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박초란>

그 겨울에 나는 일곱살이 됐다. 미운 일곱살이네 하고 막내고모가 질색을 하지만 나는 주변사람들한테 꽤 사랑받는 꼬마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세살되던 해에 한국으로 갔다고 한다. 그리고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도 목소리를 들은적도 없다. 그 흔한 전화도 엄마는 한번도 해준적 없다. 내 짝인 연희네 아빠는 로씨야란데서 잘도 전화가 오건만.

    처음에는 그냥 엄마가 일하시느라 힘들어서 그런줄로 알고있다가  말 헤픈 고모입에서 엄마와 아빠가 리혼을 했다는걸 알았다. 그 중대한 일을 나만 쏙 빼놓고 모르게 하다니, 억울한 생각에 눈물이 많이 났지만, 지금은 코 풀적이면서 울기도 싫다. 나는 남자니까 말이다. 향수병을 다쳐놓았다고 고모가 눈알이 빠지도록 내 뒤통수를 후려쳐도 나는 울지 않는다. 울지도 않고 문뒤에 몸을 감추고 라라라 혀를 날름거리고있으면 고모는 더더욱 화가 나서 팔딱 뛴다. 고모가 그러는 모습이 재밋기도 하다.

    아빠는 고모말처럼 잘 나가는 연극배우이다. TV를 보면서 아빠 화이팅! 했던 때도 벌써 1년전이다. 지금은 아빠가 TV에 나와도 그저 그렇다. 왜냐면  TV에서만 아빠 모습을 볼수 있다는게 싫어서다. 아빠는 우리 사는 고장에서 좀 멀리 떨어진 Y라는 도시에서 산다. 명절때면 새옷이랑 놀이감이랑 사갖고 나 보러 오지만 난 싫다. 리유라면 아빠와 함께 온 누나가 자꾸 내 볼에 뽀뽀하는게 싫어서다. 그 누나는 화장도 너무 짙게 해서 정신이 통 없어진다. 그러면서도 맨날 《화장을 지우고》를 흥얼댄다. 나는 그래도 고모가 좋다. 왜냐면 시장서 화장품가게를 하고있으면서도 고모에게서는 화장품냄새가 아주 적게 나니까. 헌데 요즘따라 막내고모에게서두 냄새가 좀씩 짙어지는것 같다. 실은 고모만의 냄새가 향수보다 더 맡기 좋은데도 말이다. 어쩌면 할머니가 늘쌍 경고주는 빠랑(머리방)을 차린다는 긴머리 삼촌이랑 사랑이란걸 하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음력설에도 아빠는 그 누나와 같이 왔다.

    -희현아, 엄마. 누나가 아니고 엄마라구 해, 알았지!

    아빠가 나를 누나에게 내밀면서 그랬지만 나는 기어코 《누나!》했다.

    -어머, 희현이 눈에는 내가 그렇게 젊어보이니? 고맙다. 희현아!

    그녀는 내가 엄마라 하기 싫어서 그러는줄 모르고 법석을 피운다. 우리 동네의 순화도 새 엄마를 했다. 순화는 그 녀자를 아재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시키는대로 아재, 라고 하기도 싫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꽤 재미있는 동네이다. 할머니 말씀이 옛날에는 갈대밭이 무성했던 고장으로 학이 날아다녔다고 물학성이라고 했다는 동넨데, 가끔씩 볼거리가 많이 생긴다. 행선이네 고양이가 새끼를 열한마리씩이나 낳았다는둥, 경철이 할아버지네가 암소를 한마리 사왔는데 새끼를 가진 암소인줄 판 임자도 몰랐다는둥 하여튼 날마다 들을거리가 많은 동네이다. 내가 본래 살았던 Y시처럼 비행기도 공원도 없지만 그런대로 재미는 있다.


