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연산 장편답사기>

우리 일행을 실은 기아봉고차는 이도백하를 뒤에 두고 숲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흰구름이 휘휘 감도는 숲속으로 구불구불 뻗어간 길은 한갈래 천연 화랑이였다. 길 량옆엔 크고 밋밋한 쌍차형수관인 홍송이 하늘을 찌르듯 솟아있고 잣나무, 피나무, 들메나무, 황경피나무가 우거지고 산포도, 오미자, 다래나무가 얼기설기 고목을 칭칭 감았다. 해를 가린 어둡고 침침한 록음속에서 기화방초가 수줍게 웃으며 짙은 향기를 페속 깊숙히 선사해왔다. 이따금 저 앞으로 다람쥐며 꿩이 다급히 길을 가로 질러가고 해를 가린 나무우듬지우로 가지가지 새들이 노래하며 선회하기도 하고 나무가지에 앉아 꽁지를 달싹거리며 귀맛좋게 지저귄다. (저 무리속에 혹시 인삼새는 없을가?)

나는 느닷없이 엉뚱한 생각을 끄집어냈다. 백두산 밀림속으로 산삼 캐러 왔다가 길을 잃고 죽었다는 두형제가 새로 변하여 산삼씨를 찾아먹고 산다는 인삼새, 그래서 백로에 그 새가 우는 곳으로 가면 파란 잎, 황록색 꽃떨기에 받들려 빨갛게 영글어 구슬같이 대롱대롱 달린 산삼열매를 만난다는 전설이 뇌리에 떠올랐던것이다. 1981년 8월, 백두산 남록(南麓)의 원시삼림에서 캐서 현재 북경 인민대회당 길림청에 전시되여있는 길이가 79. 5cm, 무게가 287. 5g인 <<산삼지왕(山參之王)>>을 보았던 몇년전 묵은 기억이 새롭게 떠오르면서 귀를 기울이면 당금 숲속 어디에선가 산삼 캐는 사람의 <<방초요!>>하는 흥분한 갈린 목소리가 들려올것만 같은 즐거운 환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인간의 창조력으로는 도저히 미칠수 없는 선경같은 대자연 걸작속을 달리는 황홀한 기분을 깨뜨리며 부석을 넣은 포장주머니를 만재한 트럭들이 가끔 요란스럽게 스쳐지난다. 요즘 도시마다 고층건물이 숲처럼 일어서면서 가벼운 부석재료가 호황기를 맞았다고 한다.
<<뿡뿡!>>하는 트럭들의 기분 나쁜 경적소리는 정녕 한치 보기 인간들의 신난 휘파람소리였다. 맹목적인 부석채굴로 원시삼림이 파괴되여도 돈이 벌리니 좋다는 얼빠진 뽐냄이였다.

과학문명이 달에 가닿고 바야흐로 화성에까지 미치려는 20세기에 돈과 사치에 미친 인간들은 미련스럽게 자연이 준 축복을 짓밟고있다. 미련한 인간들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짐승들을 대량 소탕해서 구복을 채워왔다. 여기 백두산에서 대를 이어 번식해온 <<수중지보(獸中之寶)>>―꽃사슴, 말사슴도 기이한 약효를 가진 진귀한 뿔을 떠인 탓으로 총알받이가 되였고 <<백수지왕(百獸之王)>>―길이가 4m이상, 무게가 300키로도 더 되고 이마에 임금 왕자무늬를 떠인 <<만주호랑이(滿洲虎)>>도 멸종의 변두리에서 간신히 생명을 지탱해가고있다고 한다.

중국, 로씨야, 미국 등 나라의 20여명 야생동물전문가들의 8년동안의 조사에 의하면 장백산에 사는 야생범은 7~9마리이고 얼룩범은 4~7마리밖에 없다는것이다. 삼림채벌의 초부하, 야생범 먹이인 동물의 분포밀도, 야생범분포지역의 축소로 해서 세계적으로 동북범 수량이 300마리밖에 안된다고 한다.

