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허경수
[서울=동북아신문] 서근호는 어느 날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모병원의 간호사로 근무하는 아내의 허리까지 드리운 함치르르한 머리채를 연상하며 시 ‘머리채’를 써서 시 문학지 <시향>에 투고했다.
두 달 후 그의 시는 발표되었다. 서근호는 설레이는 가슴을 붙안고 아내에게 ‘시향’을 펼쳐 보이었다. 아내의 눈은 반짝 빛났고 달걀형의 하얀 얼굴에 홍조가 살짝 어렸다. 서근호는 가슴이 찌르르해지며 어깨가 으쓱해났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어 시 ‘머리채’를 낭송했다.
“까만 폭포런가 함치르르한 머리채/ 내 그 아래서 물고기가 되고파/ 까만 수양버들인가? 허리까지 드리운 머리채/ 내 그 속에서 나비가 되고파/ 노을이 비꼈는가 향긋한 체취/ 걸을 때에 물결이 이네.”
“아이참, 제가 뭐 선녀인가요?”
행복감에 젖은 아내의 목소리는 찰떡에 꿀을 발라 먹었을 때의 기분이었다.
“허허, 선녀보다 더 곱소.”
서근호는 흥분에 들뜨며 아내를 보듬어 안았다.
몇 달이 지났다. 운수 좋게 서근호가 쓴 ‘머리채’가 우수상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퇴근하여 바람결마냥 집에 달려갔다. 집에 들어서니 아내가 방긋 웃으며 맞아주었다. 기쁜 소식을 막 선포하려던 서근호는 달걀을 물었을 때처럼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허리까지 드리웠던 함치르르한 머리채는 간데 온데 없고 아내의 하얀 목 위에 단발이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었다.
“놀라기는요? 남들은 보귀한 생명마저 버렸는데, 다음 번엔 ‘단아한 단발’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써보세요, 혹시 명작이 될 수 있지요, 호 호 호.”
아내는 명랑한 목소리로 말하고 금쟁반에 은구슬을 굴리듯이 맑은 웃음을 까르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