    우리가 살고있는 집은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손수 지으신거라고 한다. 집안에 기둥이 그대로 드러나있는데 매번 내 생일때면 할머니가 그 기둥앞으로 나를 끌고가서 우리 희현이 얼마나 컸나 보자, 그러시면서 금을 하나씩 그어놓는다. 벌써 그 금이 세개나 그어져있다.

    집안은 모두 네칸으로 나뉘는데 웃방 하나, 고방 하나, 정주칸 하나, 건너방 하나가 있다. 정주칸에 부엌이 곁달려있는데 부스깨(불엌아궁이가 있는 곳)는 어떻게나 깊은지 매번 할머니를 도와 나무를 집어넣은 뒤에는 할머니가 나를 안아 올려줘야 했다. 부엌에 이어 출입문이 나있는데 그사이에 신을 벗어놓는 현관 비슷한 곳을 할머니는 바당이라고 불렀다. 출입문을 나서면 궁냥(채석)이 있었다. 궁냥에는 늘 할머니가 말리는 무말랭이며 고추말랭이며 옥수수이삭이며가 널려져있었다. 부엌과 벽 하나를 사이두고 건너방이 있는데 전에 삼촌이 거기 거처했었다고 했다. 삼촌은 지금 일본류학중이다.

    나는 고방하고 건너방에 잘 가지 않는다. 고방은 어두침침해서 싫고 건너방은 오래동안 방치해둔탓에 퀴퀴한 냄새가 나서 싫다. 실은 두곳 다 내가 들어가기 무서워하는 곳이다. 또 한곳이 내가 무서워하는 곳이 있는데 본채 왼측에 늘여져있는 사랑채이다. 그곳은 오래전부터 이미 사람이 들지 않고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곳이 됐는데 사랑채 막끝에 김치움이 있는 자그마한 창고가 딸려있었다. 그 창고는 딱 한번 할머니하고 들어가봤는데 낮에도 시커먼게 귀신이 당금 어둠속에서 뛰여나올것 같았다. 할머니는 그 어둠속에서도 익숙하게 움뚜껑을 열어젖히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더니 이윽해 여기 있구나, 하면서 탁탁 뭔가 치는것이였다. 조금 있다가 안이 희부옇게 밝아졌다. 할머니는 거기에다 성냥하고 초 꽁다리를 숨겨놓고있었다. 나는 어둠속에 앉아 밑에 있는 할머니가 김치를 다 담기를 기다려야 했다. 도중에 가끔 할머니! 하고 부르고 할머니가 됐다, 인츰 올라간다 이러셔야 조금 안심이 되군 하였다. 그렇게 열댓번 확인하고나면 할머니도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군 하였다. 먼저 김치바가지가 올라오군 했다. 희현아, 이걸 받거라! 그러면 나는 두손으로 바가지를 받아쥐고 할머니가 올라오셔서 움뚜껑을 꽁꽁 여며놓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여기서는 사람들 모두 할머니를 《아매》라고 부른다. 처음에 왔을적에 나도 그게 재밋어보여서 아매, 아매 하고 불렀다가 아빠한테 혼난적이 있다.

    -표준말을 써야지. 농촌애가 다 됐구나, 배울게 없어 그런거나 배우고…

    아빠가 나를 혼낼 때 할머니는 궁냥에서 봄에 심을 옥수수씨를 다듬고있었다.

    -그게 먼 소리오? 그 소리 임자는 생전 시내서만 자랐더냐?

    할머니가 내편만 들어줘서 아빠가 더 못마땅해하는것도 나는 안다. 아빠가 찔끔 나를 무섭게 노려보는것도 그래서 리해해주기로 한다.

    
    또 새해이다. 나는 설을 쇠고나서 일곱살이 됐다.

