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승국의 단편소설>


▲ 소설가. 연변작가협회 회원. 용정거주
엄마의 우물에는 향기로운 사랑이 있고 잔잔한 미소가 있으며 맑은 소망이 있다. 그 우물에 가면 나를 울리던 금이 간 물바가지가 있다. 그리고 애달프게 들여다보이는 우물속의 하얀 조약돌이 있다. 또한 퐁퐁 솟는 샘물도 있다…

엄마는 봄이면 앓곤 했다. 의사의 말이 산증이라고 했다. 엄마는 얼굴이 팅팅 부어오를 때면 신경질을 부리곤 했는데 눈물까지 흘렸다. 한사코 병원에만은 가지 않겠다고 버텼는데 그 누구도 말려낼수가 없었다. 고집이 당나귀도 울고갈듯싶었다. 그런대도 토방법을 자기절로 쓰군 했는데 용케도 부은것이 내리고 정신도 차렸으며 밥술도 가볍게 들더니 일밭에도 나가고 웃음도 얼굴에 올랐다. 그덕에 우리 집은 봄을 맞아 처음 닭곰으로 생활개선을 했다. 아끼던 씨암탉을 잡으면서도 엄마는 눈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엄마는 닭곰을 할 때면 꼭 닭의 배속에 찰밥을 넣군 했는데 거기에 곁들이는게 더 있었다. 황계아니면 인삼을 넣고 실로 배를 수술후 봉합처럼 기워매군 했다. 그다음 솥에 물을 조금 붓고 나무로 만든 시루다리를 두세개 솥안에 걸쳐놓는다. 그리곤 닭을 오지단지에 넣어 시루다리우에 올려놓고 솥두껑을 덮은후 불을 땐다. 솥이 끓어 이십여분이 지나면 닭고기냄새가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엄마는 물길러 가군 했다.


《물길러 갔다올테니 아궁이에 나무가지를 좀 넣어라.》
그렇게 물길러 갔다온 엄마가 빈 물동이를 이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엄마의 얼굴색이 말이 아니게 흐려있었다. 엄마는 물동이를 언덤에 놓고는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부엌에서 불을 때던 나는 인차 엄마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엄마는 사랑칸에서 삽을 들고 나섰다.


《엄마, 삽은 왜?》
《우물을 손질해야겠다. 어느 망할자식이 소한테 물을 먹이다가 그랬는지 우물후렁이 무너졌더구나.》
《엄마 혼자힘으로 어떻게 손질한다고 그래?》
나는 엄마뒤를 따라서며 툴툴거렸다. 나는 엄마가 늘 그렇게 싱거운 일을 찾아하는줄 알고있었다. 그 우물도 엄마혼자 마시는것도 아니고 온 동네가 다 마시는 우물인데 한사코 고집스레 홀로 나서기를 즐겼다.
《누가하든 손질하기는 마찬가지야.》
나는 엄마의 뒤를 따라 우물이 있는 당나무밑으로 가니 우리가 매일 매시각 마시는 우물이 살풍스런 모습을 보여주고있었다. 둔한 소의 발에 밟혀 우물둘레에 쌓은 돌이 한쪽 귀퉁이가 우물속으로 무너져내려 우물이 몹시 흐려져있었다. 그 살풍경을 보자 나는 저도모르게 밸이 울컥 솟아올랐다.
《어느 개새끼…》
《개새끼가 아니라 소새끼다.》나는 다시 한번 엄마가 알아들을수 없는 말을 입속으로 툴툴거리고는 엄마의 손길을 따라 일을 거들었다.


