿨다. 새하얀 털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보리를 꼭 안기만 하면 잠에서 깨는 거였다. 그냥 꿈이겠지 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겨울을 훌쩍 넘긴 어느 날 경아의 폰이 울렸다.

정진수였다. 경아가 위독하다고 했다. 윤희는 머리속이 하얘졌다. 하지만 잠간 쉬고 나서 덤덤하게 가방들을 챙겼다. 오래전부터 만들어 놓은 룰처럼, 그대로 차분하게 굽은 길을 지나는 것처럼, 무상한 삶에 익숙해진 듯이 받아들이는 데 습관이 되어버린 윤희 와 경아였다.

정진수는 병원밖에서 먼저 만나자고 했다. 정해진 커피숍 앞에 다 달았을 때 검은색 니트에 청바지차림의 남자가 마주오며 손을 내밀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정진수입니다.”

“어떻게?”

“아…예…사진에서 봤습니다.”
연변 억양이 다분히 담긴 30대 후반의 후 더운 인상이었다. 숱 많은 머리는 약간의 곱슬로 자유롭게 날리고 눈가의 몰려 있는 잔 주름들이 고뇌를 읽어주듯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애매하게 비비는 커다란 손은 여기저기 긁힌 상처들이 비죽이 나와 고달픈 삶을 고스란히 오픈 했다. 윤희는 카프치노를 주문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진수는 충혈된 우묵한 눈 사이로 흘러나오는 슬픔을 감추느라 자꾸만 아래로 시선을 꽂았다.

“경아누나는 위암입니다. 이미 전이는 벌써 되었고 수술을 방치한 것입니다. 그 누구 하고도 연락을 않았는데 갑자기 친구를 찾았다며 부산에 다녀오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따라 가려 했는데 마지막 소원이라며 모르핀만 챙기고 혼자 가겠다고 해서…”

방울진 눈물이 끝내 떨어졌다. 커피잔의 가장자리는 줄을 지으며 바짝바짝 마르는 시간을 쟀다. 상처에 갈라진 목소리는 문풍지에 매달린 낡은 종이 조각처럼 파르르 떨고 있었다. 저 마음만큼 형편없는게 있겠는가. 윤희는 진수가 불쌍했다.

작은 병원이라 환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병실은 적막했다. 꼭 감은 경아의 눈은 이 세상을 위해 다시 뜨지 않으려는 듯 너무 깊이 가라 앉았다. 이 고요를 뚫어 버릴 듯 쏟아지는 눈물에 윤희는 온 몸의 수분이 빨려 나가는 것을 느꼈다. 윤희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경아의 꼬챙이 같은 손을 당겨 자기의 브래지어 속으로 넣었다. “윤희야, 너의 젖이 우리 앞집의 영수 엄마만큼 크면 좋겠다” 아득한 곳에서 맑은 소리가 윤희의 심장으로 들어왔다.

“누님 일어나세요. 식사하러 갑시다.”

윤희는 간만에 통잠을 잤다. 웬지 한풀 더 내려앉은 듯한 경아의 이불에 다시 슬퍼지려고 하는데 경아의 눈 가장자리가 얼룩진게 보였다. 경아는 윤희를 느끼고 있었다.

“우리 그냥 여기서 먹어요. 캔맥주하고 마른 안주나 가져와요.”

“괜찮아요? 종일 못드셨는데…”

진수는 경아의 손만 잡고 있는 윤희의 침묵을 조용히 기다리더니 나갔다. 윤희는 이틀째 경아의 침대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눈물도 마르고 생각도 다 말라버렸는지 투명한 허울이 되어 경아를 감싸고 있었다. 매미가 나무에 매달린 듯이 허울속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에 흠칫 거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병원 안인데 눈만 감으면 허공에 떠있었다.

