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즐겁고 푸른 꿈이 꽃피던 학창 시절은 다 지나가고 세월은 말이 없이 흘러가고 남은 것이란 깊은 추억 뿐이다. 지금 비록 서른이 넘게 나이를 먹었지만은 그래도 그때의 순간 순간 마다 기억에 생생이 안겨온다. 또한 그 시절은 인생을 희망과 용기와 기대를 가지고 즐겁고 낭만적이며 순진하게 보냈던 시절이며 나날이 향상하고 발전하면서 자신의 매래를 설계하고 또한 그것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것으로써 희망과 의욕으로 힘차게 걸어가고 있었다.

비록 그 시절과는 너무나도 멀어진 거리에서 그 시절을 그리며 생각하고 있지만은, 그래도 가능하다면 다시금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잠 못 이루는 시간이 많았다. 지금도 나의 책상 머리에는 그 시절에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사진속에서 미소짓고 있는 그들의 정기도는 눈에는 항상 순진함과 소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고 영원히 간직하고 있는 사랑의 마음이 스며있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운 시절들 함께 보람을 찾았든 학교생활 지금쯤 모두 현모 양처로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아름다운 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믿고있다.

내가 초등 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한것은 1989년 9월1일이였다. 고등학교는 작은 시가지 변두리에 있었는데 단층집 구조로 되어 있었고 매개 출입문 우측에 반급이라는 글자로 씌인 널판자가 박혀 있었다. 우리 반 인원은 나를 포함해 총 64명 있었는데 여러 학교에서 모이다 보니 거의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익숙하여 졌고 우스개도 많았으며 반급은 차츰 화기가 돌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공부는 초등학교 보다는 달리 심도가 깊고 또한 과목도 많이 늘어서 부지런히 책을 보고 잠을 적게 자야만 되는 것 같다.

내가 앉은 책상 앞머리에는 춘옥이라는 녀학생이 있었는데 특별히 활발하고 천진하며 웃음이 그칠새 없었다.우리는 서로 모르거나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면 함께 분석하고 사고하며 풀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의 우정은 깊어만 갔다. 우리는 매일과 같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여야만 했고 매일과 같이 그것을 이해하고 머리속에 익혀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많이 졸리고 피곤한 것 같다.

그때 우리집은 시골에 있었는데 집에서 보내는 생활비는 숙소에서 주숙을 하는데 사용하기 적합하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너무나도 빠듯한 돈이였다. 어쩐지 많고도 많은 맛나는 음식을 사먹고 싶었고 또한 많은것을 사고 싶었다. 나의 마음을 읽어서인지 그녀는 종종 내가 즐기는 과일이랑 나를 사주었고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비록 그녀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이렇게 나를 극진히 보살펴 준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다.

어느사이에 설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우리 반급에서는 상론하고 근처에 있는 우리 친척 집에서 모이기로 합의를 보았다. 비록 집에서 공주 취급을 받고있는 그녀들이지만 놀라운 요리 솜씨에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그녀들의 요리 솜씨에 맛나는 음식이 마련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단란히 앉아 축하의 술잔을 들었다. 누군가 급한지 언성을 높여가지고 "희망찬 내일을 위하여 건배!" 라고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소리에 너도 나도 흥분이 되어 서로가 서로의 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들썩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한잔..두잔.. 얼마나 마셨는지 저도 모르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옆에 앉은 그녀도 술을 마셔서인지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보였으며 행복해 보이는 것 같다. "허수남씨,새해가 다가오는데 모든것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 한잔 부어 드릴께요!" 그녀가 나한테 말한 첫마디였다. 이렇게 그녀는 거듭 나한테 술을 부어주었고 나로 하여금 자신 한테도 부어주기를 희망하는 것 같다. 그녀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나한테 속삭이었으며 집에서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 시각 나는 힘들게 보내고 있는 그녀의 삶과 비단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다.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흔들리고 있었으며 즐거움에 흥얼 거리고 있었다.


파티는 깊은 밤에야 막을 내렸다. 저도 모르게 우리는 나란히 걸어가게 되었으며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손에 손을 잡았다. 숙소에 거의 도착 할 무렵 그녀는 살며시 나의품에 안겼다. 비록 술에 취한 기분이지만 그 따스한 느낌을 만끽 할 수가 있었고 달콤한 숨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그것은 우정을 넘는 사랑의 고백인 것 같다. 넓은 가슴에 안겨있는 그녀도 행복했고 나자신도 영원히 잊을수 없는 행복감으로 하여 시간이 흐르는줄도 몰랐다. 그 후부터 모든것이 꿈의 오아시스처럼 물들어 있었고 잘 익은 앵두처럼 익어가고 있었다. 시간도 절주에 맞추어 빨리도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덧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모두 다 대학시험 준비에 바삐 돌아쳤다. 선생님마다 산더미 같은 과제를 내주었고 숨가쁘게 지나가고 닥쳐오는 하루 하루를 보내다니 너도 나도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였으며 책속에만 묻혀서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모두가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고 시험에 대해 논의 하였으며 근심에 쌓여 있었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노력의 열매는 달다." 라는 것이다. 허지만 현실은 무정할수 있었고 자신이 설계하고 희망하는 것처럼 되는 것이 적은 듯 싶다. 아쉽게 나와 그녀는 모두 낙방이 되고 말았으며 이렇게 우리는 대학이라는 신성한 대문에 들어서지 못하고 돌아서는 신세가 되었다. 물론 대학에 꼭 가야만 모든것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보고있다. 허지만 대학교에 가서 자신이 설계한 꿈을 실현하려고 생각했다면 상황이 이렇게 된 지금 그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말 할 수 없이 너무나도 비통 할 것이다. 거듭되는 고민끝에 나는 군대에 가기로 작심했다. 떠나던 날 그녀는 나한테 편지 한통을 남겼다. 그것은 눈물에 젖은 편지였고 그 시절을 잊을수 없다는 편지였으며 영원히 자신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편지였다. 결국 뜻하지 않게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나의 군인 생활은 4년간 지속되었고 현대문명과 많이 떨어진 또 다른 사회에서 나는 많이 성숙된 것 같다. 그러나 비록 4년이 흘렀어도 난 그녀를 잊은 적이 없고 내 마음속엔 바위처럼 항상 그녀가 머물고 있었다. .

이젠 너무나도 긴 시간이 흐른것 같다 . 내 마음속에 자라잡은 그녀 때문에 나는 많은 소중한 시간을 흘러 보냈으며 과거를 다시금 살린다는건 불가능한 일로만 여겨진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결국 우리를 두렵게 만든 것 같다. 이젠 그것은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 고맙게도 미래의 꿈을 안겨주고 힘이 되어주는 한국방송통신대학에 입학 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쁘게 생각 된다. 다시금 대학의 문을 여는 순간 나의 삶속에 희망으로 떠 오를 수 있는 기회게 다가온 듯 싶다. 비록 배움의 뿌리는 쓰지만 정성스럽게 지금부터,이 시각부터 배움의 푸른 바다에서 노력에 노력을 할 것이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컴퓨터과학과: 허수남
xushounan@hanmail.net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