    내 보물함에는 또 한가지 보물이 늘어났다. 보름에 놀던 콩에 새긴 윷 네알, 윷판은 책상서랍밑에 그린거라서 내 보물함에 집어넣을수가 없다. 그래서 할머니한테 먹과 붓, 그리고 종이를 한장 달래서 그 모양대로 내가 본을 떴다. 본을 떴다는 말은 고모한테서 배운 말이다. 요즘 고모는 련꽃과 이름이 좀 이상한 물오리 비슷한 새를 수놓이하고있다. 그 이상한 새 이름이 원앙새라고 한다. 큰 시장에서 사왔다는 그림종이에는 가로세로 선들이 빽빽이 차있는데 그 구멍에다 색실을 배합해 기워넣으면 된다고 한다. 고모가 자리를 비운새에 나도 몇번 해보았는데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고모가 쓰고 남은 여러가지 색실을 얻어가지기 위해서 그곁에서 맴돌았다. 그러면 내 보물들이 또 한가지가 늘어나게 된다.

    내 보물함에는 지난해 가을에 모은 나팔꽃, 분꽃, 봉선화 씨앗들이 있고 삼촌이 일본서 사다준 원격조종비행기, 할머니가 주신 1원짜리 동전 네개, 내가 기어코 누나라 부르는 그 누나가 사준 전자양과 바꾼 고모의 길다란 외태머리, 지금 고모가 얼려내지 못해 안달아하는 세배돈 이백원에 동네 아이들이 준 조개껍데기나 무늬가 이쁜 조약돌들이 들어있다. 그리고 내게 가장 소중한 엄마가 했던 진주목걸이와 할머니가 지금의 비녀가 있기전에 비녀처럼 꽂고 다녔던 외짝이 은저가락이 있다. 진주목걸이는 언젠가 아빠 침실에서 찾아낸것이였다. 침실에서 놀고있는데 어디선가 친근한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침대서랍에서였다. 그속에 엄마의 잠옷과 더불어 진주목걸이가 있었다. 나는 아빠가 들어오기전에 재빨리 진주목걸이를 호주머니에 주어넣고 도망치듯 침실을 나왔었다.

    내 커다란 보물함은 아빠가 사다준 쵸콜렛통이다. 쵸콜렛은 모조리 고모와 동네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나는 통만 남겼다. 그리고 그때까지 할머니 농짝에 숨겼던 내 보물들을 그 통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빠하고 살던 집엔 가본지가 참 오래 됐다. 지난해 아빠 생일 때 할머니랑 한번 갔다왔는데 다시 가고싶은 생각이 없다. 고모는 나랑 싸운 뒤끝에 니 집에 가, 그런다. 처음엔 참 속상했지만 여기가 희현이 집이지 네 집인줄 아나보다. 녀자들은 시집가면 그게 제 집인게다, 하고 할머니가 고모를 몰아붙인 뒤에는 그다지 화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단둘이 있을적에 고모가 희현아, 니 집 가, 하고 쫓아도 고모나 고모집에 가, 하고 마주 쏘아붙이고는 이어 나비가 꽃송이를 찾아왔는가, 꽃송이 나비를 눈짓했는갉 놀려먹기도 한다.


    희아누나가 왔다. 희아누나네는 할머니네 집에서 썩 멀지 않은 곳에 살고있었다. 자동이란 동넨데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한국으로 돈벌러 가게 되면서 희아누나도 할머니집에 살러 왔다.

    -이번에 희현이 엄마가 많이 힘썼으꾸마, 뭐 전할건 없음둥?

    큰어머니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애 듣는데서 좀 조용히 하게.

    할머니가 나와 희아누나가 놀고있는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주의를 시킨다. 나는 희아누나에게 내 보물들을 자랑하기에 바쁜체한다. 희아누나가 엄마의 진주목걸이를 잡았다.

    -이쁘다! 희현아, 이거 나 주라.

    희아누나가 어느새 진주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누나, 그건 안돼.

    나는 덥썩 목걸이를 잡는다. 나와 희아누나가 되거니안되거니 밀치락거리는중에 타탁, 하고 목걸이가 끊어졌다. 진주 몇알이 내 손바닥에서 구은다.

