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박옥남 단편소설)

거미는 쉐끼를 낳으면 쉐끼들의 먹이로 자기몸을 바친다고 했던가.그러니까쉐끼들은바로자기를세상에낳아준어미의뼈와살과피와골수를파먹으며유년기를완성한다는것이다.남보이기흉할정도로굵었다던엄마의다리가이제그뼈말고가죽밖에남지않은것을어찌무심한세월이나무정한병마탓이라고만하랴.우리는쉐끼거미처럼엄마의몸을젖으로짜먹고사랑으로녹여먹은것이다.

두 주일에 한번씩 씻겨드리던 일을, 요즘들어 모든 의욕을 묵살시키기에 십상인 날씨도 날씨려니와 무의식간에 까닭없이 누흙어가는 내 심기때문에 언제부턴가 석주일에 한번씩, 어느땐 그보다 더 늘구어 한달에 한번씩 목욕을 하게 되는데도 엄마는 그 찝찝함과 가려움을 호소할줄 모르고있다. 아니, 모르는게 아니라 세상사람들이 하나같이 공인할만큼 질긴 엄마의 그 와이야줄같은 인내성이  엄마의 입을 봉해버린 아교가 되였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가끔 생각을 한다.
엄마보다 퍽 잘 생긴 아버지가 밖에서 바람을 피워 동네에 소문이 파다했어도 아버지와 야료 한번 부리지 않은 엄마였고 술을 잘하는 아버지가 사흘이 멀다하게 고주망태가 되여 밤늦게 돌아와 취후의 이런저런 성가신 심부름을 시켜도 대꾸 한마디 없이 완벽하게 시중을 해드렸던 엄마이고보면 석주일동안 씻지 않은 먼지때나 한달동안 눌러붙은 땀내에 못견뎌 《나 목욕 좀 시켜도고!》하고 호소할리는 백번도 없다.
어려서부터 보아온 엄마의 질기디질긴 인내성에 자연스레 입맛이 길들여진 나의 행위방식은 부지불식간에 보채는 아이에겐 젖을 물리고 순둥이 아이는 다독여 잠재우듯 아무래나 말이 없는 엄마의 일상을, 일방적으로 방치해두어도 괜찮은쪽으로 치부하기에 이르렀다.
이른아침에 꼭 닫겨있던 엄마방의  문을 뚝 떼고보니 밤새 갇혀있다가 출구를 찾아 쏟아져나오는 늙은이 특유의 악취가 내 코를 쑥 쑤시고 들어와 머리속이 어질어질해났다. 들숨을 정지하고 재빨리 엄마의 이부자리를 걷는도중 오늘은 하늘이 무너지는한이 있어도 엄마의 목욕만은 꼭 시켜야겠다는 결심이 가슴 복판에 턱 들어와 박혔다.
맛없게 받아넘기는 밥을 억지로 몇술 떠먹이고  나무토막처럼 경직된 엄마의 오른팔, 오른다리를  추슬려 겉옷을 입히고 자꾸 무너져내리려는 오른쪽옆구리를 부추겨 아빠트계단을 내려 밖으로 나왔을 땐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오전 아홉시의 태양볕이 머리우에서 화사하게 쏟아지고있었다.
대통로 하나만 넘어서면 닿을수 있게 가까이에 있는 목욕탕이건만 외다리, 외팔이나 다름없는 엄마의 몸을 이끌고 차량들이 씽-쌩- 오가는 대통로를 넘는 일이란 참말이지  홍군이 대도하를 넘는것만큼이나 힘에 부치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이 대통로를 넘는 일이 번거로워 내가 엄마의 목욕을 차일피일 미루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근년에 들어 각종 차량이 기하급수로 불어나서 대통로 한번 건느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건만 륙교나 별도의 건널목장치도 없고 차량을 안내하는 교통경찰도 없다. 손님을 다투어 실으려고 택시들이 술취한놈처럼 대통로 복판에서 꺼리낌없이 비틀거려도, 또 저그만치 학교가 두개나 집거되여있는 큰 동네여서 아이들이 제가끔 길을 건느다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 빈발해도 사람들은 별 불평없이 저마다 아무데서나 용감하게 도로를 횡행하고있다. 그래서  매번 이 대통로를 건널 일이 있을 때마다 질서의식이 밑바닥인 이 나라 국민성과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물렁한 이 나라 법치에 불받고 벌렁벌렁 끓어오르는 밥가마처럼 한참씩 분노에 끓어보군 하는게 바로 나다.
