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다가치포럼 대표
김정룡 다가치포럼 대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유명한 정치·철학·경제학자 칼·마르크스다. 이 책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세기 중반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가 쿠데타를 일으킨데 대해 사람들은 그저 매우 놀랍다는 표정이었고 한편 그를 비도덕적인 인간이란 비난만 퍼부었을 뿐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 원인에 대해 이해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쿠데타의 발생과정과 결과에 대해 분석하고 나열하는 작업(流)만 밝힐 뿐 그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근원적인 원인(源)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칼·마르크스는 왜 루이 보나파르트 같은 평범하고 별 볼일 없는 인물이 영웅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계급투쟁의 관점으로 해부하여 답을 제시하였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말하자면 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 데는 그럴 수밖에 없는 ‘소이연(所以然)’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이 바로 환경과 정세라는 것이다. 보잘 것 없던 루이 보나파르트의 성공은 당시 프랑스사회 환경과 정세가 그렇게 되도록 조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칼·마르크스는 우리에게 한 역사적인 인물은 그의 개인의 품격이나 자질보다 그 인물이 나타나게 된 환경과 정세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와 같은 칼·마르크스의 환경과 정세에 천착하여 인물을 분석하는 접근방식은 어느 시대 어느 인물에게나 다 적용할 수 있다. 

내년 3월 9일에 치러질 제20대 대선은 진보당의 후보 이재명과 보수당의 후보 윤석열의 양파전으로 굳어져 있다. 이재명과 윤석열, 이 두 후보를 비교하면 완전히 상반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재명은 적어도 5년 이상 전부터 내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 사람이고 아울러 내가 대한민국을 바꿀 있다는 확신을 갖고 대선에 나선 사람이다. 이에 비해 윤석열은 불과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사람이고 그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국민이 나서라고 해서 나섰고 보수당에서 입당하라 해서 입당한 사람이다. 이재명은 주도적으로 나선 사람인데 비해 윤석열은 등을 떠밀려 나선 사람이라는 것이다. 중국속담으로 말하자면 윤석열은 핍박에 못 이겨 양산에 오른 인물이다.  

요즘 윤석열을 지켜보면서 자꾸 삼국시대 동탁이 떠오른다. A라는 인물과 B라는 인물이 연관 지어 떠오르는 것은 그 양자 간에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과 동탁 사이 어떤 공통분모가 있을까?  

동탁과 윤석열은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정치판에 뛰어 든 것이고, 둘 다 자의적이 아니고 세상의 부름을 받아 정계에 입문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이 두 사람은 과격하고 곧은 성격이 비슷하고, 동탁은 힘이 센 군벌이었으며 윤석열은 대한민국 가장 유능한 칼잡인 것이 비슷하고, 둘 다 세상의 비난을 많이 받는 점이 비슷하다.  

먼저 동탁부터 살펴보자.  

동탁은 원소의 부름을 받고 장안에 입성했고 손 안 대고 코 풀 정도로 아주 쉽게 궁성을 장악했다. 일개 변방에서 맴돌던 군벌이 일약 장안의 주인으로 된 데는 칼·마르크스의 역사분석 방법론으로 접근하자면 당시 환경과 정세가 그렇게 되도록 마련되어 있었다. 

동한(東漢) 정권은 사족집단(士族集團), 외척세력, 환관무리 이 세 기둥으로 지탱하고 있었다. 사족집단은 선비와 그 가문을 지칭하는 집단인데 이들은 관료사회를 독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비록 관직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실제세력이 약했다. 당시 실세는 외척과 환관들이었다.  

외척이 나라를 지배할 정도로 세력이 커진 이유는 황제들이 나이가 어렸던 탓이다. 동한 황제 중 열한 명이 20세 미만에 황제가 되었고 그 중 한 충제(漢沖帝)는 2살에, 한 상제(漢殤帝)는 태어난 지 백일 밖에 안 되어 황제가 되었다. 

황제가 나이가 어린 탓에 정사를 관장할 능력이 없어 그 자리를 황제 어미가 대신한다. 이를 역사에서는 수렴청정(垂簾聽政)이라고 한다. 문제는 수렴청정이 여자가 정치중심에 선 것인데 여자는 힘이 없다. 그래서 황제 외갓집 세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황제의 외삼촌들이 천하를 호령하는 실세로 떠오르는 것이다. 외척이 천하를 지배하게 되면 혼란스러워지고 오래가지 못한다. 왜냐? 황제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성인이 되면 자신이 정치중심에 서려고 나서게 된다. 하지만 이미 권력의 맛을 톡톡히 본 외척세력들은 순순히 얌전하게 황제에게 권력을 바치지 않는다. 황제는 권력을 되찾으려하고 외척 무리는 권력을 내놓으려 하지 않으니 이들 간 세력다툼이 벌어지게 되는데 황제 자신은 힘이 없다. 힘이 없는 황제가 힘을 가지려면 뒤를 받쳐주는 무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 무리가 바로 환관이다.  

환관은 황제의 지근거리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황제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환관 조고는 진시황제가 궁녀들과의 정사 현장까지 지켜볼 정도로 24시간(당시는 12時辰) 곁을 떠나지 않고 보좌하였다. 조고의 권력은 재상 이사(李斯)보다 훨씬 더 강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지어낼 만큼 조고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실세였다.  

