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승국 단편소설

한참걸어가던도순이의눈에갑자기붉은색의피가보였다.눈길이가닿은길바닥우에피가빨갛게물들어있었는데겨울해빛아래에서그피자욱은차갑게떨고있었다.멍하니서서그곳을뚫어지게쏘아보던도순이는허겁지겁무릎을꿇었다.그리고는옷을벗어그피자욱우에덮어놓고조용히다독여주었다.

아직도 절인 새우가 도착하지 않아 도순이는 속이 안달아 죽을 지경이다. 반시간전 병구네 음식점에서 김치담글 때 쓸 절인 새우를 요구해 반시간쯤 되면 보내주마 했는데 인젠 반시간이 넘어가고있었다. 도순이는 두터운 입술을 실룩이며 예리한 쇠송곳으로 얼음속의 이면수을 뚜져냈다. 물기가 어린 얼음쪼각들이 신경질적으로 사처에 튕겼다.
《다리갱이 부러졌나, 아직도 안와? 삶은 돼지 굶어죽겠네. 항상 이렇게 신경을 일궈놓는다니깐.》
너무 힘쓴때문인지 코안의 코물이 풀쩍 나왔다. 대수롭지 않는듯 비린내가 까맣게 밴 팔소매섶에 코물을 쓱 문지르며 그냥 얼음속의 이면수를 뚜져냈다. 얼음과 한덩이가 된 이면수우에 코물인지 눈물인지 알수 없는것이 뚝 떨어졌다.
도순이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는 얼굴을 한번 더 찡그렸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이제 병구네 음식점에서 재촉전화가 오는 때에는 단골 하나를 잃게 되는것이다. 그것도 날마다 몇백원어치씩 매상고를 올려주는 단골을 말이다.
도순이네 해산물매대에는 단골이 여럿이 있었으나 병구네 음식점은 그 가운데서 제일 큰 음식점이라 병구네를 잃는다는것은 목구멍을 졸라매는것과 같았다.
도순이는 코물을 흑 하고 들이긋고는 옆매대의 은옥아줌마한테 사정조로 물었다.
《절인 새우 한드럼통 먼저 빌려써유.이 죽 먹일놈, 아직도 오지 않는걸유.》
《내것도 얼마 안되는데…》
애매한 대답이 도순이의 귀가에 맞혀왔다. 갑자기 코끝이 찡하고 저려오며 심장이 쿵 하고 한번 울리는것 같았다.
《한통이면 될건데…》
그렇게 입속으로 말하는 도순이의 두눈에는 원망의 빛이 가득 넘치고있었다.
《글쎄 보라니까, 아침에 어제 팔던 나머지만 갖고 나왔다니 이러네.》
말티가 이왕보다 이상했다. 도순이는 입을 다문채 몸을 돌려 뜯다만 이면수에 쇠송곳을 콱 들이박으면서 입속에서 욕설을 튕겨냈다.
《이 뒈질놈은 아직도 안와, 다시는 상종못할 종놈이야.》
도순이는 땅바닥에 널린 얼음덩이를 발로 쓸어 구석쪽에 처넣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호주머니를 들춰 색이 다 바랜 한물간 낡은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리고는 귀가에 가져다댔다. 그러나 전화는 이미 전화비를 물지 못해 신호가 끊겨있었다.
맞은켠 소고기매대곁에 공용전화가 있다. 일여덟메터되는 거리안에는 장보는 사람들로 오구구했다. 이맘때면 손님들이 물밀듯 들이닥치는데 이 기회가 판매의 황금시기였다.
도순이는 쇠송곳을 매대우에 뿌려던지고 비린내가 밴 부스럭돈을 들춰가지고매대를 나와 사람들속을 비집으며 공용전화쪽으로 건너갔다. 전화기를 들고 버튼을 두드리려는데 옆매대의 은옥아줌마가 막 부르고있었다.
