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간이 들려오는 중국어만 없다면 한국의 여느 번화가로 착각할 만하다.

중국 랴오닝 성 선양 시 시타(西塔) 거리.

대장금, 경회루, 노래방….

한 블록 안에만 우리말 간판이 수십 개에 이른다.

식당, 식품점, 어학원에 백화점, 서점까지 없는 것이 없다.

조선족 동포 김매순(29·여) 씨는 “하루 종일 중국어 한마디 안 써도 아무런 불편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조선족 밀집지역이던 이곳에는 1995년부터 한국 식당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인들이 본격적으로 몰려들면서 대표적인 ‘코리아 타운’으로 자리 잡았다.》

○ 교민 100만 시대 눈앞

베이징 동쪽 외곽에 있는 차오양 구 왕징은 대표적인 한인 밀집촌. 특히 한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왕징신청에 들어서면 우리말 간판이 줄을 잇는다. 한국 물건들만 전문으로 파는 복합상가 ‘한국성’에는 수십 개의 한국 가게가 입주해 있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싸고 아파트 구조도 한국과 비슷해 1998년부터 한국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인만 2만 여 명이 살고 있다.

이곳뿐만 아니다. 베이징 대학가의 우다오커우, 톈진의 메이장, 칭다오의 청양 구와 리창 구 리춘, 상하이의 룽바이, 구베이 등 중국 곳곳에 크고 작은 한인촌이 들어섰다.

재중국한국인회(회장 김희철)에 따르면 중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70여만 명. 내년 8월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면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족까지 합치면 전 세계 700만 재외동포 중 3분의 1이 중국에 사는 셈이다.

초기에는 동북3성과 산둥 성에 집중됐지만 지금은 중국 각지로 빠르게 퍼져 전 대륙에 한국인 사회가 없는 지역이 거의 없다. 신장위구르족 자치구 우루무치에까지 한인 기업들이 진출해 소규모 한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 “이제 중국 속에 뿌리내려야죠”

한국인이 많이 모여 살다 보니 교민단체도 급증하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가 재중국한국인회와 중국한국상회(회장 오수종).

투자 진출이 먼저 이뤄지고 장기 거주 형태의 교민 진출이 뒤따른 중국 교민사회 특성상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을 대표하는 중국한국상회가 먼저 자리 잡았다. 1993년 12월 결성된 중국한국상회는 4월 현재 37개 지역에 설립돼 있으며 회원사도 5087개에 이른다.

기업경영상담센터를 운영해 한국기업의 투자 및 경영 전반에 걸쳐 상담서비스를 제공한다. 주중 한국대사관과 협력해 한국기업들의 불이익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김종택 중국한인상회 상임 부회장은 “기업뿐만 아니라 교민들의 권익 옹호에도 애쓰고 있다”며 “한국기업 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재중국한국인회는 1999년 창립됐다. 현재 25개 지역에 한국인회가 있으며 동북3성연합회, 산둥성연합회, 화둥연합회 등 지역 단위 연합체도 결성됐다. 고충처리센터와 안전콜센터를 운영해 교민들의 권익보호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김희철 회장은 “지금까지 교민들끼리 뭉치는 데만 신경을 썼다면 앞으로는 중국 사회에 기여하고 한국을 알리는 일에도 힘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글교실, 역사문화교육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한국인회는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70만∼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관광객을 지원하기 위해 팔을 걷었다. 올림픽 기간 중 교민 ‘1가구 1홈스테이’를 추진하고 있으며 교통, 통역, 의료, 안전 지원을 위해 자원봉사자도 모집하고 있다.

두 단체가 기능적으로 역할 분담을 통해 긴밀히 협력하고는 있지만 교민사회의 구심점이 분산된 것은 한계. 저마다 교민 대표단체를 자임하다 보니 업무의 중복이 생기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베이짚선양=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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