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수필>

유난히 낮은 톤으로 통화를 하는 문학지주필이 있다. 우리 조선문문학지들중 유일한 녀성주필인 김홍란씨가 그 주인공이다.


멀리서 오는 전화라고 해서 그렇게 약하게 들릴리는 없으련만 그녀의 전화를 받자면 귀를 강구어야 한다. 톤이 낮아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할 념려가 있다. 그렇듯 조용하고 가냘프기까지 하지만 그녀의 경상도말씨는 일차적으로 대방의 주의를 환기시키기에는 족하다.


그저 귀를 기울이는 정도에 그치는것이 아니다. 대개는 원고청탁건으로 받게 되는 전화이지만 그건 상투적인것이 아니라 쟝르, 문체, 필치, 심지어 잡지의 위치까지 언급되는 구체적인 전화이다. 따라서 전화를 받는 쪽은 부득불 그녀의 의사를 존중할수밖에 없게 되는것이 2차적으로 뒤따르는 현상이다.


그때엔 그저 그렇거니 하고 례사로운 일로 여겨지지만 이런 통화가 여러번  반복되다보면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감이 든다. 일이 겹치여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녀의 청탁만은 들어주게 되고 심지어 우선순위에 놓고 수락하게 되군 하니까 말이다.


후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이는 나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라 내가 만난 여러 문우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느낌이였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원고청탁의 능수로 불리우는 그녀의 어조에는 그러나 강요같은 뉴앙스는 실려있지 않다. 그녀의 통화는  어디까지나 상론조의 간결하고도 간절한 부탁의 메시지일뿐이다.


사실 톤은 그렇게 중요한것이 아니다. 모든 일에서 중요한것은 진정성이다. 김홍란씨의 통화에 힘이 실리게 되는것도 그녀자신이 순수를 지향하는 문학인이라는 사정, 즉 문학에 대한 그녀의 진정성과 무관하지 않을것이다.


그녀는 문학을 하자고 문학지에 입사했다고 공언한다. 그녀에게 있어 문학은 《아편보다도 진한 흥분제》이고 《마음의 정력제》이며 《삶의 원동력》이다. 이는 그녀의 수필,소설위주의 작품집 《오늘밤 커피는 향기로왔다》의 머리말에 나오는 고백이다. 이밖에도 두권의 실화문학집 《겨울에도 얼지 않는 강》과 《룡담산의 봇나무》(공저)는 그녀의 산문창작의 또 다른 성과물들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그녀의 문학에의 진정성, 그녀의 작가적출발이 아주 희망적인것이였음을 말해주고있다. 그녀는 보다 일찌기 개혁개방이라는 변혁기현실에 천착해 한국과 중국연해지역에 진출한 조선민족의 삶을 소설화한 작가의 한 사람이다.


지난 세기 90년대 전반기에 씌여진 중편소설 《장미빛항구》(제11회 장백산문학상 수상작)는 고국을 찾은 한 녀주인공의 이색적인 생활체험을 담고있다. 로동현장은 엄혹하고 이질적인 생활문화는 마음의 갈등과 상처를 부른다. 서울의 밑바닥에서 인간적인 자존을 잃지 않고자 고민하는 주인공의 심리적인 갈등, 관련 인물들에 대한 개성적인 묘사, 자연스럽게 엮어지는 스토리의 전개력, 인물의 정감세계와 사회문화의 분위기를 밀도있고 현장감있게 표현하는 서사력 모두는 소설가로서의 그녀의 저력과 가능성을 시사해주는 측면들이다.


중편소설 《삶의 현장음》(제2회 <도라지>문학상특등상 수상작)은 중국의 남방 연해지역인 주해의 한국회사에서 관리직으로 성장하는 주인공을 형상화한 력작이다. 한국경영인, 일본기술자, 조선족직원, 당지 한족로동자 등 등장인물들 각자가 각이한 문화배경을 가진 설득력있는 인물로 안겨오는 가운데 주인공인 부문경리 박정우는 새로운 생활과 문화에 피동적으로 적응하는 인물이 아니라 자기의 앞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의욕적인 인간, 명철한 두뇌를 소유한 신형의 인간상으로 실감있게 묘사되고있다. 작가의 생활파악의 섬세함,  인물성격에 대한 정확한 투시력, 모순갈등표현에서의 여유있는 통제력이 퍼그나 인상적이다.


