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내가 확 풍겨왔다.   
문을 열고 막 집안으로 들어서려던 나는 문고리를 쥔채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그만큼 비린내는 컸고 진했다.   
어둑시그레한 불빛의 희미한 조명아래 가마뚜껑을 붙잡고 엉거주춤 가마목에 무릎을 꿇은 거무스레한 물체, 그앞에 놓여진 세수대야, 세수대야 가득 차오른 빠알간 물체.   
《아버지》
나는 단말마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리려고 하던 아버지는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우뚱 옆으로 무너지는것이였다. 쿵, 죽은듯 모든것이 정지되였던 공간을 숙명처럼 깨우는 소리, 뒤따라 아버지가 잡고있던 가마뚜껑이 화들짝 소리를 냈고 그와 동시에 나는 전구알이 잠간 흔들리는것을 느꼈다.   
나는 아버지를 안아일으켰다. 젖은 가마니처럼 내 품안에 무너지는 아버지, 아버지는 힘겹게 눈꺼풀을 우로 번지는것이였다. 희미한 조명아래 아버지의 얼굴은 밀랍처럼 하얗게 변해있었다. 봉당까지 이어진 피자욱, 피는 구정물을 담는 바게쯔에도 가득 차있었다. 그옆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링게르병 하나, 적색액체가 옷에 발린 얼룩처럼 적셔져있는 링게르병은 공포처럼 초라한 방안을 휩싸고있었다.   
바람 한줄기가 눈앞을 스쳐지나고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한순간에 알것 같았다.    
《진아, 나 눕혀줘.》   
가느다랗게 입을 움직이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머언 곳에서 울리는 종소리처럼 아득했다.   
나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났고 그리고 무서웠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 글렀어. 병원 가도 소용없단다.》   
아버지의 석쉼한 목소리가 맥없이 울렸고 나는 그 소리를 뒤로 한채 문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이웃집은 벌써 불을 죽이고있었다. 얼추 잡아봐도 저녁 먹고 어둠이 깃든지 겨우 두시간가량이나 됐음직한 시각. 그러나 이웃집이라면 이 시각에 저렇게 어둠속에 고요히 싸여있는게 일관된 일이다. 이웃사촌이라지만 우리하고 이웃하고 사는 최씨네는 그야말로 옆에서 누군가 갑자기 죽어간다 해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인정머리 없고 자기 자신외의 모든것에 담을 쌓고 벽을 만들며 살아가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오빠와 아버지가 온 마당이 들썩하게 피 흘리는 싸움을 하고 또 해도 기척 하나 없던 이웃집 부부를 떠올리며 어둠속을 달렸다. 싸늘한 겨울바람이 얼굴을 매섭게 때린다.   
《짜리짠짠짠, 짠짠짠.》   
마을중간에 위치한 촌사무청사 한켠에 있는 로인협회 사무실에서는 싸늘한 이 밤의 고요를 깨면서 사교무곡이 울려펴지고있었다. 대체로 집안살림에는 관심이 없고 치장이나 놀이에는 악돌인 엄마다. 요즘에는 또 춤바람이 나서 동네무도장에 거의 출근하다싶이하는것이고.  
《진이 엄마, 진이가 찾아왔수.》   
어지러운 발들의 움직임과 시끄러운 노래소리사이를 뚫고 몇몇 아낙의 웨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솜옷을 껴입고 분주한 발걸음소리를 내며 조그맣게 달려나오는 녀인네가 있었다.   
《무슨 일이니, 진아? 무슨 일인데?》   
호들갑스럽게 웨쳐대는 녀자의 목소리와 딱딱한 하이힐끝이 차가운 공기속을 헤가르는 소리를 바람처럼 뒤켠에 뿌려던지면서 나는 돌따서서 정신없이 달렸다. 평소 아버지와 가깝게 지내고있는 명이네 집앞에 이르러 커다랗게 명이아버지를 불렀다.   