환관무리가 이토록 힘이 있으니 외척이 천하를 호령하는 것을 눈감고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했다. 서기 92년에 두헌(竇憲), 서기 121년에 등즐(鄧騭), 서기 125년에 염현(閻顯), 서기 159년에 양기(梁冀), 서기 168년에 두무(竇武), 서기 189년에 하진(何進) 등 외척실세들이 각각 환관들에게 살해당했다.  

당시 사족집단의 우두머리인 원소는 충격을 먹고 환관무리를 쓸어버리지 않으면 자신의 생존마저 위협받는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군벌 동탁을 장안에 불러들였다. 원소의 이 조치는 늑대를 집안에 불러들인 꼴이 되었다. 

원소가 동탁을 장안에 불러들인 목적은 본래 환관무리를 숙청하고 혼란하기 그지없던 정세를 군벌의 힘으로 바로잡아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안에 입성한 동탁은 원소의 생각과 달리 황제도 갈아치우고 자신이 천하를 호령하는 위치에 올랐다. 원소가 동탁을 적당히 이용하려고 불러들였는데 거꾸로 심하게 뒤통수를 맞았다. 그래서 원소는 다시 동탁을 숙청하는 반동탁연대를 조직하고 자신이 앞장섰다.  

여기서 사족을 붙여 말하자면 동탁, 원소, 조조 등 이 세 인물이 모두 천하를 거머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탁과 원소는 실패한데 반해 조조가 최후의 승자가 된 데는 그럴만한 소이연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동탁은 구시대의 질서를 파괴할 줄만 알았지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비전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하였던 것이다. 원소는 선비 우두머리로서 유가의 지향가치인 복고주의를 대변하는 구질서의 유지를 추구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 둘에 비해 조조는 새로운 질서의 창조를 추구했기 때문에 성공했던 것이다. 

동탁이 동한 말기의 정치정세에 염증을 느끼고 강력하게 파괴를 단행했던 것처럼 윤석열도 문재인정부에 염증을 갖고 타도를 외치고 있다. 윤석열에게는 ‘반문구호’가 최대 정치자본이다. 

그런데 윤석열은 동탁처럼 구질서 파괴만 외칠 뿐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새 질서 건설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비전이 없다보니 일일 일 실언으로 만날 말밥에 오르고 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처가문제까지 악재가 겹치고 있고 또 게다가 당내 갈등문제로 리더십 문제도 도마 우위에 오르고 있다. 윤석열은 품격과 자질이 과연 대통령 감인가는 의문이다. 만약 다른 후보께서 이처럼 논란이 큰 자질문제가 불거진다면 진즉에 후보사퇴가 있을 법하지만 그에 대한 지지율이 조금 하강했을 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자신의 말대로 국민의 부름이 있기 때문에. 

윤석열이 말하는 국민의 부름이 바로 그를 정치무대에 오르게 했었던 환경과 정세이다. 

문재인은 개인적으로 이명박근혜에 비해 딱히 크게 잘못한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 왜 정권교체열망이 높을까?  

우리는 4년 전에 있었던 광화문 광장 천만 촛불을 기억하고 있다. 촛불을 든 국민들은 이 촛불혁명을 통해 대한민국이 진짜 천지개벽이 일어날 줄 알았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바뀐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따라서 큰 법이다. 오히려 현 정권 치하에서 역사적으로 보기 드문 내로남불이 성행하고 있어 촛불에 앞장섰던 청년들을 크게 실망시키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문재인의 잘못은 조국사태를 1년 반 넘게 너무 오래 끌었던 탓에 점수를 확 깎아먹었던 것이다. 동한 말기 가장 유력했던 원소가 실패한 원인 중에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이었는데 나는 문재인을 보면 왠지 자꾸 원소가 떠오른다. 조국사태에서 끝이 아니었다. 자신이 임명한 부하 윤석열 검찰총장을 컨트롤하지 못해 추미애 장관과 싸우게 방치한 실책도 국민을 지치게 만들었던 것이다.《한비자》에 이런 말이 있다. ‘소와 말을 함께 한 수레를 끌게 한다면 백 걸음도 못 간다.’ 또 이런 말이 있다. ‘주요 요직에 있는 신하끼리 다투면 그 나라는 망한다.’  

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적어도 한 번쯤은《한비자》를 읽어보기를 바란다. ‘왕의 통치술’을 전혀 터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청와대에 입성하다보니 정치를 잘 할 수가 없다.  

문재인의 우유부단한 통치술은 코로나19에 겹쳐 우울하기 그지없는 국민들에게 차기 대통령은 배짱이 있고 카리스마 있고 우락부락 하는 성격의 소유자 및 이 정권에 가장 크게 반기를 드는 사람을 차기 대선 유력한 후보로 되게 만든 환경과 정세를 마련해주었는데 윤석열이 정권교체 적임자로 부름을 받았던 것이다.  

나라가 혼란스럽고 어수선하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엉뚱한 자가 영웅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생겨났던 것이리라.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의가 아니고 타의에 떠밀려 나선 인물 치고 성공한 사례가 없다. 준비가 안 된 자들은 고장 난 시계를 고쳐서 좋은 시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용불가의 물건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동탁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보수당의 ‘메시아’로 부상한 윤석열은 동탁의 전철을 밟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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