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04-1-12

일본과 중국이 최근 한국 또는 한반도와 관련해 보이는 동향이 수상쩍다. 중국은 ‘동북공정 프로젝트’라는 명목으로 우리의 고구려사를 중국역사에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우리를 의아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는 새해 초부터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망언을 서슴치 않아 우리의 울화를 돋우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이런 움직임은 팽창적 민족주의의 발현이자 우리의 정체성과 정면충돌한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한데 우리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은 너무 소극적이고 안이하다.

고이즈미 총리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우리 정부가 독도기념 우표를 발행하는 데 대한 대응으로 나왔다. 하지만 일본정부의 최고책임자인 총리가 직접 그런 민감한 발언을 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새해 첫날 야스쿠니신사를 여봐란듯이 참배하고 나서 불과 열흘만의 일이다. 일본은 그동안 한반도 ‘유사’를 상정해 일본의 본격적인 군사개입을 허용하는 입법을 완료하고,해외에 군대를 파견하는 등 본격적인 군사대국화의 길을 착실히 걸어왔다. 고이즈미 총리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것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한 일이다. 더구나 우리정부는 부인하지만,지난 1998년 체결한 신한·일어업협정에서 독도를 우리 영토로 명기하지 않은채, 배타적 경제수역이 아닌 이른바 중간수역에 넣어두는 중대한 실책을 저질렀다. 이때문에 신용하 교수같은 이는 한국의 실효적 점유를 제외하면 독도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국제적으로 대등한 지위에 서있는 것처럼 제3자가 해석할 수 있게 됐다고 비판한 바 있다.

사정이 이런만큼 정부는 고이즈미 총리의 망언에 단호히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는 일본 정부의 도발에 일일이 대응하면 오히려 독도를 국제적으로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책략에 말려들게 되므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정부의 무대응이 일본의 억지주장을 인정하는 것처럼 오인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수십년동안 해마다 독도관련 망언을 되풀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오래전부터 독도를 가상 상륙지점으로 한 상륙작전 훈련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이즈미 총리의 망언에 확고한 쐐기를 박지 않으면 일본 극우세력이 앞으로 무슨 망동을 벌일지 모른다. 이참에 정부와 국회는 4년째 방치돼있는 독도개발특별법안의 통과를 서둘러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한층 강화하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안이하다. 정부는 이 프로젝트가 중국 중앙정부 차원의 역사왜곡 작업이 아니고 일부 국수주의적 학자들의 돌출행위로 애써 평가절하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외교문제화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학계에선 이 프로젝트의 진행주체가 철저한 국책연구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이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정부 차원의 작업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중국이 최근 고구려 문화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한국 답사팀의 고구려유적 접근을 차단한 사실 등도 이 역사왜곡 작업이 중국 중앙정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이 왜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하는지 그 배경을 냉철하게 규명하는 일도 중요하다. 중국은 어쩌면 한국 또는 장차 통일한국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고토회복운동이나 조선족의 분리독립운동 가능성을 미리 원천봉쇄할 심산으로 역사왜곡에까지 착안했는지도 모른다. 최근 한국사회 일각에서 벌어진 조선족 국적회복운동 따위가 중국을 더욱 자극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점에서 우리쪽의 무분별한 국수주의적 움직임도 통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 해도 중국의 고구려역사 편입기도는 오만한 중국중심의 대국주의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데 일본과 중국이 이렇게 오만방자하게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와 민족을 얕보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외교에서 당당하게 따지고 호락호락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더라면 감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자주외교와 남북공동대응이 절실히 필요한 까닭이다.

박우정 논설주간 parkw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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