요즘 사슴은 울타리를 친 록장에서, 범은 공원의 쇠창살속에서 재롱을 부리며 산다. 곰은 열주머니에 가는 비닐호스를 꼽고 비좁은 쇠집에 누워 살며 담즙을 생산하는 제약공장으로 되였다. 모든 진귀한 동물은 인간의 <<지극한>> 양육을 받아 야성을 잃어가고있다. 동물세계에서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을 강제로 빼앗은 인간은 오히려 돈싸움으로 짐승처럼 으르렁댄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이 자유로이 살아가는 자연마저 훼멸시키기에 광분하면서도 인간은 가련하게도 화초를 화분통에 옮겨서 집안의 장식품으로 만든다. 우리속에 가두어 기르는 동물의 본성은 죽이면서 본초적인 인간성을 찾는다고 몸부림이다.
오늘날 백두산은 련합국 생물권보호구에 들어 전반 인류의 몸덩어리로 화했다. 백두산의 망망한 림해는 몸덩어리에 난 보슴털이며 숲속에 생장하는 모든 짐승은 인체의 세포로 되였다. 땀구멍마다 난 보르르한 털을 뽑고 세포를 죽인다음의 몸덩이를 무엇으로 다시 살릴수 있단말인가!

대자연의 원쑤는 인간이고 또한 인간의 적도 인간이다.
백두산관광지 출입구에서 우리는 문표를 샀다. 외국인은 매인당 120원, 국내인은 15원이였다. 외국인의 눈에 보이는 백두산경치가 눈자리가 더 나는것도 아닌데 표값은 국내인의 여덟배이다.
<<중국에선 기분 나쁜 일이 꼭 한가지가 있어요. 호텔에 들어도, 기차를 타도, 비행기에 앉아도 꼭 국내인보다 비싸다니 리해가 안갑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오히려 외국인이라면 값을 우대해주거든요. 중국이 물가가 한국보다 싸다고 하지만 외국인한테는 절대 싼것이 아니지요. 뭣보다 서비스가 좋아야 기분이 나서 다시 올거 아닙니까요. >>
김건태사장의 불만의 소리에 나는 한마디 했다.
<<김사장님이 건축설계원을 차려놓고 번 돈이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이럴 때 써야지 그걸 아꼈다가 관속에 넣어가지고 갈려고 그럽니까?>>
<<돈많은 사람이 구두쇠라는 말이 있지 않냐? 너 문학을 한다는 자식이 그만한 도리는 알고 덤벼야지. 그러니깐 나같이 직업도 없고 나이 사십이 다 되여서도 공부나 하겠다고 책꾸레미를 싸들고 북경까지 온 사람과 친해야지 김사장같은 사람과 백날 놀아봤대야 손해밖에 없어. 알았니?>>
김인식씨의유모아였다.
<<너같은 백수건달과 친해서 쥐뿔이나 생기겠다. 독이 커도 물이 있어야 푸는거야. >>
김사장도 악의 없이 인식씨의 뒤덜미를 한마디 질끈 눌러주었다.
일장 폭소가 터졌다.

두분 한국인의 언짢은 기분과 중국의 국민이 된 혜택을 요행 받아보는 헤벌어진 우리의 기분을 싣고 기아는 백두산 코숭이로 치달았다.
문득 땅에서 솟은듯, 하늘에서 내린듯 첩첩 층암이 창공을 치뚫으며 우뚝 솟은 웅위로운 백두산이 푸른 숲에 받들려 시야로 줄달음쳐왔다. 화산분출의 백색 부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는 한여름에 설경을 보는듯한 기이한 정감을 불러일으켰다. 박종이 <<백두산기행>>에 적었듯이 <<해빛을 받아 빛나는 백두봉을 바라보니 옥으로 이루어진 한없이 웅대한 탑이 층층이 솟아올라 하늘을 버티고 섰는듯>> 했다. 흰구름을 띠처럼 허리에 두르고 푸른 하늘 밝은 해빛속에 거연히 솟은 교결한 백의차림의 단군할아버지가 새하얀 수염발을 드리운듯한 두줄기 하얀 폭포수는 천하절경을 대하는 사람들이 저도 몰래 터쳐올리는 힘찬 감탄부호처럼 안겨왔다.