《도순이, 병구네 음식점에서 전화가 왔네…》
도순이는 들었던 전화기를 내려놓고 달려와 은옥아줌마의 손에서 핸드폰을 받았다. 도순이는 핸드폰을 손에 쥐는 순간 정말 좋은 핸드폰이라고 여겼다. 언젠가 딸이 사줬다고 자랑하던 핸드폰인가보네…
도순이가 핸드폰을 귀가에 가져가니 석쉼한 병구의 목소리가 을씨년스럽게 쏟아져나왔다.
《남의 장사를 망쳐먹을 일이라도 있는건가. 도순이, 신용이 뭔지 알아?》
《알구말구유, 금방 온다니깐유. 제가 지금 전화걸고있는중이거든유. 도착하는 즉시 보낼게유.》
《이제 반시간이 넘어도 안오면 우릴 나무라지 말라니깐. 허참, 무슨 장사를 그렇게 해? 알았지, 반시간이야.》
대방에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도순이는 흑- 하고 비린내를 들이마시고는 핸드폰을 은옥아줌마한테 넘겨주었다.
《그쪽에서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닌가?》
은옥아줌마가 반갑지 않는 걱정을 해왔다.
도순이는 그 소리가 이왕보다 역겹게 들려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공용전화가 있는 곳으로 다시 건너갔다. 전화기를 들고 버튼을 눌렀다. 지저분한 중국말이 튕겨나왔다.
《쪼우쎄이?》
《곽서방 바꿔.》
도순이는 다짜고짜 격한 소리를 뽑았다.
《니쓰 쎄이야?》
《니 할매다. 잔말말고 곽서방 바꾸라니까!》
도순이의 목소리는 한옥타브 높아졌다.
《워 팅뿌뚱.》
이때에야 도순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예감이 들었다. 곽서방이란 해산물 도매부의 주인이였는데 그 도매부의 중국사람들은 모두 조선말을 알아듣고 또 말할줄도 알았다.
놈 하나 새로 받아들였나?
도순이는 혼자소리로 중얼대면서 한결 가라앉은 소리로 물었다.
《거기 해산물 도매부 아니예유?》
《니 따춰라.》
대방에서 신경질을 부리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도순이는 머리속의 아라비아수자를 맞춰보며 전화버튼을 다시 두드렸다. 귀에 댄 전화기에서 뚜뚜거리는 소리만 날뿐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도순이가 다시 한번 반복해서 버튼을 두드렸으나 마찬가지였다. 세번, 네번 그냥 반복했으나 전화는 종시 걸리지 않았다. 도순이의 입에서는 알아들을수 없는 쌍스러운 욕지거리가 튕겨나왔다.
도순이가 매대앞으로 오니 은옥아줌마 매대앞에 숱한 사람들이 몰려서서 뭔가 다퉈가며 사고있었다. 도순이가 목을 빼들고 들여다보니 은옥아줌마는 한창 동태부스러기를 시골아낙네들한테 얼렁뚱땅 팔아버리고있는중이였다. 도순이는 늘 궁상을 떨다가도 자기 욕심만은 용케 차리는 은옥아줌마가 밉광스러웠다. 자기와 이웃해서 장사를 한다는게 늘 께름직해서 언젠가 자리를 바꾸려고 했지만 여기보다 우월한 자리가 없어 그냥 눌러있는중이였다.
《아무튼 못말려.》
도순이는 사람들이 몰켜선쪽을 찔 흘기고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시간이 아득바득 흘러가면서 도순이의 앙가슴을 긁어대고있었다.
한통에 90원씩하는 절인 새우를 팔면 기껏해야 십원 정도 벌수 있었다. 도순이가 근심하는건 그것이 아니다. 병구네는 도순이한테 재록신과 같은 존재라 그와 등지면 하루에 몇백원씩 되는 매상고를 떼우게 된다.
병구는 원래 도순이네와 한마을에서 살다가 한국에 갔다와서 시가지에 가게를 차리고 지낸지 세해째 잡았다.