경아의 얼굴에 걸쳐진 햇살을 따라 가다가 창가의 목련나무가 앙상하게 떨고 있는게 보였다. 경아가 이 침대에서 저 목련나무를 보며 얼마나 떨었을 가고 생각하니 눈물이 또 났다. 경아는 무엇을 생각 했을가, 경아는 목련이 피기를 기다렸을가 하는 생각들이 마구 떠오르며 윤희는 엉엉 울어버렸다. 경아를 대신하여 분하고 억울 한 것들을 어떻게 해보려 해도 어쩔 방도가 없다는 것에 더 슬프고 원통했다. 윤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갑자기 창문이 점점 커다랗게 번져지고 목련나무가 눈앞까지 오더니 백목련 들이 한번에 불꽃 터지듯이 피였다. 순간에 영가 등으로 조롱조롱 매달렸다. 윤희가 손을 뻗어 영가 등을 만지려는데 경보기가 삐삐 울리고 발자국소리들이 들렸다. 다시 정신을 차리자 경아는 아주 편안한 얼굴로 윤희 쪽으로 젖혀졌다. 쟁그랑 뭐가 쏟아지고 깨지는 소리와 함께 누나! 누나! 누나! 진수의 절규가 들렸다. 비행기가 고공을 뚫고 오르는 것처럼 이명이 들리더니 소리들이 점점 사라졌다. 눈앞의 그림들도 소용돌이 치듯이 빙글빙글 돌며 회오리속으로 빠져갔다. 다시 그 소용돌이 속에서 금방 목욕하고 뽀송뽀송해진 보리가 마구 달려 나왔다. 홀라당 벗은 윤희는 발가락부터 끈적끈적한 보리의 애정 공세에 송충이처럼 허물떡 거렸다. 움직일수록 하얀 털들이 피부를 뚫고 나오며 윤희는 형용할 수 없는 절정으로 올랐다.

“여보! 여보!”

귀에 익은 소리가 어둠속에서 별이 부서져 떨어지듯이 왔다. 윤희는 눈을 번쩍 떴다.

“괜찮아?”

소리는 저 멀리에 있는데 남편은 코앞에 있었다. 어수선하게 왔다갔다하는 발자국소리들이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점적주사를 꽂은 팔의 저림도 점점 가까워졌다. 수염으로 감춘 얼굴에 푹 슬퍼진 눈길이 떨어졌다. 2년만이였다. 남편은 온갖 핑계로 집안 일에는 윤희만 참석하게 하고 얼굴을 내밀지 않았었다. 어쩌면 저렇게 늙을 수가 있을까? 그러면서 윤희는 아직도 그 꿈속같은 여운에서 나오지 못하고 당황했다. 그리고 절망했다.

“저 진수라는 친구가 당신 번호로 전화 왔더라구. 전화 한통도 없더니… 또 큰일 난 줄 알고…”

글썽해진 남편의 눈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눈까풀이 닫히며 밀려나온 눈물들이 귀속으로 추락하고 차가웠다.

“경아는요?”

“지금 냉동 시체실에 있어. 각막하고 신장을 기증했어… 보통 넘는 여인이야… 건데 가족이 없어서…참, 불쌍하군… 이제 날이 밝으면 내간대…”

“어떻게 해… 경아는 추위를 많이 타는데… 경아는 여태 추웠는데… 어떻게 해…”

윤희의 목젖은 더 이상 터져 나오는 소리를 지킬 수 없었다. 울음은 고삐 풀린 망아지들 마냥 마구마구 쏟아져 나왔다.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통곡하는 윤희를 남편이 꼭 안아줬다. 새처럼 작은 여자가 자꾸만 힘들어 했다. 연약한 이 여자를 힘들게만 해서 미안했다. 남자는 더 슬펐다.

얼마나 지났을까? 윤희가 조용했다.

“걸을 수 있겠어? 진수가 장례를 치른다며 저러고 있는데…”

윤희는 안타깝게 바라보는 남편의 눈을 슬쩍 피했다. 남편에게 부축되어 걸어가면서 윤희는 무슨 큰 결심을 한 듯이 남편의 손을 꼭 쥐였다. 남편은 흠칫 하더니 더 꼭 쥐였다.

진수는 검은 상복을 입고 무릎 꿇고 엎드려 있었다. 윤희도 진수가 챙겨 놓은 상복을 입고 그 옆에 무릎 꿇고 앉았다.

 

“누나를 만난지 삼년이 다 되가요. 제가 밀항으로 건너와서 여기저기 일용직으로 일 할 때 우연하게 누나의 가게서 밥을 먹게 되었어요. 자주 찾다 보니까 정도 들게 되고 누님 또 잘 챙겨줬죠. 일하고 돈을 못 받을 때가 많았어요. 불법체류자라는 약점을 노리는 악덕업주들이 기회를 엿본 거죠. 그때 누나가 저 보고 혼자 가게를 하니 도와 달라고 했어요. 누나가 도움을 주려고 그런 줄 알면서도 못 이기는 척 했죠. 가게서 숙식만은 안된다는 걸 억지로 설복시켰어요. 마누라와 딸한데 버는 대로 다 부치다 보니 보증금 낼 만한 돈이 없었어요. 그런데 누나도 돌아가신 아버님의 병치료에 돈을 다 쏟다 보니 방 한 칸 얻을 수 없어 가게 쪽 방에 있었거든요.

