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청 맞은편에 자리 잡은 귀화시험 교육장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험공부를 준비하는 중국동포들로 시끌벅적하다. 그늘은 40대 남성 세 분이 가장 먼저 와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귀화시험에 세 번 낙방하고 뒤늦게야 교육장을 찾은 신모씨, 손꼽아 2년 동안 기다렸던 귀화시험을 드디어 다음 달이면 치르게 된다고 기뻐하는 김모씨, 그리고 귀화신청을 한지 겨우 6개월이 되는 현모씨이다.

귀화시험이 뭐 길래?

세분은 모두 40대 가장이지만 윗세대 부모님들이 국적회복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도 귀화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부모님들과 달리 귀화시험을 통과해야만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귀화시험은 주관식 10문제와 객관식 10문제가 출제되는데 한국어로 치른다. 신모씨는 한국어 실력이 약한 탓에 세 번의 귀화시험 고배를 마셨다고 한다. 지난 11월, 세 번째 시험에서 7번 주관식 문제의 답이 ‘에어컨’이었는데 머릿속에는 중국어로 “空調”만 생각나고 외래어인 정답을 끝끝내 쓰지 못했다 한다. 신모씨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한국어 실력은 아니지만 외래어로 된 명칭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중국에서 조선족중학교를 졸업한 김모씨는 한국에서 5년 정도 생활하다보니 웬만한 일상 외래어는 다 알겠는데 귀화시험에 단골문제인 ‘애국갗는 아무리 외워도 5분 이상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한다. 최근 귀화시험 공부를 하면서 배 운 역사인물들이 자주 헷갈려서 시험일자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합격에는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귀화하는 이유

“몸은 고달프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편해요. 교통도 발달했고 법질서가 잘 되어 있고, 그리고 조금만 부지런하면 기회가 많잖아요.”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일식집 요리사로 일하는 현모씨가 서두를 뗐다.

“특히 부모님들은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을 원하거든요. 나이 드신 부모님을 홀로 한국에서 생활하라고는 할 수 없잖아요? 함께 살지는 못해도 저희들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느끼죠. 그런데 중국에 두고 온 자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파요…아들놈이 중학교 때 제가 한국에 왔어요. 작년에 고등학교 졸업했는데, 졸업식에도 못가고…제가 빨리 귀화해야 아들딸도 빨리 한국에 올수 있을 텐데,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에요.” 그동안 자녀들과 떨어져 살수 밖에 없었던 김모씨는 눈시울을 적시며 귀화시험에 꼭 붙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휴식시간 10분. 세 남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분 모두 중국 흑룡강성 출신이라 더욱더 얘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우리 집 아들은 한국말을 못해요. 집근처에 조선족학교 있는데 얘 엄마가 한족학교를 보냈지 뭐예요.” 가장이지만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신모씨는 자녀 교육에도 참여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운 모양이다.

“앞으로 한국에서 살려면 이제라도 조선족학교에 보내 민족어는 배우게 해야죠.” 자녀 모두 조선족고등학교를 졸업시킨 김모씨가 충고한다.

“그러게 말이에요. 제가 지금 한국에서 한국말 몰라 고생한다는 것을 애 엄마한테 누누이 얘기하면서 아들놈을 조선족학교로 보내라고 했지만 조선족학교의 교육수준이 근처 한족학교에 비해 크게 떨어져 보낼 수 없다고 고집하네요.”

“그렇다고 한족학교를 졸업하였다하여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조선족학교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취직이 쉬운데….” 조선족학교를 보내기 위해 하얼빈 시내로 이사까지 했다는 현씨의 얘기다.

귀화보다 한국생활 적응이 문제

어느새 이야기 주제가 국적 후에 있을 일로 바뀌었다. 국적이 바뀌면 어떤 것이 달라질 것 같은가 질문에 신분증이 외국인등록증에서 주민등록증으로 바뀌는 외에 특별히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다고 한다. 생계유지를 위해서 힘들지만 어제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이며 국적취득 후 오게 될 처자들을 위해 지하방이라도 마련해야 하는 의무만 커졌다고 한다.

“가족들이 한자리에 만날 수 있어 좋긴 한데 얘들이 한국학교생활에 적응될지 근심이 앞서요. 솔직히 이곳에서 3년 이상 살아온 저도 아직 적응하자면 멀었거든요.”

가족상봉 얘기가 나오자 얼굴이 화해졌던 신씨는 현씨의 얘기가 나오자 금새 소침해졌다.

“현씨네 얘는 조선족학교에 다닌다면서요. 저의 아들은 중국학교에 다니는데 한국에 오면 안 될 것 같아요. 게다가 저의 집사람은 한족이어서 휴~ ”

휴식을 마치고 바로 모의시험을 치렀다. 시험결과 신씨는 65점, 김씨는 55점 그리고 현씨 85점을 맞았다. 이제 다음 달이면 시험을 치르게 될 김씨는 좀 긴장된 표정이다. 틀린 문제들을 다 함께 풀면서 해설을 듣고 나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귀화시험 교육문의: 귀한동포연합총회 02-85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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