그러거나말거나 대통로 량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상가의 이마빡엔 알록달록한 가게의 옥호들이 밥타러 나와 선 유치원애들처럼 촘촘히도 붙어있다. 마트, 은행, 진료소, 약방, 안마소, 목욕탕, 당구장, 커피숍, 깨임방, 문구점, 식당, 세탁소, 꽃집, 심지어 구두닦이방까지 상가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거리의 행인을 노리고있다. 목욕탕만 해도 대중목욕탕 하나와 원룸식 고급목욕탕 하나, 그외에도 공가돈을 축내는치들이 선호하는 수영장이 딸린 사우나집까지 합치면 이백메터 거리안에 세곳이나 있으니 이 동네 상가가격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리솟는게 그리  이상할것도 없다싶다.
날개를 활짝 편 봉황의 형태를 은은하게 비껴넣은 대중목욕탕의 우유빛유리문을 밀려고 손을 뻗었는데 안으로부터 핑크색 가운을 입은 30대 초반의 호스테스가 나오며 손님이 들도록 날렵하게 대신 문을 열어주었다. 이 집의 도어는 여느집과 달리 밖에서 미는게 아니라 당겨 열게 되여있다는걸 처음 이 집에 오던 날 손잡이 부근에 써붙인 메시지를 읽고 익혀둔지 오래건만 그 글을 무시한채 번마다 밀려고 손을 뻗는 내 고집도 보통고집이 아니다. 나처럼 습관된 동작을 일삼는 손님을 고려했는지 아니면 이 동네 인구의 절반이상을 웃도는 조선사람을 배려했는지 어느새 《퉈이》대신에 《밀어주세요》, 《라》대신에 《당겨주세요》란 조선글로, 그것도 대단히 큰 싸이즈의 메시지로 바꾸어 쓴 주인의 재치가 살랑살랑 돈을 무척 벌게도 생겼다고 나는 속으로 은근히 감탄을 터뜨렸다.
현관에서 신을 벗고 끌신을 갈아신는 동안 핑크색 가운의 호스테스가 철저히 복무를 해주었다. 끌신을 내여주고 벗은 신발을 받아 신발장에 얹고 호패같은 탈의실 열쇄 두개와 흰 타올 두개를 건넸다.
《춰조우마? (때를 밀어드릴가요?)》
전에 없던 복무사항이였다.
호스테스는 그런것도 있느냐 하는 내 눈길을 받자 탕안엔 때밀이군이 대기하고있으며 복무비는 5원이며 값은 지금 함께 계산한다는걸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김이 서려 시루속같은 탕안에서 경직된 엄마의 몸까지 두사람의 몸뚱이를 샅샅이 밀어씻고나면 나는 곧잘 현기증을 느끼군 했다. 어느땐가 지친데다 위경련까지 와서 잠간 혼미하여 엄마가 굳어진 혀아래소리로 옆사람들에게 구원을 청해 한바탕 소동이 인 일도 있었다.
나는 큰 맘 먹고 목욕값 10원에다 1인분 때밀이 돈까지 5원을 더 얹어주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목욕 한번 하는데 통닭 한마리값이 휘딱 날아가버렸지만 여느곳에 비기면 그래도 여기가 제일 싼 곳이기에 좀 아까워도 별수는 없다. 목욕비가 비싸다고 목욕을 아니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동료들은 샤워기를 한대 갖추라고 조언을 해준지가 오래건만 세탁기 하나와 변기 한틀, 작은 세면조를 들여놓고나니 돌아설 자리도 없을만큼 작은 화장실을 갖고 사는 우리 집 형편이니 샤워기란 애인 같이, 갖추고는 싶어도 아주 들여앉히기엔 맞같잖은 호사품일수밖에 없는게 시원도 하고 섭섭도 하다.
탈의실은 조용했다. 쿠션우에 깔아놓은 시트도 백설같이 흰게 마음에 들었다. 한쪽팔다리가 삶아놓은 통닭의 날개처럼 가드라붙어버린 엄마의 몸에서 옷을 벗겨내는 일은 그 몸에 옷을 입히는 일 못지 않게 힘에 부치고 짜증나고 그래서 더욱 번거롭다. 마지막 속옷까지 다 걷어내자 엄마는 아직은 쓸수 있는 왼다리를 오른쪽다리곁으로 옮겨 두다리사이를 좁혔다. 기억과 사유의 시스템 어느곳엔가 고장이 생겨 언어표달수준이 3살박이 어린아이만큼도 안되게 엉망이 되여버린 엄마였지만 이렇게 알몸이 될 때마다 상투적행동을 취하는걸 보면 녀자 특유의 본능적 부끄러움이란것이 아직도 엄마의 가슴 어느 한곳에 깊숙히도 뿌리를 내리고있는것 같다.