    -누나!

    나는 울음이 막 터지는걸 가까스로 참는다.

    할머니가 구들에 널린 진주들을 바가지에 주어담으며 나를 달랜다.

    -할머니가 이거 다시 꿰매줄게. 희아야, 네 발목곁에두 하나 있구나, 자 여기다 담거라. 엉, 희현이 엉뎅이밑에도 있나 보자.

    할머니가 토라진 나를 안아 일으킨다.

    -희아야, 누나면 누나다워야지, 동생걸 다 빼앗구 그러니?

    큰어머니가 희아누나에게 욕을 한다. 희아누나가 새침해진 표정을 짓더니 신을 신고 문밖으로 뛰쳐나간다.

    -애를 웬 욕은 욕! 이제 보면 며칠이나 보겠다고?

    할머니가 내 등을 다독인다.

    -희현이 나가보렴아, 누나가 어디 가나.

    나는 할머니 청을 못이기는체하며 밖으로 나간다.


    녀자들은 다 그렇게 까탈스러운지 모르겠다. 참, 좀 수정을 해야겠다. 할머니만 빼고 엄마만 빼고 이외 녀자들은 다 그렇게 까탈스러운것 같다. 진주목걸이때문에 뛰쳐나간 희아누나는 며칠째 나를 본체만체하고있다. 내 진주목걸이를 빼앗다가 끊어놓은게 누군데 도리여 자기쪽에서 화를 낸다. 그런 누나때문에 내가 시뿌둥해있는데 할머니가 희아, 엄마아부지가 곁에 없어서 그런다, 한다. 그럼, 나두 엄마아빠가 없는데? 내가 다시 물으면 할머니는 희아는 며칠전까지도 엄마 아부지랑 같이 있었는데 금방 없으니까 습관이 안돼 그런다, 한다.

    할머니가 꿰매준 진주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희아누나 갖구 놀다가 싫증나면 다시 달라구 할가? 궁리를 해보지만 내게 유일한 엄마의 물건을 정작 주자고보면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다.

    엊저녁부터 눈이 퍼붓고있다. 할머니는 뜨끈뜨끈한 가마목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있다. 나는 그곁에 앉아 할머니가 긁어준 가마치(누렁지)를 아작아작 씹는다.

    희아누나는 고모랑 단짝이 되였다. 고모가 뭘 갖다달라고 하면 납죽 일어나 그걸 갖다주군했다. 희아누나에게 가마치를 먹으라고 소리쳤건만 웃방에서 뭘 하는지 꼼짝을 안한다.  큰눈이 온답시고 고모도 아예 장사를 팽개치고 아침부터 웃방구석에 앉아만 있는다. 아마 또 그 물오리 비슷한 새들을 수놓고있을것이다.

    -가마치 내가 다 먹는다.

    내가 또 소리를 지른다.

    -그잘난거, 콱 다 먹어.

    누나지만 참 재수가 없다. 남은 먹으라고 좋게 권하는데…  아이구, 저 녀자들하구는 걸버무릴게 아니다.

    볼부은 내 얼굴을 할머니가 들여다보며 자애롭게 웃으신다.

    -할머니, 우리 언배 들여다 먹을가?

    -사랑문이 눈에 막혔을건데…

    할머니가 잠시 문풍지로 희끗하게 보이는 하늘을 쳐다본다.

    -할머니, 내가 나가서 눈 칠게.

    -어이구, 그래두 서나자식이라구… 그래, 할머니도 같이 나가자.

    할머니가 솜옷을 껴입는다. 나도 털모자며 장갑으로 전신을 무장한다.

    눈이 내 발을 묻어버릴 정도로 많이 왔다. 헌데도 할머니는 생각보다 많이 온게 아니라고 한다. 옛날에는 문이 막힐 정도로 왔다는데 그게 진짠지 의심스럽다. 물론 할머니야 나를 속일 일은 없겠지만.

