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의 수필 106>

 

 

申 吉 雨   skc663@hanmail.net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장자 외편(莊子 外篇)의 산목(山木) 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장자가 산 속을 지나다가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는데, 벌목하는 이는 그 옆에서 그 나무를 베지 않고 서 있었다. 그 이유를 물은 즉 그 나무는 쓸모가 없다고 하였다. 장자는 이 나무는 재목(材木)이 아니므로 목숨을 보전할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책의 내편 인간세(人間世) 조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남백(南伯)인 자기(子朞)는 상(尙) 나라 언덕을 지나다가 큰 나무 하나를 보고는 놀라워하였다.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 일천 대가 그 그늘에 들 만하였다. 무슨 나무가 이런 것이 있는가? 이는 필시 비상한 재목일 것이다 하고 쳐다보니, 그 가지는 너무 구부러져서 대들보나 서까래 감이 못 되고, 밑둥은 뒤틀려서 관재로도 좋지 않았으며, 그 잎새를 맛보니 입술이 터져 벗겨지고 냄새는 3일 동안이나 독하게 취한 것처럼 만들었다. 이에, 자기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무는 진실로 쓸모없는 나무로다. 그래서, 베는 이가 없어 이렇게 크게 되었구나. 신인(神人)은 이 쓸모없는 재목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모두 어지러운 세상에서 몸을 온전히 하고 환난을 면하며 살아가는 처세 방법을 말하기 위해 사용된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삶의 가치 면에서는 그만두더라도 인간을 과연 유용한 재목(材木)과 쓸모없는 산목(散木)으로 나눌 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어느 경우가 재목이고 어떤 경우가 산목이냐 하는 것은 일과 시기와 처지와 경우 등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어느 것 하나 필요 없이 존재하는 것이란 없으며, 따라서 그 하나하나는 모두 각기 존재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나무들을 보면 모두가 재목들이라 할 수 있다.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한 것은 그것대로, 재질이 무르고 연한 것은 그런대로 각기 쓸모가 있으며, 질기고 곧은 나무는 곧은 대로, 이리저리 휘고 굽은 것은 그것대로 각기 좋은 소재가 되는 것이다. 향기가 나는 나무나 나쁜 냄새의 나무나 이용할 가치가 있는 것이며, 식용의 열매를 주는 나무거나, 약재로 쓰는 나무거나, 가시가 돋은 나무나, 공이가 많은 나무나 그것들은 그것들대로 좋은 재목인 것이다. 나무껍질도 필요에 따라서는 좋은 재료이며, 뿌리나 죽은 나무도 때로는 훌륭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만, 무엇으로 쓰고자 하느냐에 따라 그 나무가 필요한 재목이냐 쓸모없는 산목이냐가 구분될 뿐인 것이다.

땔감으로 쓰고자 하는 데에는 아름드리 전나무가 재목일 수 없으며, 도장이나 목각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데 물렁한 버드나무나 미류나무를 재목이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수원에는 은행나무나 벚나무가 산목일 수 있으며, 정원수로는 오리나무나 자작나무가 산목이 될 수 있다. 분재로는 곧지 않은 뒤틀린 나무가 오히려 재목이며, 죽제품에는 속이 텅 비어 있는 대나무가 재목인 것이다.

따라서, 어느 것 하나 재목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소용과 필요에 따라서 재목일 수도 산목일 수도 있을 뿐이다. 이 경우에 산목이던 것이 저 경우에는 재목이 될 수 있으며, 재목은 또한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산목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모든 나무들이 다 재목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모습이나 성질도 제각각이고, 그들이 지닌 품성과 겉으로 나타나는 인간미도 다르다.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능력과 특기도 다르고, 생활 태도와 좋아하는 취향도 또한 같지 않다.

따라서, 인재(人材)냐 아니냐 하는 것도 재목이냐 산목이냐 하는 것처럼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다. 모두가 인재요, 누구나 재목감인 것이다. 다만, 어디에 필요하며 어떤 일을 맡길 것이냐 하는 경우에 따라 인재일 수도 아닐 수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나무들의 삶이나 재목으로서의 용도처럼 한정적이 아니고 매우 다양하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할 일은 무척 여러 가지이고 많은 경우를 선택할 수가 있다. 다만, 사람들이 인재로 쓰일 경우는 나무들이 재목으로 쓰일 경우보다 훨씬 많은 거의 무한대일 수 있음을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자라나는 사람과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무한한 능력과 개별적인 적성이 잠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자라고 길러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누구나 지적 능력만을 추구하고 그것만을 목표로 하는 모습들을 본다. 특히, 요즈음에는 지식이 곧 최고의 능력이요, 학력 높은 사람이 최고의 인재라는 통념이 맹위를 발휘하는 것을 보는데, 인간이란 꼭 그런 사람만이 훌륭한 인재가 아니요, 또 인간사회는 그런 지적 능력이 높은 사람만이 필요하거나 그들로만 구성 유지되는 것도 아님을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나무들이 재목이요 때로는 산목도 재목일 수 있듯이 사람들은 다 인재일 수 있다. 또한 사람은 나무들과는 달리, 얼마든지 인재로 성장하고 쉽게 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적(知的)인 재목만을 추구하기보다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산목같이 보이는 재목들을 키우는 데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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