도순이는 작년에 아들놈이 중학교에 붙자 촌중학이 없어 할수 없이 시가지로 올라와 병구의 부추김으로 해산물장사를 시작했다. 우로 둘씩이나 죽이고 겨우 살려낸 자식이라 무척이나 신경이 쓰여져 공부만은 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시내로 들어와 장사를 시작했지만 생각대로 돈벌이가 잘되지 않았다. 그저 병구네가 장사가 잘되여 매일 해산물을 사가니 말이지 죽벌이도 될가말가한 처지다.
도순이는 갑자기 온 종일 집에 박혀있는 남편을 머리에 떠올렸다. 아마 지금쯤은 병원에서 돌아왔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다 전화를 하니 남편 철우의 목소리가 모기소리같이 들려왔다. 그 소리가 웬지 도순이의 신경을 건드리며 성이 발칵 났다. 늘 앓음타령을 하면서 병원나들이를 아침변소다니듯하는 남편때문에 집기둥이 흔들리고있는데 식구들한테 힘이 되여줄 대신 늘 죽어가는 시늉만 하고있는 남편이 밉광스럽기 짝이 없었다. 좀 더 노력할 기미라도 보여주면 자기가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도순이는 자기의 처지가 가긍스럽기 짝이 없었다. 언젠가 본가집 엄마가 생전에 네가 철우한테 시집가면 고생할거라며 기어코 반대해나서던 일이 새삼스럽기도 했다. 그때는 철우가 없으면 살것 같지 않아 발버둥질치며 고집부렸댔는데 지금은 한숨밖에 나오는게 없었다.
《집에 박혀 속이 답답하지 않나유?》
《나 지금 한잠 잘려구 하는데… 왜?》
철우의 애매한 말소리가 귀청을 괴롭혔다.
도순이는 단박 터지려는 화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그녀는 손에 쥐였던 도라이바로 피가 말라붙은 콩크리트벽을 찌르며 목소리를 한옥타브 높였다.
《지금 어느땐데 잠을 자유? 빨랑 여기로 와유.》
《왜 또?》
《글쎄 빨랑 와유. 급한 일이 있으니까.》
《아참, 성가시네. 알았소.》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 남편을 도순이는 입속으로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욕을 해대며 매대로 돌아왔다.
그사이 은옥아줌마네 매대앞에 모여섰던 시골아낙네들이 물러가고 없었다. 한적한 기분인지 은옥아줌마가 팔짱을 끼고 도순이한테로 다가왔다.
《저기 절인 새우가 조금 있긴 한데 그거라도 보태서 보내지…》
도순이는 순간 이상한 눈으로 은옥아줌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어색한 웃음을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병구아주버님네는 쓰다남은 물건을 쓰지 않는대유. 그래도 새것이 안전하구 또 마음 편해유.》
도순이는 뜯다만 이면수를 도라이바로 뜯어냈다.
무안을 느꼈는지 은옥아줌마는 입을 삐죽거리며 도로 물러갔다.
언제 왔는지 아들 문호가 앞에 장대처럼 서있었다. 고중에 들어서자 키가 비맞은 참대순처럼 크더니 인젠 고개를 들어야 얼굴을 쳐다볼수 있었다. 튼튼하게 커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뿌듯해지기도 했지만 도순이는 항시 자기의 팔자를 나무랐다. 어찌보면 자기가 이렇게 뼈가 휘도록 하는 고생이 쉐끼와 남편한테 책임이 있는듯 여겨지기도 했다. 나혼자 살면 멋스레 살겠다. 자식은 장가보내면 남이 되고 남편은 돌아누우면 남이 된단다. 그래서 어떤때는 오기로 호주머니에서 십원짜리 한장을 빼들고 8원씩 하는 랭면을 사먹어보기도 했다. 그래도 속은 시원치 않았다. 뼈가 목에 걸린것 같아 그냥 속이 후련하게 내려가지 않았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랭면 두사발을 더 받아가지고 가서 저녁상에 올려놓았다. 이게 바로 도순이였고 그녀의 운명이였다.
《왜 여기에 나타났어? 꼴 좋은 얼굴도 아닌데.》
도순이는 남편한테 하다만 욕을 아들한테 쏟아부었다.
