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아치형다리가 보이는 강변으로 꺾어들었다. 화단이 울긋불긋한 길옆 커다란 아빠트옆에 차를 정착시키자 난 가볍게 내렸다.
멋스런 고층건물이였다. 순간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라인강 커피숍!
옛스런 원색 나무판에 우아한 흘림체로 씌여진 글자도 아름다웠거니와 라인강이란 글자가 내 상상속의 아름다운 강물을 떠올렸다. 라인강이란 손풍금독주가 먼곳에서 들려오는듯싶었다.
훤칠한 영훈씨는 오늘따라 더 젊어보인다. 검은 점퍼를 걸치고 짧게 머릴 깎아 그럴가? 씩씩함과 의젓함이 두드러졌다. 층계를 오르는 내 마음이 호젓하기만 하다.
몇분이죠?
두분.
그럼 저쪽으로 드시죠.
영훈씨는 가리키는 방향과는 반대로 꺾어들어서 대청을 지나 창가옆으로 자릴 정했다.
밖에서 보는 모습에 짝지지 않게 커피숍안은 정갈하고 우아했다.
우유빛유리로 벽을 대체했고 척 보면 조선족이 경영하는 카페임을 짐작할수 있었다.
근데 복무원들은 하나같이 말쑥한 한족애들이였다.
영훈씨가 나보구 물었다. 뭘 들겠냐구. 난 커피를 마시겠다고 했다.
커피 하나!
하나라니? 나만 마시게 하고 자긴 물 마시겠단 말인가? 하지만 난 묻지 않았다. 이런 장소라면 그냥 물만 마셔도 취할것 같으니깐.
와인을 청해야 되는거 아닌가요? 영훈씨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해왔다.
난 그 말을 알아들었다.
문득 그는 와인 한잔이라는 내 시를 떠올렸나보다.
그 시를 메일로 받고 그때 그는 나에게 꼭 와인을 함께 들고싶다고 말했었다.

인내한
세월의 크기에 따라
맛이 틀리다는

천년숨결 고이 접어
그리움으로 빚은
와인 한잔 함께 하실래요?

흐르는 세월을 랭각시켜
망각으로 빚은
와인 한잔 어떠세요?

인제 다시 천년이 가면
그 누군가를 위해
그대와 나
한잔의 와인이 될거죠?

와인향은 그렇게
천지간을
서서히 채우겠죠?

그는 나의 이 시를 참 좋아했다.
어쩜 우린 와인같은 친구일지도 모른다. 마주앉으면 말이 없이 서로 바라보아도 그 눈빛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향기가 차오르듯, 아마 그런 사이인것 같다.
무용이 전업인 그는 촬영에도 짙은 취향을 보이고있었다. 그가 내게 보낸 여러편의 촬영작품중 수면이 잔잔한 강가에 놓여있는 긴 의자의 그림이 짙은 외로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외에 눈속에서 빠끔히 모습을 보이고있는 단풍잎 하나를 찍은 사진……그런 사진들을 그는 내게 보내면서 거기에 한두줄씩 짤막하게 시구를 붙여달라고 부탁을 했고 난 선뜻 대답을 했었다. 나중에 난 그 사진들에 그가 부탁하는 시구를 달아주었다. 우리 사이에는 그처럼 보이지 않는 향기가 흐르고있었다.
그는 나에게 숱한 빚을 졌다. 그에게 은색차가 있는것이 그 발단이 되였다. 내가 한 첫 부탁은 초봄에 진달래 만발한 산에 함께 가자는것이였는데 그는 자기가 사진기를 갖고 갈거라구 했다. 그리고 가을이면 단풍을 보여달라는 나의 부탁에도 그는 선뜻 대답했다. 또 어느 날 그가 우연중에 밤낚시가 재밌다는 말을 했다.
깊은 밤이면 별이 일제히 물에 내려앉는답니다.
그 말을 듣고 가만있을 내가 아니였다. 별이 일제히 내려앉는 모습이 눈앞에 삼삼해서 밤낚시를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러마 했다. 이것은 가까운 약속이였다.
우리가 한 가장 먼 약속이 하나 또 있었다.
그것은 그가 자기의 사주팔자를 말하면서 비롯되였다. 자긴 마지막에 아주 외로울거라고 했다. 어떻게? 하고  내가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자긴 정자에 앉아 달을 쳐다보는 운명이라고. 그럼 그때 내가 외롭지 않게 동무해드릴게요. 내가 그랬었다.
시골에 집을 잡고 문앞에 자그마한 채소밭을 가꿀수 있는 밭이 있고 집뒤에 산이 있고 산밑에 내가 흐르고 그런 곳에 정자 하나 세우고서 바람이 서느러운 여름날 오후에는 정자에 앉아 산을 바라볼수 있는 그런 삶을 원한다고 했다. 그게 꿈이 아닐거야요. 능히 그럴수가 있잖아요, 우리가 나이 들며는요. 그리고요, 그때 제가 영훈씨 옆집에 이사갈게요. 외로울 때 정자에 혼자가 아니게요. 내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그는 그렇게 좋아했다. 근데 전 채소랑 가꿀줄 모르거든요. 그러니 영훈씨가 말했다. 저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거 잘합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가르쳐드릴게요. 그럼 그래요. 하고 나는 웃었다. 문득 하얀 모시수건을 머리에 쓰고 시골집 문앞에서 채소를 가꾸는 먼 내 모습이 떠올라 입가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떠올랐다. 그 약속이 이루어질수 있을가? 쉬운 약속일가?