여름엔 남들의 눈을 피해 심야를 기다려 마을밖 개울가에 나가 달빛을 빌어 몸을 씻었고 겨울엔 자기 집 부엌쪽에 숨어 오지독에 더운물을 퍼붓고 들어가 목욕이랍시고 해버리던 그 세월, 같은 녀자애들끼리라 해도 남에게 자기의 벗은 알몸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었고 그래서 자기몸 말고는 남의 알몸을 구경한적이 없었던 나다. 그만큼 보수적이였던고로 처음 공중목욕탕에 들어올 때도 벗는 일에 부자연스러웠고 벗고도 몸둘바를 몰라 쩔쩔맸던 일이 나에겐 별로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게 현대화물결에 편승하는데도 남보다 한박자씩 늦은 늦둥이였던 나인데 하물며 야학을 다니며 3강5륜부터 전수받았던 엄마이고보면 그러는편이 더 어울리는 엄마다운 제스처가 아닐가? 활량이였던 아버지때문에 끓인 속이 숯덩이처럼 꺼멓게 타들어가도 몸가짐 한번 흐트러진적 없는 엄마였고 얼굴엔 마냥 자상한 웃음이 떠있었어도 반대로 말문만은 무척 무거워던 엄마다. 좀해서 열리지 않는 입이였기에 재가 되도록 타는 가슴속의 연기는 분출구를 찾지 못해서 속에서 더 요동을 쳤을것이고 그래서 아픔은 곱절로 불어났을텐데도 말이다. 아버지에게 녀자가 그렇게 많았던 까닭이 엄마의 그 무서우리만큼 Á惻つ£ 인내와 수용의 자세가 자초한것이 아님을 나는 지금도 부인하지 않는다. 때로는 흐르는 석간수같기도 하고 때로는 예리한 벌의 주둥이같기도 해야 하며 때로는 포효하는 암펌같은데도 있어야 남편이라는 들말을 제대로 몰고 갈수 있었을텐데도 말이다. 3종4덕은 잘 알아도 이점을 모르고 사신게 엄마 일생의 최대 비극이 아닐가?
그렇게 부끄러움에 몸을 송사리는 엄마를 이끌고 욕실문을 밀고 들어갔는데 휴일이 아니여서인지 탕안엔 세살좌우되는 녀자애까지 합쳐 목욕하는 손님이 셋밖에 없었다. 등받이가 없는 비닐쿠션우에 갓 잡아 엎지른 돼지모양으로 네 활개를 펴고 시름없이 누워있는 녀자, 그 녀자의 사타구니쪽을 열심히 밀고있던 때밀이녀인이 흰 이를 활짝 드러내고 반겨주었다.
《콰이 라이, 따제.(어서 와요, 언니.)》
중국사람들에겐 안면없는 사람의 일엔 하늘이 두쪽나도 눈꼽만한 관심도 보내지 않는 차거운면과 안면이 조금이라도 있거나 리해관계에 조금이라도 관계되는 사람을 만나면 가볍게 언니동생하고 불러주며 후덥게 대해주는 뜨거운면이 공존하고있다. 돈을 뿌려주려고 온 고객을 대하는 주인으로서의 아량있는 례절이 아니라 낯모르는 과객에게서 돈이라도 빌 때처럼 아양에 가까운 호들갑스러운 얼굴같아서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요즘들어 이런 리해관계의 속셈이 무척이나 빨라진것이 전과 달라진 중국사람들의 모습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아직도 신 씻는데 쓰는 쑤세미처럼 까슬까슬하고 뻗뻗한데가 많아 남보다 흠이 하나 더 많다.
어린 계집아이는 바닥에 앉아 비누곽으로 물장난이 한창이고 그 맞은편에서 두손으로 샴푸거품때문에 구름덩이같이 부푼 머리카락을 반죽하듯 주물럭거리던 젊은 녀자손님이 증기막안으로 들어가며 코노래를 흥얼거렸다. 갓 쪄낸 찐빵같이 부풀어오른 엉뎅이가 뒤에서 유난히도 오기를 뿜고있는게 같은 녀자인 내 눈에도 어지럽다 .
탕속에 엄마를 들여앉히고 감응에 의해 흐르게 된 샤워기앞에 다가서서 흘러내리는 물로 몸 구석구석을 적시며 나는 물먹은 건빵처럼 옆으로 퍼지기 시작하는 내 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처녀땐 퍼그나 날씬하다는 소리를 듣고 산 몸인데 세월앞에선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때밀이녀인이 네활개를 뻗고 누운 손님에게 몸뒤집기를 권장했다. 녀인은 그동안에도 한잠을 잤던 모양 선하품을 하며 비둔한 몸체를 굴러 비닐쿠션우에 엎드렸다. 누웠을 때보다 어딘가 더 둔탁해보였다. 때밀이녀인이 때를 밀어올릴 때마다 필요이상으로 붙은 고기덩어리가 덜된 돼지껍질묵처럼 쿠션우에서 좌우로 출렁거렸다. 녀인이 바닥에서 물장난에 성수나있는 계집아이를 불렀다.
