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12-16

거물급 정치인들이 줄줄이 소환되는 상황에서 언론이 선택할 수 있는 뉴스의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연일 터져나오는 불법정치자금 관련 소식은 정작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약자들의 소식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낸다.

대통령직을 돈으로 사려던 사람들이 뿌린 수백억원이란 돈의 크기에 우리 모두가 무감각해지는 사이 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해 노숙생활을 하던 중국동포가 동사한다. 철거용역들이 고립시킨 재개발 지역 철거민들은 설탕 탄 살뜨물을 아기에게 먹이며 서럽게 운다. 그래도 신문은 달랑 기사 하나뿐이다. ‘냉랭한 고국서 숨거둔 中동포’ 10일자 6면, ‘슬픈 철거민’ 사진 한 컷 10일자 7면.


더러운 정치판이 핵폭탄급 뉴스로 언론과 독자들의 혼을 빼는 동안 약자들은 얼어죽고, 분신해서 죽고, 맞아 죽어야 눈길 한번 받을까 말까다. 대통령직을 사기 위해 뿌린 돈보다 결코 가볍지 않은 한 사람의 목숨, 경향이라도 제발 귀히 여겨주기 바란다.


위도 핵폐기장을 정부가 원점에서 재추진하겠다는 소식에 대해 경향은 못내 아쉬운 듯하다. 11일자 사설 ‘방패장 실패 한 번이면 족하다’는 “착잡하다”는 말로 정부 결정을 간접 비판했다. 또 “마지막까지 설득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내부적으로 방폐장 유치에 찬성하는 의견들이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이라며, 정부가 어떻게든 위도에 핵폐기장을 유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정부가 여론을 무시하고서라도 강행했어야 옳다는 말인가? “원칙을 세우는 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 마땅하다”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원칙과 절차를 무시했기 때문에 발생한 비극에 왜 연연해하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10일부터 15일까지 경향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행자부의 재산세 인상 방침을 둘러싼 논란을 보도했다. 행자부의 인상안에 대해 서울 강남·서초·송파구를 중심으로 한 자치단체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행자부는 원안을 강행하려 한다는 내용뿐, 총 6건의 기사는 모두 동어반복이다. 이는 객관적 보도라는 틀에 집착한 나머지 사실보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5일자 사설 ‘재산세 인상 대승적인 협조를’이 재산세 인상이 선택이 아닌 당위적인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긴 하지만, 경향이 사실보도로 일관하고 있을 때 보수언론들은 재산세 인상을 ‘세금폭격’ 등의 표현을 써가며 그 의미를 왜곡하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다보니 기사의 방향이 사태의 본질을 놓친 채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만다. 논란의 원인을 행자부와 서울시 및 자치단체들간의 갈등에서 찾으려 한 것이 그렇다. 재산세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강남지역 지자체-여타지역 지자체’간의 논쟁구도가 ‘행자부-지자체’간의 논쟁으로 비화되고 말았다.


이는 보유세 인상 자체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행자부 인상안을 ‘지역간 불평등 해소’가 아닌 ‘특정지역 죽이기’로 몰고간다는, 보수언론이 취한 전략 그대로다. 일부 지역 자치단체의 반발이 모든 지역의 목소리인양 보도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과세불평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던 다른 많은 지역의 입장도 청취했어야 했다.


여성장관에 대한 파파라치적 시선은 이제 부디 거둬주기 바란다. ‘康법무-한나라 호주제 격돌’(12일자 4면)은 호주제 폐지와 관련해 지난 11일 국회 법사위에서 벌어진 한나라당과 강법무장관의 공방을 보도하면서 ‘이번엔 패션안경’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실었다. 안경과 호주제 폐지가 무슨 관계가 있나?


〈박영선/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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