《엄마, 오늘 왜 얼굴이 그렇게 엉망이요? 혹시 누구와 싸웠나?》
문호는 흐물거리며 도순이한테 다가들었다. 애비와 다르게 능글스러운데가 있는 자식이였다.
도순이는 문호가 이렇게 흐물거릴 땐 꼭 무슨 수작이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문호는 늘 이렇게 찾아와 돈을 후무려가져가군 했다.
《또 무슨 수작 피우려고 그래. 학교에서 또 돈을 내라던? 아니면…》
도순이는 아예 문호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엄마의 화난 모습이 이왕보다 너무 험상궂어 문호는 돈말을 꺼내지 못했다.
《오늘 학교에서 시간을 보지 않는다기에 엄마 일손 도우러 일부러 찾아왔지. 엄만 그저 심술부려…》
《헉.》
도순이는 그만 실소를 던지며 머리를 쳐들었다. 그리고는 자기앞에 서있는 코수염이 감실감실해지는 녀석을 쳐다보았다.
엄마의 눈길이 이상했던지 문호의 얼굴색도 어색하게 변해갔다.
《왜 그러는데, 엄마. 오늘 참 이상하게 그러네. 괜히 짜증을 내면서…》
《내 아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셈이 들었지? 해가 서쪽에서 뜨진 않았을게고…》
《됐어, 엄마. 남들이 보는데… 뭐 심부름 같은거 없나 해서.》
이때 은옥아줌마가 호들갑스런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에고, 우리 아들 우리 아들 하더니 이렇게 멋진 총각이구먼. 처녀애들의 눈물깨나 짜게 생겼네.》
그 소리에 도순이는 한눈 찔 흘겼다.
《어린애한테 무슨 소릴 하는거유?》
《에고, 어린애라니. 저 감실감실한 코수염을 보라니깐. 아유, 정말 잘 생겼네. 도순이, 우리 작은 딸 며느리로 줄가?》
《사람 골리고있어유? 딸애는 어떤지 몰라도 엄마 보군 싫어유.》
그다음 도순이는 그만 《쿡.》하고 웃었다.
《아니, 내가 어째서. 이래뵈두 처녀땐 나도 숱한 남자들한테 불려다녔다니깐.》
은옥아줌마는 새초롬해진 얼굴로 도순이한테 대들었다.
《글쎄, 그래서 물고기 잘 팔리나?》
도순이는 옆에 서있는 문호한테 머리를 돌렸다. 순간 그녀는 자기의 아들이 참 잘 생겼다고 생각했다. 여직껏 자기의 자식이래도 이렇게 여겨보지 못했었다. 아니, 못했다기보다 여겨볼새가 없었다.
은옥아줌마는 입을 삐죽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가버렸다.
도순이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병구네 집에서 전화온지 반시간이 훨씬 넘었다.
《너 해산물도매부 알지? 거기 인츰 갔다오너라. 절인 새우가 아직도 오지 않아 병구네가 야단이다.》
《그런데…》
문호는 뒤더수기를 썩썩 긁으며 도순이의 눈치를 살폈다.
《또 뭐야?》
《심부름하면 핸드폰 사줄래?》
문호의 눈은 거의 겁기로 떨고있었다. 하지만 말투만은 아주 똑똑했다. 그리고 그 어떤 긍정적인 어투가 내포되여있었다.
《이 세상모르는 자식아, 엄마가 안달이 나서 그러는데 핸드폰타령이야! 빨리 당장 갔다오지 못해?》
도순이의 갈린 소리가 한옥타브 높아졌다.
《그럼 나 사주는걸로 알고 간다.》
문호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돈 넣어두는 서랍에서 오원짜리 한장을 나꿔가지고 시장출입구로 달려갔다.
《이그 저것, 그저… 빨랑 갔다와-》
아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도순이는 처음으로 기대감 같은것을 느껴보았다. 매일 돈을 달라, 옷을 사내라지만 그래도 커가는 모습에서 도순이는 힘을 얻군 했다.