비참한 건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몸뚱이라는 거죠. 수음으로 보낸 날들이 많아지면서 심술궂은 소리로 툭툭 반말을 하며 누나를 괴롭혔어요. 연변에서 북한 식 냉면집을 차렸던 경험을 살려 가게를 널리고 경영방식을 바꾸면서 장사는 날로 잘 되어 갔지만 누나는 하루하루 말라갔어요. 누나는 번 돈을 몽땅 저의 통장에 넣어주며 자진신고를 하고 벌금을 내라고 했어요. 저는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빌라를 전세 내고 가게를 저의 이름으로 올리고 마누라와 딸을 초청했지요. 그때 마누라가 몇 년을 딴 놈과 놀아 난 걸 고향친구한테서 얻어듣고 초청을 취소하고 몇 달을 술로 개겼어요.

그날도 설이였어요. 가게서 술만 들이 키다가 그만 주체하지 못하고 주방에서 청소하는 누나를 넘어뜨리고… 하다가 정신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멈출 수가 없었어요. 미안하다고 소리치며 울면서 쏟았어요. 그동안 참고 참아 왔던 그 더러운 욕정들을 누나의 안으로 퍼부었어요. 눈물만 흘리는 누나를 노려보다가 밑바닥까지 가버린 절망에 칼을 찾아 들었지요. 더러운 것을 자르고 싶었어요. 누나가 소리쳤어요. 하고싶었다고! 지금도 하고 싶다고!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우리는 부둥켜안고 허겁지겁 또 시작했지요. 그렇게 우리의 두번째 설을 보냈어요.

저는 아직 미혼인 누나와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집에 없을 때 마침 딸의 편지가 도착했고 누나가 보게 된 거죠. 그 뒤로 누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나 봐요. 결혼은 안 할 테니까 애 하고 애 엄마를 초청하라면서 여태 저를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병을 알고도 일부러 수술을 안한 것 같아요. 저는 누나를 아프게 한 죄인이고 살인자예요. 저를 저주합니다. 평생 용서가 안될 거예요. 죽고 싶지만 죽을 권리도 없어요. 홀가분하게 잘 죽을 때까지 살아야죠.”

한 남자의 가슴을 긁는 소리에 윤희의 가슴은 찢겨 나가는 것 같았다. 아픈 경아를 더 아프게만 했던 자신을 어떻게 용서할까?

“아… 참, 이건 누나가 윤희 누님에게 전해주라고 했는데 제가 요즘 제정신이 아니라 깜빡 했어요.”

진수는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건넨다.

“누나가 신신 부탁했어요. 절대로 알리지 말아 달라고. 조용히 가고 싶다고. 그러면서 윤희 누님의 사진을 머리맡에 놓고 매일 울었거든요. 경아 누나는 다른 사람에게 슬픔을 배려하지 않아요. 혼자 다 아파해요. 그래서 연락 드렸어요. 두 분은 자매 보다 더 극진한 사이죠. 질투가 날 정도로요. 그런데 그 어려울 때는 한번도 연락을 안하다가 마지막에 불쑥 찾아 갈 때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보고싶었구나 했어요. 건강할 때 자주 연락하고 다녔더라면 아프지도 않을 수 있지 않았을가요?”

비수가 되어 윤희의 정곡을 찔렀다. 어쩌면 경아는 윤희를 찾으러 저 죽음까지 간거였다. 이 세상은 경아한테 윤희를 주지 않았다. 윤희는 경아가 찾던 그 길에는 없었다. 윤희는 아직 헤매고 있었다. 솔직하게 어느 길을 갈 것인가를 자신한테 알리기가 겁났다.

‘윤희야, 너의 시를 읽고 참 많이 울었다. 그 꼭 다문 입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그 누가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나는 널 안다. 너의 마음에 일었던 수많은 파도를, 삶에 대한 너의 절절함을. 윤희야, 힘 내라! 그리고 좋은 시를 많이 쓰길 바란다. 사랑한다 윤희야! 미안하다 윤희야!’

윤희는 편지를 마구 뿌리면서 영정 앞으로 벌벌 기여가며 통곡했다. 바닥을 때렸다. 절규했다.