와인 한잔은 나중에 하고 오늘은 커피를 마시고싶었다.
은색 커피그릇 같은것이 들어왔다. 두개의 조각품같은 그릇이 하나로 련결되였는데 천평을 방불케 했다. 한쪽엔 브라질커피가 밑에 수북이 담겨있고 다른쪽엔 물이 담겨있었는데  물이 담긴 그릇은 조금 들려져있고 그밑에 알콜램프가 놓여있었다.
알콜램프심지에 불을 붙이자 물이 서서히 뜨거워지고 그 물속에 이쪽켠에 있는 커피가 어떻게 저쪽으로 가서 풀어지는지가 수수께끼였다. 두 그릇사이에 호스로 련결이 되여있지만 어찌하여 커피가 그쪽으로 다 젖어서 물만 흘러가고 아니, 이쪽엔 물이 오는 모양이라곤 없는데 서서히 커피가루가 밑부분으로부터 젖어들고 어떻게 웃부분은 깡치인듯한것이 쌓이는지 알수가 없었다.
난 그제야 커피 하나란 뜻을 알아차렸다. 하나를 가져다 둘이 나눠마시는 커피…
커피가 끓는 사이 투명한 유리물이 반쯤 담긴 물컵이 들어왔다.
한모금 마셔보았다. 담담한 향기가 입안에 감돌았다. 무슨 물이죠? 내가 복무원에게 물었다. 레몬물이라고 했다. 얼굴이 말쑥한 열이여덟되여보이는 남자애의 두볼에 보조개가 패이고있다.
영훈씨가 그랬다. 현주씨것은 레몬물이고 저의건 그냥 물이네요.
그래서 아, 녀사들껜 레몬물 가져오고 남성분들에게는 그냥 물 드리는가보다고 생각했다.
진짜? 내가 그러니깐 영훈씨가 네 하는것이였다.
가져다 한모금 마셔보았다. 역시 레몬물이였다.
참, 똑같은 레몬물이잖아요? 그래요? 하면서 영훈씨가 또 한모금 마셔본다.
그런가? 몰랐네. 하고 그가 웃는다.
진짜 몰랐을가 아님… 아무튼 재밌었다.
커피가 다 끓었다. 복무원이 커피잔에 커피를 받으려는걸 그가 절로 하겠다고 해서 복무원이 자릴 떴다.
영훈씨는 이쁘고 작은 사기커피잔에 수도꼭지처럼 생긴 꼭지를 탈아서 커피를 받더니 나에게 프림을 반쯤 쏟아주었다. 순간, 프림이 구름처럼 피여올랐다.
꿈이 피여오르고있어요. 영훈씨가 말했다. 맞아, 꿈이 꽃처럼 피여오르고있었다.
영훈씨는 필경은 예술인이였다.
프림이 피여오름을 멈출 때 영훈씨는 설탕이 든 종이봉투를 뜯어 반쯤 쏟았다. 꿈이 고조를 이루고있었다. 마치 꽃이 활짝 피는듯.
난 영훈씨를 보았다. 영훈씨 입가엔 웃음이 감돌고 그 역시 나를 말없이 마주보았다. 난 조용히 웃었다. 커피용기도 그렇고 브라질이란 커피출처도 그렇고 프림 또한 아담하게 포장되여있었다. 깜찍하다 할가?
드세요.
영훈씨가 커피잔을 들며 날보고 말했다.
커피가 혀끝에 대이는 순간 입안에 향긋함이 안개처럼 서서히 차왔다. 감동이 일었다. 목으로 넘기는 순간, 그 뒤맛이 향긋하고 담담했다.
커피가 이렇게 맛좋을수 있다니요?
난 선경에 든듯했다.
맛이 좋아요?
네. 난 진짜 기분이 우아해졌다.
실내에는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있었다. 창밖은 브르하통하가 넓게 펼쳐져있었다. 물을 보니 가슴이 시원해진다. 부르하통하는 흘러서 해란강과 합류하고 북강에 가서 두만강과 합류해 바다로 가겠지… 연길사람인 영훈씨가 도문사람인 나랑 이렇게 만나듯이…
후에 또 찾아오고픈 곳이네요. 부지중 이런 말이 나갔다.
그럼 커피생각이 나면 여기로 오면 되겠군요. 영훈씨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생각이 나면 라인강 커피숍이 떠오를만큼 커피향이 일품이였다.
나 앞으로 여기 고객이 될것 같아요.
내 말에 영훈씨가 날 바라본다.
고객이란 고자를 생각해본적 있어요?
돌아본다는 고,  돌아오는 손님이란 말 아닌가요? 고객은……
와, 진짜 그렇군요. 난 흥분하고있었다.
난 영훈씨의 고객이 될가요? 내 마음은 그렇게 되뇌이고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미 내가 너무 비켜선것 같다.

