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쥐라고 해서
2)서생원鼠生員에 대한 단상
3)서생원鼠生員
4)춘서春鼠 동서冬鼠
5)열두 마리 흰쥐
6)서생원鼠生員 야夜
7)서鼠 찬가讚歌

 

정성수 시인(약력 하단)

 

쥐라고 해서

 

천장에서 팔뚝만한 쥐가 떨어졌다. 빗자루로 내리쳤다.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쥐가 떨어진 천장 구멍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날쌘 것은 꼬리가 보이지 않았다.

여름이었다. 장맛비에 쥐구멍에 물이 차자
쥐들이 이사를 갔다
큰 새끼가 어미 꼬리를 물고 그 꼬리를 다음 새끼가 물고
또 다음 새끼가 꼬리를 물고
쪼르르 달려간다
그 와중에서도 쥐들은 기차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한때는 쥐 잡는 날이 있었다
요즈음에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본 일이 없는 쥐는 마음속에도 없기 때문이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고
유행가를 불러대도 세상은 귀머거리들뿐이었다

독안에 든 쥐를 잡겠다고 설치지 마라. 잘못되면 독만 깬다. 뚜껑을 닫아놓고 삼일만 기다려라. 삼일만 굶으면 월장하게 돼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쥐라고 해서 다 같은 쥐가 아니다.

 


서생원鼠生員에 대한 단상

 

약삭빠르다고 비웃지마라 그렇게 살지 않으면
어찌 캄캄한 구멍을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겠는가
아둔한 인간이 쥐의 머리를 따라간다는 것은
새 발의 피다
쥐가 알곡을 물어 나르며 겨울을 준비하는 동안
인간들이 하는 일이
고작 쥐의 흉이나 보고 있다면
그게 만물의 영장이냐
작은 눈과 날카로운 이빨이야말로
쥐의 자랑이자
안식을 얻는 무기다
어떻게 표정관리를 해야 인간들이 긍휼히 여길 것인가
쥐의 생각은 이래저래 깊다
인간들은 킥킥킥 웃으면서
쥐들이 찍찍찍 우는 꼴을 못 보는 세상은
다음 해에 오는 해亥 보다 못하다
그렇다고는 하나
멸시와 굴욕을 견디는 건 온전히 쥐의 몫이다
한 때는 임금님 턱밑에서
조조수염 노릇을 하고
임금님 귀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를 질러대던 쥐가
알고 보니 서생원鼠生員이었다

 

서생원鼠生員

 

소과에 급제한 서생원의 눈은 까맣다 못해 시커멓다
섬뜩하고 교활한 눈빛은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는 손전등이었다

뾰족한 머리통과 긴 꼬리는 우스꽝스러운 것이 아니다
생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런 서생원을 인간들은
인간들을 빗대어 쥐새끼 같은 놈이라고 비아냥댄다

서생원은 캄캄하고 음습한 곳을 좋아한다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구멍
쥐구멍이다
그곳은 훔쳐온 알곡을 쟁이는데 용의할 뿐만 아니라
예리한 고양이의 눈빛도 무용지물이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헛헛한 세상을 부지할 수 있다고
서생원이 요설을 늘어놓을 때
그의 얼굴은 번지르르하고 희색만면하다

할 일 없는 날은 이빨을 돌에 갈았다
서생원은
그래도 이빨은 우후죽순처럼 잘도 자랐다

 


춘서春鼠 동서冬鼠

 

1)
천장은 운동장이었다. 쥐들이 공을 차는지 달리기시합을 하는지 난리가 아니었다. 쫓기다가 다급해진 놈이 우리 안방으로 뛰어내렸다. 까만 쇠구슬 같은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쥐는 징그럽고 무서웠다. 내 유년의 시골집은 쥐들의 세상이었다.

2)
폭설로 쥐구멍이 막혔다. 난감해진 쥐들은 눈이 녹기를 무작정 기다렸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기다리는 것도 살아가는 방법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지식보다 경험이 훨씬 나을 때가 많았다. 겨울은 영원할 것 같았지만 결국 봄은 오더라.

3)
젊은 쥐는 혈기로 살고 늙은 쥐는 지혜로 산다.

 

열두 마리 흰쥐

 

열두 마리 흰쥐가 우리들 곁에 왔다
경자년이다

인간들은 어느 날부터 쥐들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영악하고 간교하고 음흉하다고

쥐에게는 날개가 없어 허공을 나르는 꿈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캄캄하고 음습한 구멍이 제 집일 뿐

쥐의 생은 구멍 속에 일용한 양식을 쌓고
새끼들을 생산하는 것이
처음이자 끝이었다

날고 싶다는 욕망은 못 올라갈 나무를 쳐다보는 것
끓는 피는 감당할 수 없는 말줄임표다

오늘밤에도 쥐는 야음처럼 다가오는
고양이 발소리를 듣기 위해
땅에 귀를 댄 채로 잠이 드는 것이다

쥐새끼 같다는 멸시와 조롱을 질근질근 씹으면서
열두 마리 흰쥐들은

 


서생원鼠生員 야夜

 

어둠이 제법 깊은 저녁이었다

삼일 굶은 서생원이 간덩어리가 부었는지 살강 위에 모셔놓은
밥을 퍼가는 것이었다
지뢰밭에 흩뿌려놓은 쥐약을 용케도 피해 눈알을 굴릴 때
똥그랗고 꺼먼 눈은
교활하고 의뭉스럽기 짝이 없다

어디선가 가늠쇠구멍을 들여다보고 있을 야전병 묘猫일병이 두려웠지만
체통이 있지
겁을 먹는다는 것은 서씨 가문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며
조조수염 같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고양이를 잡으려면 고양이 꼬리를 밞아야 한다는
참말 같은 거짓말을 갉아먹어도
서생원이 두려운 것은 묘猫일병의 총구가 아니라 짧은 밤이었다

드디어 앞마루에 쌓아 둔 고구마가마니에 들락거릴 구멍 하나를 냈다

밤을 낮 삼아 등짐 몇 번이면 한겨울이 춥지 않을 것이라는 진리를
서생원은 알고 있었다

 


서鼠 찬가讚歌

 

경자년이 왔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마리 짐승들 중에서
제일 먼저 앞장 서 왔다
하얀 쥐가 되어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라고
2020년 첫날에 왔다

쥐를 말할 것 같으면
튀어나온 입과 까만 눈과 빳빳한 수염이 전부가 아니다
눈치는 절간에서 새우젓을 얻어먹고
동작은 번갯불에 콩 튀겨 먹는다
애교는 말 그대로 기생 뺨을 치고도 남는데

쥐약과 쥐덫이 도처에서 주검이 되라고
겁박을 해도
발톱을 감춘 고양이들이
입맛을 다셔도
쥐구멍으로 꼬리를 감추는 영민함을 하늘은 안다

어디 그뿐이랴
자식을 낳았다하면 기본이 죽이다
인구 절벽인 대한민국에서는
다산의 왕으로 받들어야 한다
삼천리금수강산이 인산인해가 되는 그 날까지

쥐똥나무 아래서
쥐눈이콩 같은 눈으로
경자년庚子年아! 너 거기 서鼠있어 꼼짝 말고

 

정성수 약력 :
 
• 저서 : 시집 공든 탑 외. 동시집 첫꽃 외. 동화 폐암 걸린 호랑이 등 59권
• 수상 : 세종문화상, 소월시문학대상. 아르코문학창작기금수혜
• 전주대학교 사범대학 겸임교수 역임
• 현) 전주비전대학교 운영교수
• 현) 향촌문학회장. 사/미래다문화발전협회장. 고글출판사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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