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재중동포 국적포기 운동이 불러온 후유증

[오마이뉴스]12-5

불법체류 재중동포들의 구제방안으로 시도된 집단적인 중국국적 포기 및 한국국적 신청운동이 중국정부를 자극하면서 한-중간 외교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 문제로 인해 중국정부가 조선족 출신들을 탄압하고 있다는 주장마저 제기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최근 중국정부가 조선족 출신의 중국공산당 간부와 공안(경찰)간부 등에 대해 정치심사 및 출국금지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한국에서 강제출국 조치된 재중동포들이 거액의 벌금형 또는 인신구속 등 과중한 처벌을 받고 있다는 소식에 재중 동포사회가 술렁거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주최한 연합예배에서 만난 수 명의 재중동포들은 <오마이뉴스> 취재진에게 "국적포기 운동"은 "재중동포들을 불가마에 내던지는 일"이라며 이 사안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중국동포 농성현장(명성교회)을 방문한 날(11월 29일), 중국에서 온 특파원으로부터 "조선족 출신인 당 간부와 공안간부만을 대상으로 (중국)당국이 정치심사를 하고, 조선족 출신 당원들의 출국을 금지시키는 등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국적포기 운동 이후 중국 조선족 출신 당원들에 대한 심사 강화

<오마이뉴스>는 한국에 들어와 있는 재중동포들에게 중국 내 심상치 않는 소식을 전한 이 특파원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이 특파원은 4일 전화통화에서 "56개 소수민족을 한족으로 동화시키는 일에 애를 쓰고있는 중국정부는 (한국 내 조선족들의) 국적포기 운동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이 특파원은 또한 "이 일이 벌어진 이후 조직부에서 한국에 출국하려는 당원들에 대해 심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심사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만 정치심사는 당에 대한 충성도를 점검하는 심사라고만 말했다.

현재 중국 북경에 있는 리동춘(49. 재중동포) 북경녹색기술경제대학 설립이사장은 2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정치심사는 성격상 공식 발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며, 다만 조선족 간부들이 이 일로 곤란을 겪고 있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리 이사장은 또한 "조선족을 돕기 위해 일을 한다면 나무 한 그루 보다 전체 숲을 보는 안목을 갖고 일해주기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리 이사장은 지난 10월 국적포기 운동을 주도해온 서경석 목사에게 이 운동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공개편지를 보낸 바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2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조선족 출신인 중국외교부 고위 간부가 최근 한국 정부를 방문했다"며 출국금지조치가 사실이 아니라면서도 "이런 문제(국적포기)는 신중하게 추진해야 하며, 양국의 우호적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정치심사 여부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해명하지 않았다.

강제출국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중국 내 조선족에게 "불똥"
지난달 13일 재중동포 5503명은 집단적으로 한국국적 회복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법무부에 낸 바 있다. 이어 14일부터 2400여 명의 동포들이 서울조선족교회와 소망교회 등 서울·경기지역 8개 교회에 분산돼 합법체류를 요구하며 16일 동안 단식농성을 전개했다.

재중동포들이 한국국적 신청서를 낸 것은 불법체류에 따른 강제출국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서경석 목사(조선족교회 담임목사)와 중국동포 이철구(66·흑룡강성)씨는 지난달 14일 낸 "헌법소원심판청구서"에서 "중국 동포들이 자진해서 중국국적을 취득한 게 아니므로 한국국민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한국에 돌아와 살 권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재중동포의 집단적 국적포기를 "체제에 대한 반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국가다. 따라서 재중동포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중국국적을 포기해야 한다. 중국정부는 개별적인 국적포기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집단적인 국적포기는 체제에 대한 반기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중동포 돕기 단체 관계자들은 중국정부가 국적포기운동을 초기에 진화하기 위해 정치심사와 거액의 벌금 등의 제재조치가 뒤따랐을 것이라는 증언에 대해 신빙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중국정부는 재중동포들의 집단 국적취득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한국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외동포법 개정 운동과 재중동포 돕기 활동을 벌여온 김해성 목사(중국동포의 집 대표)는 이 문제와 관련해 "정치심사와 과중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정보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라면서 "그것은 5000여 명의 동포들이 집단적으로 한국국적 회복운동에 참여하면서 중국정부를 자극한 게 원인"이라고 해석했다.

재중동포들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것

김 목사는 "국적포기 운동이 중국체제에 대한 도전과 소수민족 분리독립으로 비춰질 경우 동포들의 피해와 양국의 외교적 마찰 등 후유증이 예상됐다"면서 "신중하게 국적회복 운동을 했어야 했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사실 대다수 재중동포들이 원하는 것은 꼭 한국 국적취득이 아닌 한국과 중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헌법소원을 낸 이유 또한 소송 등이 계류 중일 경우 강제출국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당국자들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동포들의 어려움을 덜어주어야 하지만 법률과 외교적 문제 등의 이유 때문에 원칙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헌법소원에 대해서는 강제추방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라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난달 27일 "중국 동포들의 국적신청은 불법체류를 피하기 방법이라는 판단에서 접수된 5507명 가운데 합법적인 4명을 제외한 5503명에 대한 신청서를 곧바로 반려했다"면서 "동포들의 근원적인 요구는 국적취득이 아니라 출입국 편의(자유왕래)를 받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국적포기운동을 주도해온 서경석 목사는 4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국적포기를 한 적은 없고, 언론에 주목받기 위해 기획했다"면서 "하기도 전에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조선족 동포사회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서 목사는 "조선족을 한족화 하려는 중국정부는 (국적회복운동을) 싫어하겠지만, 잘못된 운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운동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200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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