영훈씨에게 동창생 은하를 만나게 끈을 이어놓은 사람은 다름아닌 나였으니깐. 은하를 만나고나서 그는 나에게 전화하는 차수가 적어졌다. 어쩌라고 나자신도 그에게 전화하면 은하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영훈씨는 이미 은하의 애인이란 이미지로 내앞에 있지 않는가? 아니, 은하의 애인이기전에 그는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아 가장 가까운 친구, 대체 은하와 영훈씨 둘중 누가 나에게 더 가까운 친구란 말인가? 뭘로 그 거리를 잴수 있을가? 동창중 가장 친한 애가 바로 은하였다. 헌데 은하와도 못할 말을 할수 있는 사람은 곧바로 영훈씨였다. 만난지 오라지 않지만 마음으로 그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남자.

무용을 생각하다가 그는 뒤끝마무리를 무용에 문외한인 내게 물었다. 무용은 모르지만 난 그가 표현하려는 내용에 따라 내 생각을 말해주기도 했다. 어떤 이미지로 마지막 고조를 이루었음 좋겠다는둥…
내가 요새 수필을 쓰고있다는 말을 듣더니 그는 물에 대한 수필을 써보라고 했다. 요새 와서 물에 대해 생각한다고 했다. 물은 첨에 그렇게 산에서 샘물로 나와서 흐르면서 점차 내가 되고 강이 되여 넓어지면서 주위의 모든것을 받아준다고 했다. 그 말에 난 조만간 쓸거라고 했다. 하늘에 흐르는 구름과 산과 나무를 그대로 안고 흐르는 물, 물은 유연해서 좋았다. 사람도 물처럼 살았음 좋겠다. 그런 생각이 가슴을 상쾌하게 하는 남자가 곧바로 영훈씨였다.
그 영훈씨가 어느 날 컴퓨터에서 나와 대화하다가 문득 날 만나고싶다고 했다. 밤이 너무 깊어서 안된다고 했다.
아니, 그냥 도문쪽으로 갔다갉 그럼 만나지 않고 돌아오겠습니다. 난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날 소낙비가 쏟아지는 밤, 그는 차를 몰고 부르하통하근처에 가서 차를 세워놓고 차안에서 차창을 때리는 소낙비를 그렇게 내다보았다고 했다.