우물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알수 없으나 오랜세월을 흘러온듯 돌에 푸른 이끼가 끼였고 돌과 돌사이에 옹배기쪼각이 드문드문 끼여있었다. 우물은 정갱이높이만큼의 깊이에 한발남짓한 아구리를 가진 바가지우물이였다. 물은 돌틈에서 솟는 샘물이라서 사람들은 암수(岩水)라고 했다. 내가 퍽 어릴 때부터 엄마가 그냥 그 우물을 손질해온것을 알고있어 나는 우물을 엄마의 우물이라고 불렀다.
언젠가 엄마가 두만강가에 나가 하얀 자갈돌을 주어다 우물속에 뿌려놓아 우물속에 하얀 자갈돌이 들여다보였댔는데 지금은 간혹 몇개씩만 들여다보였다. 어느 장난꾸러지 개구쟁이들이 건져간것이라고 엄마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알려주었다. 엄마는 돌을 쌓으며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우물은 가꾸는 사람이 따로 없다. 언제나를 막론하고 누구나 다 가꿀 일이니라.

엄마는 돌 하나를 쌓는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모나지 않고 둥글게 생긴 돌이라 어떻게 놓아도 시원치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열번이라로 돌을 돌려가며 견고하고 곱게 쌓기에 열심했다. 그렇게 한시간정도 애를 써서야 겨우 원모양 비슷하게 돌을 쌓아놓을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엄마는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우물안의 나무잎이랑 비닐주머니같은것들을 건져냈다. 시골에는 도처에 쓰레기같은 오물들이 많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그런 오물들이 곬을 따라 흘러내리군 했다. 그렇게 바람에 날려 우물에 떨어진 먼지와 쓰레기들이 볼품없이 우물을 망가뜨리고있었다. 엄마는 그 항거할수 없는 자연의 심술앞에서 그저 말없이 우물을 손질하는데만 열심했다.


《래일 엄마 함께 강변으로 가자.》
《강변에는 왜?》
내가 의아한 눈길로 엄마의 땀이 흐르는 얼굴을 바라보자 엄마는 느슨한 웃음을 얼굴에 떠올렸다.
《우물속에는 흰 자갈돌이 들여다보여야 물맛이 나는거란다.》
《그런 자갈은 내가 일밭에 나갔다가 주어올게. 뭐 시간내서 갈것까지야.》
《뭐 쓸거나 주어오겠냐?》
《보면 알지, 근심마. 래일 강변밭에 두엄내면서 갔다가 주어올게.》
엄마는 나를 대견스레 내려다보더니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아마 그런대로 지켜봐주려고 하는것 같았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일거리를 맡는것을 마치 큰 자랑거리를 만드는것처럼 여기고있었다. 어쨌든 엄마를 돕는다는 생각하나만으로도 기분이 즐거웠기때문이였다.

엄마의 우물주위에는 여러가지 풀들과 들꽃이 피여있었다. 그 풀들과 들꽃은 자연이 하사한 혜택이고 그것을 가꾸는것은 엄마의 지혜이고 의무였다. 일자무식인 엄마는 그저 자신의 힘으로 우물을 청소했고 그러한 의무를 하나의 리념같은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 극성스러움은 사람을 감탄케 할 정도였다. 언제나를 막론하고 우물을 집물독마냥 깨끗하게 손질해놓군 했다.
마을에는 위생소가 있었다. 위생소에서는 초약을 달여 마을사람들과 학교에 보내 절기에 따른 전염병을 예방하게 했다. 해마다 봄이면 류행성감기를 비롯한 전염병이 전파되여 많은 사람들이 병에 시달렸다. 위생소에서는 산에서 캐온 약재로 약을 달이군 했는데 물은 엄마의 우물에 와 길어갔다.


그해 촌위생소는 전염병예방퇴치로 전시적으로 첫손에 꼽히는 위생소로 되였다. 경험발표때 촌위생소 박의사가 마을에 유일한 우물인 엄마의 우물을 자랑삼아 선전했다. 그 소문으로 시병원에서 사람을 마을로 파견해 엄마의 우물에 대한 수질화험을 했다. 결과 엄마의 우물에서 솟는 샘물은 광물질을 비롯한 미량원소가 풍부하다는것이 실증되여 엄마의 우물은 대뜸 전 시에 소문났다. 그후 여러위생부문에서 엄마의 물을 길어다 증류수를 만들었고 제약에 쓰군 했다. 그덕에 마을은 전시에 소문났다. 그러나 엄마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의 우물은 엄마의 소유가 아니고 촌의 소유였기때문이였다.


