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혜선 수필

올해는 돼지해이다. 그것도 황금돼지해라고 한다. 새해가 오기전부터 지구는 돼지꿈으로 떠들썩했다. 돼지꿈은 워낙 부자되는 꿈인데 그것에 황금이 붙었으니 금상첨화의 꿈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럴상싶기도 하다. 올림픽을 앞둔 중국은 쾌속성장을 거듭하고있고 부자들이 많이 나타나고있다. 그런고로 돼지꿈에 들뜬 이들에게 어느 한 돼지의 비참한 최후 운운을 하지 말아야 할 분위기일듯싶다. 하지만 새해 벽두도 지난 이 가을에는 괜찮지 않을가싶다. 가을은 반성의 계절이라고 하지 않는가.


1974년 겨울, 집체호시절의 첫해가 유난히 춥게 기억됐던것은 그 돼지의 죽음때문이였던것 같다.
벌써 그리되였다.
벌써 그 돼지가 죽은지도 33년이 되였다, 집체호시절의 돼지가 말이다.
그해 내 나이 만 열여덟살이였다. 이불짐을 메고 자동차에 앉아 20여명의
동기들과 함께 시골인 룡정과수농장 집체호에 간지 5개월이 되는 섣달이였을것이다. 집체호에 취사당번이라는것이 있었는데 그 당번을 중학시절의 단짝 허복순과 함께 감당하게 됐다. 그 겨울에 그 돼지가 죽었다. 우리 집체호의 돼지였다. 북경돼지라고 불리는 예쁜 아기돼지였다.

북경돼지란 즉 북경종자의 돼지라는 뜻이다. 수령에 대한 숭배가 하늘을 찔렀던 세월이였으므로 돼지앞의 북경이란 규정어는 특이한 정치뉴앙쓰를 풍겼다. 그렇고 그런 세월이였으므로 그때 중국사람들에게는 북경이 세계의 심장으로 인식돼있었다. 세계가 사회주의 중국을 중심으로 돌고 세계인민이 세계의 태양

다리가 길고 허리가 긴 돼지가 잘 자란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 돼지가 그랬다. 다른 돼지들은 일년 열두달에 90킬로그램으로 자라면 잘 자라는것으로 인정되지만 이런 돼지는 일여덟달만에 100킬로그램을 훌쩍 넘긴다고 했다. 그래서 생산성이 높은 이 돼지는 그야말로 북경이란 거창한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붉은 돼지, 사회주의 돼지였다.
집체호 식구들은 이 돼지꼬마를 가족처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다. 꼬마는 모양도 잘 생겼다. 하얀 점과 까만 점이 엇갈려있었고 눈매는 아이새도나 칠한듯 검은빛이고 눈도 아마 쌍거풀이였을것이다. 생김생김이 귀여운데다가 뻐스모양으로 허리가 길고 엉뎅이가 성큼했다. 모두들 그 추운 겨울 동태처럼 얼어서 퇴근하면서도 항상 돼지굴을 기웃거렸고 그때마다 꼬마는 꿀꿀거리며 재롱을 피워 기대이상의 기쁨을 주곤 했다.

그 북경꼬마가 어느날 어디론가 아무 리유없이 사라졌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집체호 식구들이 총동원돼 손전지를 비추며 밤늦도록 찾았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나와 복순이는 안절부절못했다. 취사당번인 우리의 책임이 컸기때문이다.
족보가 북경이기는 하지만 북경으로 갔을리는 만무한데 며칠째 영 종무소식이였다. 그러다가 어느 오후에 나타났을 때 집체호가족의 기쁨은 형용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영 심상치가 않았다. 꼬마는 구유에 부은 죽을 보는척하지 않았다. 새 벼짚을 펴놓은 자리에 눕지 않고 자꾸 얼음우에 몸을 누인다.

