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마저 삼키려는 중국 … 고구려史, 결국 우리 정신의 문제

[조선일보]2003-12-11

꼭 10년 전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 압록강변 중국 땅, 집안(集安)의 고구려 고분 벽화 촬영 취재를 갔을 때 느꼈던 비감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한때 동북아를 호령했을 우리 대륙왕국 고구려의 성벽과 고분들이 무너져내린 채 방치되고, 그 안의 벽화들에 금이 가고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걸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안타까웠다.

분명 내 나라 내 역사의 문화재건만 남의 땅에 있다는 이유로 접근이 봉쇄되고, 그 안위(安危)를 걱정하는 것조차 주제넘은 짓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에는 슬픔과 분노가 함께 밀려왔다. ‘환도산성’은 평범한 야산같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로에 불과했지만 그곳을 가보는 것조차 그들은 막았다.

새벽에 가면 좀 나을까 눈 비비고 나갔더니 그 미명(未明)의 안개 속에 중국인 감시원이 벌써 나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정작 그들은 용접기 하나로 그 귀중한 벽화고분들을 마음대로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었다.

신문기자에게만 그랬던 것이 아닌 모양이다. 작년 8월 서울대 국사학과의 노태돈 교수가 고구려 양만춘 장군이 당태종 이세민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안시성을 답사차 갔다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안시성은 물론 한국인 출입 금지 구역이었고, 그가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주민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어느 틈엔가 지역경찰 5명이 지프를 몰고와 현행범 체포하듯 2시간 동안 붙잡고 있다가 공안경찰에게 넘겼다.

결국 일행은 두 명의 카메라에서 필름을 빼주고 풀려나야 했다. 같은 과의 발해사를 전공하는 교수는 흑룡강성 박물관에서 유물을 관람하면서 메모하는 것조차 저지당한 일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뿌리는 이미 깊다고 해야 할 것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이 주체가 되어 우리 고구려사를 중국 변방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東北邊境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 내용이 밝혀지면서 학계에 비판 여론이 거세다.

그러나 벌써 오래 전부터 중국의 학계는 고구려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해오고 있었다. 심지어 신라 백제 등 삼국의 역사마저 “크게 보아 우리 동북아 선조들이 남긴 문화이므로 이들 문화유산을 보호·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중국 학자도 있었다.

이번의 ‘동북공정’은 동북아가 세계사의 관심 지역으로 떠오르면서 ‘고구려=중국사’ 설을 전략적으로 육성, 체계화할 필요성 때문에 개별 학자 차원을 넘어 중국 정부가 나섰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대응일 것이다. 엊그제 17개 역사학 연구 단체들이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 “중국은 패권주의적 역사 왜곡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반드시 있었어야 할 시의적절한 의사표명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고구려가 한국사일 수밖에 없는 백 가지 천 가지 이유를 들이댄다 해도 중국은 동북공정을 포기하고 우리 학계에 “잘못했습니다” 고분고분 사과할 리 없다.

중국의 역사제국주의는 물론 잘못됐다. 그러나 흥분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남을 비판할 건 해야겠지만, 이완 별도로 우리는 그동안 고구려를 얼마나 알고 사랑해왔나 돌아본다. 10년 전 집안(集安) 고구려 벽화를 찍은 사진들로 조선일보가 ‘아! 고구려’ 전시회를 개최했을 때 전국에서 이를 관람한 사람이 350만명이었다.

그러나 그 후 ‘금와왕 해부루 유화부인 주몽 비류 온조…’ 등 이 아름다운 이름들이 등장하는 대서사시나 뮤지컬 오페라가 있다는 얘기를 못 들었다. 고구려 고분 벽화의 그 기막힌 문양과 귀부인 패션들이 현대화된 디자인이 성공했다는 얘기도 못 들었다.

정부가 고구려 연구를 체계적으로 돕기 위한 연구소를 세웠다는 얘기도 못 들었다. 정부나 학계·문화·예술계는 고구려를 국민들 가슴에 살아 있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지금 남의 영토가 됐다고 그 문화와 정신마저 빼앗길 수는 없다. 역사는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다. 고구려사, 결국은 우리의 문제다.

(김태익·문화부장 t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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