문득 출입문에 눈익은 모습이 나타났다. 병구였다. 퍼르딩딩해서 들어오는 그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오늘은 《다음에 보기오》로 끝날것 같지 않았다. 예전에는 혹시 도순이가 해산물이 모자라 미처 공급해주지 못하여도 그런대로 뭉때버리던 병구네였다. 그래서 도순이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늘 기도문처럼 외우군 했다.
《이구, 병구아주버님. 추운데 왜 나왔어유. 내가 가져가지 않을라구유.》
도순이는 되지도 않는 너스레를 떨며 병구를 맞았다.
병구는 튀여나온 배를 한손으로 매만지며 시장안을 휘둘러보고는 도순이의 매대안에 눈을 주었다.
《절인 새우는 왔나?》
《아직… 그게 있잖아유. 우리 문호가 금방 갔어유. 아마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인데…》
도순이는 병구의 가는 눈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왕에는 그렇게 대견스럽고 믿어보이던 병구의 얼굴이 오늘은 이상스레 보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어쩌면 그 얼굴이 자기의 생활궤도를 바꿔놓을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기도 했다.
《여직껏 장사를 했다는 아낙네가 이게 뭔가? 내가 뭐 도순이네 뒤바라지나 해주는 사람인줄 알았나. 참 어이없는 사람들이구먼. 내 장사 글러지면 도순이도 망친다는거 알테지?》
《알고있어유, 그런데…》
《구실을 달지 말라구. 우리 집에서는 야단이야. 다른 집 새우를 가져오라구. 그런걸 내가 한사코 말렸어. 그런데 이게 뭐야. 도순이도 알지만 우리 집 장사가 잘되는건 해산물도 해산물이지만 김치맛이 좋아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는걸 알지. 나도 돈벌구 도순이네도 돈벌게 하려는거네. 그러면 서로 도와야지 않겠나? 철우 그 녀석은 뭘 하는거야. 약간 쑤셔도 집구석에 처박혀있는 녀석 같으니라구. 항상 녀편네 손을 씻어먹을 녀석이야. 난 지금 당뇨병으로 앓아도 병원은커녕 약도 안먹어. 사람이 살자면 악이 있어야 하는거야. 나도 도순이가 이렇게 이악스레 사니까 돌봐주는거지. 철우 그 녀석 보면 죽물도 아깝다니까!》
도순이는 병구가 오늘 별말을 다 한다고 아니꼽게 여겼다. 내 집식구끼리 먹고 사는데 웬일로 감놔라 배놔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장사로 얹혀산다지만 그렇게 멸시를 당할 처지까지는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순간 도순이는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뜨거운것이 울컥 올리솟음을 느꼈다.
《애 아버지는 병구아주버님과 달라유. 그렇게 욕하지 마시라구유. 사람마다 아까와하는게 따로 있는법인걸유.》
《어쭈, 그래도 제 남정이라고 감싸도는군. 그만하자구. 절인 새우는 다른 곳에 가서 샀어. 그러니 시름놓고 편히 장사하라구.》
도순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 그럼 우리 집 새우는…》
《도순이 마음대로 팔라니까. 인젠 재촉도 없을거니.》
병구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도순이는 병구의 옆얼굴에서 여직껏 보지 못한 웃음을 보았다. 그 섬찍하리만치 차거운 웃음은 도순이의 가슴을 금시 굳어버리게 했다.
《그대로 가면 어떡해유?》
《별수가 없잖아. 나도 장사해야 먹고 산다니까. 하참, 코막고 답답하게 구네.》
병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출입문으로 나가버렸다.
도순이는 삽시에 다리맥이 탁 풀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녀는 그대로 걸상에 주저앉고말았다.
《개쉐끼…》
한참후 도순이의 입에서 자기가 들어도 놀라우리만치 끔찍한 소리가 튕겨나왔다. 도순이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얼어서 뿌옇게 된 명태눈을 쏘아보다가 그곳에 도라이바를 콱 들이박았다. 순간 자기도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무엇인가 아래로 뚤렁 떨어졌다. 도순이는 남들한테 자기의 눈물을 보이기 싫어 명태눈에 박았던 도라이바를 빼내여 그대로 명태를 하나하나 뜯어냈다.
