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에 불혹(不惑)은 8혹의 맨 마지막 자리라 했다. 그 8혹인즉 유혹, 의혹, 미혹, 매혹, 당혹, 현혹, 곤혹, 불혹이다. 이 순서는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다소 그 자리가 바뀌운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여나서 엄마의 젖을 빨며 무럭무럭 자란다. 자라며 이발이 생기고 말을 배우면서부터 눈에 보이는것에 유혹된다. 사람이 세상과 접촉하면서 제일 먼저 생기는것이 유혹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혹은 8혹에 첫자리를 차지한다. 자꾸 눈길을 끌어 당기는 저것이 무엇일가, 자꾸 보고싶고 그것을 알고싶은 의혹이 생긴다. 그래서 의혹은 8혹의 두번째 자리, 의혹은 인식을 얻기전까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호기심, 궁금증, 의심스러운것등은 의혹의 주성분이라할가.

쓴것을 먹다 사탕을 먹으면 더없이 달콤하고 감미롭다. 인간은 살면서 달콤한 말, 달콤한 약소, 재미있는 이야기, 아릿다운 모습에 미혹된다. 미혹되여 그것을 향수하려한다. 그래서 미혹은 8혹의 세번째 순위로 된다. 다음은 무엇일가? 그렇지! 사람은 특이하고 희귀한것을 보면 대뜸 그것에 사로 잡힌다고 하여 매혹은 네번째자리, 찬란하고 눈부시고 황홀한것은 사람의 넋을 뽑아주니 현혹은 다섯번째 자리로 된다. 이와는 달리, 때론 생각지 않던 전혀 뜻밖에 일에 부딪쳐 어찌할바를 몰라한다. 그래서 당혹은 여섯번째자리, 한걸음 더 나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난처한 일에 띄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라 하여 곤혹은 일곱번째자리가 된다. 이렇게 일곱개 혹은 붙였다. 떼고 나면 불혹이된다. 즉 40살이다.

공자가 40살 되여 세상 이런저런 일에 미혹되지 않는다고 하여 인생 40을 불혹이라로 했다는 기재가 여러곳에 있다. 사람의 수명을 70으로 치면 40살은 그 중간이다. 전반생과 후반생의 중간이 되는것이다. 그리고 가정으로 놓고 볼때도 우리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 자식을 거느렸으니 가정의 중추이자 중심이 된다. 또 사회적으로 놓고 봐도 그렇다. 사람이 20살에 공작에 참가하여 60살에 퇴직하니 40은 그 중간이 된다. 로소중간, 신구중간, 세대중간, 임기중간, 생리중간, 생존중간이 불혹이다. 중간, 중심, 중견, 중지, 중년, 중천… 온통 중자가 붙는다. 그래서 불혹은 중년의 본격 시작이라고 한다.

불혹-40살, 강산이 네번 변하는 세월이다. 소금도 많이 먹었고 경험도 많이 쌓았으니 그만큼 성숙되였다는것을 말해준다. 후반생을 독립적으로 살아갈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말하는것이 더 적적할것 같다. 그래서 공자는 40이 되여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다고 했을가? 프로이드는 《미혹됨은 미성숙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바로 그 단계를 벗어난것이 불혹이다.

불혹은 자기성숙을 표현한다. 불혹은 7혹을 해제한 경험을 체현하며 자기를 과시한다. 더는 여섯눈이 아니다. 그 여섯눈이 번쩍, 백촉후광으로 밝아졌다. 앞길이 환해졌을가 이제 불혹이 하반생과 어떻게 이어질가, 실증나도록 유혹과 미혹을 살아온 전반생이 풍전등화나 새옹지마로 되였다면 놀라지 않겠는지… 가정의 중임을 떠메고 사회의 중견으로 사는데는 많은 애로와 곤난이 첩첩하다. 그래서 《전반생은 사탕 녹이기고 후반생은 소태씹기》라는 말도 있나 본다.

불혹은 인생의 새로운 시발점이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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