《야단아, 엄마 물병 갔다주라.》
계집아이는 두말없이 쫑드르르 달려가 선반우에 올려놓은 광천수병을 집어 엎드린 녀인의 손에 쥐여주었다.
《에그, 이쁜것. 엄마에겐 우리 딸 야단이밖에 없다니까. 너 아버지가 야단이 절반만 해주어도 이 엄만 소원이 없겠구만은.》
그러면서 병마개를 따고 소 뜨물 켜듯 꿀떡꾹떡 병굽에 남았던 물을 다 마셔버렸다. 
《체중이 늘 땐 물 한모금도 살이 된다 했어요. 그만 마셔요.》
때밀이녀인이 근심스레 충고를 던졌다.
《괜찮아요. 난 먹어서 찐 살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아 찐 살이예요. 몸을 불리지 않을려고 애도 배를 가르고 낳았는데 그게 다 허사가 되였지 뭐예요? 이젠 될대로 되여라 그러는중이예요.》
《애기아버지한테서는 아직도 소식이 없으세요?》
두사람은 서먹한 사이가 아닌듯했다.
엎드린 녀인은 묵묵부답이다.
《자꾸 독촉해요.남자들은 돈 많으면 잘못되기 십상이니까.》
때밀이녀인이 이번엔 엎드린 녀자의 등에 비누거품을 바르고 종주먹으로 다듬이질하듯 두드려댔다. 근육의 탕개를 풀어주는 나름대로의 안마방법인가보다.
《그러다 아줌마를 버리겠다면 어떡하지?  애는 어쩌구? 멀거니 앉아 기다리는건 수가 아니예요. 그리고 살 좀 빼세요. 요즘 남자들 예전 같지 않아서 덩치 큰 녀자 좋아 안해요. 나처럼 이런 힘빼는 일을 할거면 몰라도.》
엎드렸던 녀인이 기분이 나쁜듯이 벌떡 일어나 샤워기밑으로 들어가버렸다. 다리 저는 사람보고 절름발이라고 하면 덜 좋아하는 법이다. 덩치가 커서 감응도 큰지 별스레 그 샤워기에선 물이 폭포처럼 소리를 내지르며 많이도 흘러내렸다.
증기막안으로 들어갔던 녀자가 물방울이 송골송골 돋힌 몸을 해갖고 나왔다. 무의식중 그녀와 눈길이 부딪히는 순간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작년까지 내가 맡았던 학급의 학생이였다. 벗은 몸으로 학생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시간을 골라 왔건만 끝내 이렇게 너나없이 부끄러운 장면을 만들고말았다는 실락감에 별스레 기분이 더러워지는건 주체할수 없다. 이럴땐 년장자답게 먼저 눈인사래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뭇거리는 사이 녀자애는 부끄러운 기색 한점없이 가슴을 딱 펼치고 눈길 한번 돌리지 않은채 왁새처럼 내앞을 활보해 지나갔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짙은 냄새가 내 코구멍으로 쓸어들어왔다. 비누향내였다. 알은체를 한다 해도 벗은 몸으로 그 인사를 받는것이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닐테지만 정작 안하무인이 된 제자의 무례한 거동에 불시에 내가 하고있는 일의 가치여부에 잠시 회의까지 드는건  나로서도 어쩔수 없었다. 하긴 수업시간이 되였는데도 건방지게 입안에 껌을 넣고 짝짝 소리나게 씹어대서 눈알이 휘딱 뒤집히도록 욕사발을 퍼먹인적이 있었던 학생이고보면 그쯤의 불쾌감을 만들어주고도 남을법한 녀석임을 짐작하지 못한것도 아닌데 말이다. 차림새도, 하고다니는 짓거리도 학생다운데가 보이질 않아 개별담화도 많이 해주었건만 그때마다 웬 상관이냐는 눈길로 곱다라니 받아들이는 눈치는 전혀 아니였던 문제아이였었으니 말이다. 잘 사는체하는 사람앞에선 별로 주눅이 든적이 없었는데  마땅히 있어야할 군기가 빠져있는 덜된 학생앞에선 이상하게 분노대신 갑자기 비참해지는건 또 왜서일가?