    대문밖에 내만큼 큰 눈사람을 세워놓았다. 할머니가 돌덩이 두개로 눈사람의 눈을 박아주었다. 빨간 코는 내가 사랑채벽에 늘어진 고추다래에서 하나 뜯어온것이다.

    -생긴것도 별루구나, 큰일이라도 난것처럼.

    희아누나가 어느새 내 등뒤에 와 서있다. 내가 돌아보자 입술을 도톰하게 내밀고 눈초리를 아래로 내리깐다.

    -희아누나, 우리 같이 만들가?

    누나때문에 좋은 기분을 망쳐버리는 바보짓은 하고싶지 않다.

    -누가 너하구 같이 논대?

    희아누나가 휭하니 집안으로 들어간다. 할머니가 근심스런 눈빛으로 누나가 사라진 출입문을 바라본다…


    끝내 희아누나와 화해를 했다. 할머니 덕분이였다. 저녁에 할머니가 우리 언배 들여다 먹자, 하시면서 희아누나를 불렀다.

    -희아야, 할머니랑 같이 움에 가자. 내가 올려보내면 우에서 받아다오.

    희아누나가 할머니 말씀에는 안간다고 할수 없어 억지로 일어서는걸 내가 할머니앞에 나서며 내가 대신 갈게요, 했다. 할머니랑 갔다오니까 희아누나가 내게 알릴듯말듯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제일 먼저 녹은 언배를 내게 주었다.

    희아누나가 개학하기 전날에 큰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건축공사장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할머니가 전화를 받을 때 나와 희아누나도 곁에 있었다. 한참 그쪽 얘기만 듣고 계시던 할머니가 수화기를 희아누나한테 넘긴다.

    -언제 와?

    예, 예, 하고 대답만 하던 누나가 물었다. 큰아버지가 또 뭐라고 얘길 하시는지 희아누나는 또 련거퍼 응, 응, 하고 대답만 하다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받고나서 희아누나는 한참을 울었다. 울다가 지친 희아누나가 먼저 쌕쌕 잠이 들고 우는 희아누나를 달래느라 진땀을 뺀 나도 벌써 혼곤해진다.

    -희현이 자니?

    할머니가 조그마한 소리로 나를 불렀다. 잠이 올듯말듯하던중이라 대답하기가 귀찮아서 그냥 자는 시늉을 했다.

    할머니가 전화버튼을 누르는것 같다.

    -둘째냐? 에미다.  

    할머니가 아빠에게 먼저 전화를 하는건 내가 알기로는 처음이였다.

    -네 형이 금방 전화가 왔는데 희현이 에미를 봤다고 하더구나. 희현이를 데려갔으면 하더라는데… 만약에 정말로 와서 데려간다면 어떡할거냐?

    희현이를 데려가? 엄마가. 나는 이불을 들쓰고 숨을 죽인다.

    -갈 때야 위장결혼으로 갔지 않았더냐? 내 손을 잡고 꼭 돌아온다고 했던 때도 어제 같으구만. 희현이 엄말 욕할 렴치가 있냐? 지금, 네가? 내 보기엔 네가 더 나쁘다. 하나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겠다고 외국가서 남의 집 보모질을 하구… 넌 뭘 잘한게 있더냐? 희현이 엄마가 보낸 돈을 어데다 다 썼더냐? 그리구 지금 같이 사는 녀자랑은 언제부터 싸구 돌았더냐? 뭐? 며느리 될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수 있냐구? 사람이 그럼 못쓴다. 못써!

    이불틈새로 격해진 할머니의 얼굴이 보인다.

    이때 웃방문이 살며시 열렸다.

    -엄마, 둘째오빠야?

    할머니가 자신의 이부자리로 기여드는 고모를 바라보더니 어이구, 하고 한숨을 내뱉는다.