영훈씨는 말했었다.
전 겨울이 가장 싫습니다. 겨울밤은 넘 춥구 외로워서…

난 그가 왜 법적으로 깨끗이 갈라서지 못하고 안해와 갈라사는지 모른다. 그냥 그의 말에서 그가 홀로라는걸 느꼈고 물어보니 안해는 있는데 갈라져있다는걸 그가 내게 한마디로 간단히 말해주었을뿐이다.
그 순간 난 자연스럽게 말했다. 녀자친구 하나 소개해드릴가요?
네.
저의 딱친구예요, 은하라고. 난 은하를 그와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커피잔을 다 기울이자 영훈씨가 또 한컵 따라주었다.
여러컵 마셔도 되는건가요? 난 많이 마시면 자지 못하는데요.
저도 그렇답니다. 하지만 이 커피는 네사람 량인데 둘이 마시는 수도 있답니다. 물을 넣으면 그냥 커피가 나옵니다.
향기가 은은한 브라질커피, 마음에 꼭 드는 프림포장, 설탕포장, 거기에 설탕 탈 때 젖는데 쓰는 은빛숟가락… 마주앉은 남자까지 너무도 어울리는 자리여선지 오랜만에 홀가분하고 상쾌해난다.
피아노 음향이 문득 날 사로잡는다.
참 좋은 곡을 풀어놓네요.
지금 독주를 하고있어요… 록음이 아니구요…
아, 하고 나는 돌아보았다. 저쪽 복판즈음에 물기 함함한 소녀가 세계명곡을 독주하고있었다. 굽실굽실한 머리가 어깨를 덮은 소녀는 흰 긴팔적삼에 멜끈바지를 입고 피아노독주에 심취돼있었다.
내 눈앞에는 방불히 도도히 사품치는 강이 흐르는가 싶더니 이어 찬연한 해빛아래 폭넓은 강물이 은빛물결을 반짝이며 은은히 흐르는 모습이 펼쳐졌다. 강 대안에는 록음이 우거진 나무들이 줄을 서있고 내 발치에는 모래밭이 펼쳐져있고…
다시 나의 눈앞에는 모래알이 들여다보이는 내물이 흐르고있었다. 음악이 뭔지 모르는 나는 피아노독주를 들으면 늘 이렇게 눈앞에 강이나 물이나 무엇인가가 보이는것이 이상했다. 그만큼 즐거웠다.
혹 가정형편이 되여 어릴 때 엄마나 나에게 피아노같은걸 배워주었더면 나도 혹시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았을가 그런 생각을 순간 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있어요? 영훈씨가 조용히 묻는다.
피아니스트는 늘 아름다운 곡조만 저렇게 치고있으니깐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부러워요.
그 말에 영훈씨가 말했다.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어쩜 행복을 느끼지 못할수도 있어요.
어쩜, 피아노건반을 누르고싶지 않을 때도 눌러야 하겠지 그런 생각이 맞쳐왔다.
그래도 다른 직업보다 얼마나 우아한 직업입니까?
영훈씨는 웃고있었다.
평양에서 2년간 류학할 때 저 고생 많이 했답니다. 난방설비가 잘 안돼서 그때 관절염을 얻었답니다.
이렇게 멋진 남자가 공부도 많이 했고 부교수란 칭호도 가졌고 예술학교서 학부장쯤도 하고있으니 이만한 인생은 밖에서 보기엔 참 원만해보이건만 그는 나에게 외로움같은것을 엿보이고있는것이다.
그리고 이런 남자가 시골에서 자랐다는것이, 아직도 골수에는 시골의 순수함이 들어있다는것이 아름답게 비쳐왔다. 그 순수함을 내가 첨으로 느낀것은 어느 한번의 대화에서였다. 동시에 그번의 느낌때문에 난 절실한 부끄러움을 체험했었다.

영훈씨,우리 친구 맞죠?
그럼요. 저 누구에게도 비쳐보지 못한 속을 현주씨에게 다 보여드렸거든요. 절 그대로 펼쳐보였거든요. 가능하다면 저 현주씨랑 지기까지 가고픈데요.
영훈씨도 저에게 누구보다 마음으로 가장 가까운 분이세요. 함께 하면 늘쌍 마음이 즐거우니깐요. 한없이 편하구요. 지기는 하고픔 하는것도 아니구요, 진짜 지기인지는 오래 지내봐야 알겠죠 뭐……
근데 영훈씨, 하나 물어봐도 돼요?
사람과 사람 사이 말이예요. 우정과 사랑이 어느것이 더 아름다울가요?
물론 우정이죠. 사랑은 순간적으로는 아름답지만 영원을 지속하려면 그속엔 아픔이 긴 인내로 흐를거예요. 사랑은 감정을 복잡하게 만드니깐요. 하지만 우정은 아니예요.
영훈씨, 사랑과 우정을 다 지킬수 있을가요?
그럴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엔 자칫하면 그럼 서로를 잃을수도 있을것 같네요.
그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냥 친구처럼 지내기에 그는 너무도 멋진 남자였다. 다가가고싶었다. 우린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고있었다. 아니, 너무 모르고있는것 같다.
그도 어쩌면 내가 아름다운 상상을 하듯이 나에게 가까이 오는 꿈을 꿀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영원히 가까이 하기 위해선 너무 가까이 오진 않으리라. 그의 이런 마음을 안 순간, 친구라는 이름에 머리가 숙여지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자와 녀자 사이에는 령혼의 어울림이란것도 있으니깐.

친 구

아침
풀잎자락에 구으는
시린 이슬은
립스틱이 싫다

쟈즈의 현란함도
누군가를 향한
갈대의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산을 안아
무거운 강은
찡그리지 않는다

숲을 날으는
새의 노래에는
바람처럼
지조가 흐른다

그리고 영훈씨에 대한 순간이나마 느꼈던 나의 정열이 날 머리를 쳐들지 못할만큼 부끄럽게 했다. 녀자인 내가 남자인 영훈씨앞에 정열같은거 느끼는것은 정상이겠으나 그냥 남자로 느끼기엔 너무도 소중한 친구였으니깐.