김홍란씨의 소설창작은 그러나 다섯편의 중단편소설을 남긴채 일시 중단되는듯 했었다. 간간이 발표된 몇편의 수필이 아니였다면 그녀는 거의 창작공백기를 남길번 하기도 하지만 근래의 수필력작들은 그녀의 창작의욕의 부활을 말해주는듯 하다. 작년말의 짧은 두세달사이에 그녀는 《나를 깨운 들국화》,《밤하늘의 질서》를 비롯하여 여덟편의 수필수작들을 창작하였다.


짐작컨대 김홍란씨의 쌓여만 가는 삶의 엄청난 부하가 역설적으로 창작의 충동을 환기시킨것이리라. 그 지탱하기 어려운 부하는 작가의 수필 《편집의 생리》에 잘 나타나있다. 지금은 훌륭한 작가이면 곧 훌륭한 편집이나 주필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며 수필은 쓰고있다-


《주필은 훌륭한 작가이기에 앞서 훌륭한 경영인이 될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편집들의 업무량은 수배로 불어났다… 작품편집은 10분의 1의 정력도 차지하지 않는다. 원고조직으로부터 작품편집, 타자, 교정, 설게, 인쇄, 발행에 지금은 사이트관리까지… 편집에겐 분공이 따로 없이 만능이길 요청한다.》


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인간은 만능이 아니다. 게다가 《도라지》는 경제적인 뒤받침은 물론 편집 한사람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고전하고있다. 평균 두사람밖에 안되는 문학지 주필이라는 삶은 고단할수밖에 없는것이다. 한시기 혼자서 딸애의 공부뒤바라지를 해야만 했던 생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았을테니  내외로 오는 이중삼중의 중압은 일구난설이였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녀는 마침내 절망적인 심연에 빠져본다-


《하는 일에 재미를 느꼈던적 있다… 그러던것이 언젠가부터는 책임감이 들었고 의무감이 들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다 지쳐버린 지금의 나는 즐거움도 책임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운명적이라고 생각할뿐이다. 기계적인 사람이 되여 20년을 반복해온 똑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굴려갈뿐이다. 즐거움과 재미는 물론 노여움도 분노도 사라졌다. 그만큼 흥분이 없고 격정이 없다. 나는 오래도록 글쓸 충동을 느껴보지 못했다.》 (수필 《나를 깨운 들국화》)


그러나 《고통은 인간의 넋을 슬기롭게 하는 위대한 스승이다.》(에센 바흐) 삶에서나 예술에서나 절망, 무가내는 새로운 생명탄생의 옥토일수도 있다. 그 참을수 없는 중압과 무가내, 곤경과 절망스러움이 결과적으로 김홍란씨로 하여금 자신과 세상에 대한 보다 깊은 리해와 그녀자신의 정신적인 비상을 잉태하지 않았나싶다.


《문득 눈확으로 뛰여드는 들국화무리, 순간 나는 마음에서 전해지는 환호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나에게도 아직 격정이 남아있다니, 내 마음도 아직 감동이란것을 알다니. 난 귀중한 보석이라도 만난듯 여린 감성을 고이 붙안았다.》(동상)


삶의 쓰라림이 배여나는 진솔한 수필이다. 김홍란씨의 지난 세기 90년대의 일부 수필들이 서정적인 자아관조의 단아한 작품들이였다면 그녀의 근작수필들은 삶의 깊이가 감지되게 하는 보다 세련된 심안, 사유력의 보다 심화된 결실을 선물하고있다고 볼수 있다. 확언컨대 삶의 련옥, 그 고독과 절망의 시련을 거치지 않고서는 글다운 글을 기대하기 어려울것이다.