《도와드릴가요?》
때밀이녀인이 쿠션우에 새 타올을 바꿔깔며 그렇게 위축받고  멀거니 섰는 나에게 소리쳤다.
탕속에 잠그어두었던 엄마의 몸을 때밀이 쿠션우에까지 견인하는 일은 사고난 차를 후미진 골짜기에서 끌어올리는 일 못지 않게 힘에 부쳤다. 다행히도 날렵한 때밀이녀인이 방법있게 손을 도와서 한결 쉬웠다. 8년간의 지병은 엄마몸에서 근육과 지방을 척결이라도 해버린듯 쿠션우에 누운 엄마의 알몸은 뼈에 가죽밖에 남지 않아 내가 보기에도 처량했다. 반나마 털어먹은 팥자루처럼 처져있던 젖가슴은 반듯이 누워버린 자세때문에 써레질이 금방 끝난 논바닥처럼 무연했고 그가운데 썩은 밤알같이 댕그라니 남은 두 유두가 그 가슴을 더 바보로 되여보이게 했다. 이 젖가슴으로 여섯자식을 품어키웠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을가? 그러나 믿지 않을수 없다. 우리 여섯자매는 바로 엄마의 이 가슴에 매달려 엄마의 사랑을 먹고 이렇게 어른으로 자라났으니까 말이다. 하다면 많이도 아니고 달랑 하나만 낳고 체형때문에 모유도 안먹이는 요즘 녀자들의 젖가슴은 파파할머니가 되여도 산봉우리처럼 봉긋 솟아있어야 할텐데…
때밀이녀인의 날렵한 손놀림에 의해 엄마의 몸에서 밀려 떨어지는것은 때가 아니라 죽은 표피덩어리가 더 많았다. 동구밖에 있는 자세우물물을 초롱으로 길어다 먹으면서 안으로 굽기 시작했다는 엄마의 오른다리는 왼다리와 평행을 이루지 못하고 악목가지처럼 우습깡스레 휘여있어 더욱 볼썽사나웠다. 어렸을땐 종아리가 너무 굵어 남들보기 부끄러워 정강이우로 올라오는 치마는 종래로 입지 않았다던 엄마의 두 다리였다. 그런데 그 굵었다던 다리는 어데로 갔을가? 거미는 쉐끼를 낳으면 쉐끼들의 먹이로 자기 몸을 바친다고 했던가. 그러니까 쉐끼들은 바로 자기를 세상에 낳아준 어미의 뼈와 살과 피와 골수를 파먹으며 유년기를 완성한다는것이다. 남보이기 흉할 정도로 굵었다던 엄마의 다리가 이제 그 뼈말고 가죽밖에 남지 않은것을 어찌 무심한 세월이나 무정한 병마탓이라고만 하랴. 우리는 쉐끼거미처럼 엄마의 몸을 젖으로 짜먹고 사랑으로 녹여먹은것이다. 한달사이에도 눈에 뜨이게 수척해진 엄마의 신상을 내려다보며 때밀이녀인을 도와 엄마의 몸 구석구석을 밀어씻으면서도 석주일간이나 밀렸던 때를 시원히 씻어낸다는 거뿐함 대신에 자책감 같은것이 새롭게 가슴 한쪽을 할퀴고 지나갔다.
일년사철 땀을 동이로 흘리면서 들일에 몸을 혹사시키면서도 그 땀과 피로를 쑤욱 씻어낼만큼 제대로 된 목욕 한번 못하고 늙어버린 인생, 일을 하다가 더우면 쉼참을 타 한둘씩 짝을 무어 인적 드문 숲속 퇴수물에서 서로 등짝을 밀어주며 그나마 받을수 있는 물의 세례에 만족하며 살아온 세대들이였다.
엄마는 일년 365일을 인민공사 합작로동에 만출근으로 나가면서도 일년에 돼지 두마리쯤은 꼭 사육을 해서 가사에 보탬을 많이 했다. 그래서 쉼참마다 남들은 논두렁에 누워 허리쉼이라도 했었지만 엄마는 돼지에게 쉼참죽을 떠먹이려고 먼 일터에서 달음박질을 해서라도 집까지 왔다가군했다. 그야말로 엄마의 쉼참은 쉼참이 아니라 달리기경주시간이였고 숨가쁜 로동의 연장이였다.
