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해외이전 비판앞서 국내현실 직시해야"

"제조업 공동화를 뛰어넘어, 이젠 고도화로"

디지털타임스는 지난 12월 15일부터 9회에 걸쳐 국내 제조업 공동화 문제를 집중 분석하는 "IT강국 업그레이드―제조업 고도화에 달렸다"라는 테마의 기획 시리즈를 연재했다. 경북 구미ㆍ 인천 남동ㆍ경기 안산 등 국내 주요 대표 공단, 충남 천안ㆍ경기 파주 등 신공단 후보지는 물론 중국 텐진ㆍ난징ㆍ쑤저우 등 국내 진출지역을 기자들이 발로 뛰며 입체 취재해 보도했다.

그러나 이번 "제조업 고도화" 시리즈만큼 기획단계부터 내부에서 설전이 오갔던 기획물도 드물었다. 이번 기획 시리즈를 주도한 디바이스팀은 반도체ㆍ디스플레이ㆍ일반 부품 등의 일선 취재 속에서 제조 공동화를 가장 피부로 느끼고 있는 부서였지만, 제조업 전반에 불어닥치고 있는 해외투자 열풍을 산업 공동화로 바라볼 것인지, 고도화로 볼 것인지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획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위기이든 기회이든 우리 제조산업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기로(岐路)에 들어선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 현장을 발로 뛰어다닌 취재 기자들의 확신이었다.

이번 시리즈 취재과정에서 느낀 점과 못다 한 이야기들을 13일 취재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정리한다.

방담 참석자― 오동희(팀장)ㆍ성연광ㆍ허정화ㆍ주범수 기자

― 이번 기획시리즈는 편집국 내부에서 작년 거대 사회적 담론으로 떠올랐던 제조업공동화의 실상을 제대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것에서 시작의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제조업계의 중국을 비롯한 해외투자가 봇물을 이루던 시기였고, 이로 인한 산업 공동화 우려가 극도로 팽배해져 자칫 해외에 투자하는 기업이 욕을 먹는 상황으로까지 몰리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발전적이지 못하고 대안 없는 비판은 국가경제에나 기업들 모두에게 도움되지 않는다는 의견들이 제기됐고,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전문지의 역할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지요. 국내기업들의 해외투자 열풍을 국내 산업의 새로운 기회로 접근해보자는 취지가 이번 기획 시리즈의 탄생배경인 셈입니다.

― 이번 시리즈가 지면화되기 전엔 노동ㆍ환경ㆍ세제 등 기업환경 개선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에 대해선 무능하다며, 해외에 투자하는 기업들은 값싼 임금 등 "이윤 극대화"만을 좇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시각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국내 제조산업의 해외투자를 놓고 일부 재계나 학계에선 제도적인 방지책을 내놔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지 기획 시리즈가 게재되면서 이같은 오해와 편견이 오히려 국내 산업발전의 저해요소가 될 수 있다는 독자들의 지적이 많았습니다.

― 실제 국내 제조업의 중국 이전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선진국들이 과거 수십 년 간 겪어 온 일입니다. 1970년대 개발 경제에서 1980년대 산업화를 통해 우리는 2차례에 걸친 공동화에 직면했고, 이를 슬기롭게 헤쳐온 것이 정보통신 산업의 육성을 통한 제조업 고도화 과정이었습니다.

이런 현실적 문제에 대해 강성노조 때문이라느니, 정부의 지나친 규제 때문이라느니 하는 핑계를 찾기보다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그 대안이 무엇인지를 되짚어 보았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부가가치 산업과 인건비 절감을 위한 노동집약적 산업은 후발 국가에 넘기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첨단 산업으로 메워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이런 측면에서 국내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고도화에 대한 고민은 절실한 상황입니다.

― 처음엔 무거운 마음으로 중국에 취재를 갔지만 희망적인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작년 12월 중국 난징의 포구공단으로 기자를 안내했던 국내 부품기업의 현지 공장장인 40대 중반의 지기환씨는 국내 대형 부품공장에서 부장으로 일하다가 명예퇴직을 해야했던 경우였습니다. 그러다 청도 주재원 이력을 살려 중국진출을 추진해온 한 기업의 중국 공장 책임자로 신규 채용된 것이지요. 중국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겠다며 가족들과 떨어져 밤낮 없이 일하던 그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우리기업의 중국 진출이 불가피하다면, 이를 계기로 지씨와 같은 사람들이 경험을 살려 중국에 많이 진출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중국 현지 과정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 기업인은 일본에 비하면 한국은 중국현지화에 훨씬 유리한 조건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족이 중국의 소수민족이면서도 능력과 근면성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조선족과 한국기업인간의 윈―윈 협력관계야말로 우리기업의 중국진출에 가장 필요한 자원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지요. 랴오닝성에서 우리로 치면 전문대학교 행정과를 졸업하고 난징시로 왔다는 조선족 처녀 우지혜씨도 그런 점에서 무척 기억에 남았습니다. 한국기업이라면 일단 같은 민족이 설립한 기업이기도 하고 보수가 현지기업보다 조금 더 낳은 외국기업이라는 점에서 지혜양은 직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더군요.