비는 하늘이 내리고 절은 부처가 받는다고 엄마가 땀을 흘려 손질하고 건사해온 우물이 소문나자 촌주임과 서기, 그리고 촌위생소 박의사네는 북경유람까지 갔다왔다.
어느 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날, 엄마는 삽을 들고 어딘가 나갔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농군들은 일손을 놓고 집에서 한가히 잡담이나 하지 않으면  술놀이나 하군 했다. 일없이 집에서 바느질하던 엄마가 밖을 한참 내다보다가 밖으로 나가자 나는 어딘가 집히는데가 있어 슬그머니 엄마뒤를 따랐다. 틀림이 없었다. 엄마는 삽을 들고 머리에 작은 비닐쪼각을 쓰고 우물로 내려가 우물주위에 도랑을 파고있었다. 나는 대뜸 엄마의 손에서 삽을 빼앗았다.


《엄마, 이 우물이 엄마 한사람 마시는 우물이야? 왜 옆사람까지 억울하게 만들어?》
엄마는 말없이 삽을 도로 빼앗아 그냥 도랑을 팠다.
《엄마한테 복이 차려지라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그만해, 복이란게 따로 없다. 내 마음에 내켜서 하는 일이면 그게 복이다. 넌 아직 어려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채 몰라 그런거다.》
엄마는 조용히 미소하며 머리에 쓴 비닐쪼각을 벗어 나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누가 손질하든 우물은 마찬가지다. 너도나도 다 함께 마시는 우물이고 꼭 이 우물만 마셔야 하니깐 네일 내일 따로 없다.》


나는 더는 엄마의 말을 반박할수 없었다. 언제 한번 부모의 말을 거역해본적이 없었던 나라 말없이 여기저기서 돌을 주어다 우물주위에 쌓아놓았다.
우물은 그렇게 항상 맑았고 사람들은 그냥 맑은 물을 마셨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한테 감사하다거나 감격해본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고 그로해서 엄마가 사람들한테서 칭찬을 받아본적은 더구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로부터 엄마의 우물의 존재가치를 얼마만큼 알게 되였고 엄마의 소망이 무엇임을 알게 되였다. 그후 나의 일상에는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겨났는데 그것이 바로 엄마의 우물에 신경을 쓰는것이였다. 내가 조금이라도 엄마의 우물을 건사하면 그만큼 엄마의 일손이 덜어지기때문이였다.
여름이 으슥해지면 농한기에 잡아들어 사람들은 그늘밑에 앉아 뉘집 아낙네 흉을 보지 않으면 자기집 자식이나 먼 친척집 자랑을 늘여놓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 계절이면 많은 아낙네들이 자기집 이불이나 케케묵은 옷가지들을 대야에 담아들고 엄마의 우물가로 나와 빨래를 하곤 했다.


엄마도 례외가 아니였다. 천성적으로 결백을 하나의 미덕으로 여겨온 엄마라 옷가지나 이불에 때가 끼면 용서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로인해 우리는 늘 엄마한테 욕 아닌 욕을 먹군 했고 나는 물론 온집식구는 각별하게 몸건사에 신경을 도사렸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집 식구들은 어디가도 옷매무시가 정결하다는 말을 곧잘 듣곤 했다.
빨래터에는 매일 대여섯씩되는 아낙네들이 몰려와 빨래를 했다. 빨래감은 가지각색으로 별의별 볼거리가 다 있었다. 몇십곳도 더 되게 기운 옷가지가 있는가 하면 석삼년때가 꼈을 이불거죽도 있었고 누런 똥이 말라붙은 애기똥걸레도 있었다.
어느날 나는 두만강가로 낚시질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엄마의 우물에 들렸다. 엄마의 우물에는 여라문되는 아낙네들이 모여있었는데 그속에는 엄마의 몸매도 비쳤다. 그런데 가까이 가니 엄마가 야장간집 며느리와 다투고있었다.