정 열

봄이라고
따슨 눈이
살갗에 내리면

나는
녹아내린다

녹아내린
나는 지저분하다

바람이 일어
내 자취마저
허공중에 흩어지면
숲은 다시
조용하다


나는 느꼈었다. 분명 나랑 컴에서 만나 대화하다가 도문으로 날 보러 달려오겠다고 말했을 때의 그 순간의 영훈씨 역시 그날 순간적인 정열을 느꼈을거라구…
그도 우리사이를 아끼기에 서로 다가가는것을 원치 않을것이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그는 비록 가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안해와 허울뿐이지 남남으로 산지 여러해가 된다. 혹시 애를 위해서 결단을 못 내리는걸가? 그건 밖에서는 알수 없는 일이다. 그가 입을 다물고있는 한 그건 내가 물을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난 남편이 멀쩡히 살아있다. 참, 남편이 있는 내가, 가정이 있는 내가 남편밖의 남자에게 정열같은것을 느끼고있다니, 부끄럽다. 영훈씨 날 어떤 사람으로 볼가? 남편에겐 죄스러웠다.
하지만 생각으로는 죄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누구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정말 그럴가? 그렇다면 난 나자신을 용서할수 있는것일가? 사람의 마음은 참 요사하구나, 그걸 난 첨으로 절감했다.
난 천성이 쾌활하고 랑만적이다. 그런 나와는 정반대로 남편은 실용적이다.
금방 약혼했을 때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누가 들으면 웃고지나갈 이야기지만 난 내 앞날의 회색빛갈을 보는듯해서 기분이 암울했었다.

결혼전이였다. 함께 영화를 본적 있었다.
내가 영화를 보다 영화속에 빠져서 남편에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응대가 없기에 쳐다보니 남자가 고개를 푹 떨구고 깊은 잠이 들어있는것이 아닌가?
그때의 가슴밑바닥으로 훑어지나가는 싸늘한 바람소리… 내 앞날을 보는듯했다. 입이 하 벌어졌다. 하지만 그것이 둘이 파혼할 리유는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자는 다 이렇게 가슴이 메마르나보다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영훈씨를 보는 순간, 난 봄날 아지랑이를 보는듯 즐거워졌다. 참으로 저런 남자가 내 남편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가 그런 생각이 들만큼.
하지만 사람에게는 다 주어진 명이라는게 있나보다.
우린 이렇게 사십대가 되여서야, 서로 엄연한 가정이 있고나서야 행인처럼 이렇게 만난것이다.
사랑을 할 자격이 없는것이다.
아니, 영훈씨 말처럼 마음의 벗으로 우정을 가꿔갈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이 둘이 끝까지 갈수 있는 가장 리상적인 길일지도 모른다.

영훈씨가 잠간 자리를 비웠다.
그제야 난 창밖에 시선을 돌렸다.
난 그사이 연길에 와 대학을 다녔고 딸애가 나중에 연길에서 고중을 다니면서 부지런히 다녀갔었는데, 그리고 문학행사가 있어서 연길에 많이 오르내렸는데 연길경치가 이렇게 아름다운줄은 진짜 몰랐었다.
훤히 트인 하늘아래로 구름이 흘러가고 아래로 부르하통하가 시원히 펼쳐진 가운데 내 눈아래로 평행선을 그으면서 펼쳐진 아스팔트길로 일매진 하이야가 줄쳐 달리는가 하면 눈 시선 건너편으로 연신교가 아담하게 놓여있다. 미풍이 부는가싶다. 신록이 담담한 나무잎사귀들이 보일듯말듯 움직이는데 강물이 보는 눈을 서늘하게 해줘 마음이 상쾌하다.
뭘 그렇게 보고있죠? 어느사이 영훈씨가 돌아와있다.
창밖 풍경이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커피맛과 잘 어울리네요. 창밖 경치말입니다.
밤경치는 더 아름다울테죠?
내 말에 그렇겠죠 하고 영훈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커피향이 꿈처럼 피여나는 나의 상상…

