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회복운동에 대해 중국정부가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고 국내에서 이 운동의 역효과를 우려하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는데, 서 목사님은 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점에 대해 충분히 생각을 하셨습니까?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국정부가 신경을 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국정부가 동포들에게 3년 징역 또는 1,500만원의 벌금을 물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입니다. 중국정부의 반응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나 이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일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온 힘을 다해 동포들이 한국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게 만드는 일이고 다음에 할 일은 이러한 운동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중국정부와의 긴장관계를 풀어나가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적회복운동에 참여한 동포들이 피해를 본 사례는 없다 하더라도 목사님 자신도 중국정부의 민감한 반응에 대해 신경을 쓰고 계시지 않습니까? 중국정부의 반응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서울의 중국대사관은 ‘규제는 일체 없지만 주목은 하고 있다’ 는 표현을 썼습니다. 한국의 일부 운동과 언론이 중국정부의 반응에 대한 우려를 많이 하다보니 우리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왜 중국정부가 신경을 쓸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동포들의 집단행동이 이유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조선족 몇 천명이 집단행동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당연히 신경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는, 돌이켜 보면 우리가 실수한 부분인데 우리교회가 중국국적 포기운동을 계획했던 것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 중국정부에게 자극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운동은 ‘중국을 배신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전혀 아니라 한국이 동포들을 중국으로 내쫓으려고 하는데 우리는 도저히 갈 수 없으니 차라리 중국국적이 포기될 수 있도록 중국정부에 호소해보자는 식으로 생각해 본 이벤트성 행사였습니다. 그러나 이 구상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안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즉각 취소를 했습니다.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행사인데 이를 두고 문제삼고 비판하는 일이 많아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무척 안타까웠던 점은 이런 기획을 한 적이 있다고 해서 우리 교회가 비판받는 것까지는 좋은데 해본적도 없는 일을 자꾸 들추어내 비판을 하면 결국 우리 동포들이 중국사회에서 고립되고 피해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셋째는 처음에는 저도 충분히 인식을 하지 못하였습니다만 노무현 대통령의 동포위로가 중국정부를 자극했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출현으로 생계형운동이 정치적 성격으로 발전된 측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조선족동포의 단식현장을 방문할 때 이 방문은 단지 위로차원이지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정책에 맞서려는 의도가 아님을 중국정부에 분명히 알리는 일을 했다면 중국정부는 보다 잘 납득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넷째로는 이 운동의 후유증에 대한 과잉우려가 오히려 동포들을 더욱 불안하게 했다고 생각됩니다. 이 바람에 사실은 동포들이 중국정부에 대해 할 말도 해야 하는 법인데 중국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이 가장 옳은 태도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위기가 과도하게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제를 극복불가능한 문제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중국대사관의 반응도 그러합니다.”

-그럼 목사님은 중국정부의 반응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운동>을 계속하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중국은 이미 스스로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찾기운동’을 했습니다. 한국처럼 중국도 일제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동남아 등 해외로 나가 화교가 되었는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면서 외국의 화교를 모두 중국국적자로 간주하여 동남아의 10여개국과 ‘이중국적 해소조약’을 체결, 화교들에게 중국국적 선택의 기회를 보장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 출신 조선족과 일본인 출신 중국인에 대해서도 고향에 돌아갈 권리를 보장해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출신 조선족이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하등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조선족동포들이든 혹은 한국사람이든 이 문제를 가지고 지나친 염려와 걱정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염려와 걱정이 조선족동포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라도 할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를 동포들이 주장한 것은 조선족동포사회에는 하나의 정신적 자산이 생긴 것입니다. 이제부터 동포들은 마음속으로 고향에 돌아가 살 권리를 항상 생각하게 될 것이고 이 문제는 때가되면 항상 다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적 자산입니다.

다만 우리 교회는 앞으로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운동>을 할 때 중국정부와의 충분한 협의 속에서 모든 일을 진행시킬 것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중국정부가 서울조선족교회를 ‘위험한 교회’로 생각하면 우리는 동포들을 제대로 도울 수가 없습니다. 천천히 가더라도 중국, 한국, 그리고 조선족사회가 다같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동을 진행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절대로 중국을 꽉막힌 나라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재외동포법 개정운동과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운동"이 서로 경쟁하면서 권리찾기 운동만 부각되고 재외동포법 개정 추진운동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는데요.

“나는 정반대로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은 조선족동포든, 한국인이든 재외동포법 개정운동과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운동>을 같은 운동으로 보고 있습니다. 권리찾기운동이 성공하면 재외동포법 개정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처음부터 국적회복운동을 한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재외동포법 개정운동을 했습니다. 이를 위해 열흘간 단식까지 했고,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을 때는 교회에서 축하잔치까지 열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재외동포법문제와 관련해서 국회의원 4명과 함께 조사차 중국을 방문하려고 했을 때 중국정부가 비자를 내주지 않다가 나중에는 비자는 내주었지만 중국경찰이 철저하게 우리를 막아 연길시에서 조선족 인사를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함께 간 국회의원들은 이때 재외동포법으로 동포를 돕는 일은 완전히 불가능함을 철저하게 절감했습니다.”