《우리 집으로 와주세요. 아버지가 죽을것 같아요.》   
《뭐라구?》   
급하게 빠져나와 집으로 달리는 등뒤에서 명이 아버지가 웨치고있었고 나는 종주먹을 쥐고 집으로 달렸다. 엄마는 그때까지 집에 도착하지 못하고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외양간으로 들어가 후걸이를 벗겨냈다. 그리고는 더듬더듬 구유에 매여져있는 소고삐를 찾았다. 어둠속에서 커다란 물체가 쑤욱 일어서는것이였다. 후걸이가 어깨에서 벗겨지려 했으므로 나는 후걸이가 메워져있는 어깨쪽을 추슬려올리며 좀 더 힘을 주어 소고삐를 잡아당겼다. 소는 나오지 않으려고 안깐힘을 썼고 나는 허우적거리듯 두팔을 앞으로 뻗치고 힘주어 끌어당겼다. 다행히 소가 더 이상 버티기를 멈추고 순순히 끌려나와주었다. 수레안에 소가 들어서고 후걸이를 씌우려는데 쿵쿵 재빠른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이리 줘.》    
나를 밀치면서 명이 아버지가 소앞으로 다가섰고 나는 집안으로 뛰여들었다. 딸각딸각, 구두소리가 재빠르게 들린것도 그때였다. 조그맣게 문이 열렸고 녀자가 들어섰다.   
《아니,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하얗게 질리는 엄마를 일별하며 나는 아버지를 일으켰다.    
《여보, 놀라지 마오. 진아, 엄마가 놀랄라.》   
가쁜 숨을 톺아쉬며 아버지는 또박또박 내뱉고있었다. 그 순간은 아버지가 한심했다. 괜찮은 미모를 가진 엄마는 어쩌다가 부농의 딸이라는 성분때문에 다리 하나를 절룩이는 아버지한테 시집오게 되였다고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어휴, 내가 그놈의 성분만 아니였다면 하고 이어지는 엄마의 넉두리였기에 귀아프게 들어온것이다. 엄마는 아버지앞에서도 대놓고 그것을 말했고 한껏 눈을 흘겨 아버지를 무시했지만 아버지는 바보처럼 허허 웃기만 했다. 엄마가 동네놀이란 놀이는 다 헤집고 다녀도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는 아버지였다. 얼마전에는 결정적으로 동네 누구누구와 애매모호하다는 소문이 동네에 파다하게 퍼졌는데도 아버지는 모르는지 아는지 여전히 엄마한테 아무 말 안하는것이였다. 하도 한심하여 어느 날은 내가 빽 소리를 지르고야말았다.   
《아버지, 아버지는 귀도 없어요? 저 뒤마을에 누구하고 엄마가 어떻다고 온 동네가 다 수군대는걸 아버지는 몰라요? 아버지 바보예요? 내가 막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수가 없다구요.》   
잠간 아버지의 표정이 흔들리였고 다음 순간 아버지는 나를 등지고 돌아앉으며 더듬더듬 엽초가 들어있는 소금봉지를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천천히 담배를 마는것이였다.    
바보, 바보.   
나는 갑자기 아버지가 경멸스러워졌고 집채같은 분노까지 느껴졌다.   
《아주머니, 빨리 나가서 소수레에 벼짚 둬단 깔고 이불을 내다가 펴오. 진이, 니가 좀 거들어라. 아버지를 업어내가야겠다.》   
간신히 눈을 뜬 아버지는 여전히 손을 내젓고있었다. 안가, 가도 소용없어. 좀 지나면 죽을건데 괜한 고생들 하지 말어. 나는 허우적거리는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엄마가 벼짚을 펴는 소리가 사락사락 들리더니 이내 뛰여들어와 웃방에 놓인 헌 이불장문을 벌컥 열었다. 아버지는 몇번을 저항하다가 결국 명이 아버지 등에 업혀나갔다. 나는 뒤따라 나가다가 불을 끌 요량으로 돌아섰다. 온 동네에 자린고비로 소문난 아버지는 전기세를 아끼느라 밤에 소피보러 나갈 때도 더듬더듬 벽을 짚고 깜깜한 어둠속을 헤쳐 마당 한쪽끝에 있는 변소로 가는것이였다. 그 바람에 우리도 전기라면 거의 공포에 가까울 정도로 한점도 랑비를 못하는것이였다. 미처 엄마가 닫지 못한 이불장문이 삐걱이고있었고 서슬에 질서없이 쌓여있는 벌겋고 퍼어런 이불들이 그대로 드러나있지 않은가. 여기저기 때가 거멓게 오른 그릇들이 질서없이 아래목에 놓여져있고 때가 잔뜩 끼여있어 본래의 색갈조차 아리숭한 찬장이 가마목쪽을 향해 고독처럼 서있는것을 일별하며 나는 전구스위치로 돼있는 노끈고리를 쥐였다가 그만두고 문을 쿵 닫고 돌아섰다. 그새 아버지는 수레우에 이불을 쓰고 조용히 눕혀져있었고 명이 아버지는 자꾸만 수레채를 벗어메려고 냅다 대가리를 흔들어제끼는 소를 휘여잡느라 코뜰개를 바싹 죄이고있었다.   