그날 은하와 영훈씨의 만남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영훈씨 맞은켠에 내가 앉고 내 왼쪽옆에 은하가 앉았다. 은하가 담담한 야채류가 좋겠다 해서 나도 마침 동감이라 담담한 쪽으로 채를 세접시 청했다.
얼굴이 동그스름하고 복스럽고 부드러운 성격의 은하는 그날 수수해보이지만 깔끔해보이는 검은색 옷을 입었다. 뜻밖에도 머리는 스포츠형이였다. 은하는 긴 머리를 우로 틀어올려야 어울리는 애였다. 못내 아쉬웠다. 얼굴에 병색이 약간 엿보였다.
둘다 나와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내가 말을 많이 해야 했다. 그렇게 서먹서먹한 분위기는 서서히 물러갔다.
내가 저녁 너무 늦기전에 돌아가야 했기에 영훈씨는 날 역까지 태워주었다. 내가 그렇게 자릴 뜬것은 두사람에게 이야기를 나눌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근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 영훈씨는 날 역에 데려다준후 그 길로 은하를 집에 데려다주었던것이다. 사람이…
십년을 혼자 살면서 몸을 망탕 군적이 없는 은하, 은하는 전형적인 조선족녀자다운 애였다.
은하, 영훈씨가 전화라도 왔니?
아니…
안 갔다구? 내가 영훈씨 전화 알려줄가?
아니, 니가 그분에게 내 전화 알려줬다며? 그가 전화하고프면 하지 않으리라구? 내가 먼저 전화하면 뭐가 되니?
하긴 그렇구나. 그럼 좀 기다려봐. 전화 오겠지.
은하에게서 영훈씨가 전화 안 갔다는 말을 듣고 난 또 영훈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은하에게 전화 안 하는거죠?
전화하기 그러찮아요? 사귈것도 아니면서 전화해서 뭐라 해요? 만나자고? 만나선 또 무슨 말을 하게요?
아, 그럼 은하가 인상이 나빠 안 사귄다는건가요?
아닙니다.
아니라면 대체 뭔데요? 난 내가 왜 이렇게 흥분하는지 몰랐다.
현주씨로부터 은하씨가 녀자답고 순진하다는 말에 끌리웠구 또 현주씨 친구라니 가까이 하고싶었어요. 근데…
근데?
근데 너무 순진한 모습에 다가가면 상처를 줄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말했잖아요? 그애가 각오하고있을거라구, 사귀세요. 그러다가 인연이 있음 부부가 되는거구요…
그러기엔 제쪽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잖아요? 오히려 은하씨가 몸 망탕 굴고 순수하지 못한 녀인이였다면 제가  어쩌면 쉽게 다가갔을지 모르죠…
세상에, 그럼 뭐가 되죠?
그냥 친구로 지내는것이 좋아요…
만날 때 벌써 남자녀자로 만나게 난 자리를 만든거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영훈씨는 필경은 영훈씨였다.

자정에 전화가 울렸다. 은하였다.
현주야, 그분 전화왔던?
내가 전화했다.
그래 뭐라던?
니가 상처받을가봐 그렇게 사귀지 못하겠나보다. 책임지지도 못할짓 안하려나보다…
그분이 어디 날 마음들어 할 사람이냐?
은하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은하는 어릴 때부터 한족학교에 다닌탓으로 조선말을 재밌게 하지 못한다. 그게 혹시 영훈씨에겐 조금 아쉬움을 남겼을지 모르겠다. 아님 혹 인물이 너무 환하지 않아서?
내가 언제 그런쪽으로 시탐을 던지니 영훈씨는 절대 아니라고 했다. 출근해서는 인물체격이 쭉쭉 빠진 녀자들속에서 날을 보내기에 자긴 잘 생긴 녀자들에게 담담해져있단다.
은하에게 전화를 하세요. 그러찮음 은하가 상처를 받아요. 가까이 가지 않더라도 친구하겠다면서요…
나는 영훈씨가 은하와 자주 접촉하느라면 필경은 남자니깐 그리고 은하가 그에게 마음을 두고있으니깐 서로 다가가는건 시간문제라는 판단이 섰다.
내 지청구에 못이겨 영훈씨는 은하에게 전화를 했고 그 뒤로부터 드문히 차집에도 드나들고 혹 발안마하러도 갔다.
나는 두사람의 이야기에 프로듀서처럼 영훈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다가갔어요? 이러는 내가 진짜 우스웠다.
발안마방에서 두사람이 곁의 침대에 누워 밤을 지냈는데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였다면 현주씨 믿어져요?
바보!!!
그래요. 나 어쩜 바본지 몰라요. 영훈씨는 남의 이야기하듯 가볍게 말한다.
은하는 또 은하대로 내게 말한다.
그 사람이 어디 나같은 녀잘 마음에 들어할  사람이냐?
그게 아니라니깐. 은하, 너와 말이지만 그 사람 널 상처줄가봐 다가안가고있어, 정이라도 들면 그 사람은 아직 너처럼 자유론 몸이 아니기에 지금껏 아프게 살아온 너에게 아픔을 주기 싫어 그러는거야…
그래? 하는 은하의 목소리엔 서글픔이 안개처럼 폭 쌓였다.
나도 가슴이 답답했다.
영훈씨를 어찌할지 나도 알수가 없다.

