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을 거부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찍으세요.
지금까지 방송국 인터뷰만 열번도 넘게 했는데 뭐가 달라졌나요?”

[조선일보]2003-12-13

지난 10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 조선족 교회 2층 로비에 모인 20여명의 중국 동포들은 한 방송사의 취재진들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흥분하며 언성을 높였다.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주장하며 지난 달 14일부터 보름간 단식 농성을 했던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농성장을 방문, “정부도 다각적인 노력을 하겠다”고 약속하자 농성을 해제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12월에 들어서만 200여명의 중국동포들을 적발하며 ‘법대로, 원칙대로’라는 강경 단속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선족 교회가 지난 2일부터 체불 임금·전세금 채권·질병 치료·국제결혼 피해 등 ‘딱한 사정’을 지닌 중국 동포들에게 발급하고 있는 ‘체류심사대상확인증’을 신청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던 이들의 표정은 지쳐있었다.

이날 교회 2층 로비에 마련된 접수 창구는 단속될 위험을 무릅쓰고 체류심사대상확인증을 신청하러 온 중국 동포들로 하루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중국동포 이태복(47)씨는 “어제도 교회에서 심사를 받고 돌아가던 한 동포가 교회 바로 앞에서 차를 대놓고 기다리던 단속반에게 붙잡혀갔다”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 중국동포 여성은 “어제 왔던 동생이 ‘교회 앞에서까지 잡아가니까 조심하라’고 해서 집에서 부터 택시를 타고 교회 정문앞까지 왔다”고 말했다.

지난 3월에는 합법체류자였던 중국동포 이모(56)씨는 ‘출국유예기간 2004년 3월 31일’이라고 찍힌 여권을 펴보이며 “식당에서 하루 17시간씩 한달에 두 번 밖에 못쉬고 일하느라 법무부와 노동부 신고 기간을 놓쳐 불법체류자가 됐다”고 말했다. 이씨 옆에 앉아 있던 중국동포 김모(여)씨 역시 “1년간 일해온 여관의 주인이 갑자기 바뀌면서 주인에게 빌려준 돈 60만원과 한달치 월급 125만원을 못받았다”며 “체류심사대상확인증을 신청하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딱한 사람 심사실’ 입구에는 서있는 선반에는 ‘치료중’, ‘임금체불’, ‘빌려준 돈’, ‘재판중’, ‘도저히 못간다’라고 적혀있는 칸마다 심사 서류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이들에 대한 심사를 진행중인 이은규 목사는 “지난 4일 법무부 법무과로부터 받은 ‘인도적 고려상 검토가 필요한 중국 동포의 범위’에 대한 문건을 받았다”며 “법무부가 제시한 기준에 맞게 네명의 목사들이 직접 심사한 만큼 이 카드를 지닌 사람에 대해서는 정상 참작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지난 1일 국적회복 및 귀화 조건 불변이라는 입장은 고수하되, 국회에 계류중인 국제결혼 피해 여성 문제와 체불임금, 전세금반환, 질병치료 등을 위한 체류는 인도적 방향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관련, 법무부 법무과의 김영문 검사는 “법무과가 지침을 내린것은 맞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사안, 그것도 진짜 딱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검토해 본다는 수준이지 딱한 사람이라고 무조건 구제해주자는 조선족 교회의 입장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김 검사는 이어 “체류 심사 대상 확인증 역시 사증에 불과하다”며 “출입국 단속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는 합의된바 없다”고 덧붙였다.

법무부 체류심사과의 한 관계자는 “지난 달 농성 당시 조선족 교회 서경석 목사와 법무부 대표들이 만나 ‘정말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선처해야 한다’는데는 공감을 했지만 조선족 교회에서 심사한 사람들을 그대로 다 받아주겠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교회쪽에서 이들에 대한 서류를 제출하면 출입국관리소의 고충상담실에서 다시 개별적으로 심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은규 목사는 “’고용허가제 정착’과 ‘불법체류 근절’에는 찬성하지만 그것이 무조건적인 강제추방 단속의 논리가 되어서는 안된다”며 “지난 2일부터 조선족 교회가 직접 심사하고 증빙서류까지 첨부한 딱한 처지에 놓인 중국동포 300여명에 대한 인도적 고려 검토 신청서를 곧 법무부 체류심사과에 제출하고 이민희 출입국관리국장과의 면담 또는 공개 토론회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재은 기자 2ruth@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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