옆에서 방관하고있던 은옥아줌마가 조용히 다가왔다.
《그보라구, 아무리 가깝대도 모두 자기욕심을 바라고 생색을 내는거라니까. 그 남정도 생긴게 남을 그렇게 알아주는 사람 같지 않구먼.》
《옛날엔 음식도 나눠먹으며 지냈는데…》
도순이의 목소리는 금방 터질것 같이 울먹거렸다. 악문 이사이로 뜨거운 입김이 뿜겨져나왔다.
《그렇게 지내면 누가 덕을 알아준다던가. 낡은 터에서 이밥 먹던 소리를 하고있군. 너무 상심말라구. 앞으로 우리 서로 돌보며 지내게.》
은옥아줌마는 뭘 더 말하려다가 그저 도순이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주고는 제자리로 돌아가버렸다.
도순이는 인젠 남편도 올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남편한테 전화하려는데 강마른 몸집의 철우가 눈앞에 나타났다.
피색이라곤 찾아볼수 없는 남편을 보자 도순이는 또다시 화가 치밀어올랐다.
《왜 왔어유?》
도순이의 화난 얼굴을 보자 철우는 금시 어정쩡해서 한식경이나 서있다가 드디여 매대앞으로 다가왔다.
《급한 일이 있다면서?》
《인젠 급하지 않으니 문호나 찾아봐유. 그 애 심부름 갔어유. 수산물도매부엡》
《그런데 그눔들은 왜 안온대? 성가시게.》
《누가 안대유. 빨리 가보기나 할거지…》
도순이는 찌그러져가는 남편의 옆모습을 째려보았다. 어디에도 힘깨가 보이지 않는 남편의 모습이 항상 안쫑잡혀 도무지 마음이 쓰여지지 않았다.
철우는 안해의 삐여진 심경에 그만 어정쩡해져있다가 주눅이 든 얼굴을 해가지고 부랴부랴 시장문으로 사라졌다.
원체 곧은 성정을 지닌 철우임을 알고있는 도순이는 남편한테서 신경을 거두고 시장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오전시간이 지나가고있었다. 아들놈이 간지도 반시간이 넘게 지나갔다. 도순이는 오늘 이왕보다 달리 마음이 뒤틀려 견딜수가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있었다. 웬지 모르게 자꾸만 누군가를 욕하고싶고 뭔가를 부수고싶어지는 자신을 새삼스레 느끼고있었다. 이게 설상가상이라는걸가?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났다. 요 며칠째는 오줌도 자주 마려워나면서 옆구리가 아픈게 그저일 같지 않았다. 젊었을때의산증이 재발한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오줌도 갑잘라야 겨우겨우 찔끔거렸다. 병원에 가려 해도 그 돈이 아까워 가기 싫었다. 또 혹시 더 큰 병일가봐도 겁났다. 남편이 하는 앓음자랑도 귀찮은데 자기까지 앓으면 누가 귀신같은 남편과 덩대같은 아들 뒤바라지를 한단 말인가?
도순이는 위생실로 들어가 한참동안 갑자르다가 겨우 몇방울 떨구고나서 바지를 추슬려입었다. 팬티도 인젠 몇군데 구멍이 나있는것이였지만 그런대로 응부하고있는 도순이였다.
《도순이, 새우배달이 왔네. 빨리 나와보라구.》
도순이는 그 말티가 하도 이상해 바지를 인차 추슬려입고 밖으로 나왔다. 은옥아줌마가 위생실밖에 서있었다. 그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무, 무슨 일인데…》
도순이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떨려났다.