프림 더 가져왔다. 커피를 이번엔 내가 컵에 받았다.
영훈씨, 나에게 진 빚 언제 갚을거죠?
아, 진달래, 단풍 그리고 밤낚시… 사실 올해 낚시하러 한번도 간적이 없습니다. 갔음 불렀을겁니다.
괜찮아요. 저 지금 등산을 하고있어서 진달래 실컷 보았어요.
다행이네요.
밤낚시가 호기심 나 죽겠어요.
올해는 어쩌구 말것 같지 않습니다. 학부장 자릴 내여놓으면 그때는 시간이 많을겁니다. 언제 내놓죠?
삼년후엔  내놓게 됩니다.
후… 난 한숨이 나갔다.
영훈씨, 친한 친구분 없어요? 점잖은 친구분?
있어요, 왜?
그분이랑 은하랑 우리 한번 산보나가요, 야외루요…
주명이 점잖구 좋죠.
아, 주명?
어마나, 주명이면 수영을 데리고가야지 은하는 아니다…
주명이란 영훈씨의 가까운 친구고 나의 시우 수영과 친한 분이다.
주명과 함께라면 수영 어울릴거야요… 그렇다고 은하 빼놓을순 없구… 주명말구 또 다른분 없어요?
있습니다. 헌데…
헌데라니요?
헌데 그럴 시간을 뺄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그는 나와 한 약속을 아직 한가지도 실행하지 못했다… 난 웃음이 나갔다.
영훈씨가 시를 읽기 좋아해서 나 전번에 수영의 시집을 준적이 있다. 그래서 수영이라면 영훈씨도 알아듣고있는것이다.
요즘 영훈씨와 주명씨가 한주 둬날씩 밤마다 과학기술대학에 가서 둬시간씩 경영학공부를 하는줄 난 알고있다.
진짜 야외 놀러 가면 은하보다도 오히려 수영과 주명과 나와 영훈씨 네사람이면 짱이다. 예술로, 문학으로 통하는 네사람 그리고 남자 둘과 녀자 둘은 아주 잘 통하는 친구… 그런 의미에서 말하면 은하는 그냥 안온한 가정주부 느낌이 다분한 녀자였다. 책을 좋아안하고 조선글을 모르기에 그냥 편한 느낌과 따뜻한 느낌을 주는 녀자였다.

내가 언젠가 영훈씨 보구 은하라면 안해쪽이 적당한가요 애인쪽이 적당한가요? 했더니 은하라면 안해로 맡고싶은 녀자입니다. 라고 했다. 안해로 편하다는 그만큼 한생을 함께 해도 좋은 녀자란 말과 통한다. 은하를 사랑한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좋을가?

문득 처음 영훈씨를 만나던 자리가 생각나서 내가 말을 꺼냈다.
첨 만나던 차집 말이야요. 그때 그 차집에서 차를 마시는데 차잔이 약간 끝이 금이 간것이여서 못내 서운했어요. 우리의 만남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워주는것 같아서요.
그러니깐 영훈씨 말이 편했다.
중국집이잖아요? 중국집은 다 이렇거니 생각하면 되는거야요. 거기에 그 무슨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 무게 내려놓으서소…
호호호…
나는 웃었다, 하긴.
그 무게 내려놓으서소는 나의 바다일출이란 시의 첫련이다.
바다
그 무게 내려놓으서소…

나의 그 시를 본후로 그는 팔천팔백팔십팔송이 장미란 아이디를 대뜸 그 무게 내려놓으소서로 고쳐버렸다.

라인강 커피숍에서 영훈씨와 둘이서 가슴밑까지 느낌이 오는 브라질커피를 마시면서 은은한 음악에 취하느라니 어느덧 대련 바다에서 보던 바다일출이 떠오른다.
첫 대련행에 바다일출을 보지 못하고 두번째행은 새벽에 아예 택시를 잡고 산에  올라서 끝내 원을 이루었었다.
앞이 탁 트인 바다에서 아침해가 떠오르는 모습이란 내 숨소리조차 잡음이 되여서 난 숨소리를 한껏 죽이고 가슴을 누르면서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붉고 둥근 해가 해면을 떨어지는 모습은 찰나였지만 해가 모습을 드러내서 해면을 떠오르기까지의 순간순간들은 옹근 우주를 그리고 내 마음을 한없이 차분하고 조용하게 만들었다. 세상이 온통 숨 죽이고 아침해의 도래를 지켜보고있었다.
그 순간 내 깊은 곳에선 그런 언어가 떠올랐다.
그 무게 내려놓으서소…