 창공에 우뚝 솟은 조종의 산 백두산아
 반만년 설상을 머리에 떠인 뜻은
 단군님 대통 이어온 흰 넋인가 하노라
 
시인 허룡구선생의 시조가 뇌리를 쳐온다.
적군의 포위에 든 백두총장의 사위 룡암과 딸 백화가 천길벼랑으로 뛰여내린다. 나라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원통함을 안고 장렬한 최후로 생을 장식한 그들의 죽음에 감화된 룡신은 한주먹으로 절벽을 까고 천지의 물을 에워다 폭포로 쏟아붓는다. 두줄기 폭포수는 적군을 삼켜버린다.

전설속의 영웅 룡암과 백화, 두 청춘 남녀의 장렬한 기백과 고매한 넋인양 칠색의 무지개가 폭포가 뿌리는 물보라에 찬란히 어려있다.
룡신의 한주먹에 천지로부터 68m의 깎아지른 절벽까지 났다는 승사하(乘差河)의 길이는 1250m이다. 천지의 북쪽켠 천문봉(天文峰)과 룡문봉(龍門峰)사이에 난 <<달문(達門)>>으로 솟아오른 승사하는 적진을 육박하는 룡암과 백화인양 감뛰며 소리치며 질주한다. 안개도 오르기 주저하는, 굽어보면 눈뿌리 아득해지는 현애절벽에 이르러 주저없이 견우도에 잘리며 창창 용맹히 뛰여내린다. 두 용사가 날리는 기폭인양 곤두드리운 포효하는 폭포수는 백의 얼로 하얗게 부서진다.
은띠를 풀어놓은듯한 폭포는 리백의 필끝에 더욱 유명해진 려산의 폭포마냥 멀리에서 보면 마치도 구천의 은하수가 곤두선듯 장엄하고 지척에 다가서면 룡암과 백화의 최후의 멸적의 함성인양 굉음을 울리면서 바위에 떨어져 부서지는 물보라는 한겨울 엄동설한에 나붓기는 눈보라를 련상시킨다.
루루천년 락수의 충격에 폭포밑 석판이 20m 깊이 패여들어 못이 되여있다고 한다. 바위를 먹어가는 물의 힘에는 백두의 선인들의 두려움 모르는 충혼이 깃들어있으리!

 밤낮없이 떨어지는 백두산 폭포수야
 그윽한 깊은 정을 어느 누가 헤아릴가
 예맥족 엄마 젖줄기 시야비야 못하리

역시 허룡구선생의 시조의 한구절이다.
룡암과 백화가 백룡으로 변하여 손잡고 하늘에서 춤추며 내리듯한 폭포수는 돌기한 하얀 돌무지를 적시며 한줄기 하얀 강물을 이루어 천연병풍 옥벽, 금벽이 마주선 깊은 곡지로 사품치며 흐르는데 고산의 찬기류와 부딪치며 하얗게 피여오르는 온천의 훈훈한 증기와 어울려 유람객의 마음도 하얗게 바래여준다. 불릉불릉 솥안에서 물끓는 소리를 내며 무수한 기포를 일며 솟아오르는 온천은 암석과 자갈을 금황색, 벽람색, 은홍색, 비취색―가지가지 아름답게 물들이여 선경과 같이 자연을 오색령롱하게 장식한다. 말그대로 <<신선의 물>>이다. 그것은 예맥족 엄마의 젖으로 솟기때문이리라. 참으로 후세에 대한 조상의 사랑은 끝없이 솟는 온천수마냥 령산을 찾는 우리들이 심신을 잠그면 한기를 없애고 근육을 느슨히 하고 피순환을 도와 병을 다스리게 한다.

천지를 중심으로 환산구조로 분포되여있는 백두산일대 온천수는 3, 40년대 온도가 섭씨 73도 좌우에서 놀았지만 지금은 88도에까지 상승해 닭알도 순식간에 익는다.
장사군들이 수십개의 계란을 온천수에 잠그어놓고 관광객들에게 하나에 2원씩 받고 판다. 밤을 자고 나면 물가가 송충이처럼 뛴다고 야단인 연길시장에서 계란 한근이 3원인데 여기 온천수에 미역을 감고 나오면 16원이 된다는 말이다. 아무런 설비도 갖출것 없이 계란짐만 지고 와서 익혀서 팔면 되는 장사라 그들은 자연의 혜택을 무던히 받고 사는 사람이라 하겠다.
게다가 그옆에 철판에 <<온천계란>>이라고 쓴 표말이 세워있어서 그것에 한눈길 주고나면 계란을 사먹지 않을수 없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그 전문은 아래와 같다.

