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아침 일찍 우체국에 가서 소포 부치고 왔다. 낮에는 가만히 있어도 머리 속에서부터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데 너희들은 얼마나 더울까?

너 휴가 나오면 철망 사다가 담장에 쳐 다오. 바우가 담에 발 올리고 밖을 내다보고 짖으니까 어떤 설늙은 남자가 우산으로 바우 눈을 찔렀어. 하마터면 실명할 뻔했다고. 왜 그랬냐니까 개가 자기만 보면 기분 나쁘게 짖는대. 가만 놔두면 되는 걸 왜 공연히 건드리느냐고~? 건드리길. 지가 개 쳐다보면서 기분 나쁘면, 개는 저 보면 기분 안 나쁜감?

목청이 하도 크니까 동네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밤이면 집지키라고 마당에 풀어놔야 하는 개를, 사람 잘 때 같이 자라고 개집에 초저녁부터 집어넣는구먼. 어서어서 장마가 끝나고 7월에 면회 갈 때는 바다가 고요했으면 좋겠다.


노인은 어떡하라고?


여기는 금방 비가 쏟아질 것같이 잔뜩 흐려있다.

7월 1일부터 버스노선이 전부 바뀌고 번호도 모두 바뀌어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단다. 예를 들면 560번이 5413으로, 26-3번이 540번으로.

버스가 오면 “이 버스 어디가요?”하고 물어볼라치면 벌써 버스는 휑하니 가버리고, 겨우 올라타면 버스카드 대는 기계가 버티고 있지. 요금도 1백 원이 올라서 8백 원이 됐네. 또 내릴때도 카드를 꼭 찍어야 해. 그래야 다음 환승하는 버스나 지하철을 그냥 탈수가 있어. 몇 킬로까지라던가 하여튼 몇 번을 갈아타도 공짜라는군. 이건 잘 한 것 같아. 탈 때마다 돈 내는 것도 하루를 합산해보면 제법 돈이 나가니까 말이야.

“이 명박 시장, 만세!!”

우리 서민들이야 배부르고 등만 따시게 해 준다면야…

그나저나 노인들은 번호외우기도 어렵고, 그 놈의 버스가 기다려나 주냐고요~? 늙은 게 웬수지, 후유~~


공부도 때가 있어


준호야.

이 편지는 언제 들어갈까?

다음주 15일에는 아버지가 중국으로 3박 4일 졸업 여행 가시고, 그 다음 주일 21일은 아버지 졸업식이다. 아버지 대단하지? 아직도 배우려는 의욕이 충만하네요.

네가 6월 13일에 쓴 편지를 다시 읽어보니 행복의 정의를 내려 놨더군. 네 말이 맞아.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사는게 사람 사는 거지. 즐겁게 사는 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거야. 그럼 밥은 누가 먹여 준대? 잠은 그냥 재워 준대?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려면 어떡해야 하느냐?

지금은 죽어라 일해도 돈을 벌똥 말똥한 세상이다.

네가 그동안 모아 놓은 돈으로 ‘주택청약예금’을 들어 놓고 군대간 것은 아주 잘한 일이야.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그걸 종자돈으로 삼아봐. 빈손으로 부모에게 손 벌리는 것 하고, 적더라도 “이만큼은 있습니다.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벌어서 갚겠습니다.”하는 것하고는 천지 차이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교육시켜 줬으면 부모로서 할도리는 다 한거라고.

그런데 준호씨, 우선 공부하십시오. 무엇이든 기초가 튼튼해야 하는 법이니까. 평생을 해야 하는 게 공부지만 공부도 때가 있는 거야. 그 때를 놓치면 후회할 날이 반드시 온다고.


엄마, 더위 먹다


준호야.

어떠냐? 무지무지 덥지? 광목으로 된 군복이라 몸에 척척 달라붙을 테니 얼마나 덥겠어? 그래도 해병이라 모두들 잘 참고 있겠지?

수영 좀 한다고 멀리 폼 잡고 나가지 말고, 수영하다 빠지는 놈 의기충천하여 건질 생각도 말고, 몸 다쳐 가면서 포상 받을 생각도 말고 그냥 딱 중간만 해라.

전쟁이 나서 나라를 지키려고 싸우다 의롭게 죽는다면야 무슨 할 말이 있으랴만 죽을 운명인 사람을 살리고 대신 죽는다는 것. 나는 객기 부리는 것으로 밖에 안 보여. 대개 하지 말라는 것 하다가 사고치는 경우가 많지 않니? 술 잔뜩 마시고 물에 뛰어드는 경우라든지,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판 붙여 놨는데도 꼭 들어가는 사람 있지 않아? 그런 사람의 운명을 대신해서 목숨을 버리는 건 개죽음이야.

의로운 일이라고? 신문에 사진 나고 의로운 시민 어쩌고 하면서 표창하고, 그러곤 금방 잊어버리고, 그 부모는 어떡해? 그렇다고 살려놓은 사람이 그 부모에게 가서 자식이 되어 준대? 자식 대신 그 보모를 봉양하느냐고~?

철길 걸어가는 아이 구해주고 양 다리가 잘린 철도 공무원 있었지? 구해준 아이 부모는 코빼기도 안 보였다더라. 은혜를 모르고 인간의 도리를 모르는 사람의 자식이 커서 뭘 보고 배웠다고 나라에 큰 보탬이 되는 일을 하겠냐?

어른이 되어서 자식에게 올바른 걸 가르쳐야 한다는 건 알지만 엄마로서 내 자식이기 때문에 입 밖에 내서 할 말 아닌 말도 하고 있다.

젊은 네가 이해해라.

엄마가 더위 먹었나보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