큰길 하나를 사이두고 우리 마을과 나란히 살던 한족동네가 있었는데 그 마을에서 두부를 앗아파는 두부쟁이 쑨마즈(얼굴이 얽은 사람의 별칭)령감은 춘하추동 그렇게 달음박질해다니는 우리 엄마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조선족동네 녀인들은 일도 잘하고 정갈하기도 하고 녀자답기도 해서 보배》라며 《군대간 아들이 제대해오면 조선족동네 처녀를 며느리로 삼아야겠다.》고 노래처럼 흥얼거렸다. 그러나 괜히 말만 듣기 좋아 그렇지 정말로 조선족동네 처녀를 며느리로 맞아들이진 못했다. 당치도 않을 소리였기때문이였다. 중국땅에 살면서도 한족사람과의 통혼만은 패가망신으로 간주하던 조선동네의 철칙같은 례법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러한 조선족동네의 례법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한족사람들이였기에 억대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면 바랐지 조선족과의 혼인은 감히 생각도 못하였고 그래서 쑨마즈령감의 코노래같은 소리를 그저 미치인 넘 씨나락 까먹는 소리만큼이나 우습게 듣고 넘길줄도 아는 체념같은 지혜도 갖추고 살았던 사람들이였다.  
두 녀자가 목욕을 끝내고 탕안을 빠져나갔다. 가랭이 짜른 반바지에 브레지어만 걸친 때밀이녀인의 몸은 땀과 물로 온통 젖어있었다.
《하루에 몇이나 씻어요?》
《고정된게 없어요. 오늘 같은 날엔 열대여섯이 고작이구요, 휴일 같은 날은 또 힘이 모자라서 못다 밀어주는 형편이지요. 조선족들은 깨끗한걸 좋아해서 목욕을 자주하다나니까 크게 힘들지 않은데 우리 한족사람들은 그와 좀 다르잖아요. 한족사람 하나 미는 힘이면 조선족 둘을 밀수있어요. 그래서 같은 값이면 조선족들이 목욕하러 오기를 기다려요.》
《보수는 어떻게 계산하는건가요?》
《사람당 4원을 받게 되여있어요. 언니도 아까 들어올 때 5원을 물었었지요? 거기서 1원은 주인이 먹는거구요.》
《착취하는구만요?》
《착취라고까진 생각지 않아요. 저희들에게 일자리를 창조해주었잖아요. 약재공장에서 일자리가 잘렸을 때 우린 하늘땅이 핑그르르 도는것 같았어요. 당신네 조선족처럼 한국나가 돈이나 벌수 있어요, 밑천이 있어 장사나 할수 있어요? 이제 어떻게 사나 하고 생각하니 나무가지에 목이라도 매고싶더라구요. 근데 인젠 아니예요. 차가 산앞에 이르면 필시 길이 있다고 하는 말 하나도 틀린데 없어요.》
《그럼 수입은 꽤 짭짤하겠어요?》
《그리 못해먹을 노릇은 아니예요.  때시걱이 드레가 없는 나쁜점 빼고는.》
《그럼 식구들 때시걱은 어쩌나요?》
《처음엔 애 아버지가 다 알아서 했었어요. 그런데 남탕에서도 때밀이를 요구해서 애아버지도 이 일을 같이 해요. 아이는 담임선생님댁으로 하숙을 들였구요. 하숙비가 만만찮지만 둘이서 버니까 그쯤의 투자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아요.》
남탕쪽에서 때밀이가 끝나고 근육을 풀어주느라고 벗은 잔등을 두드리는 소리가 듣그럽게 들려왔다.
《남탕쪽도 수입이 비슷하겠지요?》
《그럼요. 남정네들이라 돈 아까운줄을 모르고 팍팍 뿌려서 오히려 이쪽보다 수입이 더 좋아요.》
때밀이녀인은 신들린 무당처럼  묻지도 않는 말을 주절주절 주어섬겼다.
《금방 나간 애기엄마 직업이 무엇인줄 아세요? 마작이예요. 그놈의 마작을 얼마나 잘 노는지 프로급이예요. 출국한 남편이 돈을 부쳐오지 않아도 그 녀자 굶어죽진 않아요. 날마다 마작놀아주고 밥사주는 남정네들이 쎄구버렸어요. 우리 옆집에 세들어 살아서 내가 좀 아는데 그거 노는데 정신 팔려서 딸아이가 뜨물통에 거꾸로 박히는것두 몰랐던 녀자예요. 귀여운 계집아일 하마트면 죽일번 했다니까요.》
《숙분이, 손이 쉬면 얼른 나와 우유나 한잔 마시고 해요!》
남탕쪽에서 웅글진 소리가 들려나왔다.
《알았어요. 이제 나갈게요.》
때밀이녀인은 남편이 부른다며 밖으로 나갔다.
녀인이 나간후 엄마는 탈진상태에 든 사람처럼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엄마, 요즘 세월 많이 좋아졌지? 가만히 누어있어도 때를 다 씻어주는 사람이 있구. 그치?》
엄마는 입귀만 약간 일그렸다. 웃는다는게 그게 전부의 표정인줄 나는 안다.