60~80℃의 장백산의 고열온천에 삶은 계란을 온천계란이라고 한다. 온천계란은 속살은 뜨겁고 겉은 몽글몽글해서 순수한 천연록색식품이다. 온천수에 내포된 유익한 원소와 광물질이 십여종이나 되므로 온천계란은 비교적 높은 의료보건작용을 한다.
값은 5원에 3개이다.

온천수에 삶으면 양계알도 토종계란으로 될수는 없을것이다. 장사군은 애비도 속인다고 토종계란을 삶는다고 좋은 쪽으로 생각이 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값도 5원에 3개라고 분명히 씌여있지만 10원에서 1전도 곯지를 않는다.
온천주위의 돌너덜에서는 관광객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앉아서 계란을 씹으며 깡통 맥주를 기울이고있었다. 나는 장사군을 바자처럼 싸고 선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서 계란 여덟알을 샀다. 일행이 하나씩 돌았다.

뜨거운 계란을 훌훌 불며 껍질을 벗겨서 새하얀 계란 속살을 한입 뚝 떼여 씹으니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하나를 먹으면 3천년을 더 산다는 인삼과를 먹는 황홀한 기분이다. 한국사람들이 구미에 딱 맞게 반숙인 계란을 안주하여 맥주 한모금으로 컬컬한 목을 적시니 목구멍부터 위벽까지 찡하니 젖어오며 정신이 벌떡 선다.
백두산은 사화산(死火山), 휴화산(休火山)이 아니다. 지금도 화산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있는 활화산(活火山)이다. 2840만년전부터 최근까지 백두산일대의 화산폭발로 생긴 15단계의 지층 분석결과 폭발주기가 1000―1100년으로 계산돼 2000년부터 2500년사이에 천지변혁의 대폭발이 암장되여있단다.
중국화산학회 류약신회장은 <<장백산천지화산은 재해성적인 대분출의 위험을 잠재하고있다. >>고 했고 미국의 화산전문가 웨크도 <<장백산천지화산은 세계적으로 제일 위험한 숨어있는 화산중의 하나이다. 일단 화산이 폭발하면 반경 35km내의 모든 생명들을 훼멸시킬수 있다. >>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미방비상태에 있다.
퐁퐁 솟는 온천수는 백두산 어머니의 젖이다. 류화수소(硫化)와 철질(鐵質)의 화학반응으로 생성하는 류황냄새의 온천의 뜨거운 김은 백두신령의 입김이다.