《어쩔가요? 나도 탈가요?》   
허구한 날 아버지한테 차라리 죽어버리지 하고 쏘아붙이더니 정작 일이 이렇게 되자 엄마도 어지간히 황급한 모양이다.    
《그럼, 아주머니가 타야지! 진이도 타라. 아버지를 꼭 붙잡아. 보끼우면(속이 울렁거리면) 안되니까.》   
우리가 올라탈동안 수레가 흔들리지 않게 더욱 바싹 코뜰개를 거머쥐면서 명이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찼다.   
《이 소동에도 대갈빡 하나 안 내밀다니. 하튼 저 최씨네는 이상한 족속들이다. 원 기가 차서.》   
엄마의 궁둥이를 밀어올리고 내가 올라갔다. 아버지를 중앙으로 하고 엄마와 나는 량켠에 무슨 강아지처럼 조용히 앉았다. 명이 아버지는 자꾸만 대가리를 젖히는 소를 힘겹게 부여잡고 앞으로 끌었다.    
《이 넘 소가 비린내를 맡고 이러는구나. 짐승이라도 영 령리하다니까.》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며 명이 아버지는 걸음을 재촉했다. 까만 어둠속에 조그맣게 멀어져가는 불빛을 보면서 나는 오빠는 지금쯤 뭘하고있을가고 생각했다.   
길고 지루한 시간이 답답하게 흐르고 드디여 1리가량 떨어진 림장위생소 뜨락에 이르렀다. 나는 아직 멈춰서지 않은 소수레에서 풀쩍 뛰여내렸다. 서슬에 휘우뚱 앞으로 꼰지는것인데 나는 발바닥에 힘을 주며 중심을 잡았다. 위생소안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웬 일로 환하게 불이 켜져있었다. 촌에는 위생소가 없는지라 마을사람들은 학교 하나를 사이두고있는 이 림장마을 위생소로 다니는것이였는데 림장과 농촌마을사람들을 다 합쳐도 얼마 되지 않으므로 평소에는 환자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오후 세시가 넘으면 문을 닫게 돼있는것인데 오늘은 웬 일일가.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명이 아버지 손에서 소고삐를 넘겨받았다.   
《저쪽 란간 있는데다가 대충 동여놔라.》   
고삐를 잡아끌고 어둠속을 걷는데 발밑에서 마른 풀들이 깊고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자락자락 쓰러지고있었다. 그러고보니 아직 첫눈이 오지 않고있었다.    
대충 소를 비끄러매놓고 어둠이 짙게 깔린 길다란 복도를 지나 활짝 병원문을 열었을 때는 아버지가 들어오는 출입문과 마주한 하얀 침대에 조용히 눕혀져있었다. 원체 체구가 작은 아버지가 오늘따라 더욱 왜소해보였고 절름거리는 한쪽다리가 더욱 가냘퍼보였다. 엄마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침대머리에 서서 두손을 비비고있었다. 얼굴엔 죄스러운 표정이 력연했다.    
엄마는 무엇을 후회하고있는것일가.   