― 이번 취재과정에서 난징시 투자유치국 공무원들이 일반 민간기업 직원들보다 더욱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신선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세관에서 불러 뒷돈을 준비해 부랴부랴 달려갔더니, 사업하는데 애로는 없는지, 본국말고 중국에서 직접 현지 조달할 수 있는 품목은 무엇이 있는지, 한국에 혹시 추가로 중국에 들어올 기업은 없는 지를 물어보는 바람에 손이 부끄러워지더라는 우리기업 관계자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제조업체들이 선망하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도 않으며, 성공의 기회보다는 실패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는 점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텐진에 입주한 많은 한국기업들이 바다 건너에서 보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인건비 이외에는 중국 이전의 큰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중소기업 텐진법인장은 전기세ㆍ수도세가 생각만큼 싸지 않을 뿐 아니라 노동의 유연성 면에서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하더군요. 중국 정부가 노동법으로 걸면 안 걸릴 한국업체들이 없다면서 지금은 한국이 필요하니까 봐주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법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엄격하다고 하네요.

― 생산원가 대비 인건비 비중이 높은 전자부품업종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1990년대 발빠르게 중국에 생산기지를 구축한 업체들과 이에 뒤쳐진 업체들의 이후 성패가 뚜렷이 갈렸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테핑 모터 세계 1위 업체 모아텍이 1997년부터 중국공장을 가동하면서 시장 주도권을 지켜온 반면, 수정진동자 패키지 생산업체 제원전자가 중국 저가제품에 곤욕을 치르고 나서야 중국 생산기지를 돌리며 회복을 노리고 있는 상황은, 노동 집약적 산업의 경우 생산기지만이라도 중국 등 후발 개도국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 얼마 전 비오이하이디스가 중국 베이징 대규모 TFT LCD 라인 조성계획 발표하는 기자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중국 비오이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로부터 하이디스를 인수해 비오이하이디스로 새롭게 출범한 지 만 1년이 지났지만, 비오이하이디스는 여전히 국내 첨단 기술 유출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날 기자간담회 내용도 역시 이같은 논란에 대한 답변으로 채워졌습니다. 이날 배석한 하이디스의 한 임원은 "매각 당시 국내 정부나 업계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다가 디스플레이 사업이 황금알 사업으로 부상하자, 그때서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불편해했습니다. 특히 "인수 주체가 중국이 아닌 미국이나 유럽 업체였더라면 이같은 논란이 일었겠느냐"며 반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최병두 사장은 기술 유출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오히려 중국 5세대 TFT LCD라인 구축과 함께 국내 업체들과 동반 진출해 수조 원의 수출효과를 얻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시각에서 봐달라고 주문했습니다. 또 국내 이천사업장 및 인력에 대한 투자도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참 어떻게 손을 대기가 어려운 난제였습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안산공단의 한 부동산 업주는 기간제한을 두는 현행 산업연수생 제도에 관련해 "3년 가르쳐서 이제 말도 좀 알아듣고 제 몫을 한다 싶으면 기간 끝났다며 내보내고, 대신 초보를 데려와서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고 있으니, 이런 미련한 짓이 또 있겠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어차피 국내 제조산업 환경에서 외국인 노동자 몫을 빼놓을 수 없는 상황인 만큼, 향후 관련 정책 입안 시 좀 더 기업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경상북도와 구미시, 경기도와 파주시, 충청남도와 아산시를 둘러보며 "아! 공무원들이 많이 바뀌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일반회사의 세일즈맨처럼 모두가 도내에 제조업체를 끌어들이기 위해 앞다퉈 발로 뛰는 모습은 아직 한국이 실망할 단계는 아니구나 하는 것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또한 과거처럼 접대 받는 공무원이 아니라 기업을 접대하는 공무원들로 변화는 모습을 보며 중국만 부러워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들의 노력이 중국이나 동남아로 옮겨가려던 제조업체들을 국내에 묶어 놓을 수 있는 계기도 됐습니다.

일례로 기존의 노후한 통신장비 라인을 PDP라인으로 전환해 제조업 고도화에 나서고 있는 현장을 보면서 우리가 가야할 길이 바로 이 방향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지요.

― 시리즈 관련 취재를 하면서 심각하게 느낀 것은 제조업이 고도화될수록 사람보다는 기계가 일을 하는 환경이 되고 있으며, 이는 고용 문제를 유발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용 문제 해소를 위한 또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과거 IMF를 거치면서 많은 우수한 기업들이 외국 자본에 매각되면서 국내 제조업의 고도화 기회를 잃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몇몇 우수 LCD나 PDP 기업들이 이제 열매를 따는 시기가 됐지만 당시 국내 투자자들의 외면 속에 중국 등에 팔리면서 국내에 공장을 짓지 못하고,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등의 일을 보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국내 투자자들이 국내 첨단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그동안 공들여온 우리 제조업의 고도화에 일조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끝으로 이번 취재에 협조해주신 국내 공단 및 중국 진출 기업 관계자분들, 그리고 각급 지방자치단체와 공단 관계자분들, 도움 말씀을 주신 학계ㆍ연구소 전문가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끝>

[디지탈타임스 200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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