《그래 똥빨래그릇을 그대로 우물에 넣으면 되냐구?》
《그게 뭐 그리 대단하구 야단침둥.》
《그럼 그집에선 똥빨래하던 그릇에 국 담아먹겠구만? 그런건 아니겠지?》
《우물이 뭐 그집 우물이기라도 한가? 별 꼴 다 보겠네.》
《뭐라구? 누구한테 하는 말버릇야! 그래 깨끗한 물을 마시자는게 나쁘고 너처럼 똥그릇을 우물에 쉽사리 넣는게 옳구나.》
엄마가 후딱 몸을 일으켰다. 엄마의 두눈이 무섭게 번뜩였다. 야장간집 며느리도 만만찮게 몸을 일으켰다. 잡도리가 심상치 않았다. 옆에 있던 아낙네들이 일어나 엄마와 야장간집 며느리를 주저앉혔다.


《돌이에미, 그러는게 아니야. 내 말이 그른가 한번 잘 생각해보게.》
한참후 엄마는 조용히 훈계비슷한 말을 하고는 빨래대야를 이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우물가를 떠나갔다.
엄마가 떠나간지 한참후 나는 거칠게 아낙네들이 모인 우물가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야장간집 며느리를 한참 쏘아보고는 엄마뒤를 따라갔다. 나는 엄마를 대신해 뭐라고 한마디라도 쏘아주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날밤 엄마는 바게쯔를 들고 우물로 나왔다. 나도 물론 따라나섰다. 그건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 엄마는 낮에 우물에 넣은 그 똥빨래그릇에 맘에 걸려 우물가시러 나온거였다.


달빛이 휘영청했다. 멀리 논밭에서 개구리의 목터지는 울음소리가 끊기지 않고 그냥 이어졌다. 하지가 지난 여름밤이라 한낮의 열기를 그냥 담고 찌물퀐다.
《엄만 참 이상한 사람이야?》
《왜?》
《남들한테 욕보면서 왜 이러는데?》
《몰라서 묻냐? 이게 바로 엄마의 우물이기때문이지.》
달빛에 엄마의 웃는 얼굴이 환히 비쳤다. 하지만 그 웃음뒤에 숨은 엄마의 회한을 나는 느끼고있었다. 웃음만이 아니였을것이다. 엄마가 가지려고 하는것이 그 웃음만이 아니였다.
엄마와 나는 한시간 남짓이 땀을 흘려서야 우물가시기를 끝낼수 있었다.
《수고했다.》
나는 엄마의 말에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짐을 어쩔수 없었다. 내가 수고하면 엄마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그래 엄마는 응당 해야할 일을 했단 말인가? 도무지 리해할수도 가늠할수도 없었다.
《엄마도.》
나는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
《엄마 래일 닭곰해줄게.》
나는 구태여 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엄마가 할수 있는 일이였고 엄마가 지꿋게 해야할 일이였기때문이였다. 이것이 엄마의 숙명이면 숙명일수도 있었다.


엄마가 아프다고 드러누운것은 가을이 금방 끝나서였다. 워낙 신염으로 시름거리던 엄마의 고질병이 고달픔때문에 또 발작을 한것이였다. 엄마가 앓을 때면 우리 집은 통채로 우울증에 빠져버리군 했다. 그런 낌새를 알고있는 엄마는 마음이 안쫑잡혀 닭곰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는데 본인은 닭고기 한점도 들지 않았다. 닭고기가 신염에 나쁘다나. 엄마의 말이였다.
아버지는 어느날 어디에서 얻었는지 노루뿔 한쪼각을 가지고 신나게 집에 들어섰다.