-결국 목사님은 재외동포법 개정운동을 포기하신 것인가요?
“중국정부는 조선족에게 재외동포법으로 특혜를 주면 조선족의 마음이 전부 한국으로 쏠려 조선족사회가 제2의 티베트화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정부는 재외동포법을 존속시키더라도 이를 절름발이 법으로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법무부가 재외동포법의 시행령을 고쳐 있으나 마나한 법으로 존속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조웅규 의원이 재외동포법 개정안을 내더라도 법무부에서 만든 법과 거의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국회의원들도 구태여 개정안을 다시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재외동포법의 성격이 그러하기 때문에 이 법에 목매달 이유가 없습니다. 동포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법은 꼭 재외동포법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국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국제결혼 온 여성들의 귀화의 길이 넓어졌습니다.

또 불법체류자라 하더라도 49년 10월 이전 출생자는 한국국적 회복이 가능해졌습니다. 조만간 중국동포 국적업무 처리지침이 폐지될 예정입니다. 또 청와대에서는 동포를 위한 새로운 비자 신설 움직임이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5년짜리 복수비자를 동포들이 많이 받도록 해야 하고 취업비자를 받는 길을 넓혀야 합니다. 소리내지 않고 동포를 돕는 방법이 무궁무진하게 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재외동포법이 중국정부를 자극하는 것보다 목사님의 운동이 더 자극을 주지 않았습니까?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운동>이 3백명정도의 규모로 <한기총>사무실에서 점거농성을 하고 있었다면 중국정부는 우리의 운동에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대로 재외동포법 개정운동이 8개 교회에 분산되어 2천8백명이 16일간 단식농성을 했다면 중국정부는 이 운동에 대해 엄청나게 긴장했을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이 점입니다.
중국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큰 규모로 집단행동을 했는가가 중요하지 재외동포법 개정운동은 착한 운동이고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운동>은 위험한 운동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운동이든 한국사회에 영향을 끼쳐 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많은 것을 얻어냈다면 그 과정에서 중국정부의 민감한 반응을 초래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운동이 끝난 후에는 어느 운동이든 반드시 중국정부와의 협조적 관계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중국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는데 이제 와서 중국정부의 협력을 구하겠다는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목사님이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운동>에서 많이 물러서시는 것은 아닌가요? 후퇴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실패한 것인지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중국정부와의 다양한 대회 채널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다각도로 중국정부 관계자에게 우리의 운동에 대한 이해와 협조를 구하려고 합니다. 필요하다면 북경도 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운동>은 조금 후퇴할 생각입니다. 원래 이 운동은 한국 사람들의 가장 약한 부분을 자극하여 한국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고 시작한 운동입니다. 이들은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와 같이 살아야 할 우리 동포들이지 외국인노동자가 아니다. 이 점이 이 운동이 강조하려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바로 이점을 부각시켜 한국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들을 한국에서 살게 해야 한다는 여론이 70%를 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여론의 변화를 타고 이들은 2004년 1월 15일내로 귀국하면 6개월 후에 고용허가제로 다시 재입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2년 후에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승소를 하면 그때는 한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과격하게 운동을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부터는 중국정부의 협력을 얻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 운동이 중국의 소수민족정책과 맞서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동포들을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조선족교회가 진심으로 동포를 섬기는 교회가 되려면 중국정부의 신뢰가 필수적입니다. 중국정부의 신뢰 하에서 일을 추진하는 것이 느린 것 같아도 실은 제일 빠른 방법입니다.”

-재한 중국동포사회에서 동포들을 돕는 교회가 서로 분열되어 서로 비판한다고 하여 이를 걱정하는 여론이 많습니다. 목사님은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든 것이 다 제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다 제 잘못이니 저를 용서하시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목사님들이 분열하면 필연적으로 한국의 동포사회가 분열하고 동포들끼리 싸움이 일어납니다.
서울조선족교회는 그동안에도 그렇게 하려고 애써 왔지만 앞으로도 일체의 대립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위잔치와 같이 큰 행사는 반드시 김해성 목사님과 임광빈목사님과 함께 할 생각입니다. 두 분 목사님은 다 훌륭하신 분입니다. 요즈음은 인터넷시대이다 보니 인터넷상의 글들이 서로 상대방을 자극하는 일이 많습니다만 앞으로 이런 일이 절대로 없도록 우선 우리 교회부터 주변을 철저하게 관리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러한 대립적 움직임이 종결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미 임광빈 목사님과는 이점에 대해 충분한 교감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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