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의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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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를 가지고 재밌는 얘깃거리를 만든 작가들은 얼마든지 많다.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 공주」가 되겠고, 그 다음으로 유명해진 것은 몇 년 전에 우리 나라에서 개봉된 미국 영화 「스플래쉬」 같은 것이 될 것이다(나는 그 영화를 보며 여배우 〈데릴 한나〉의 백치미에 홀딱 반했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의 동화작가 강소천(姜小泉)도 「인어」라는 동화를 쓴 바 있고, 「아라비안 나이트」에도 인어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모든 인어 이야기들이 <암컷 인어>만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어란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반드시 수컷 인어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인어 이야기의 작가들은 모두 암컷 인어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인어 이야기를 쓴 작가들이 거의 다 남자들이었다는 점이 우선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 <여자의 풍만한 유방>을 강조하려고 암컷 인어를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절벽에 붙어 있는 말라빠진 건포도 같이 생긴 남자의 젖꼭지는 아무리 좋게 봐줄래도 정말 볼품이 없다. 그러므로 <수컷 인어>란 존재는 상상만 해도 영 밥맛이 떨어지는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 이유로 모든 인어 이야기엔 여자 인어만 등장했을 것이고, 같은 여자 인어라고 해도 커다란 풍선같이 빵빵하고 섹시한 젖가슴을 가진 인어만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여자 인어의 경우 허리 이하부분이 물고기처럼 생겨 생식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성의 생식기 즉 질구(膣口)는, 야한 성욕을 자극하는 물건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모든 남성들한테 미묘한 공포심을 주는 게 사실이다. 쉽게 말해서 <정력 콤플렉스>를 느끼게 만들어 준다는 말이다. 변강쇠나 카사노바 같은 절륜한 정력을 가진 남자가 이 세상에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러니 모든 남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다들 여성의 질구를 탐하면서도 은근히 공포심과 열등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여자란 동물은 한번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질 줄 모르는 <무시무시한 욕망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 같은 말라깽이 남자는 정력이 약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애무의 테크닉보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삽입성교만 밝히는 여자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남자들이 대부분 <영계>를 밝히는 이유는, 어리씽씽 발랄한 여자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삽입성교의 맛을 잘 모르는 여자를 좋아하는 심리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나 같은 말라깽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여자의 한없는 욕망(여자는 원래 몇 날 며칠 밤을 섹스하더라도 전혀 지칠 줄 모르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야 임신이 잘 되어 종족보존을 유지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을 실컷 채워 줄 남자는 거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질구를 갖고 있지 않는 여자 인어야말로 남자들에겐 안성맞춤의 파트너가 된다. 말하자면 미끌미끌한 피부에 탱탱한 젖가슴을 가진 <섹시한 엄마>가 되어, <평생 어린애>일 수밖에 없는 남자들의 <살갗접촉 욕구>와 <오럴 섹스(즉 젖꼭지 빨기) 욕구>를 신나게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는 모든 남자들은 다 오럴 섹스에 굶주려 있고, 모든 여자들은 다 삽입성교에 굶주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남녀간의 성적 결합은 언제나 피튀기는 결전이 될 수밖에 없다. 서로가 바라는 것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남자가 삽입성교에 맛들이면 그 끝은 언제나 죽음(예컨데 <복상사> 같은)이다. 요즘에도 <비아그라>를 먹고 안쓰러운 삽입성교를 벌이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각설하고, 어쨌든 나는 어느 섹시한 여자 인어와 연애를 해 보는 희한한 경험을 갖게 되었다. 독자들이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건 정말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를 여기서 한번 들려드려 보려고 한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나는 나와 친하게 지내는 소설가 하일지 씨의 별장 겸 집필실이 있는 제주도 중문으로 놀러 가게 되었다. 하일지 씨는 내가 소설 「즐거운 사라」로 필화사건을 겪어 전격 구속되어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자진해서 내쪽편 증인 역할을 해 주고 응원하는 글도 써 주어 알게 된 친구였다.

그는 당시엔 전업작가로 있어 시간이 많았는데,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風光)에 반해 거기 가서 글을 자주 쓰다가 아예 자그마한 집필실을 하나 전세로 마련했다. 서귀포시 중문 해변가에 있는 별장용 단층 빌라였다.