아버지는 술내를 풍기며 자랑을 한바탕 늘여놓았다.
《이게 뭔지 알어? 이게 록각이라는거야. 여보, 당신 이 노루뿔을 달여먹으면 신염이 씻은듯이 치료되지 않나 보라구.》
검실검실한 수염에 파묻힌 아버지의 입으로 석쉼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큰 자랑거리라도 만들어온것처럼 그 자리로 밖에 나가 쇠망치를 들여다가 그 노루뿔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셔진 노루뿔쪼각들을 달여 식혀두었다가 메밀묵처럼 된것을 그대로 복용하면 되였다.
그렇게 엄마는 토방법에 의해 자신의 병을 무마해가고있었다. 엄마는 항상 병마를 초개같이 여겨왔다. 세월의 비바람에 의해 망가져가고있는 자신의 몸을 그대로 자기를 만들어준 하느님한테 맡겨버린듯도 싶었다.
팅팅 붓던 얼굴이 차츰 차도를 보이며 내리기 시작할 즈음에 농촌수도화를 실현한다는 상급의 지시정신으로 촌에서는 마을에 수도를 놓는다고 했다. 산너머 뒤골의 개울물을 려과시켜다가 음료수로 한단다. 세월이 흐르니 신세도 고쳐본다고 마을사람들은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기뻐서 언거번거 들까불었다.


그날부터 촌에서는 각 집집마다 수도관을 묻는 구뎅이를 파게끔 메터수로 떼주었다. 우리 집에도 몇십메터되게 차려졌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괭이와 삽을 메고 매일 땅파기에 나갔고 가끔 불편한 몸을 끌고 엄마도 나서군 했다. 생각만 해도 신선스러운 수도물이 집집에 안장된다고 하니 수도공정은 진척도 빨랐다. 초겨울에 잡아들기 바쁘게 집집의 오지독에 수도물이 꿈같이 쏟아졌다.
나는 그날 저녁 조용히 집을 나와 엄마의 우물로 나갔다. 엄마의 우물가에 웬 그림자가 외소하게 쭈크리고 앉아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엄마였다. 엄마는 울고있었다. 달빛에 엄마의 눈물은 맑에 빛나고있었다.
《엄마?》
나는 조용히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힘겹게 몸을 움직여 한쪽으로 드텨앉았다.
《국이냐? 이리와 앉거라.》
엄마곁에 앉으니 엄마의 가느런 말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엄마의 고향에는 엄마가 아침마다 머리를 적셔 다듬던 우물이 있었단다. 그런데 그 우물이 산사태에 파묻혀버리는 바람에 엄마는 할수 없이 식구들과 함께 고향을 떠나고말았단다…》


나는 그 이야기가 광복전일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엄마는 마음이 서글퍼질 때면 늘 이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엄마의 눈에 비낀 애수를 보군 했다. 소녀때의 그 우물을 오늘의 이 우물로 대신해보는 엄마의 그 마음속 저변에는 어떤 소망이 자리하고있는것일가?


그해 겨울, 나는 엄마를 위해 산판을 헤매며 노루를 사냥해보겠다고 설쳐댔으나 노루꼬리도 보지 못하고 겨울을 지나보냈다.
엄마의 병세는 차도를 보이기는커녕 점점 악화되여갔다. 밤이면 엄마의 앓음소리가 가슴을 허벼댔다.
어느날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현성으로 병원을 찾아떠났다. 그렇게 떠나갔던 아버지와 엄마가 해가 져가는 저물녘에 집에 들어섰는데 아버지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져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약주머니를 풀어헤치며 웃음을 비쳐보였다.
《이 약을 다먹고 시간이 가면 괜찮을거라고 했다.》
그날 저녁을 엄마는 아주 맛나게 드시는것 같았다. 아무튼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니 얼어들었던 가슴속 한구석이 녹아내리는듯 했다.
엄마가 자리차고 일어나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엄마의 병세가 근심스러웠다. 그래서 슬그머니 아버지한테 엄마의 병세를 물었지만 아버지는 치료하면 괜찮을 거라고 얼버무리군 해서 나를 오리무중에 빠지게 했다.
수도물이 집집에 들어오면서부터 엄마의 우물에는 점점 사람이 적어졌고 한적해졌다. 쓸쓸하리만치 호젓한 우물가에는 혹시 채소나 빨래감, 나물따위를 씻으러 나온 아낙네들뿐이였다.