영훈씨는 저녁에 중요한 자리가 있었다.
저 은하를 보고싶어요. 난 진짜 은하를 만나고싶었다.
그러니 영훈씨는 말했다. 참, 그러고보니 은하씨 만난지 참 오래네요. 전화도 자주 못해드리고요. 서울에 다녀온후로 못 만났어요.
그러면서 그는 은하의 번호를 눌렀다.
그는 은하와 한족말로 통화하는것이였다. 참, 북경에서 공부할 때 한족말 많이 적응됐다는 영훈씨… 조선학교 다니다가 중학교를 한족학교 다니고 고중을 다시 조선학교 다닌 나는 그네들과 상대가 안된다.
은하는 영훈씨를 진짜 좋아하고있었다. 나보고 늘 영훈씨 문안을 하는 은하, 요샌 전화 통하냐? 컴에서 만나냐 하는 물음. 그럴 때면 난 말한다.
야, 영훈씨 너를 만나고서부터는 나랑 전화 진짜 잘 안해! 너에게 전화 안 갔으면 내겐 더구나 안 와!
그래? 하고 은하는 반신반의한다.  
은하는 영훈씨를 많이 어려워한다. 난 친구란 이름으로 통화를 맘껏 하지만. 그래서 은하는 영훈씨가 소식없으면 나보고 묻는다. 근데 진짜 영훈씨는 나와도 요즘 통화가 자주 없다. 그만큼 그는 진짜 바쁘게 보내니깐.
십년을 그렇게 고독을 삼키며 살아온 은하, 남자 하나를 잘못 만나 혼쌀이 난후부터 남자라면 겁부터 먹고 곁을 주지 않았었다. 근데 그녀의 그 굳은 마음이 탕개를 풀었는지 아니면 진짜 영훈씨에게 빠졌는지 은하는 전화도 그렇고 날 만나서도 그렇고 온통 영훈씨 이름만 들먹이고있다.

무슨 전화를 저렇게 길게 하지? 내가 영훈씨를 건너다보니 그는 의식했는지 웃으며 말한다. 제가 전화를 바꿔드릴게요, 여기 누군가가 말씀하시겠다네요. 그러면서 핸드폰을 내게 내민다.
누구시죠?
야, 나야, 은하야!
어머나, 니가 언제 왔니?
호호호, 니가 바삐 보내는것 같아 영훈씨에게 전화했어. 커피 나누었어. 그가 저녁에 갈데가 있단다. 나 널 만나구퍼.
그럼 지금 우리 집에 가. 애가 있어.
아니, 니가 퇴근할즈음 전화주면 나도 여기서 일어날게.
그럼 그러자!
전화를 놓고나서 난 영훈씨를 바라보았다.
영훈씨,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은하에게 전화 좀 자주 해줘요. 그 애 힘들어요. 영훈씨는 그 애가 힘들가봐 가까이 가지 않는다지만 어쩜 그자체가 그 앨 힘들게 하는지도 몰라요.
아니요, 그냥 친구가 편해요. 영훈씨는 그냥 친구로 그칠것을 결심하나본다.
그애가 전번에 심장병으로 입원하고 많이 아팠대요. 전 남편이 돌아갔어요. 그것때문에 아들애가 힘들어했고 은하도 그래서 조금 힘들었나봐요. 필경은 애아빠였으니깐요.
아, 그랬군요.
이미 간 사람을 탓하는건 아니구요. 그 남자 이상한 버릇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술만 마시면 은하를 두둘겨 패거든요. 그래서 할수 없이 갈라선거랍니다. 그리고 십년을 애를 혼자 키우며  독하게 살아온 은하얘요. 은하가 말했어요. 그땐 몰랐는데 지금 돌아보면 내가 어떻게 지내왔나 믿어지지 않는다구요.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고 믿겨지지 않는대요. 지금 리혼하라면 아무리 매 맞으며 산대도 절대 그대로 삐치지 리혼 안할거래요.
진짜, 은하씨 고생 많았군요.
그러니깐 영훈씨  아껴주시래두요…

오늘 커피 넘 맛 좋았어요. 첨 맛보는 맛있는 커피였어요.
현주씨 앞으로 커피 생각나면 우리 또 오면 되니깐 찾으세요.
네, 우리 그럼 일어나요. 가느라면 은하씨도 돌아올 시간이 될거얘요.

밖은 강바람이 서느러웠고 해빛이 찬연했다. 신록이 우거진 나무는 보기만 해도 상쾌했다.
우아한 장소에서 부드러운 눈빛의 남자와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고서 그가 운전하는 은백색하이야에 앉아있는 내 마음은 강바람처럼 호젓하다. 은하네 집에서 자든 찜질방에서 자든 아무튼 오늘밤은 은하랑 함께 보내게 된다. 봄풀같이 부드럽고 차분하고 편한 나의 친구 은하, 인제 오늘밤 은하는 또 새벽 두시까지 나랑 영훈씨를 곁들어 이말 저말 재밌는 이야기를 밤을 패며 할테지.
영훈씨는 친구들과 술마시며 문득문득 나랑 은하랑 떠올리겠지…
연길의 하늘도 이렇게 청청하게 맑은 날이 있었다…

김경희: 연변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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