그땐 나도 가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 말고는 시간이 많아서, 하일지 씨의 초청으로 그의 집필실로 대여섯 번 놀러 가게 되었다. 제주 하이야트 호텔 근처에 있는 그의 빌라는 바다가 정면으로 바라다 보여 무척이나 풍광이 좋았다. 그리고 한여름 피서철만 아니면 나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우아하고 한적한 맛을 풍겼다. 나는 하일지 씨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해변을 산책하기도 하고, 밤이면 해변가 횟집에 들러 싱싱한 생선회를 곁들여 술을 마시기도 하며 기분 좋은 탈출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휘영청 보름달이 뜬 밤의 일이었다. 하 작가가 제주시에 볼일이 생겨(그는 어느새 제주도의 명사가 되어 있었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으므로, 나는 하릴없이 TV나 보며 멍청한 기분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창밖을 계속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이 교교한 달빛에 뚜렷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이상하고 수상한 기분이 들어 집 밖으로 나가 보았다. 그랬더니 나이가 갓 스물 정도로 돼 보이는 요염무쌍한 미녀 하나가, 요사스런 눈길로 나를 지그시 쏘아보더니 문득 몸을 감추어 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촌티나는 여인들만 우글거리는 제주도 해변가에서 그토록 희디흰 피부를 가진 여자를 보았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숱 많은 긴 머리카락은 175cm 정도나 되는 큰 키를 마치 털코트처럼 휘덮고 있었고, 휘늘어진 뱀 모양의 귀고리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었다. 더욱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녀가 둥그런 모양의 코걸이와 입술걸이를 하고 그것들을 가느다란 금사슬로 연결시켜 놓았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녀의 손톱들은 모두 15cm가 넘게 길게 길러져 가냘프게 나풀거리고 있어, 나로 하여금 꼴깍 군침을 삼키게 했다.

나는 그녀의 자취를 더듬으려고 집 주변을 한동안 어슬렁거려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한없이 아쉬운 마음과 대공포처럼 위로 솟구쳐 오르는 페니스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와 몽롱하면서도 선정적인 상념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무심코 힐끗 창밖을 내다보니 그녀가 창밖에서 다시 나를 지그시 쏘아보고 있는 게 아닌가.

무지개 색깔의 일곱빛 아이섀도가 층층이 칠해진 그녀의 눈두덩은 달빛에 반사되어 휘황한 염정미(艶情美)를 고혹적으로 뿜어대고 있었다. 나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얼이 빠져나가는 것을 자각했다. 그리고 어느새 내 손이 나도 모르게 내 페니스를 주물럭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2

그 시간 이후로 나는 그 이름 모를 미녀에 대한 급성 상사병에 걸려 버리고 말았다. 당장 그날 밤 꿈에 그녀가 나타났는데, 한결 더 섹시 음탕하고 야하디야한 모습으로 나의 얼을 쏙 뽑아 놓는 것이었다. 꿈을 깨고 난 후, 나는 아랫도리가 촉촉이 젖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춘기 이후로 나는 정말 오랜만에 몽정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뿜어져 나온 정액의 양도 꽤나 많아서, 나는 더럽혀진 포대기와 이불이 하일지 씨한테 적이 민망하고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젯밤에 겪은 일을 하 작가에게 이야기하며 이불을 더럽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마형이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음기(陰氣)를 흡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마 환각을 본 걸 겁니다. 귀신이 아닌 다음에야 그토록 요사스러울 정도로 섹시하게 생긴 여자가 제주도 땅에 어디 있겠어요? 자, 그렇게 너무 외롭게만 지내지 말고 오늘 저녁에 나랑 서귀포시로 나가 아가씨들이 나오는 룸 가라오케 집에 가서 노래라도 불러 봅시다. 생각 같아서야 제주시에 있는 고급 룸살롱이 더 좋겠지만 우리 형편상 그곳은 술값이나 팁값이 너무 비쌀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하고 말하며 내 어깨를 다독거려 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날 밤에도 그 미녀가 다시 창밖에 나타나거나 아예 집 안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어 하 작가의 청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랬더니 하 작가는 이왕 말을 꺼내 놓고 나니 놀고싶은 생각이 문득 간절해진다고 하면서 친구가 있는 서귀포 시내로 혼자서 나갔다.