누군가 꼬마가 감기에 걸렸으니 집으로 들여와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꼬마를 안아 집체호 취사실 널장판에 눕혔다. 또 누군가 꼬마가 몹시 열이 나는것 같으니 푹 땀을 내서 감기기를 빼줘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꼬마를 안아서 뜨끈뜨끈한 가마목에 눕히고 마대를 두겹이나 덮어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불을 덮어주고싶었을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 꼬마가 동상을 입은것 같으니 찬물에 불궈 몸의 얼음을 빼줘야 한다고 했다. 충분한 리유가 있었다. 우리의 주요 료리감이였던 언 배추시레기도 찬물에 불궈 얼음을 빼곤 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주요 간식인 언 사과배도 찬물에 불궈 얼음을 빼지 않았던가. 동상을 입은 발도 눈으로 문다져 치료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큰 함지에 찬물을 가득 쏟아붓고 꼬마를 찬물에 불궈놓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독감이나 페렴에 걸려 고열상태였을, 혹은 몸살을 앓고있었을 돼지를 우리는 찬물에 담그었다. 그리했으니 돼지에게는 그 얼마나 설상가상이였을가. 그 얼마나 한이 맺혔을가! 그리해놓고도 우리는 꼬마의 몸에서 투명하고 날카로운 얼음이 빠져나오기를 바랐다. 우리가 사랑하는 돼지가, 버스 같이 예쁜 돼지가, 북경종자라는 신분 높은 돼지가 벌떡 일어나 꿀꿀거리기를, 환희에 차 돼지죽을 먹기를, 어서 건강을 회복하고 북경이란 족보에 맞게 100킬로그램으로 자라나기를 바랐다
그러는 동안 돼지는 몇번인가 소리를 질렀던것 같다. 그냥 꿀꿀 웅얼거렸던것 같다. 돼지는 뭐라고 말했을가. 인간들에게 뭐라고 말하고싶었을가. 인간이란 족속은 도대체 왜 이다지도 바보천치괴물인가, 라고 말하고싶었을가?
아무도 돼지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아무도 북경돼지가 죽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1974년 겨울, 유난히도 추웠던것 같다. 북경돼지는 돼지굴에서 집 마루로 옮겨졌다가 다시 뜨거운 가마목으로, 또다시 차가운 물속으로 옮겨지며 그러다가 죽었다.
그리고 또 한번 죽었다.
모두들 너무나 굶주려있었다. 매일 김치에 언 배추국이 전부였던 세월이다. 그리하여 이제 방금 아기에 불과한 돼지는 차가운 물에서 나와 다시 뜨거운 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또다시 밥상으로 옮겨졌다
나와 복순이는 가슴이 아파 그날 밥상에 앉지를 못했다.
북경돼지의 비참한 최후가 왜 하필 모처럼 열린 동창생모임에서 불쑥 떠올랐던것일가? 연변대학 77년급 한어학부 동기들이 모여 문화대혁명후 첫전국고등학교시험회복3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인 예비모임을 진행하고있는중이였다. 그 와중에 그 돼지의 죽음이 떠올랐고 한동안 마음이 짠하게 아팠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기까지 중학교졸업생들은 이불짐에 광활한 천지에는 할일이 많다라는 어명이 찍힌 일기장을 넣고 농촌으로, 농촌으로 실려갔었다. 어명은 또 우리더러, 한낱 중학생인 우리더러 밭고랑을 타고 세계를 내다보라고 했다. 중국혁명만도 벅찬데 세계혁명을 끝까지 진행하라고 했다. 그것도 모자라 하늘땅과 싸워 객관세계를 개조하라고 했다. 그래야만 공산주의를 실현할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한창 공부할 나이에 공부의 권리를 포기당하고 필 대신 낫과 호미를 부여받았다. 지식청년이란 거창한 이름하에 집체호라는 우리에 갇히였으니 그리하여 내가 북경돼지를 떠올린것일가?
지식청년은 묘하게 이률배반적인 량극의 대명사였다. 일인독재의 도구

나와 우리들은 쩍하면 대회전()에 동원됐다. 대회전 동원대회에서 수많은 결심서를 발표했고 수령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수없이 했다. 입당신청서를 혈서로 쓰는 애들도 나타났다. 대회전에 참가해 화선()입당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과배수확철이면 캄캄한 새벽부터 캄캄한 밤에 이어 배를 땄다. 딴 배보다 떨어진 배가 더 많았다. 배의 희생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였다. 혁명의 열정, 충성의 열정에 대한 표현이 중요했다. 그리해야만 로농대중에게서 인정을 받을수 있고 그리해야만 입당이 비준돼 운명을 개변할수 있고 그리해야만 농민들에 의해 도시에 추천받아갈수 있고 그리해야만 대학추천을 받아 꿈을 이룰수 있고 그리해야할 리유가 충분히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현실과 진실의 도착증에 빠져 표현욕에 사무치고 북받쳤다.


전국의 수많은 우리들은 산을 파헤치고 삼림을 잘라내서 다락밭을 만들었다. 어딘가에 저수지를 만들고 어딘가에 방공굴을 파고 어딘가에 무기고를 만들고 어딘가에 물땅크를 만들고 어딘가에 식량저장고를 만들고 어딘가에 또 무언가를 만들었다. 산들에는 기니스북에나 오를만한 어마어마한 혁명구호를 조각했다. 자연은 혁명이란 미명하에 란도를 당하고 릉지처참을 당했다. 누구도 자연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북경돼지를 떠올렸는가? 그 누가 독감이나 페렴에 걸린 돼지에게 집안마루에 눕겠느냐 물은적이 있으며 가마목에 마대를 쓰고 누워 땀을 흘리겠느냐 물은적이 있으며 찬물속에 들어가 얼음기를 빼겠느냐고 물은적이 있는가? 혁명의 이름하에 자연을 멋대로 란도한것이나 사랑의 이름하게 돼지를 제멋대로 혹사한것이나, 이런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북경돼지를 떠올렸던것일가?
집체호가 있었던 모아산을 바라볼 때면 예쁜 북경돼지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30년이란 세월의 저편에서.
하지만 어찌 30년의 저편이라고만 하랴.


자연과 인간의 자연이 30년전에는 혁명이란 이데올로기에 의해 난도를 당했다면 그후의 지금은 문명이란 이데올로기에 의해 혹사를 당하고있지 않은가. 이상기후, 자연재해, 오존


층의 파괴, 남극빙산의 융화에 따른 피해, 동물들의 자결 등은 인과보응관계를 말해주고있는듯하다. 즉 자연을, 그리고 인간의 자연을 릉멸하는자 멸하리라. 그래서 북경돼지의 죽임을 떠올리며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돼버린 집체호시절에 대해서,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지구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게 아닐가?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