《그래두 엄마, 난 오지독안에 들어가 하던 그때 그 목욕이 더 좋았던것 같수.》
섣달그믐날 저녁이 되면 이튿날 차례상 준비를 끝낸 엄마가 돼지죽가마를 비우고 맑은 물을 넘치게 퍼붓고 펄펄 끓여서는 우리 자매들의 목욕을 잊지 않고 챙기셨다. 들어서면 내 한키가 더 되는 오지독에 목욕물을 퍼넣고 제일 어린 나부터 차례대로 몸을 씻겨주었다. 맨 마감에 맏언니까지 다 씻고나면  자정이 훨씬 넘는 때도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지켜서서 일일이 아이마다 등을 밀어주었고 목욕이 끝난후엔  부엌아궁이 불볕에 머리를 말리워 앞가리마를 곱게 내여 외태를 땋는것까지 도와주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초하루날만큼은 꼭 그런 머리를 빗도록 독촉을 했는데 처녀애들은 외태를 땋아야 정숙해보이고 녀자다운데가 있다는것이 엄마의 고루한 고집이였었다. 
그무렵 한족마을의 쑨마즈령감의 아들이 군복무가 끝나 마을로 돌아왔다. 별을 뗀 군모와 령장을 떼버린 군복을 입고있었으나 위용을 상징하는 쑥색복색에 의해 의표가 름름해보였고 얽음뱅이 쑨령감의 아들이라고 하기엔 아까울만큼 준수해보였다. 쑨령감은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날 앗은 두부를 손때가 묻어 시커멓게 그을은 박바가지에 담아들고 두 마을을 돌며 매 집에 한모씩 공짜로 돌렸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그렇게 너스레를 떨어도 조선족동네사람들은 왼눈으로도 반기지 않았다.
얼마후 쑨령감의 아들과 조선족동네의 처녀 하나가 마을앞 소나무숲속에서 남몰래 데이트를 하다가 목욕하러 개울가에 나갔던 동네아낙네들의 눈에 발각이 되여 마을은 또 한번 소란스러워졌다. 딸년이 집안망신을 시켰다며 초상난 집처럼 울며불며 야단을 치던 처녀집에서 어느날 딸을 데리고 어디론가 감쪽같이 이사를 가버렸다. 시집 안간 딸자식에게 그런 불미스런 일이 생긴것은 재무지에 두부를 떨군것처럼 불어먹지도 닦아먹지도 못하기에 소문 모르는 먼 곳으로 가서 조용히 사는게 최상이라고 마을사람들은 뒤에서 쑥덕거렸다.
그후부터 우리들에 대한 엄마의 단속이 심해졌다. 밤늦게 마실돌이하는걸 반대했고 개울가로 목욕하러 가는 일도 엄마의 배동이 없이는 불가능한 사실로 받아들이게 했다.

문이 열리며 새 목욕손님이 들어왔다. 표징이 되는 옷가지들을 다 벗어버린 상태여서 탕속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은 얼핏 보기에 별로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저 실하고 약하고의 차이점만 있을뿐 몸은 거개가 거기서 거기였다.
《때밀어주는 사람 어디 갔나보죠?》
갓 들어온 손님이 먼저 그렇게 말을 걸어와서
《방금 간식 먹으러 나갔어요. 곧 올거예요.》
그렇게 대답하며 정면으로 녀인을 쳐다보니 다름아닌 둘째언니네 맞은켠에 사는 녀인이였다. 언니네집으로 드나들면서 계단에서 몇번 얼굴을 마주친 일이 있을뿐이여서 서로가 누구인줄은 알고있어도 인사수작은 종래로 없었던, 우린 그저 그런 사이였다. 
둘째언니의 말에 의하면 이 녀인은 3년간 외국나들이를 다녀왔는데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이 동네 상가건물만 해도 두채나 사두었고 연해도시에도 살림집 한채를 사놓았으며 친정집 남동생에게는 자가용차까지 한대 뽑아준 녀인이란다. 아무리 주먹구구를 해보아도 3년사이에 복권에 당첨되였거나 그렇지 않으면 도둑질을 했거나 그 두가지중의 하나를 하지 않은 이상은 불가능한 일인데 그 불가능을  가능한 일로 되게 한 그 녀인에겐 도대체 어떤 경로가 있었던것일가? 그것이 오래동안 체증처럼 둘째언니의 연구과제로 남아있었댔는데 요즘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소문인지 녀인은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 어린애 없는 부자집 마나님 대신 아기를 낳아주고 그 보상으로 거액을  받아챙긴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일따름이여서 그 진가는 누구도 모르지만 둘째언니의 세심한 관찰에 의하면 녀인은 가끔 출입문을 열어둔채 집안에서 서성거리는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입고있는 잠옷이 모두 고급외제쪽이라고 했다. 그것도 벌벌이 수십벌인데 녀인은 집안에만 들어오면 그 잠옷들을 걸치고 체경앞을 배회한다고 했다.