나는 긴장된 기분을 갖고서, 다시 한번 그 여자가 나타나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날따라 자취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없이 쓸쓸한 마음을 품고 싸구려 국산 에로 비디오를 보며 신경질적인 자위행위나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날 아침, 나는 새벽에 돌아와 잠에 곯아 떨어져 있는 하일지 씨를 두고 새벽산책을 나갔다. 그 여자 생각 때문에 잠을 거의 못 잤기 때문이었다. 길디긴 손톱과 길디긴 머리카락, 그리고 길디긴 속눈썹과 연필같이 가늘고 긴 체형을 가진 그녀의 모습은, 내가 소설이나 시에서 상상으로 그리곤 했던 그야말로 <야한 여자>의 극치였다. 그래서 나는 얼핏 스쳐 지나간 그녀의 영상을 못 잊어 새벽 바닷가를 거닐며 한없는 그리움과 아쉬움에 입맛을 쩍쩍 다시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앞에 갑자기 빼어난 미모의 젊은 중년부인 한 명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내게 다가와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마 선생님은 내 딸을 죽여 버릴 셈입니까?」

나는 그녀의 말이 뜻하는 바를 몰라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한 까닭을 자세히 일러 달라고 내딴에 예의를 갖춰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중년부인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저는 하(河)라는 성을 가진 여자인데, 저한테는 염희(艶姬)라는 이름을 가진 딸 하나가 있지요. 평소에 책을 즐겨 읽는 편인데 특히 마 선생님이 쓰신 책을 아주 좋아했어요. 그러면서 선생님을 한결같이 사모하며 그리워하곤 했지요. 그러다가 선생님이 이곳 제주도에 놀러와 계신 것을 알고서, 차마 직접 찾아뵙지는 못하고 창가로 가서 몇 번 선생님 모습을 훔쳐보기만 한 모양이에요. 그러다가 어제 오후부터 갑자기 기운 없어하며 쓰러져 눕더니 지금은 약조차 넘기지를 못하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중이랍니다. 아무래도 중증(重症)의 상사병에 걸린 게 분명해요. 그러니 염치없는 말씀입니다만, 불쌍한 생명 하나 살려 주시는 셈치고 우리 딸을 우선 한번 만나 봐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다음 애인으로 삼아 주신다면 더욱 고맙겠구요. 제 딸이 그리 못생긴 편도 아니고, 또 마 선생님께서도 외로운 독신생활을 오랫동안 해 오고 계신 형편에 있으시니까, 어찌 보면 좋은 연분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정식 결혼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아요. 그리고 또 제 자식년이 피임도 알아서 다 잘 해 줄 터이니까, 선생님은 그저 제 딸을 갖고 놀아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제발 부담 갖지 마시고 제 딸을 한번 만나 봐 주셔요.」

나는 여인의 말을 듣고 은근한 기대감이 생겼다. 딸의 얼굴은 아버지를 닮는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저만큼 고운 얼굴을 가진 부인의 딸이라면 아주 못생겼을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부담 없이 <갖고 놀아 달라고>만 부탁하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랴.

나는 속으로 <이게 웬떡이냐>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부인의 얼굴을 꼼꼼히 뜯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제주도 사람 같지는 않았고, 서울 사람으로 치더라도 아주 세련되고 기품 어린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이 여자가 혹시 귀신이거나, 또는 나를 스캔들리즘에 빠뜨려 <성희롱> 사건 같은 것으로 애먹이려는 3류 매스컴의 농간에 따라 움직이는 여자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교양 있는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라서 그런 의심은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곧이어 나는 결심을 하고 그 부인을 따라 그녀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갔다. 바닷가에 지어져 있는 아담한 별장이었다. 별장 안에 들어선 순간,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사치의 극을 이루는, 번쩍이는 보석들로 꾸며진 실내장식과 궁전같이 드넓은 공간이 내 눈을 어지럽혔기 때문이었다.

그 중년 부인도 별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옷차림이 변했다. 이집트와 아라비아와 인도의 의상을 함께 짬뽕시켜 놓은 듯한, 속이 훤히 비치는 망사 옷감으로 된 그녀의 옷에는 곳곳마다 커다란 다이아몬드와 진주와 산호 등의 보석이 촘촘히 아로새겨져 있었다.

나는 나 때문에 상사병에 걸려 누워 있다는 그 부인의 딸 염희의 침실로 안내되었다. 자세히 뜯어보니 이팔청춘이 갓 넘었을까말까 한 젊디젊은 나이였고, 열이 올라 발갛게 상기되어 있는 얼굴이 오히려 더욱 고혹적으로 보이는 절세의 가녀였다.