나는 펄펄 끓는 온천에서 청춘의 정열로 사는 백두산을 보았다. 백두산은 영원히 젊다.
그 옛날 백두의 선인들은 이땅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세월도 흘러흘러 백두산머리에 하얗게 서리발이 앉고 훤한 이마에도 얼기설기 깊은 계곡이 틀고 앉았다. 고색이 넘치는 백두산 여기 관광지에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백두산의 식물과 돌을 매대에 진렬해놓고 싸구려를 부른다. 천지에 올라가면 걸음걸음 발길에 채우는 사발만한 부석 하나가 부르는 값이 2, 3십원이다. 그리고 양삼밭에서 캐온 애기삼은 산삼으로 둔갑을 해서 한뿌리가 백원좌우에서 논다. 그리고 백두산 나무뿌리 조각품이며 이도백하에서 건진 수석이며 백두산 경치를 찍은 내의며―가지가지 기념품들이 매대에 진렬되여서 관광객들의 호주머니를 호시탐탐 넘보고있었다.
우리는 옷깃을 잡으며 싸게 드릴테니 하나만 사라고 사정하는 장사군들의 성화를 간신히 물리치고 온천욕장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온천수에 려로에 피로한 몸을 잠그는 순간 백거이가 <<장한가(長恨歌)>>에 쓴것과 같이 <<사시절 맑은 물에 목욕하니 온천수는 비누같이 매끄러워>> 당금 날듯한 기분이 되였다. 메돼지의 침습에 맞서 싸우다가 상한 사슴들이 온천수로 상처를 씻고 나았다는 백두산 온천에 깃든 전설과 같이 온천욕은 갖은 질병을 치료하는 신기한 효력을 갖고있다고 하거니 어머니의 사랑은 마냥 뜨겁다고 하리.
우리는 거뜬한 기분으로 천지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날씨는 유난히 잠풍하고 맑았다. 몸소 축문을 지어 산신에게 조공을 올리지 않고는 뢰정과 변괴가 생겨 구경을 못한다는 변화다단한 백두산의 기후라는데 따로 정히 만든 제물도 없이 우리가 먹으려고 준비해온 도시락에서 반찬 한절과 술 한잔을 떠올리고 김건태사장이 축문도 없이 장난처럼 한마디 빌었는데도 날씨가 이같이 다행스러운것은 아마 이 내 마음의 깊은 뜻을 헤아린 신령께서 명산의 참모습을 낱낱이 보도록 헤택을 베풀었다 하리라.
천지쪽으로 갈리는 길목에서 우리는 기아에서 내려 대기하고 서있는 택시무리에서 두대를 택해 앉았다. 매인당 택시료금은 국내인은 50원, 외국인은 백원이다. 우리가 타고 온 차보다 더 좋은것도 아닌 로씨야제 라다와 볼가표이다. 너나없이 모두 달통이 되지 않아 툴툴거렸다.

차가 떠나자 운전기사가 해석했다.
<<여기서부터 길이 험하고 좁아서 늘 사고가 났답니다. 특히 관광차는 커서 급한 굽이를 미처 꺾지 못해 지난해에 비탈을 구으러서 엄중한 인명사고가 났지 않았습니까요. 그리고 자가용들도 기사가 이 길에 익지 않아서 자칫하면 사고를 쳤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특별택시를 낸거지요. >>
말을 듣고보니 도리가 선다. 택시료금이 비싸긴해도 생명안전을 산다고 생각을 달리하면 기실 헐값이 아니겠는가?!
경사가 급하고 좁은 산길에 매달린 택시는 달구지마냥 늦장을 부리며 털털 가쁜 숨을 몰아쉬였다.

운산나무, 전나무, 락엽송등 콱 우거진 첨탑형수관이 침엽림의 외모를 나타낸다. 어둡고 습한 수림속으로는 선태, 버섯따위가 바라보인다. 소나무겨우살이와 수선은 거미줄마냥 나무가지에 설기설기 어려 바람에 하느적인다. 숲속의 나무들은 오랜 세월 춘하추동 눈보라와 비바람의 시달림을 받아 예리한 칼로 반쪽을 낸듯 한결같이 바람받이쪽 가지들이 부러지고 한쪽으로 쓸려있었다.
각라목나가 황제한테 올린 각서에 <<숲이 끝나는 곳에 백화목(白樺木)이 있는데 재식(栽植)한듯 하고 향목(香木)이 우거지고 노란 꽃이 찬란하다>>고 했듯이 여덟 8자를 엎어놓은듯 심한 굽이를 몇굽이 나아가니 키가 작고 가는 침엽수와 은빛 봇나무숲이 달려와 섰다.
2백여년전 박종의 눈에는 저 봇나무숲이 <<마치도 도시에 사람들이 모여 어깨를 비비고 소매를 스치면서 호상 왕래하는것과 같>>(박종 저 <<백두산기행>>에서)이 보였다. 자고로 봇나무는 백의 민족과 통했다. 그래서 이 몸이 봇나무숲에 잠기면 고운 봇나무는 미녀의 하얀 살결처럼 이 내 마음을 현혹하고 바람결에 살랑대는 잎새의 소리는 명랑한 소녀가 사랑을 속삭이는듯 이 내 가슴을 들먹여주었다.