이런 심령의 갈등과 고뇌속의 신념을 그녀는 도시와 시골의 밤하늘로 묘사하기도 한다-


《도시의 밤하늘은 텅 비여있으나 대신 시골의 밤하늘은 대가족을 이루고있다. 도시의 밤하늘엔 아무런 이야기가 없이 무미건조하나 시골의 밤하늘엔 무수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도시의 밤하늘은 비정하나 시골의 밤하늘은 유정하다. 도시의 밤하늘은 황량하나 시골의 밤하늘은 살쪄있다. 도시의 밤하늘은 빈 종이뿐이나 시골의 밤하늘엔 무수한 그림들로 차있다…


그러나 밤하늘엔 엄연한 질서가 있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달은 언제나 동에서 서로 달리고 은하수는 제 궤도 따라 흐르고 북두칠성은 영원히 북녘을 가리키고 별들은 제 집을 지킨다….


정직한 밤하늘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운명에 충직할것이다. 》(수필 《밤하늘의 질서》)

   
집안은 소제가 필요하다. 정신은 정리가 요구된다. 그것이 바로 정신의 충전과  재생의 과정일것이다. 사람은 살면서 이렇게 자성을 거듭하며 령혼의 얼룩진 구석을 수시로 닦아내야만 건강과 탄력을 확보할수가 있다.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정신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은 심산유곡에서도 길을 찾아낼수 있고 새롭고 찬연한 삶을 맞이할수  있는것이다.


우리는 지금 김홍란씨의 문학창작행보-직선이 아닌 곡선적인 그라프-를 잠간 들여다보고있다. 허지만 그것은 어쩌면 인간 김홍란의 내실있는 인생행보이기도 할것이다. 삶에는 탄탄대로가 없다. 불안과 압력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지만 그것을 이기면 건강과 성장이 수반된다.


그녀 낮은 톤의 부드러운 전화통화가 왜 힘을 갖게 되는것인지, 다소나마 륜곽이 잡힌다고 할수 있지 않을가. 리해가 된다. 그것은 한마디로 한 편집일군의 문학에 대한 진정의 힘이다. 


30년의 전통이 있는 《도라지》는 우리 민족의 상상력과 감성을 위해 고전하고있다. 문학적인 량지를 지니고 산재지역이라는 어려운 문화여건속에서도 《도라지》는 소설수필전문지로, 순수문학의 대변지로 자임하고있으며 그 방위설정에 맞게, 우리 문단과 작가들에 대한 면밀한 파악을 바탕으로 원고를 조직하고 신선한 기획물과 특집을 선보이고 류형별작가조명, 신진발굴, 판면혁신 등 여러 면에서 질적향상을 도모하고있다. 《도라지》가 밀어주고있는 리진화, 박미옥 등 신진들의 눈부신 약진은 후대들에 대한 우리의 근심을 덜어주기에 족하다.


이 력동적인 모습의 문학지에 낮은 톤, 조용한 말씨의 김홍란씨가 있다. 항상  저자세로 산다는 느낌을 주고 언제보나 가냘퍼보이는 편집이지만 조용한 그녀가 보여주고있는 강의함, 추진력과 순발력의 일면은 결코 간과될수가 없을것이다.


아래의 간추린 자료들이 그 일단을 뒤받침해 줄듯싶다.


-편집업무수행과 더불어 김홍란씨는 소설,수필창작으로 화림신인문학상, 《도라지》만석문학상, 해란강문학상, 《도라지》문학상특등상, 《장백산》문학상을 수상.


-연변대학 조문학과 석사과정 수료, 로신문학원 고급연구반(주필반) 수료.


-연변작가협회 창작열성자, 문학사업조직선진일군(2차)으로 당선되고 현봉학민족문화상, 길림성출판국 우수작품편집 1등상(4차)을 수상.


-길림시를 주무대로 연길, 훈춘, 북경, 청도 등지에서 문학상시상식, 작가작품연구회, 작가좌담회, 백일장, 문학세미나를 개최, 또는 협찬. 2000년부터 2006년까지만 해도 이런류의 문학행사를 16회 개최. 

   
민족문화의 지리로 보면 산재지역인 길림은 변방이다. 허지만 문학창작의 산실로 말하면 길림은 중심의 하나이다. 적은 사람으로 큰일을 해내고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남아있을수 있는 곳은 누군가의 가슴속뿐이라고 어느 식자가 말했듯이   《도라지》는 작가들과 독자들의 마음속에 남아있고 김홍란씨의 톤이 낮은 조용한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있다.

연변문학 / 2007년 제6호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