염희는 거의 벌거벗은 상태로 누워 있었다. 아랫도리에만 성긴 시폰(chiffon) 옷감으로 된 투명한 <하렘 팬츠>를 입고 있었는데, 성기 부분에만은 구멍이 뚫어져 있었다. 특히 배꼽에 박아 넣은 커다란 흑진주가 내 시선을 끌었다.
머리카락은 키의 두 배가 훨씬 넘는 길이였고, 게다가 숱까지 많아 그녀는 머리카락으로 된 요를 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키를 넘는 황금빛 머리카락은 발끝을 지나 다시 위로 올라와 그녀의 맨몸뚱이를 반쯤 가려 주고 있었다. 또한 숱 많은 긴 속눈썹이 코 부근까지 내려와 그녀의 아리따운 뺨을 간드러지게 덮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염희는 창가에 서서 나를 뚫어져라 쏘아보고 있던 그 여인임이 분명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충동을 느껴 그녀의 음부로 다가가 입을 벌려 그녀의 애액(愛液)을 흡입했다. 향기나는 우윳빛 액체가 양(量)도 풍부하게 내 입 안으로 들어와 나의 구강 내부를 아찔한 황홀경으로 이끌어 갔다. 클리토리스에 걸려 있는 커다란 장신구가 특히나 나를 흥분시켰다.
「내 딸은 당신 때문에 병이 들어 끙끙 앓고 있는데, 당신은 내 딸의 클리토리스나 핥고 있군요.」 하고 염희의 엄마가 반쯤 웃음을 머금고서 말했다. 그러더니 자리를 비켜 주려는 듯 곧바로 방에서 나가 버렸다.

염희가 드디어 눈을 떴다. 황금빛과 은빛 아이섀도를 두 겹으로 바른 그녀의 눈매가 너무나 요염하여 나는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염희의 눈에서 아롱거리는 추파가 나의 심벌을 다시금 벌떡 일어서게 했다.

3

내 심벌이 늠름한 기상을 보이며 벌떡 일어선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잘난 체하는 말같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자를 상대하는 데 있어 원래 까다로운 미식가에 속하는지라, 지독히 야한 여자가 아니고서는 도무지 심벌이 일어서지를 않는 것이었다.그래서 나는 모처럼 박달나무 방망이같이 딱딱해져 있는 내 페니스를 가지고 염희의 음문(陰門)을 향해 돌진해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상사병이 들어 신음하고 있는 그녀의 병약한 몸을 범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미안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우물쭈물하여 땅땅하게 부풀어 있는 심벌을 손으로 문질러대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자 염희는 그러는 나를 보고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의 누추한 아랫도리 입술로 선생님의 거룩한 양물(陽物)을 받아들이고 싶지만 아직은 기운이 없어 그건 좀 어려워요. 대신 선생님의 옥봉(玉棒)을 제 입 안에 넣어 주시면 혓바닥으로 그걸 마사지해 드릴 수는 있어요.」
그래서 나는 그녀의 말에 따라 내 심벌을 그녀의 조붓한 구강 안에 넣고 열심히 왕복운동을 하였다. 그러자 염희의 혓바닥은 의외로 강한 율동을 하며 내 페니스를 조곤조곤·시끈시끈 핥아 주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오랫만에 해 보는 구강성교인지라(나는 아무리 성에 배고프더라도 돈을 주고 여자를 사서 삽입성교나 구강성교를 해 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러니 염희와의 구강성교가 실로 오랜만일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게도 정액을 금세 그녀의 입 안에 사출해 버리고 말았다. 그랬더니 그녀는 내가 사출한 꽤 많은 양의 정액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꿀떡꿀떡 잘도 마셔대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더니 그녀는 자리에서 성큼 일어나 않았다. 그리고는,
「저 이젠 다 나았어요. 선생님의 거룩한 정액이 보약 역할을 해 줬나 봐요.」 하고 말하며 방끗 웃는 것이었다. 모든 이빨 한가운데에 박혀 있는 작은 다이아몬드가 나의 성감대를 다시금 긴장시켰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껴안고 엎으러져 그녀의 온몸뚱어리에 미칠 듯한 키스를 퍼부었다. 염희 역시 완전히 기운을 되찾아 가지고 내 온몸을 미칠 듯 핥고 빨아 주었다. 그녀의 혓바닥 한가운데 박아 넣은 뾰족한 보석이 주는 날카로운 마찰감 때문에 나는 더욱 넋이 나가는 듯하였다.

우리는 식스 나인(six-nine) 자세로 펠라티오(fellatio)와 쿤닐링구스(cunnilingus)를 하기도 하고 서로의 항문을 손가락과 혓바닥으로 열심히 자극해 주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의 성희를 즐겼다. 그러다가 드디어 운우(雲雨)의 정을 함께했는데, 아까 한번 정액을 쏟아냈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삽입의 쾌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녀의 질 운동 솜씨는 대단했다. 그래서 나를 쉽사리 사정시키지 않고 무한한 쾌감을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구천일심법(九淺一深法) 따위의 복잡한 삽입성교 기술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저 페니스를 그녀의 질 안에 편안히 담그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육체적 환희와 음락(淫樂)의 열반을 오르락내리락거렸고, 결국에 가서는 기분 좋은 피로감에 지쳐 서로를 부둥켜안고 낮잠이 들었다. 저녁때쯤 되어 눈을 떠 보니, 염희가 벌써 진하디진한 밤화장을 마치고 나를 사랑스런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내게,
「어머님이 곧 오실 거예요.」하고 말했다.