《집 아들이…》
《우리 문호가 왜? 어쨌게…》
《글쎄 빨리 가보라구, 새우배달이 와있으니…》
도순이는 흐트러진 몸매를 다듬을새도 없이 매대쪽으로 달려갔다. 새우배달이 작은 몸집을 매대 한쪽모퉁이에 맡긴채 도순이를 기다리고있었다. 도순이를 보자 새우배달은 몸을 세우고 꺽꺽거렸다.
《집 아들이 차에 치였수. 자전거도 박산나고 아마 머리통도…》
새우배달의 말을 은옥아줌마가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끊어놓았다.
《뭐라구, 어디 가서 환장하고있다가 와서 그따위 허튼소릴 하고있는거유?》
도순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도라이바를 들긴 했지만 얼굴은 그냥 새우배달을 향해 뭔가 알려고 하고있었다.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닌데… 빨리 가기유. 지금쯤은 아마 병원에 실려갔을거유.》
도순이는 손에 들었던 도라이바를 동태몸에 콱 박더니 시장문쪽으로 달려나갔다. 그뒤로 새우배달과 은옥아줌마가 따라나섰다…
아들 문호는 피투성이가 된채 구급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얼굴을 동여맨 붕대에 내배여진 빨간 피가 몸서리치게 눈에 안겨왔다. 도순이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흐느끼듯 흑 하고 숨을 들이그었다. 어쩜 난생처음 마신 술에 숙취해 조용히 침대에 누워있는 아들을 보는듯 했다. 그리고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기한테 갈한 목을 추기려고 물을 요구해오는듯싶었다. 도순이는 아들한테로 휘청거리며 다가갔다. 가는 숨소리가 느껴졌다. 가랑가랑한 숨소리 같았는데 그게 산소호흡기에서 나는 소리임을 알았다. 도순이는 아들의 몸에 엎어지며 아들의 얼굴을 받쳐들었다. 찐득한 피가 손에 즐펀하게 묻어났다. 몸서리치게 차거웠다. 도순이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문호의 입으로 흘러들고있었다. 마치 젖꼭지에서 흘러나오는 젖 같았다. 도순이의 눈에는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개구쟁이시절 얼굴에 때자욱이 아롱다롱한채 얼음과자를 먹겠다고 조르던 그 모습만 새록새록 떠올랐다.
도순이는 문호의 몸을 보듬어안았다. 품에 넘쳐나는 아들의 몸은 그렇게 듬직할수가 없었다. 언젠가 문호가 도순이를 끌어안고 건뜩 들어올릴 때 도순이는 세상에서 자기의 아들이 제일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했었다.
문호의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있었다. 도순이는 째지는듯한 소리로 의사를 불렀다.
곁에 서있던 의사가 문호의 눈을 뒤집어보고는 인차 밖으로 나갔다.
도순이가 문호를 끌어안고있는 사이 의사가 나이 듬직한 의사를 앞세우고 다시 병실에 들어섰다.
《뇌출혈이 심한것 같습니다. 신경경련이 일고있습니다.》
의사가 나이 듬직한 의사한테 해석했다. 나이 듬직한 의사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문호를 한참동안 진찰해보더니 도순이한테 머리를 돌렸다.
《어머니십니까?》
《네, 그, 그래유.》
도순이는 갑자기 무섬증이 온 몸에 서려오름을 느꼈다.
《뇌출혈이 심합니다. 어쩌겠습니까? 후사를 준비해야 할것 같습니다.》
의사는 말을 끝내고 밖으로 나갔다. 조금후 간호원이 들어와 코에 꿴 산소호스와 링게르주사바늘을 뽑아냈다.
도순이는 이 모든것을 마치 어린애들의 장난을 구경하듯 무표정히 바라보았다. 누군가 도순이를 뒤로 끌어당겼다. 탕개가 풀려지듯 도순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는 도순이를 뒤에서 일쿼세워주었다.
《여보, 정신차리오.》
남편 같았다. 이때에야 도순이는 자기한테 아직도 남편이 남아있다는걸 의식했다. 그러나 그 의미가 너무나 무색해있었다. 자기의 마음속을 차지하는 자리가 아들보다 너무나 작았다는것을 이때에야 알것 같았다.