나는 침대가에 가까이 다가갔고 잠간 망설이다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손은 시리도록 차가왔다. 난생 처음 잡아보는 손이였다. 그때 의사가 링게르를 들고 나타났고 나는 아버지의 손을 놓고 일어나 조그맣게 비켜섰다. 툭 하고 주사바늘이 강바닥에 얼어붙은 지렁이처럼 우뚝 튀여나온 혈관속으로 비집고 들어갔고 아버지는 조금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김대장, 이게 무슨 일이요?》   
조의사가 나무라듯 말했고 아버지의 입술이 떨어져내렸다.   
《조선생, 위출혈… 위출혈, 알지? 동생, 진아?》   
아버지의 눈빛을 우리는 읽고있었다. 아니, 읽고있다고 생각했다. 나뿐만 아니라 엄마를 포함한 조의사나 명이 아버지나 모든걸 알고있으리라. 아버지가 무엇을 말하고있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당부하고있는지.   
《오, 정신이 드오? 진호아버지, 이게 무슨…》   
급기야 두눈에서 뚝뚝 눈물이 떨어지며 아버지쪽으로 다가서는 엄마.    
《진이 엄마, 울지 마오. 나중에라도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사오. 내가 부족해서.》   
아버지는 애절하게 엄마를 바라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엄마는 넋놓고 울기만 했고 다음 순간 아버지의 눈이 우를 향하는것이였다. 링게르에 눈이 멎은 아버지는 손을 휘적거렸다.   
《조선생, 이거 빼주게나. 어차피 죽을건데 머하러 돈 팔아? 이제 돈쓸 일도 많을건데.》 
억이 막히긴 했지만 역시 아버지다웠다. 마지막 길을 앞두고 자기의 죽음보다는 링게르 한통값이 아까운 아버지.    
《김대장, 좀 그만하구려. 오늘 링게르값은 받지 않을터니. 참 누가 자린고비 김대장이 아니랄가봐.》   
조의사가 혀를 찼다.    
《형님, 내 나가서 진호한테 사람 보내겠소. 좀만 기다리시우.》   
명이 아버지가 다가서서 이불을 여며주며 말했다.   
《아니 머하러, 걔한테는 알리지 마오. 이 추운데 괜히 고생시키지 마오.》   
《형님두 참.》   
명이아버지는 막무가내라는듯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휘 병실을 한바퀴 쓸어보던 아버지는 지쳤는지 눈을 감는것이였다. 나는 조의사가 일어서자 그 자리에 다가가 앉았다. 사람체온이 남아있는 침대께는 따듯했다. 나는 손을 뻗쳐 아버지의 손을 그러잡았다. 아까보다 더 차가웠다.    링게르는 한참씩 있다가 어쩌다 한방울씩 찔끔찔끔 떨어지고있었다. 귀찮은듯 약간 찌프린채 고요히 눈을 감고 평화롭게 굳어진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우리 가족 모두는 어쩌면 아버지의 죽음을 재촉한 동조자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손을 잡은 내 손이 점점 시려오고있었고 몸전체가 떨려왔다. 그러나 나는 선뜻 아버지의 손을 놓을수가 없었다. 나는 오빠를 생각했다. 삼대독자였고 그래서 남존녀비사상에 극심히 물젖은 아버지를 비롯한 우리 집 어른들에게 귀하디 귀할수밖에 없었던 오빠, 온집식구가 흰빛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굵은 옥수수와 좁쌀을 섞고 거기에 감자를 놓은 밥을 먹을 때도 오빠만은 할머니가 손수 작은 화로에 참나무불덩이를 퍼담고 거기에 V자형으로 된 작은 곱돌그릇을 놓고 하얀 이밥을 해서 기름기있는 반찬에 먹이군 했었다. 일년내내 텁텁한 토장국이나 김치밖에 먹À뻤ö 없었던 그때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하얀 입쌀밥에 기름에 달달 볶은 감자채나 고기덩이볶음을 혼자서만 볼이 미여지게 먹어주는 오빠를 바라보며 어린 나는 까닭없이 슬퍼지군 했다. 그리고 조금씩조금씩 그런 오빠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나 할머니, 엄마에 대한 야속함으로 번져갔고 야속함은 미움으로 전이됐다가 원망으로 변해갔다. 