녀자답지만 눈에 거슬리게 요염하지는 않은 얼굴과 비대하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은, 풍만하다고 하면 딱 어울릴만큼 보는이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저런 몸매를 가졌고보면 씨받이로 선택될 자연조건을 충분히 구비한 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집에서 그렇게 뜬금없이 벼락부자가 되여버리자 슬그머니 안이 단건 그 옆집에 사는 둘째언니였다. 과일을 사도 우리들처럼 근으로 사오는게 아니라 박스채로 사들이고 먹고버린 쓰레기마저 자기집것과 다른 차원의 쓰레기를 버리는 이웃집의 모든것이 부럽다 못해 심술까지 날 정도란다. 그러면서 종종 엄마에게 롱반진반의 투정을 하기도 하는 둘째언니이다.
《내리내리 딸만 낳는 집안의 딸들은 선녀의 정기를 받아 대개 모두 이쁘다고들 하더구만 우린 왜 잘 생긴 아버지는 닮지 못하고 울퉁불퉁 이렇게 지지리 못생겼수? 혹시 아버지 몰래 다른 령감하고 눈이 맞아 우릴 낳은건 아니지? 허긴 뭐 여섯이나 줄줄이 남의 씨를 도둑질하도록 우리 아버지가 가만있었을린 없는거고. 혹시 우리 아버지 아이 못만드는 바보는 아니였지?》
말은 못해도 듣는데는 별 지장이 없는 엄마가 시설시설 주어대는 둘째언니의 말에 어이가 없는지 일그린 입귀로 허구픈 웃음을 흘렸다. 로동이 없는 부에 대한 둘째언니의 흠모는 엄마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었으나 엄마는 혀가 굳어지는 병을 만나 그런 딸년을 호되게 꾸짖을수도 없는 몸이 되였다. 아니, 말을 할수 있었다고 해도 엄만 아마 그저 저렇게 웃어버렸을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워낙 그렇게 말을 무척 아끼는 타입이기때문이다. 하물며 부에는 모두다 그에 대등한  대가가 따랐다고 주장하는 둘째언니이니까 말이다. 그것이 바로 엄마세대와 요즘세대 사이의 차이점이 아닐가? 
지금 녀인이 쓰는 샴푸도 고급외제였고 타올도 목욕탕에서 내여주는 공용이 아닌 몸소 지니고 온것이였는데 그것 역시 외제품인걸 나는 보아냈다. 좌우지간 이 녀인은 숨은 이야기가 많은 녀인 같았다.
탈의실을 나왔을 때 핑크색 가운을 입은 호스테스가 알록달록한 머리끈으로 금방 드라이어를 끝낸 녀학생의 머리를 묶어주고있었다. 우리 엄마처럼 외태를 땋아주는것도 아니고 몇오리씩 감아쥐고 쉐끼를 꼬듯 비틀어꼰 다음 다시 가랑머리로 쪽을 져 갈라묶고있었다. 내눈엔 무대우의 꼭두각시머리 같이 보였다.
우리가 옷을 다 입자 머리도 다 묶어졌다. 녀학생은 1원짜리 두장을 테블우에 던져놓고 탈의실을 나갔다.
《여기서는 머리도 빗겨주는가요?》
《안요, 옆집 미장원에 사람이 차서 기다리기가 싫다고 이렇게 여기서 묶는 애들이 많아요. 대신 돈을 받죠.》
《한번에 2원씩이나?》
《요즘애들 돈 2원을 돈 같이 보는줄 아세요? 금방 나간 그 학생은  머리를 한번도 제절로 묶지 않아요. 번번이 미장원에 들어가 묶지 않으면 이렇게 여기서 묶고 가죠. 아버지가 외국에서 하루에 300원벌이를 하기에 그 2원이 뭐 대수냐, 그러면서 그냥 묶어달래요. 나야 좋죠, 돈을 버니까.》
이 동네 상가값이 왜 그리 비싼지 알것 같기도 했다. 저마다 하나같이 돈버는 재미에 지쳐 무척이나 즐거워하고있었다. 
자꾸 무너져내리는 엄마의 몸을 부축해 우유빛 유리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을 땐 뜨거운 정오의 태양이 정수리우에서 자글자글 끓어번지고있었다.v

(도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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