    -웬 일이야? 둘째오빠일은 더이상 상관 안하기로 했잖아?

    고모가 할머니를 타박한다.

    -그게 글쎄 사람맘대로 되냐? 희현이 엄마가 희현일 데려가겠다는구나. 너 큰오빠가 희현이 엄마를 만나봤단다.

    -그럼, 희현이 한국 가는거야?

    -그렇겠지.

    한참 뜸을 들여 고모가 희현이 요놈 자식 좋겠다, 한다.

    -글쎄다. 희현이야 엄마랑 같이 있으면 좋지. 걔 애비야 지금 녀자한테 미쳐버려서 통 제 새끼도 안중에 있나? 학교갈 나이도 되는데 그냥 이렇게 있을순 없는거고…

    -그런데 엄마, 나두 한국이나 시집갈가?

    -미친소리 작작 하구 자자.

    이번에는 할머니가 호되게 고모를 타박한다.


    내게는 고민이 하나 늘었다. 즐거운 고민이였다. 보고싶던 엄마를 볼수가 있고 어쩌면 엄마랑 같이 살게 될수 있다는 사실. 헌데 할머니랑 헤여져야 한다는게 조금 슬프기도 했다. 궁냥에 쪽걸상을 놓고 앉아 해뜨는쪽을 바라보고있느라면 희현아,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는듯하다. 희아누나가 공부하러 간 뒤 종일 별 할일없이 보낸다. 전처럼 이웃집 수탉이 담 넘어와도 마당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내쫓을념도 않고 앉아있으면 할머니가 저놈의 수탉이 또 넘어왔군, 하면서 직접 후여후여 마당밖으로 내쫓는다. 그러는 내곁에 할머니가 와앉는다.

    -우리 희현이 뭔 생각하는지 알아맞춰볼가?

    할머니가 내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끌어안는다.

    -희현이 엄마 보구싶지?

    나는 가만히 있는다.

    -희현이 엄마가 다음달에 온단다. 희현이 엄마한테 갈래?

    순간 나는 할머니의 가슴에 파묻긴 머리를 번쩍 쳐든다.

    -할머니, 정말이세요? 정말 우리 엄마가 오는거죠?

    -그럼.

    -헌데 할머니는 희현이 가는게 여간 섭섭하지 않구나. 희현이는 할머니가 보고싶지 않을가?

    -할머니! 희현이두 할머니랑 헤여지기 싫은데.

     내가 금방이라도 울것만 같아보였는지 할머니가 내 낯을 터실터실한 손으로 매만진다.

    -희현이 착하지. 엄마한테 가서도 꼭 말 잘 들어야 한다.

    할머니 품에서 할머니에게서만 맡을수 있는 냄새가 기분좋게 쏙쏙 코를 찔러온다. 마음까지 노곤해지는 할머니의 냄새, 할머니의 냄새두 꽁꽁 기억해둬야 할가보다.


    고모가 매대를 그만두었다. 장사가 안된다는건 표면적인 리유일뿐이라는걸 나까지도 다 안다. 요즘 새별로친네가 자주 집에 들리군 했다. 할머니보다는 고모를 찾는 때가 많았다.

    처음에 새별로친네가 왔다간 뒤 할머니가 저 로친네는 왜 또 우리 집에 오냐고 고모에게 따졌다.

    -한국 시집간 큰 딸의 시집편에 괜찮은 총각이 있다구 내 친구들중에 좋은 애가 있으면 소개해달라구 그래.

    -희현이 엄마를 데려간 그 딸을 그러는거니? 너 희현이 엄마 길을 걸으면 안된다.
  
    -아이구, 엄마두. 내가 어떻게 희현이 엄마랑 한가지야? 난 아직 처년데. 위장결혼이 아니라 진짜결혼을 해갈수도 있다구!

   고모를 보는 할머니의 눈길이 무섭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고모는 할머니의 서슬에 비실비실 물러난다.