할머니가 돌아가고 별로 작식솜씨가 없는 엄마가 가마목을 맡으면서부터 따로 곱돌그릇에 한 이밥대신 옥수수쌀밥우에 얹은 입쌀밥을 우로 떠내서 어쩔수 없이 누우런 옥수수알이거나 좁쌀이 섞인 우두두한 밥을 먹게 되고 간간이 따로 해주는 고기반찬과 어쩌다 생기는 사탕과자외에는 우리와 함께 텁텁하고 때로는 짜고 때로는 싱거운 국을 먹으면서부터 오빠는 밥상앞에서 삐죽이 입을 내밀었고 어느 날엔가는 느닷없이 밥상머리에서 숟가락을 획 내던지기까지 했다. 그런 오빠를 아무도 나무라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국 어느 날 일이 터지고말았다. 사발을 껴안고 혼자 먹는 오빠의 엿사발을 느닷없이 큰언니가 덥석 거머쥔것이였다. 언제까지 돼지처럼 혼자 먹을거야? 엄마, 아버지가 너를 오냐오냐하니 아주 보이는게 없나 보지? 동생도 좀 주고 사람처럼 좀 굴어라. 여태 본적 없는 언니의 횡포였다. 뜻밖의 일이였다. 언니는 악을 바락바락 쓰며 오빠한테 소리쳤고 잠시 멍해있던 오빠는 이내 언니를 째려보며 와락 사발을 당겼다. 언니와 오빠 사이에 밀고당기는 싱갱이질이 벌어졌다. 나는 겁을 집어먹고있으면서도 말릴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와락 달려들어 소리지르면서 엿사발을 붙잡고 싱갱이질하는 언니와 오빠손에서 엿사발을 빼앗아 동댕이치고 무슨 짓이냐고 마구 행패를 놓는 한 소녀를 환상으로 봤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에 불과할뿐 나는 한발작도 움직이지 못했다. 이제 곧 벌어질 어떤 일에 대한 환상이 조금씩 내 몸 어디선가에서부터 견딜수 없이 나를 흥분시키고있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어떻게 되여 오빠의 손에 와락 엿사발이 나꿔채여지고 그것은 허공에서 허망 언니의 이마를 향해 꽂히는것이였다. 그리고 분수처럼 쏟아지는 피줄기. 그 피줄기에 오빠도 얼마간 겁을 먹은듯 멍하니 보기만 했고 그 일로 하여 얼마동안 오빠는 풀이 죽어있었다. 하지만 엄마와 아버지가 언니를 나무람하는 바람에 오빠는 얼마후에는 더욱더 사기충천해지는것이였다. 그런 오빠가 웬 일인지 밖에 나가서는 전혀 꼼짝을 못하는것이였다. 동네 오빠또래들과 놀 때는 주눅이 잔뜩 들어 큰소리도 못내는 오빠였다. 그러다가 집에만 들어오면 그제서야 온몸의 세포가 생생히 살아나는듯 활기를 띠고 기세사납게 소리를 지르는것이였다. 오빠가 처음으로 집안에서 풀이 죽은것은 중학교 2학년때였다. 어느날 오빠는 느닷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축구학교를 가겠다고 선포했다. 평소대로라면 아버지와 엄마는 순순히 오빠말을 따라주는것이였는데 이날은 달랐다. 아버지는 안된다고 했다. 아버지가 오빠한테 안된다고 하는것을 이날 나는 처음 보았다. 아버지는 어
《쌀도 팔고 돼지도 팔고 그 돈 다 머하게? 집꼴 봐라. 남 다 있는 텔레비 하나도 여태 못갖추고, 이게 사는거유?》    
오빠는 한없이 빈정댔고 참지 못한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이내 맞불질이 시작되고 엄마가 뜯어말리고 이러한 나날이 거의 날마다 이어지고있었다. 그런 오빠를 바라보면서 나는 야릇한 쾌감같은것을 느끼고있었다. 잘코사니다. 쌍통이지 머, 오빠한테 당해도 싸다. 아귀아귀 돈을 틀어쥐고는 뭘 하겠다는것인가. 그리고 여태 모았다 해도 아버지의 수입원천이란게 기껏해야 아버지가 다루는 몇마지기의 밭에서 나는 쌀, 농한기에 약초를 캐거나 산나물을 조금씩 뜯어다 봄에 장마당 가서 파는것 하고 버섯따기부업, 그리고 겨울에 팔뚝사리만큼한 버드나무를 찍어 낫자루를 해서 팔고 드문드문 목재군들에게 발구나 만들어 파는게 고작인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한쪽다리를 저는지라 무엇을 하든 남보다 뒤처지는것인데 그런 아버지가 큰돈을 모았을리는 없을것이였다. 기껏해야 몇천원정도일거고. 속시원히 털어내놓고 온 가족이 다 함께 상론해서 유용하게 쓰면 좀 좋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것일가. 그러다가 결국 결정적인 일이 일어난건 사흘전이였다. 