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룡 특약기자

 

콩코르드 광장(協和廣場)

다음으로 우리는 콩코르드 광장으로 갔다. 콩코르드 광장은 파리시 한복판의 센강 북쪽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동서길이 360m, 남북길이 210m, 면적은 8.64ha로 파리에서는 가장 넓은 광장이다. 파리에서 가장 큰 광장이라지만 북경의 천안문(44ha)에 비하면 1/5밖에 안 된다.

팔각형으로 이루어진 이 광장은 원래 프랑스 부르봉왕조(波旁王朝)의 왕 루이 15세(재위 1715∼1774)의 기마상을 세우기 위해 1775년에 조성 되였으며 이름도 당시에는 ‘루이 15세 광장’이라 불렸으며 1770년에는 왕세자(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玛丽•安托瓦内特, 1755~1793)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면서 광장의 역사는 피로 얼룩지게 되였다. 1792년에 루이 15세의 기마상이 파괴되고 이듬해에는 기마상자리에 단두대가 놓여 왕족과 귀족, 성직자 등 1,343명이 처형당했다. 1793년 1월 21일 프랑스 혁명 중에서 루이 16세가 이곳에서 처형되었고 10월 16일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목을 잘린 형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혁명가인 로베스피에르(罗伯斯庇爾758~1794, 프랑스 혁명시기의 정치가)와 당통(1759~1794, 프랑스혁명시기의 정치가)마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단두대가 있던 자리에는 지금 분수대가 있다.

콩코르드 광장

1795년에 비로소 공포 정치가 끝나고 이 광장의 이름은 이러한 어두운 역사를 넘어 평화화 화합으로 나가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아 화합, 일치라는 뜻으로 콩코르드 광장(協和廣場)이라고 불리게 되였다고 하는데 우리말로 하면 ‘협화광장’ 혹은 ‘화합광장’이라고 할수 있다.

현재 광장 중앙에는 1833년 이집트의 총독이었던 무하마드 알리 파샤(穆罕黙德•阿里)가 프랑스의 루이 필리프왕(路易-菲利普, 1773~1850)에게 선물한 방첨탑 (方尖塔)이 우뚝 서 있다. 이 탑은 이집트의 람세스 2세(拉美西斯二世) 때 제작된 것으로 룩소르(卢克索, 이집트 키나 주에 있는 상업 도시) 신전(神殿)에서 옮겨왔는데 운송 기간만 약 2년 반이 걸려1836년 10월에 파리까지 왔다고 한다. 방첨탑의 높이는 23m에 230톤의 무게에 달하며 네 면에는 파라오(法老, 고대 이집트의 왕을 이르던 말)를 찬양하는 노래가 상형 문자로 새겨져 있다. 방첨탑의 좌우에는 로마의 산 피에트로 광장(圣彼得大广场)을 본딴 분수가 있으며 8개의 모퉁이에 코르투아 플라이에가 만든 여신상이 놓여 광장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이 녀신상들은 각각 마르세유(马赛), 낭트(南特), 리옹(里昂), 보르도(波爾多) 등 프랑스의 8대 도시를 상징한다. 탑, 조각물이, 분수로 이루어진 광장의 야경은 격동의 역사 씻어 내듯 평화롭고 낭만적이다.

그때의 기술로23m높이에 230톤의 무게에 달하는 이 거대한 물체를 지중해 동남쪽 이집트에서 지중해 서북쪽 불란서까지 어떻게 운반해 왔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의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향수박물관

콩코르트광장을 다 구경하고 우리는 파리의 향수박물관으로 갔다. 향수박물관은 프랑스 파리 스크리브 거리에 있는 향수 전문 박물관이며1860년에 세워진 나폴레옹 3세(1808~1873)의 저택을 박물관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1926년에 세워진 향수 회사인 프라고나르회사가 5000년에 이르는 향수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1983년 설립하였는데 회사 이름을 따서 '프라고나르 향수 박물관 이라고도 부른다.

이 향수박물관은 2004년 9월 30일에 폐관하여 4년간의 대규모의 보수를 거쳐 2008년에 다시 개방하였는데 총 비용이 1,400만 유러(약 1,881만 딸라)가 들었다고 한다. 박물관은 보수를 거쳐 면적이 원래의 두 배로 확대되어 1,500㎡로부터 3,000㎡로 확대 되었다고 한다.

수건후의 박물관은 장식풍격에서 새로운 돌파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허다한 보기 드문 수장품들을 전시하였는데 박물관에 소장된 것이 5만여 건에 달한다고 한다. 향수박물관은 주로 역사구와 수장품구 두 구역으로 나누는데 각 시대별 가구들을 배경으로 향수를 비롯해 향수병, 향수 저장 용기, 제조도구, 화장품 세트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으며 동서양의 각 시대별 향수와 화장품 종류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향수제조기기들

각 시대에 만들어진 향수병은 당시의 유행을 반영한 것이어서 설계와 유행의 변화도 알아 볼 수 있었으며 향수 추출을 하는 증류기 등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각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어 향수의 제조와 포장 방법이 발달해온 역사를 알아볼 수 있었다. 현대식 향수 제조 방법도 제조 공정 전체를 실제 설비 그대로 전시해 놓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으며 관람객들에게 향기를 맡는 법 등 향수에 대한 지식을 설명해 주었으며 향수 종류별로 냄새를 맡아보는 항목도 있었는데 젊은이들 특히는 젊은 녀성들은 냄새를 맡아보고 여러 가지 향수에 대한 이런 저런 평가를 하였지만 나로서는 남들을 따라 냄새는 맡아보았지만 맡아 본다더라고 맡았지 좋다 나쁘다 감정 할 수 없었다.

박물관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전시품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프랑스 국왕 루이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 왕후의 여행트렁크이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1791년 불란서대혁명 때에 마리 앙투아네트 왕후는 이 트렁크를 가지고 프랑스에서 피란을 떠났다고 하는데 트렁크의 무게가 80킬로그램에 달했고 한다. 그 안의 물품들을 보면 마리 앙투아네트 왕후가 쓰던 보온병, 화장품상자, 그리고 야외식사도구 등이라고 한다.

박물관 안에는 프라고나르 회사의 화장품상점이 있어 유람객들은 그 자리에서 공장가격으로 마음에 드는 그라스화장품공장에서 생산한 여러 가지 화장품을 살 수 있었다.

향수판매진열대에서 일을 보고 있는 한국 여성

우리 일행가운데는 세 쌍의 젊은 부부 외에 젊은 여성이 여럿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중국에서 사는 것보다 질도 많이 좋거니와 가격도 중국에서 사기보다 많이 싸다며 자기네도 쓰고 돌아가서 선물로 주겠다며 여러 가지 화장품들을 쌌는데 저마다 한 가방씩은 되게 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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