어느날 엄마는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우물을 손질해야겠는데 말이다. 몹시 망가진것 같던데…》
안타까움이 어린 엄마의 눈가에 아쉬움의 눈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인젠 수도물이 신선스레 쏟아져나오는데 그까짓 우물을 손질해 뭘해? 엄만 그따위에 신경쓰지 말고 병치료에나 신경써. 참…》
나의 볼부은 소리에 엄마는 서운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때나 그 우물을 다시 마실수 있을거다. 절때 버리지 말아야 한다.》
엄마는 아픈 몸을 끌고 하루에 한번씩 우물에 나가보군 했는데 돌아와서는 아무말도 없이 수도물꼭지를 묵묵히 바라보군 했다. 그러다가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수도꼭지를 열고 쏟아져나오는 수도물을 내려다보면서 조용히 미소를 흘리기도 했다.
나는 엄마의 그 소망을 지켜드리려고 시간이 나는대로 우물에 나가 물도랑도 쳐놓고 우물안에 떨어져들어간 비닐쪼각이나 나무가지따위를 건져냈다. 그렇게 한번씩 엄마를 대신해준 후면 어쩐지 마음이 개운해졌고 마치 큰 일이라도 해놓은듯 스스로 대견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처럼 그렇게 알뜰하게는 가꿀수가 없었다.
엄마는 우물가로 나갔다가 돌아오면 기쁨을 가무리지 못한채 나를 정겹게 바라보았다.
《네가 했지? 자식…》
《까짓거 가지구…》
나는 엄마의 즐거워하는 표정을 읽으며 속으로 한없이 기뻤다. 이렇게 기쁨을 드려 엄마의 병이 나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었다. 그런날 저녁이면 엄마는 나의 밥그릇에 닭알 한알을 얹어주면 아닌보살을 떨었다.
《일하느라 많이 축해졌다.》
물론 아버지한테도 동생한테도 똑같이 차려지는 엄마의 혜택이였지만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랐다.


겨울을 지나보내고 엄마의 치마폭같이 산뜻한 봄이 찾아왔다. 봄이 돌아오면 시골은 농사차비로 바쁘다.
어느날 엄마는 일밭에 나갔다가 허리가 끊어지는듯한 통증으로 그자리에 까무러치고말았다. 그렇게 쓰러진 엄마는 자리에 드러누웠다. 엄마의 얼굴은 팅팅 붓기 시작했는데 고통을 참느라고 찌프린 량미간의 주름이 내 가슴속에 깊은 골짜기를 파놓았다. 우리가 병원에 가자고 졸랐지만 엄마는 한사코 고집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괜찮다는것이 엄마의 치료방법인듯싶었다.
날마다 축해지는 엄마앞에 어느날 나는 무릎을 꿇었다.
《엄마, 제발 고집부리지 말고 병원에 가봐. 난 엄마가 밤마다 내는 앓음소리를 들을수가 없어.》
할수 없이 엄마는 병원에 가기로 했다. 나도 따라나섰다. 나는 나의 귀로 엄마의 병세를 듣고싶었다. 도대체 엄마의 병이 얼마나 엄중한지 알고싶었다.