오빠가 당장 살림집 집조와 자류지산 집조를 내놓으라고 했다. 형님벌되는 누가 한국으로 로무를 가는데 가서 돈을 벌면 이제 오빠가 한국나갈 돈을 대주겠다고 한다는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돈이 얼마간 모자라는데 리자돈을 얻으려고 담보로 잡힐것을 요구하니 니가 좀 어떻게 해줄수 없겠냐고 한다는것이였다. 아버지는 마음붙이고 농사나 잘 짓고 소도 기르고 하면 되는거지 왜 그렇게 허황한 생각을 하는가, 아버지가 오래전부터 계획한것이 있는데 이제 좀더 돈을 모으면 시내에 이사갈수도 있을거다. 내가 알아봤는데 담배가게가 보기엔 별거 아닌것 같아도 수입이 짭짤하다더라. 그러니 그때까지 아무 생각 말고 농사나 열심히 짓자고 했다. 담배가게? 아부지, 담배가게 해서 무슨 돈을 번다고 그럼둥? 한뉘 그러니 큰노릇 못하고 이렇게 사는겝지. 한국 나가서 뭉치돈을 벌겠으꼬마. 여기 있어봤자 녀자라고 생긴건 열대여섯살만 넘으면 다 떠나가는 골안에서 한뉘 장가도 못갈게 뻔하니 뭉치돈 벌어다가 시내에 아빠트도 사고 노래방도 차리고 멋있게 살고싶스꼬마. 아부지가 맨날 하는 그 소리, 티끌 모아 태산이 어찌구 하는거 그거 얼마나 웃기는지 암두? 티끌 백년 모아봅소, 머가 되기라도 하는가. 오빠는 한껏 아버지를 비웃으며 소리질렀다. 그러나 아버지는 완고했다. 허황한 꿈을 버리고 차근차근 살아야 한다는 그 절대적인 원칙은 결코 흔들림없었다. 결코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수 없다는것을 알아차리고는 오빠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빠는 이제 나는 나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살깁소, 아주 부자간을 끊깁소 하고 소리지르더니 어느 순간 화들짝 가마뚜껑을 쥐여서 이불장을 향해 던지는것이였다. 짤라당, 이불장 유리가 산산박살났고 노한 아버지가 어느새 벌떡 일어나 장작을 거머쥐고 막 어데론가 나가려고 신을 꿰지르는 오빠를 한손으로 거머쥔채 마구 머리를 내리까는것이였다. 엄마가 울면서 아버지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안돼, 놔! 이거 놔!! 나는 아버지의 손에서 장작을 뺏으며 악을 썼다. 단단한 참나무장작에 맞은 오빠의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이내 얼굴을 적셨고 나는 심하게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마구 아버지의 손등을 물어뜯었다. 안돼, 안돼. 나는 그때 순간적으로 두사람중 하나가 죽어야 이 지긋지긋한 전쟁은 결속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웠다. 왜 자식들의 마음을 저리도 몰라줄가 하는 생각에 얼굴도 보기 싫어졌다.    그날 밤, 오빠는 아버지가 살아있는 한 이 집에 다시 발을 들여놓는 일은 없을거라고 소리치고는 집을 뛰쳐나갔다. 이튿날에 들을라니 오빠는 그날 저녁 8리길을 달려 오빠친구가 목재를 하는 움막으로 갔다는것이다. 거기에 가서 오빠는 밤새 술을 마시고 울더라는것이다. 그 말을 듣는 아버지의 얼굴이 납빛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버지는 밤새 술을 마시면서 우셨다. 나는 아버지가 우시는것을 처음 보았다. 여보, 나 죽은 다음에 진호랑 진이 데리구 어찌 고생하겠소? 아버지는 꼭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사람같았다. 죽긴 뭘 죽어요. 오래오래 살아야지. 그만 하구 어서 자오. 진호 갸두
《아버지!》
드디여 나의 목구멍에서 울음섞인 부르짖음이 울려나왔고 엄마가 울음보를 터뜨리면서 아버지가 애써 더듬던 웃옷호주머니 단추를 풀고 안에 손을 넣더니 무언가를 꺼내는것이였다. 까만 비닐봉지였다. 비닐봉지를 풀어헤치자 드러난 그것은 반으로 접은 다름아닌 저금통장이였다. 어마어마한 네자리수를 기록하는 그것을 돌려보며 우리 모두는 가슴을 쥐여뜯었다. 아버지에게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향해 오래도록 애써오신것이였다.    