말을 마치자마자 염희의 모친이 침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딸이 한껏 야하게 화장을 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더니 아주 흐뭇하고 기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우리 둘더러 더 실컷 서로의 몸을 희롱하라고 이르고는 방을 나갔다. 그래서 나는 잠에서 깬 뒤에 나타나는 조양(朝陽) 현상 덕분에 다시 딱딱하게 부풀어오른 페니스를 염희의 입에 맡기고서, 새로운 열락을 두제곱 세제곱으로 맛볼 수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나는 하일지 씨가 내 걱정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마음으로 염희와 우선 작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염희는 슬픈 얼굴빛을 하고서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멀리 출타하셨던 아버님이 곧 돌아오셔요. 아버님은 어머님과는 달리 저의 이성교제에 퍽이나 엄격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선생님을 뵙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제 집에 찾아오시지 마시고 제가 선생님께 기별할 때까지 기다려 주셔요.」

나는 서운한 생각이 들었으나 그녀가 하라는 대로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염희의 집을 나와 문득 뒤를 돌아다보니, 내가 들어가 있던 별장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텅빈 하늘에 우거진 나무들만이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아무래도 내가 귀신에 홀려 환영을 본 것이었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리땁고도 요요(夭夭)한 염희의 자태가 눈앞에 어른거려 그녀를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하일지 씨의 별장에 돌아오니 그가 내게 그동안 어디 갔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하루 종일 해변을 산책했다고 적당히 얼버무려 두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계속 염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 봐도 그녀는 자태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비몽사몽·비실비실 해롱거리는 시간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하일지 씨가 서울로 올라갈 일이 생겼고, 나도 이런저런 일로 서울에 가야 했으므로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가 없어졌다. 그래서 나와 하 작가는 같이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와서도 나는 염희 생각에 긴긴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토록 요염하면서도 청순한 여인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염희의 집이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과 집 안의 실내장식이 너무나 화려했던 것 등이 의심쩍긴 했지만, 나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연모의 정을 견딜 수 없어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중문에 도착하여 한 작은 호텔에 숙소를 잡은 후, 나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하라는 성을 가진 아름다운 부인이 어디 살고 있는지 수소문해 보았다. 그러나 그런 여자를 안다는 사람을 한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실의에 빠져 상사병의 고통을 뼈져리게 체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며칠을 고열과 가위눌림과 헛소리로 신음하고 있는데, 닫혀 있던 방문이 어느 순간 스르르 열리며 염희가 들어왔다. 나는 너무나 기뻐 반혼(半魂)이 나가는 듯하였다. 그래서 그동안 내게 기별을 안 한 것을 탓할 겨를조차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대관절 당신의 정체는 뭐냐> 하고 물으니 염희는 그제서야 자신의 신분을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었다.
「사실 저는 제주도 부근의 바닷속에 살고 있는 인어예요. 평소에 선생님의 책을 좋아하고 또 선생님의 솔직하신 인품을 흠모해 왔기 때문에, 바닷나라의 법칙을 깨고 잠시 당신과 만나 운우의 기쁨을 나눈 것이지요. 다행히 어머님이 찬성해 주셨기 때문에 당신을 한 번 만나볼 수는 있었지만 그 다음엔 도무지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도 당신이 그리워 큰 병을 앓을 수밖에 없었지요. 보셔요, 제 몸매가 이토록 말라 있지 않아요?」

염희는 나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몸뚱어리를 만져 보게 했다. 과연 예전보다 훨씬 살이 빠져 이쑤시개 같은 가냘픈 몸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워낙 마른 여자를 좋아하는지라 그녀에게 더욱 선정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당신과 오랫동안 함께 지낼 방법은 없겠소?」
하고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염희에게 물어 보았다.