툭! 생화 한 잎이 떨어졌다. 경아는 영정사진 안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웃는데 분명 웃고 있는데 눈물이 방울 져 당금 떨어질 것 같았다. 툭! 툭! 툭! 눈물이 떨어졌다. 생화들이 떨어졌다. 바닥이 꺼져가고 집이 내려앉았다.


4

“여기에 있었군… 한참을 찾았는데… 오늘 올라 갈거야?”

들었는지 말았는지 윤희는 계속 경아의 옷들을 태우고 있었다. 밝은 색 하나 없는 검정 옷 들 뿐이였다. 경아는 기나긴 장례식을 치르고 갔다. 그에게 삶은 하나의 장례식장이었다. 살아온 이야기는 무거운 장송곡이었다.

남편이 뒤에서 섬섬 댔다. 윤희는 그제야 초점 없는 눈으로 돌아봤다. 담배꽁초가 무더기로 쌓인 걸 보니 그러고 있은 지가 한참 된 것 같았다.

“예… 밤차로 가려구요… 당신 급하면 먼저 가요…”

“그래, 저쪽에 일이 마무리가 안되어서 가봐야 되. 힘 내고! 전화할게…”

윤희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깨라는데 남편의 어깨는 육중한 무엇에 사정없이 처졌다.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는 말의 진실을 이렇게까지 아파하며 이해해야 하는건지… 윤희는 모든 게 미안 할 뿐이였다. 살아 있어도 산 것 같지 않은 저 남자의 인생도 자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스적스적 발걸음소리가 옆에 와서 툭 그쳤다. 진수였다.

“왜 죠? 왜 안되는 거죠?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안타까워요… 경아 누님도 그렇고 윤희 누님도 왜 그렇게 삶을 고행으로 몰고 가나요? 단순하게 쉽게 가면 안될까요? 옆에 사람도 숨 좀 쉬게요…”

“노력을 해도 되는 일이 있고 안되는 일이 있어요. 진수씨라도 해봐요. 경아의 소원이기도 하니까. 경아의 기일에 식구들 단란하게 모여 가족의 분위기를 만들어줘요. 남들에겐 흔한 일상인데 경아는 한번도 가족을 가져보지 못했으니깐요.”

“경아 누나는 저를 떠나지 않았어요. 저도 보내지 않을 거예요. 다만 살아있는 죄로 저 자신을 용서하고 마누라도 용서해야죠.”

“그래요. 우리, 경아를 편하게 보내요... 더는 힘들게 하지 말자요…”

경아가 남긴 거짓말을 윤희는 지키기로 했다. 경아는 그 어떤 타격이 윤희에게 올 가봐 죽을 때까지 비밀을 가지고 갔다. 거짓이 남용되는 인간 세상엔 진실이 가치가 없었다.

윤희는 새벽에 부산에 도착하자 해운대바다가로 나왔다. 파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처절 썩 한번 쳐주고 가서는 또 처절 썩 튕겨주고 갔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솔직해질 수 밖에 없었다. 윤희는 지나간 날들을 다시 잘잘하게 되새갬질을 했다. 넘어가지 않은 알갱이들이 툭툭 터지며 쉰 내를 풍겼다. 덜 익은 마음들과 욕심들이 비벼진 찌꺼기들 뿐 이였다. 인간으로서는 저버릴 수 없는 욕망, 한쪽발이 빠지면 다른 쪽 발마저 빠지길 원하면서도 변명이라는 색갈들을 맞추는 고얀 것이 있었다. 자신의 거짓을 감출수록 고통의 부피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띠리 리 메시지가 들어왔다. 남편이였다.

‘집에 잘 들어 갔지? 몸은 괜찮아? 푹 쉬고 일 천천히 시작해…’

훈훈한 봄 바다 바람이 윤희의 얼굴을 쓸어주었다. 윤희는 무엇을 말해주는 양 끊임없이 하얗게 다가오는 파도에 맨발을 맡겼다. 차가운 발로부터 올라오는 짜릿함은 머리끝까지 찌르며 탁해 있던 머리속을 시원하게 비워줬다. 태양의 고드름이 부서진 바다위에 옥구슬들이 오구구 모여 덩어리로 달려왔다. 보리였다! 아니 경아였다. 보신탕에 팔려가 아버지의 술로 바뀐 보리를 위해 경아는 끝끝내 보리로 왔다. 사랑으로 왔다. 윤희는 골회 함을 들고 바다의 한복판으로 나갔다.

파도가 멈췄다. 바다는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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