하지만 여기 백두산 상상봉 봇나무 수림길을 달리는 순간 나는 하얀 꿈속, 하얀 시속을 거니는듯한 애수에 젖는 마음을 달랠길 없었다. 조룡남 시인이 <<사스레나무숲에>>서 읊조렸듯이 잔포한 바람에 체구가 비틀어지고 혹독한 추위에 살갗이 얼어 가무잡잡해진 봇나무는 <<뿌리박을 돌틈마저 바로 없는 곳에 버림 받아 모대기는 자연의 이붓자식>>이였다. 신화속에 나오는 신령이 짚고 선 요술지팽이마냥 꼬불꼬불 타래진 봇나무, 허리가 굽고 머리가 눌려 땅에 닿을듯 말듯 잔뜩 쓰러진 봇나무를 바라보며 나는 내 자신이 저 봇나무숲속의 한그루로 된 그런 비장한 감수에 젖는다.
 
생명을 창조한 거룩한 조물주는
로망 들어 너희들을 잊은지도 오랜듯
광풍만이 기승부리며 세월을 날라가고
돌사태만 아우성치며 기억을 파묻는다

그래도 봄이 오면 저 태양만은
안개와 구름을 간신히 헤집고
심령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누운 가지에도 푸른 잎 돋혀주더라.

봇나무밑에는 노오란 색갈의 꽃들이 푸른 잎과 한데 엉켜 땅에 찰싹 달라붙어서 꽃술을 토하며 방긋 웃고있었다. 눈서리속에서도 시들지 않고 강한 생명력으로 피는 진달래과의 만병초란다. 대개 꽃이란 추위에 지기 마련, 하지만 만병초, 유독 너만은 늘 봄기분이구나. <<노오란 꽃이파리 해시시 벌리고 눈 날리는 백두에서 예쁘게 웃어라―한송이 꺾자 하니 네 설음 마쳐오고 그대로 지나려니 향기가 발목 잡네. >>(최룡관 작 <<두메양귀비>>)
봇나무군락이 사라지면 키작은 관목지대가 나타났다. 노란 두메양귀비와 만병초가 활짝 꽃을 피웠다. 그외에 진분홍의 개불알꽃, 새노란 날개하늘나리, 귀부인처럼 우아한 큰원추리…해발고가 2500m나 되는 가혹한 고지에서 한껏 생명력을 과시하는 들꽃이 돋보였다.

봇나무숲에 가렸던 시야가 툭 터지는 순간 모전을 깔아놓은듯한 진달래관목과 이끼지대를 깔고 앉아 백두산이 둥두렷이 건뜻 솟아있었다. 저 아래 먼 발치에서 볼 때엔 흐르는 안개와 구름에 가렸다 나타나기도 하면서 숨박꼭질하던 백두산은 망망한 림해속에 우뚝 선 모습이 푸른 바다 넘실대는 파도우에 뜬 빙산같기도 하고 망울이 졌던 참분취가 총림속에 활짝 핀듯도 싶더니만 지척에서 바라보니 구름속에 치솟은 거대한 보탑마냥 근엄하고 웅위롭다. 무량한 감개가 한가슴 뿌듯 채워온다.
만고선경 <<천국>>의 뫼부리를 향해 달리는 우리는 말그대로 신화속으로 심신을 잠그는 기분이였다.

백두산은 풀 한포기 뿌리 내릴 흙 한줌 없는 벌거벗은 돌산이다. 한많은 겨레의 뼈가 화석으로 굳어져 반만년 불멸의 력사속에 민족의 얼로 구중천에 거연히 솟은 성스러운 산이다.
그제날 남이장군이 <<남아이십미평국 후세수칭대장부(男兒二十未平國 后世誰稱大丈夫)>>를 읊조리며 썩싹썩싹 검을 갈던 소리가 가슴벽을 쿵쿵 울려왔다. 이제 나도 성산의 돌우에 마음을 얹어놓고 천지물을 끼얹으며 <<유구한 족속의 리념에, 정감에 새파란 날을 세>>(조룡남 작 <<백두산석>>에서)우리라.

산마루에 오르기전 천지기상관측소앞 비탈에 세워진 철판표말에는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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