4

그러자 염희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선생님을 찾아온 거지요. 하지만 선생님이 큰돈을 쓰셔야만 되는 일이라서 그게 걱정이 돼요.」
「대관절 돈이 얼마나 드는데?」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구려. 좀더 자세히 얘기해 주지 않겠소?」
「그럼 제가 사정을 자세히 말씀드리죠. 저는 인어 가운데 제일 예쁘고 요염하다고 정평이 나서 남해용왕의 후궁으로 들어가도록 정해져 있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오랫동안 모실 수 없었던 거지요. 그런데 바로 어제 용왕님께서 용궁을 나와 소풍을 즐기시다가 그만 어부의 그물에 걸려 버리고 말았어요.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용왕님을 구해 주시면 아마 용왕님도 저를 선생님께 선선히 양도해 주실 거예요.」
「내가 어떻게 용왕을 구해 줄 수가 있지?」
「용왕님은 사람들 눈에는 천 년 묵은 큰 거북의 모습을 하고 있죠. 그런데 지금 산 채로 잡히셔서 서귀포의 한 어부 집에 갇혀 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빨리 그 어부 집으로 가셔서 거북을 팔라고 해보셔요. 어부가 거북을 팔면 선생님은 거북에게, <염희를 제게 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라고 말씀하신 후 거북을 바다에 풀어 놓아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용왕님께서는 의리상 저를 갖겠다고 우기진 못하실 거예요.」
「하지만 그 어부가 아주 큰 액수를 거북 값으로 부르면 어쩌지? 내겐 그런 돈이 없는데….」
「그래서 저도 걱정이에요. 또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그 어부가 오래 묵은 영물인 거북을 팔아먹는 것이 죄가 될까 두려워 거북을 그냥 바다에 풀어 놓아 줘 버리는 거죠. 그러면 선생님은 용왕에게 베푼 은혜가 없어져 버리는 셈이 되어서, 저는 꼼짝없이 용궁의 후궁 신세가 될 수밖에 없거든요.」
「아무튼 빨리 그 어부의 집으로 가 봐야겠군. 그러면 전후 사정을 알 수 있을 터이고 또 당신과 함께 지낼 방도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말야.」

나는 염희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서 서둘러 서귀포로 갔다. 염희도 내곁을 따라와 줬는데, 내 눈에만 보이고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여 나는 그녀의 신기한 요술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서귀포 부둣가에 이르러 어촌 마을을 찾아가 보니, 과연 어마어마하게 큰 대형 거북을 잡은 일이 소문으로 쫙 퍼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거북을 잡은 어부 집으로 달려가 그 어부의 마음을 일단 떠보았다.
「그래 이 큰 거북을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글쎄요…. 모처럼 걸려든 횡재이니 큰돈을 받고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좀 켕기는 게 있어서요.」
「뭐가 켕기시는데요?」
「이 거북의 눈을 보십쇼. 잡힌 뒤로 계속 울고 있습니다. 거북이 눈물을 흘리는 것도 이상하려니와, 얼굴의 늠름한 기상 또한 사람을 주눅들게 만드는 면이 있어요.」

나는 어부의 말을 듣고 거북을 바라보았다. 과연 위엄 있는 눈매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럼 그냥 놔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거북은 워낙 영물인지라 그렇게 하시면 반드시 복을 받게 되실 겁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가난한 신세랍니다. 선생님이 적당한 값을 내고 저 거북을 사셔서 바다에 놓아주신다면 저도 좋고 선생님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만….」
「대관절 돈을 얼마나 드리면 저 거북을 파시겠습니까?」
그러자 어부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더니 드디어 결심한 듯 값을 불렀다.
「한 천만 원쯤 주신다면 거북을 팔겠습니다.」
나는 어부가 부르는 가격이 너무나 터무니없이 비싸 잠시 당혹감에 빠졌다. 그러자 곁에 있던 염희가 대뜸 내 모습을 하고서 나 대신 어부와 흥정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투명인간으로 변해 그녀가 하는 행동을 바라보게 되었다.
염희는 거북의 값을 깎고깎아 5백만 원으로 낮췄다. 그리고 나서 나를 바라보며 그 값 정도면 치를 수 있느냐고 눈짓으로 물었다. 나는 그 정도면 괜찮은 액수인 것 같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염희는 다시 내게만 보이는 투명인간이 되고 나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런 다음 급히 은행으로 달려가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여 어부에게 주었다. 어부가 거북을 내게 양도하자, 거북은 내게 몇 차례 고개를 숙여 감사 표시를 하는 것이었다.염희와 나는 용달차를 불러 거북을 실어가지고 외진 바닷가로 갔다. 그리고 나서 거북을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게 놓아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거북에게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용왕님. 제가 염희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을 제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디 만수무강 하시옵소서.」
염희도 거북에게 수없이 절을 하며 정중한 작별인사를 했고, 거북 역시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떡끄떡 했다.

