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4-1-12

경기 분당 제생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어린 천사들이 인큐베이터 속에서 애처롭게 가녀린 생명줄을 이어가고 있는 곳. 아기들 사이에서 낯선 생김새의 신생아 잔 클라우드(JhanClaude)가 메마른 가슴을 달싹이며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입과 코, 온몸을 휘감고 찌르고 있는 튜브와 주사바늘이 어찌나 안쓰러운지. 까무잡잡한 살갗 때문인지 2.5㎏ 남짓한 몸이 더더욱 왜소해 보인다. 필리핀 노동자 부모 사이에서 지난해 11월 태어난 잔은 이름조차 외기 힘든 각종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흡인성 폐렴, 신생아 경련, 저산소성 허혈성 뇌증 의증, 선천적 부신기능 이상 의증…. 작고 여린 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수많은 병들이 잔의 몸을 옥죄고 있다.

경기 광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잔은 출산 때 호흡 곤란으로 인한 뇌 산소부족으로 뇌기능에 손상을 입은 상태다. 태어난지 이틀 뒤 병원을 옮겼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입으로 빨고 삼키기를 할 수 없어 튜브로 우유를 공급해야 한다. 자라서도 기능이 회복될지는 미지수다. 수유가 가능해지더라도 발달지연이나 정신지체 증세를 보일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의료진의 진단이다.

하지만 아버지 요셉(29)과 어머니 메리(27)는 잔의 곁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불법체류자인지라 정부의 단속을 피해 숨어 지내고 있는 형편이다. 병석의 잔을 보고 싶어도 2∼3일에 한 번 정도 인적이 뜸한 틈을 타서 몰래 찾아야 한다. 그나마 30분 정도만 얼굴을 본 뒤 쫓기듯 병원문을 나서야만 한다.

1999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요셉은 지금의 직장에서 같은 필리핀 출신 노동자인 메리를 만났다. 고달픈 타향살이를 위로하며 사랑을 키워나가던 두 사람은 지난해 결혼하고 잔을 낳았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잔은 힘겨운 짐을 짊어지게 됐고 이들 역시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히면서 당국의 눈을 피해 다녀야 하는 2중고를 떠안게 됐다.

“잔이 태어난 이후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어요. 매일 공장 기숙사에서 부부가 함께 끌어안고 울지요. 울다울다 지치면 성모님께 기도합니다. 우리 아기 제발 건강하게 해달라고요.”

요셉 부부를 힘겹게 하는 또다른 이유는 늘어만 가는 병원비. 하루 20만원이 넘는 입원비에 현재까지 쌓인 병원비는 1천만원에 달한다. 언제쯤 퇴원을 할지도 알 수 없어 치료비가 얼마나 들어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요셉이 하루종일 일해도 버는 돈은 한 달에 95만원. 그나마 60만원을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부치고 나면 두 사람이 살아가기에도 빠듯하다. 형편이 어려운 필리핀의 가족들에게는 잔의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했다. 함께 일하던 메리는 산후조리가 덜 끝나 아직 일을 못하고 있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필리핀인 공동체와 한국인 독지가들, 병원 직원들이 모금을 해보기도 했지만 치료비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퇴원을 하게 된다면 메리는 잔을 데리고 필리핀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가족들을 책임져야 하는 요셉은 한국에 남아 일을 해야 한다. 요셉의 어깨는 곱절로 무거워진다.

메리는 “제발 잔에게 젖이라도 물리고 싶다”며 “매일 볼 수만이라도 있다면 그래도 마음이 덜 아플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요셉은 “치료비만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며 “그래도 친구들과 한국 사람들이 보여준 따뜻한 마음이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방법이 있을 겁니다. 희망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항상 기도합니다.”

요셉 부부는 어린 잔의 손을 꼭 쥐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호승기자 jbrav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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