    -그리고 내가 모를줄 아나본데, 그 머리방 하는 남자는 어떡했냐?

    -그, 그야. 그냥 친군데 뭐.

    고모가 발뺌을 한다.

  
    엄마가 오기전에 한국서 손님이 왔다. 남자손님이였는데 고모 선보러 온셈이라고 한다. 할머니의 표정이 굳어있는 반면에 고모는 꽤 만족스런 얼굴을 하고 앉아있었다.

   -신수는 멀쩡하구만. 헌데 왜 한국서 색시를 얻지 않고 하필 연변에 나와서 색시를 얻는다우?

    할머니가 남자의 신상을 소개하기에 바쁜 새별로친네에게 묻는다.

    -그야 본인이 순박한 녀자를 얻고싶다고 그런다우. 맨날 이 골안에만 박혀있으면 뭐라오. 나가 돌아당겨봐야 한다이께. 나돌아댕긴 바보가 집안에 있는 똑똑이보다 낫다구 하데. 다 지 맘에 들면 되는거지.

    -어떻니? 넌 맘에 드니?

    새별로친네가 고모에게 확인을 한다.

    평소의 고모답지 않게 고모가 얼굴을 붉힌다.

    나는 거기까지만 보고 밖으로 나간다. 눈사람이 절반이나 녹아있었다.


    내 보물들을 나누어주기로 작심했다. 희아누나에게 엄마의 진주목걸이를 줬다.

    고모에게는 전자양과 바꿨던 고모의 머리태와 세배돈으로 받은 이백원, 나머지는 순화와 경철이에게 주라고 할머니에게 드렸다. 그리고 나팔꽃씨며 봉선화씨며 다 할머니한테 남겼다. 꼭 심으마.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약속을 했다. 나는 다만 내 몫으로 할머니가 내게 준 외짝이 은저가락을 남겼다.

    고모가 답례로 전통복장을 입은 남자아이와 녀자아이가 수놓아진 열쇠고리를 주었다.

    -희현아, 이거 너 가져. 이거 내가 제일 처음으로 수놓아본거야. 그래서 내가 그냥 갖고있던건데 네가 가져.

    고모가 열쇠고리를 내 손에 꼭 쥐여준다. 다시 보니까 고모도 따뜻한면이 있는편이였다. 나와 싸우긴 해도 싸운 뒤끝에 항상 내게 먼저 화해를 구하군 했다. 뭐, 고모의 화해방식이라야 영원히 너 왜 돼지처럼 입이 나왔냐? 아니면 에이, 화현이 남자대장분줄 알았더니 녀자처럼 속이 좁네? 이런 식이지만.

    희아누나는 편지 쓰기에 바쁘다. 엄마아빠에게 전해달라고 내게 부탁을 한다.


   엄마가 왔다. 낯모를 아저씨랑 같이 왔다. 내가 떠날 때 고모가 내 손을 꼭 쥐였다 놓으면서 우리 서울서 보자, 했다.

    엄마의 품에 안기니까 좀 어색하다. 내가 기억했던 엄마의 냄새가 아니다. 이상했다. 분명 엄마냄새를 기억하고있는데. 아저씨가 번쩍 나를 안아 차에 올렸다. 그때 아저씨 몸에서 나는 냄새가 지금 맡은 엄마의 냄새랑 비슷했다.

    -희현아, 잘 가거라.

     할머니가 손짓한다. 울음이 터지는걸 애써 참는다.

    -희현아, 잘 가!

    희아누나가 손짓한다. 희아누나한테 누나한테서 우유냄새가 난다고 말해주지 못한것이 깜빡 생각난다.

    -희현아, 서울서 보자!

    고모가 손짓한다. 호주머니속에 넣은  고모가 준 열쇠고리가 손끝에 닿는다.

    할머니도 고모도 희아누나도 점점 작아진다. 드디여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지었다는 할머니의 집도 멀리 하나의 점으로 남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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