거북이 바닷속으로 들어간 후 염희는 너무나 기뻐하며 나를 으스러져라 얼싸안았다. 그리고는 전번에 나와 함께 운우의 정을 나누었던 별장으로 나를 데려가는 것이었다. 별장 안으로 들어가니 실내는 전처럼 으리으리한 궁궐처럼 변했고, 나는 염희와 더불어 기가 막힌 쾌락을 맛볼 수 있었다. 긴 시간의 펠라티오가 끝난 후 염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여기 머물 수 없게 되었어요. 이젠 용왕의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의 소유물이 된 것이니까요. 여기 더 있다간 혹시라도 용왕의 마음이 변해 저를 뺏어갈지도 몰라요. 그분은 워낙 색을 즐기시는 분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염희와 더불어 서둘러 서울로 올라왔다. 염희와 내가 들어서자 내 초라한 아파트가 휘황찬란한 궁전처럼 변하는 것이 몹시도 신기하였다. 서울로 올라올 때, 염희는 제주도 바닷물을 큰 항아리에 하나 가득 싣고 가도록 부탁했었다. 그리고는 나와 둘이서 동거생활을 하면서, 식사때마다 자기가 먹을 음식에 마치 초와 간장을 치듯 그 바닷물을 조금씩 쳐 넣는 것이었다. 내가 왜 그러느냐고 물어 보니, 인어로서의 생명을 연장시키려면 제주도 바닷물을 조금씩 먹어야만 한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뒤로 나의 생활은 즐거운 음락과 자지러지는 오르가슴의 연속이었다. 염희는 특히 피부가 생선처럼 미끄러웠는데, 기름을 바른 듯한 피부로 내 온몸을 마사지해 주며 길디긴 혓바닥으로 전신을 핥아내릴 때 나는 까무라치는 법열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즐겁게 지내는 사이에 어느덧 항아리의 바닷물이 다 떨어져 버렸다. 물이 어느 정도 남아 있을 때 제주도로 내려가 바닷물을 가져와야 했는데, 나와 염희는 야하디야한 쾌락에 겨워 그만 물이 떨어진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서둘러 제주도로 내려가려 할 때 염희는 이미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곧 죽어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벌벌 떨며 창백한 표정을 짓고 있자 염희는 헐떡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5

「제가 숨이 넘어가더라도 아주 죽어 버렸다고 속단하시면 안 돼요. 우선 저를 위한 야한 연시(戀詩) 한 편을 정성껏 쓰셔서 제 머리맡에 붙여 놓으신 후, 빨리 제주도로 내려가셔서 바닷물을 한 항아리 길어오셔요. 그런 다음 그 바닷물을 제 입에 흘려넣어 주시는 거예요. 누굴 시켜 그 일을 하시면 안 돼요. 그러면 저를 되살리려는 선생님의 정성에 흠이 가게 되니까요. 제발 꼭 부탁드려요. 저는 당신과 한결 더 야하디야한 사랑을 오랫동안 나누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염희는 드디어 숨을 거두었다. 나는 그녀가 진짜로 죽어 버린 것 같아 한동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한 말이 허언일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우선 곧바로 연시 한 편을 쓰기 시작했다. 마음이 허공중에 붕 떠 있는지라 금세 시상(詩想)이 떠올라 주질 않았다. 한참을 낑낑거리다가 나는 겨우 한 편의 시를 완성할 수 있었다.

별을 따다가
염희의 혓바닥걸이와 젖꼭지걸이,
그리고 배꼽걸이와 음순걸이를 만들어 줘야지.
그리고 그녀의 입과 젖꼭지,
배꼽과 음순에
혀 박고 코 박고 손가락 박고
열렬히 야하게 키스해야지.
그리고 신나게 신나게 섹스해야지.

나는 시를 완성한 후, 그것을 고급 종이에 붓으로 정성껏 옮겨 썼다. 그리고 나서 시를 그녀의 머리맡에 붙여 놓은 후 서둘러 제주도로 내려갔다. 그리고 서귀포로 가 바닷물 한 항아리를 퍼가지고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염희의 입 안에 제주도 바닷물을 조금씩 흘려넣자 염희는 기적적으로 생명이 되돌아왔다. 그래서 그녀와 나는 서로 얼싸안으며 새롭게 고조된 관능적 환희에 온몸을 부르르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로 나와 염희의 생활은 신나는 쾌락의 연속이었다. 나는 다시 염희가 죽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한 번은 어쩌다 되살아날 수 있었지만 두 번째는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택배 회사에 부탁하여 서귀포 바닷물을 정기적으로 배달해 오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별 불안감 같은 것 없이 한껏 신나는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염희와의 동거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어 갈 무렵, 나는 염희에게 그동안 내가 궁금해했던 것에 대해 물어 보았다.
「도대체 인어라는 것이 정말 있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당신이 인어라는 사실에 의구심을 품을 때가 많아. 인어가 정말 있다면 한 번이라도 사람들 앞에 자태를 나타냈을 거 아냐? 그런데 인어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이나 동화 속에나 나오고 그걸 직접 봤다는 사람은 아직 하나도 없거든.」
그러자 염희는 방긋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인어는 없어요. 그건 남자들의 소망적 사고가 만들어 낸 상상의 산물일 뿐이지요.」
「그런데 염희는 왜 나를 보고 자기가 인어라고 했지?」
「그래야만 선생님이 저를 더 신비롭게 봐 주시고 더욱더 야한 사랑을 베풀어 주실 것 같아서 그랬지요. 선생님은 제가 거짓말을 한 것을 용서해 주시겠지요?」

