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소리]2003-12-11

11일 정오 서울노동청 앞에 이주노동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이주노동자 강제추방을 규탄하는 전국동시다발 회의 하나다. 이달에만도 강제추방을 피해다니다 조선족 노동자 김원섭 씨가 길에서 동사했고 방글라데시에서 온 자카리아씨가 차가운 컨테이너 안에서 숨졌다.
치란 다라까, 네팔 비꾸, 안드레이아, 브르혼, 카미.

올해들어서 자살한 이주노동자들이다. 요즘 집회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이주노동자들의 얼굴을 볼 수가 있고 가장 열심이다. 그 이유를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27일째 농성을 벌이시는 이주노동자 여러분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라는 사회자의 말로 집회가 시작되었다. 전날 1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침묵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연행되었는데 끊임없는 면담요청과 항의방문 투쟁으로 석방 약속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힘차다.
"비자줘라 비자줘라 우리한테 비자줘라"
"Action Action Direct Action"
"강제추방 박살내자 노동비자 쟁취하자"
"Let"s fight together"

첫 발언자로 나선 민주노총 서울본부 부본부장은 "사용자와 자본가의 횡포를 막아야 할 노동부가 앞장서서 이주노동자를 탄압하고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며 "일본제국주의가 조선노동자들에게 행한 짓이나 부시가 이라크 민중에게 행한 짓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분노를 표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왔다는 자히디씨는 "고용허가제가 얼마나 악랄한 것인지 직접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는 알고 있다"며 "어떤 제도를 만들면 한국 시민들한테 어떤 영향을 줄지는 고민하고 만들겠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제도는 우리에게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히디는 "계속 우리 동료를 죽이고 있는 고용허가제가 아니라 노동허가제가 쟁취될 때까지 이 곳을 떠나지 않고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프지 마세요"

이날 류금신씨가 노래를 대신해 이주노동자들에게 전한 말이다. 그는 "바늘구멍이 황소바람이라는 한국속담이 있다"며 "농성텐트에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대낮에도 얼마나 추운지 알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또 "한 동지마다 돈 떼인 사업장이 세 군데는 될 것"이라며 "같은 한국인으로서 너무 죄송스럽다"고 사과의 말을 전했다.

현재 서울에만도 600여명의 이주노동자가 명동성당 등지에서 농성중이며 안산, 마석, 대구, 창원 등 전국적으로 1,000여명에 이른다. 농성 중에 컵라면을 먹으러 나왔다 인사도 못하고 끌려가는 동료들도 있다. 제조업 단속은 하지 않겠다던 말과는 달리 현장에서는 실적을 채우기 위한 이주노동자 사냥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집회가 진행되던 시간 인근 초등학교의 1,2학년 꼬마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집회 대오 가운데로 지나가며 이주노동자들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해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벌써 7명이 죽었는데 한국정부는 아무 말이 없다. 우린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기 위해 왔지만 가족도 있고 슬픔도 아는 인간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꿈을 꾸면서 한국에 왔다. 아이들한테 맛있는 것, 이쁜 것을 사줄 꿈을 꾸면서 왔다. 그러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마지막 순서인 이날 집회를 주최한 평등노조 이주지부장의 발언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기만적인 노동정책에 일침을 가한다.

"노무현 정부는 노동3권을 약속한다. 이런 거 다 뻥이다. 한국의 노동자도 노동 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데 이주노동자가 받을 수 있겠는가"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