아홉살나던 그해, 할아버지가 외간녀자와 살림을 차려 집을 팽개치고 도망을 갔고 그런 아버지를 찾아 떠난 길에서 허망 마차바퀴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한쪽 다리관절이 휘여져 절름발이가 된 아버지였다. 그래서였는지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은 류달랐다. 무조건 자기 옆에 붙잡아두려고 했던 그것을 우리는 얼마나 귀찮아하고 지긋지긋해했던가. 그러나 그것이 온전한 가족애를 느끼지 못하고 자란 아버지의 나름대로의 사랑이였음을 우리는 미처 몰랐던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오빠한테 죽어도 외국엔 못보낸다고 하던것과 나한테도 혼자서 어데로 간다고! 하고 무뚝뚝하게 흘리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화장해야겠지, 렴습은 뒤마을 조아바이를 불러와야겠고 명정은 누구한테 쓰라고 해야 할가. 두런두런 명이 아버지며 철이 아버지며가 후사토론을 하고있는 소리가 멍멍하게 귀전에 울리고 나는 비로소 아버지는 이제 정말로 우리 곁을 떠난것임을 똑똑히 알게 되였다. 눈물은 없었다. 다만 가슴을 쥐여뜯는 애절함이 가득 메여와 금방이라도 온몸이 부서져버릴것만 같았다. 엄마는 이제 우린 어떻게 살아가라오, 어떻게 살라오?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것이였다. 문득 나는 아까 집을 나오면서 불을 끄려 했을 때 피빛의 액체가 밑굽에 발라진 링게르병이 안보였다는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그 링게르병을 어데다 감췄을가? 이제 아버지가 떠나가고나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가? 오빠는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고 어떤 모습일가? 물론 오빠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것이라고 믿어지지만 돌아온다고 해도 아버지가 살았던 그때처럼 우리 셋이서 이제 온전한 가정을 지키며 살아갈수 있을가? 아마 우리는 이제 더는 이전처럼 한가족이 단란히 모여앉아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그렇게 할수 없을것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밭들도 누군가에게 넘겨질것이고 그리고 자류산도 팔려나가고 Á萱見ç 소도 팔려나갈것이다. 그것이 꼭 오빠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우리는 아버지가 이룩한것들을 지켜나가지 못할건 뻔한 일이 아닌가. 아버지의 생애 그자체라고 해도 좋을 저 저금통장은 이제 얼마 안 지나 우리 셋중 누구거나 아니면 우리 셋의 합일체로 흐지부지하게 부서지고말것이다. 그리고 아마 우리는 집 잃은 강아지들처럼 사처로 뿔뿔이 흩어져버리지는 않을가? 확답은 없었다. 갑자기 쥐가 났는지 무릎아래가 심하게 저려오고있었다. 코등에 침이라도 발라야 할것인가를 생각하며 잠시 망설이는 나의 귀전에는 아까보다 좀 더 세찬 바람이 웡윙 병실문을 사정없이 두들기는 소리만 들려오고있었다.

김경화: 연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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