엄마는 병원의 여러칸으로 의사가 시키는대로 들락거리더니 점심무렵에야 병원복도에 놓인 나무걸상에 주저앉았다. 엄마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고통스레 내돋았다.
아버지는 나한테 엄마를 맡기고 의사와 함께 방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따라 들어가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부라리는 눈에 기눌려 그대로 주저앉고말았다.
얼마후 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왔는데 얼굴에는 애써 만들어내는 미소가 비꼈다. 그 미소를 읽으면서 나는 엄마의 병세를 짐작할수 있었다. 나는 어금이를 깨물며 엄마의 가냘픈 손을 꼭 잡았다.
《가자.》
아버지는 얼굴을 돌리고 성큼성큼 앞섰다. 그뒤를 따르며 엄마가 아버지의 옷깃을 잡았다.
《의사가 뭐랬는데 그래유?》
《입원할 필요가 없다누만. 집에서 치료하면서 잘먹으면 된대.》
《내 그럴줄 알았지. 국이야, 봐라. 엄마가 이제 백살까지 살지 않나.》
엄마의 얼굴에는 채색무지개같은 웃음이 비꼈다. 그렇게 찬란한 웃음을 나는 처음 보았다. 고통속에서 모대기는 엄마의 얼굴에 어떻게 그런 웃음이 비낄수 있었는지 알수 없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돌아온 엄마의 정신상태는 초인간적으로 명랑했다. 늘 웃음을 얼굴에 담고있었는데 그런 상태는 모내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다가 끝내 드러눕고말았다. 그때에야 아버지는 나한테 조용히 알려주는것이였다.
《국이야, 엄만 방광암이란다. 인젠 치료할수가 없다. 전번에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그러더라.》
나는 이미 마음속에 준비가 있은지라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그렇게 못된병에 걸렸을줄은 미처 몰랐었다.
《저도 어느정도 알고있었지만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나는 뒤말도 잇지 못한채 울음을 터뜨렸다. 약한첩 제대로 써보지 못한 엄마가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엄마는 여름을 넘기지 못한채 무더위가 심한 어느날 숨을 거두었다. 엄마는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도 식구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미소를 바라보며 엄마가 우리들 마음속에 그늘을 던져주지 않으려고 애썼음을 알수 있었다.
장례를 치른 그날밤 나는 엄마의 우물가로 나갔다. 멀리서 바라보니 엄마의 환영같은 그림자가 엄마의 우물가에 앉아있는듯싶어 심히 놀랬다. 그사이 우물은 손이 가지 않아 수면에 종이장, 나무가지, 풀잎들이 둥둥 떠다녔다. 볼성사나운 우물을 내려다보며 나는 조용히 엄마를 불러보았다.
《엄마, 엄마가 없으니 우물이 더러워졌어.》

그해 가을, 나는 친척의 소개로 일자리를 찾아 외지로 떠나갔다. 객지생활의 고달픔과 지겨움에 부대끼면서도 나의 마음속에는 하냥 엄마의 우물이 맑게 솟아나 견딜수가 없었다.
그해 음력설, 집에 오는 길로 나는 행장을 풀기 바쁘게 엄마의 우물을 찾아갔다. 멀리서 바라보니 엄마의 우물가에 한무리의 소떼들이 모여있었다.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소들을 쫓아버렸다. 소들이 몰켜있던 우물주위에는 누런 소똥이 지저분하게 널려있었고 우물후렁을 쌓아올린 돌들이 반나마 무너져내려 꼴불견이였다. 나는 억이 막혀 한참이나 그자리에 서있었다. 불어오는 하늬바람에 우물은 점점 더러워지고있었다. 나는 차디찬 겨울하늘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엄마의 얼굴조차도 그려볼수 없을것만 같았다.

나는 머리를 수그린채 엄마의 우물을 떠나고말았다. 그렇게 얼마마한 세월이 흘렀을까.

지금 엄마의 우물에는 웃음도 없고 채색무지개도 없으며 노래도 없고 이야기도 없다. 엄마의 우물에는 아쉬움과 기대만이 남아있다.
엄마가 웃기전까지…

룡정에서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