나는 염희의 대답을 듣고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니 그녀가 인어든 아니든 내 앞에 요염한 여인의 자태를 하고 있고, 또 기가 막힌 애무 기술로 내 얼을 쏙 뽑아 놓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암 용서하고말고. 그렇지만 당신의 정체에 관해서는 여전히 궁금한 생각이 들어. 대관절 당신의 정체는 뭐지?」
하고 물었다.
「저는 사실 오래 묵은 암갈치예요. 그래서 인간으로 변할 수도 있게 됐고 요술도 부릴 수 있게 됐지요.」

염희의 정체가 갈치라는 대답을 듣고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평소에 가장 섹시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온 생선이 바로 갈치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은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갈치비늘은, 여인의 은빛 매니큐어나 광택나는 은발을 상기시켜 주어 나로 하여금 은근한 색정조차 느끼게 했던 것이다.
「음… 그래서 당신이 요즘 은발 머리를 자주 하고 은빛 매니큐어를 하고 있는 거였군…. 그런데 오래 묵은 물고기들은 다들 그렇게 요술을 부릴 수 있는 건가?」
다시 내가 염희에게 물었다.
「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도(道)를 닦은 물고기라야 그것이 가능해요. 전번에 당신이 놓아주신 용왕님도 그렇게 도를 닦은 분이시구요.」
「도? 염희가 말하는 도란 대체 어떤 도를 말하는 거지?」
「쉽게 말씀드려서 <섹스 교(敎)>의 도라고 말씀 드릴 수 있지요. 무심하고 죄의식 없는 방심상태(放心狀態)로 섹스에 몰두할 수 있을 때 도는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어요. 선생님은 지금 그런 도를 이루어 가고 있는 지구 유일의 인간이셔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을 돕기 위해 이렇게 나타나게 된 거구요.」
「그건 그렇다 치고…. 도대체 용궁(龍宮)이란 정말 있는 거야? 그 오래된 거북은 정말 용왕님이었나?」
「그럼요, 용궁은 바닷속 안에 분명히 존재해요. 다만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요.」
「그렇다면 그곳의 왕까지 되는 그 오래된 거북이가 사람들 손에 잡힌 것은 또 뭐야? 용왕이라면 그 정도의 화 정도는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할 것 아냐?」
「바닷속 나라의 법칙과 인간계의 법칙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일단 인간계 가까이로 나오게 되면 인간계의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답니다. 용궁은 아주 깊은 심해에 있는데 너무 멀리까지 소풍을 나오신 것이 그만 용왕님의 실수였어요.」

나는 염희의 말에 납득이 가기도 하고 납득이 안 가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야하디야한 미녀와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내겐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그녀의 몸뚱어리는 정말 갈치처럼 매끄럽고 날씬하여 내 온몸에 칭칭 감겨들며 온갖 색정적 서비스를 다해 주는 것이었다.

염희와 함께 밖으로 외출할 때도 많았다. 나는 특히 그녀와 함께 나이트클럽으로 가 서로 진드기처럼 엉겨붙어 블루스 춤을 추는 것을 즐겼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의 남자들이 다들 침을 질질 흘리며 질투에 불타는 눈빛을 보내는 것이 나는 내심 유쾌하였다.

나는 염희와 함께 신나는 향락과 쾌락에 잠겨 여섯 달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내 꿈에 그때 놓아 준 거북이가 나타났다. 거북은 순식간에 안색이 찌든 용왕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나를 구해 준 것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도 염희가 그리워 이렇게 상사병에 걸렸소이다. 그녀를 그만큼 데리고 노셨으니 이젠 제게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꿈을 깨고 난 후 나는 침대 곁을 더듬어 보았다. 그랬더니 과연 나를 껴안고 잠들어 있던 염희가 보이지를 않는 것이었다. 나는 간장을 녹이는 슬픔에 잠겨 오랫동안 멍한 표정을 하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마광수 연작소설 <광마잡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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