철우의 몸은 몹시 떨리고있었다. 도순이는 그렇게 남편한테 몸을 맡긴채 문호의 시체를 감싸는것을 점도록 바라보면서 넉두리했다.
《너한테 핸드폰 사주려구 돈 천원을 모았는데…》
문호의 시체를 실은 밀차가 병실밖으로 나갔다. 텅빈 침대를 바라보던 도순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치며 밖으로 달려나가 문호의 시체를 끌어안고 대성통곡했다. 그러는 도순이를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도순이는 아들의 시체를 덮은 흰 천을 와락와락 벗겨버린후 피덩어리채로인 문호의 얼굴을 끌어안고 일쿼세우면서 또한번 넉두리를 했다.
《가자, 엄마가 핸드폰을 사줘야지. 네가 얼마나 갖고싶었던건데… 제일 멋진걸로 사줄게.》
《여보, 죽은 애한테 무슨 넉두리요? 정신 차리라니깐.》
철우가 뒤따라와서 도순이의 몸을 마구 흔들었다. 도순이의 몸이 이쪽저쪽으로 가냘프게 흔들렸다. 문호의 시체에서 떨어지며 도순이는 또한번 넉두리했다.
《내가 널 죽였어. 내갉》
문호의 시체를 실은 밀차가 사라지자 철우는 도순이를 부축해 밖으로 나왔다.
해빛이 차겁게 부서져내리고있었다. 도순이는 현기증 같은것을 느끼며 휘청거리다가 눈을 쪼프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한참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어디론가 살같이 뛰여갔다.
철우가 뒤따라 뛰여갔다. 도순이는 시장안으로 바로 들어갔다. 도순이는 자기의 해산물매대로 뛰여들어가더니 절인 새우통을 들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어 칼을 쥐고 매대우에 널려있는 물고기 몸뚱이에 대고 사정없이 칼질을 해댔다. 살고기가 튕기고 얼음덩이가 날리며 살풍경을 이루었다. 도순이의 저돌적인 행동에 뒤따라온 철우와 은옥아줌마 등은 그만 아연해지고말았다. 살의가 서린 칼날이 좌충우돌하면서 모든것을 위협하고있었다.
《부서버릴거야, 내 아들을 죽인 원쑤를 내손으로 죽이고말거야…》
도순이의 두눈에 불이 이는듯 했다. 그녀는 이 모든것을 박산내고싶었다. 어떻게 하면 불질러 깨끗이 없애버리고싶었을지도 모른다.
《여보, 왜 이러는거요?》
철우가 칼을 무릅쓰고 다가들다가 그만 칼에 손을 맞고 저쪽으로 물러났다. 누구도 그 가까이로 다가가지 못했다.
도순이는 철우의 손에서 뿜겨나오는 피를 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너무나 소름끼치게 들렸다. 도순이는 들었던 칼을 손에서 스르르 떨구고 허청허청 걸어 시장문어구로 걸어갔다. 모여섰던 사람들이 인차 그녀한테 길을 내주었다. 도순이는 히실히실 웃기까지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한참 걸어가던 도순이의 눈에 갑자기 붉은 색의 피가 보였다. 눈길이 가닿은 길바닥우에 피가 빨갛게 물들어있었는데 겨울해빛아래에서 그 피자욱은 차갑게 떨고있었다. 멍하니 서서 그곳을 뚫어지게 쏘아보던 도순이는 허겁지겁 피자욱 있는 곳으로 다가가더니 그곳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옷을 벗어 그 피자욱우에 덮어놓고 조용히 다독여주었다.
《너 여기서 얼마나 추웠니? 엄마가 너무 무정하구나.》
도순이는 바람이 들어갈세라 옷깃을 여며놓고는 몸을 일으키더니 어디론가 걸어갔다. 얼음같이 찬 바람이 그녀의 희뿌연 머리카락을 휘날려놓았다.
먼 뒤로 철우, 은옥아줌마, 그리고 새우배달이 따라가고있었다.
참 추운 날씨였다…v
도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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