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날 아침 그 풋내기의사와 사인이 맞았다. 한가히 앉아서 오래된 광고지를 뒤적이는 그한테 말을 건넨 내가 잘못이었다. 전문가 문진 대기인원이 많아 잠간 옆방인 일반문진에 들어간 것이 그 풋내기의사와 1대1로 마주치게 된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끔씩 혈압이 오른다고 했더니. “헌혈 한 번 해보시죠. 피가 물러지고 혈압이 내려가는 경우가 있거든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풋내기의사의 힘 안 들이고 던지는 말에 그만 눈이 확 밝아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오래전부터 헌혈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끔 연길 서시장을 지날 때면 텅 빈 헌혈차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채 끄덕끄덕 졸고 있는 의무일군들을 보는 마음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병원 수술대에서는 피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데 이사회는 지금 피만 없는 게 아니라 눈물도 콧물도 없는 로봇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아무리 시장경제시대고 돈만 따지는 세상이라지만 인심이 어찌 요지경으로 각박해 질 수 있는가.

새 중국 창립시기만 해도 잘 사는 사람은 무조건 때려잡아 째지듯 가난한 빈하중농과 고농만 남은 이 사회가 잘 살라고 하니 전에 맞아 죽은 ‘잘 사는 사람들’보다 더 인색하게 변했다. 자칫 언제 ‘왕바’신을 신고 ‘해방표’신을 신고 엉덩이며 무릎을 기워 입고 옥수수밥에 누룽지를 들고 다니며 먹고 자란 사람들인가 의심이 갈 정도다. 그렇게 인정이 메마른 내 고향이 싫었다. 뢰봉 황계광 동존서 유호란 구소운 양금월 등 영웅인물들을 본받으라고 하니 온통 반면교재로 삼아 버려 그런 영웅은 다시 싹틀 곳이 없다. 간만에 옛 친척친우들, 동료들과 동네사람들을 만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해 보지만 모두들 돈에만 전념하는 모습이 가증스럽다.

연변병원을 나와 光明路를 걷는 내 발걸음이 바보처럼 가볍다. 물론 나는 그런 자신을 두 손 들어 찬성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즘 같이 각박한 세월, 허구한 날 바보스러운 생각이나 하고 사니 마음이 평온할 수가 없다. 누가 시켜서 하는 헌혈은 아니지만 정작 헌혈차가 가까워오니 불현듯 헌혈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헌혈차에 오르니 하얀 가운을 입은 50대 여인이 반색한다.

“얼마를 뽑겠어요?”
“200cc요.”
“신체를 보니 그냥 300cc를 뽑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연변의 속물 같은 사람들의 타협방법이다. 50대의 여인은 마치 가게에서 콩나물을 흥정하듯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얼마든지 no를 웨칠 수 있었지만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주는 마당에 쪼짠하게 보일 필요까지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을 하기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닐봉투에 잇빠이 들어찬 내 피를 지켜보다가 헌혈차에서 내려오노라니 온 몸이 죄어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마음만은 흡족했다.

2,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자랑삼아 사실경과를 말했더니 아내는 펄쩍 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당신 미쳤어요? 요즘 같은 세월, 당신 같은 바보가 어디 있어요. 허구한 날 돈도 안 되는 글만 쓰더니 이젠 피까지 의연하고....... 아예 장기까지 다 떼 주고 말아요. 한국에 돈 벌러 보냈더니 온통 돈 안 되는 일만 골라하니 이건 도대체 살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혈압 내린다잖아.”
“말이 되는 소릴 해요. 피를 뽑는다고 혈압 내리면 고혈압환자가 없겠어요.”

듣고 보니 그것도 그랬다. 참,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생각을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이다. 헌혈을 해 보라고 하니 얼싸 좋다고 뛰어간 것이다.

주방에서 아내가 냄비에 기름 붓는 소리가 들린다.

“뭘 하게?”
“뭐긴 뭐겠어. 달걀을 튀기지.”

좀 있다 아내는 달걀 튀긴 것을 접시에 담아들고 와서 내 앞에 내려놓고는 찔 째려보고 가버린다. 그래도 아내밖에 없다. 피를 뺏다고 영양보충을 시키는 것이다.

3,

저녁에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저녁을 같이 먹자는 것이다. 내가 헌혈을 해서 쉬여야 한다고 하니 “헌혈은 왜 했냐?”며 천진하게 물어온다. 소위 연변의 중견작가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선지해장국을 해먹자”고 그런다고 전화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때야 친구는 말귀를 알아차리고 어설프게 웃는다.

친구의 초대를 술 마시지 않는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식당에 도착하니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부장 주임 편집 등 문화계통의 사람들이다. 광우병에라도 걸려 집단 병사했다고 치면 나만 얼굴을 찍어 돌려봐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럴 필요없이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사람들이다.

친구가 좌중에 대고 오늘 내가 무상헌혈을 했다고 소개하니 모두들 심드렁해서 듣고만 있는다. 박수라도 쳐 줄줄 알았던 나는 오히려 몸둘바를 모르고 애꿎은 찻잔만 세차게 돌렸다. 이건 문화차이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실망스러운 사회의 병폐현상이다. 여느 사람의 입가에서는 조롱하듯 간간한 미소가 흐르더니 결국에는 "자! 듭시다"로 화제를 끌어간다.

4,

“헌혈했어요.”
“300CC를 뽑았거든요.”
“물론 무상헌혈이었지요.”

택시에서 다방에서 식당에서 매일과 같이 다니는 병원에서 의사들과 환자들, 그리고 동네가게들을 다니면서도 마치 설문조사를 하듯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요즘 세월에.......”하며 냉소하는 모습이다. 가끔 “헌혈을 하면 좋기야 하지만 요즘은 그러려는 사람이 없어요.” 하면서 바보 같은 일을 했다며 혀를 끌끌 찬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좋은 일 하고도 칭찬은커녕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 받는 사회, 그런 고향과 고향사람들을 어찌 이해하면 좋을까.

나는 자신의 행동이 못내 후회되기까지 했다. 어쩌다 벼르고 한 일이 세상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다니. 실망하고 방 한가운데 벌렁 들어 누우니 방이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5,

세상이 망하려는가보다. 아니면 내가 정신병에라도 걸려야 한다. 왜 “존경스럽다.” “흠모한다.”면서 손바닥마사지가 되게 박수 몇 번 “짝짝짝”쳐주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바꾸어 나 같으면 그런 사람을 어디 데리고 가서 몸보신이 되게 곰탕이나 보신탕 양(羊)탕이라도 사서 대접해 주련만.

갑자기 나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전화기를 잡고 114를 눌렀다.

“혈잠(血站:혈액소)번호요.”

안내방송이 나오자 나는 곧바로 혈잠에 전화를 걸었다.

“며칠 전 헌혈한 사람인데요. 다시 헌혈하려면 언제쯤 가능할까요?”
“반년 뒤에야 가능합니다. 절대 그 전에 하면 안 됩니다.......”

나는 달력에 헌혈한 날짜를 찾아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는 앞으로 180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 다시 헌혈차에 가서 무상헌혈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고향사람들이 박수쳐줄 때까지.

2008년 6월15일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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